총체적 칭의론 (25)

 

 

 

 

[로마서 5장 6-8절]

 

 

 

우리가 “총체적 칭의론”이란 대주제 아래 8가지 소주제를 묵상하고 있는 가운데 지금 우리는 8번째 소주제인 “칭의의 결과”에 대해서 묵상해오고 있습니다.  오늘은 우리가 로마서 5장 6-8절 말씀 중심으로 “칭의의 결과 (6)”에 대해서 묵상하고자 합니다.

 

로마서 5장 6-8절 말씀입니다: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다(6절)고 말씀하고 있는데 여기서 “경건하지 않은 자”란 헬라어 사전을 보니까 예배를 드리지 않는 자요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자요 불 경건한 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칭의를 받기 전에는 경건하지 않는 자(불 경건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러한 하나님을 섬기지도 않는 불 경건한 자들을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것입니다.  성경은 “의인을 위하여 죽은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다(7절)고 말씀하고 있는데 여기서 “의인”이란 의를 행하는 자요, 의롭게 사는 사람이요, 법대로 사는 사람으로서 다른 이들에게 존경을 받은 만한 사람이고 “선인”이란 의로울 뿐만 아니라(바르게 살 뿐만 아니라) 선함과 인자함이 있는 자를 말합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의인이나 선인을 위해서 죽으신 것이 아니라 불 경건한 죄인들을 위해 죽으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6절)에 죽으셨는데 여기서 “연약할 때”란 우리가 지극히 적은 일뿐만 아니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상태에 있을 때”(6절, 현대인의 성경) 예수님께서 불 경건한 죄인들인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것입니다.  죽으시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기약대로”(6절) 불 경건한 우리 죄인들을 위해 죽으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는 창세 전에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계획을 세우시고 그 구원의 계획을 하나씩 하나씩 이루어 나아가심에 있어서 하나님의 “때가 차매”(갈4:4)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사 십자가에 내어 주신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4장 4절 말씀입니다: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로마서 8장 29-30절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여기서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이란 하나님이 미리 정하신(선택하신) 그 이전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구원하시려고 미리 계획하셔서 실행에 옮기심으로 마침내 그들을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천국 보좌에 앉아 영복을 누리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니 이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넓고 깊습니까.  이러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인해 경건치 않는 우리가 의롭다 하심을 얻고 영복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어머니가 자식들을 사랑해서 그 자식들을 죽음에서 건지고 자신은 죽습니다.  그 어머니의 사랑이 얼마나 큽니까.  어머니의 사랑은 하늘보다 크고 바다보다 깊습니다.  우리는 그 어머니의 사랑을 다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 어머니의 사랑도 경건하지 않은 자들을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족히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어머니의 사랑은 그녀의 자식들을 위해 죽으면 그녀의 몸은 무덤으로 갑니다.  그러나 그녀가 그리도 살리려고 한 그녀의 자식들도 비록 그 순간에는 어머니의 희생으로 살지만 그들 또한 언젠가는 죽으므로 그들의 몸은 무덤으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경건하지 않는 자들을 위해 죽으셨을 때 그분의 몸이 무덤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그는 하나님 아버지께 버림을 받기까지 영적 죽음(하나님 아버지와 교제가 끊김)을 맞이하셨고 또한 지옥의 형벌까지 받으셨습니다.  그 목적은 우리를 구원하시사 우리가 영생 복락을 누리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가 어떻게 형용할 수가 있겠습니까.  참으로 헤아릴 수 없는 크고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새 찬송가 304장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가사입니다: (1절)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말로다 형용 못하네 저 높고 높은 별을 넘어 이 낮고 낮은 땅 위에 죄 범한 영혼 구하려 그 아들 보내사 화목 제물 삼으시고 죄 용사 하셨네, (3절) 하늘은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한없는 하나님의 사랑 다 기록할 수 없겠네 하나님의 크신 사랑 그 어찌 다 쓸까 저 하늘 높이 쌓아도 채우지 못하리.”  아무리 우주가 크고 넓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사랑을 다 기록할 수 없습니다. 그 정도로 하나님의 사랑에 비하여 우주는 적은 것입니다.  경건치 않은 자들을 위해 하나님 아버지와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랑을 쏟아부으셨는데 그 사랑은 그리도 많은 바다물을 먹물 삼아도 다 기록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고, 누려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주신 하나님의 사랑과 십자가에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구원하시고자 대속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거하여 그 사랑을 누리므로 예수님의 이중 계명대로 우리의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우리 하나님을 사랑하고 우리의 이웃을 우리 자신 같이 사랑하며 살아가야 합니다(마22:37, 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