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체적 칭의론 (23)

 

 

 

[로마서 5장 3-4절]

 

 

 

우리가 “총체적 칭의론”이란 대주제 아래 8가지 소주제를 묵상하고 있는 가운데 지금 우리는 8번째 소주제인 “칭의의 결과”에 대해서 묵상해오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칭의의 결과를 3가지로 묵상했습니다: (1) 칭의의 결과 (1):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게 되었습니다(롬5:1).  (2) 칭의의 결과 (2):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서 있는 하나님의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습니다(2절상).  (3) 칭의의 결과 (3): 우리가 하나님을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2절하).  오늘은 우리가 로마서 5장 3-4절 말씀 중심으로 “칭의의 결과 (4)”에 대해서 묵상하고자 합니다.

 

로마서 5장 3-4절 말씀입니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여기서 “다만 이뿐 아니라”는 로마서 5장 2절 하반절인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는 말씀뿐만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한다는 말씀입니다.  이 세상은 환난이 많습니다.  우리는 환난이 극하다는 찬송도 드립니다(새 찬송가 70장, “피난처 있으니” 4절).  여기서 “환난”이라는 것은 압박, 짓누른다, 심한 어려움 등을 말합니다.  요한계시록 21장 1절 말씀입니다: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새 하늘과 새 땅은 우리가 사모하는/가고 싶은 천국으로서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다시 있지 않을 “바다”란 이 세상의 고통과 질병과 고난과 환난을 가리킵니다.  이 땅에 있는 동안에는 환난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땅에서 사는 동안에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는 것입니다(롬5:2).  앞으로도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 환난을 당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대 환난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합니다(롬5:3).  환난을 당하면서도 칭의를 받은 사람들은 즐거워합니다.  그 이유는 칭의자들은 주님을 위해서와 주님의 일 때문에 그리고 믿음을 위해서 환난을 당하는 것이기에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1장 29절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칭의 자들이 받는 고난은 그리스도를 위한 것으로서 하나님의 은혜요 그러므로 우리가 즐거워합니다.  사도행전 14장 22절 말씀입니다: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  사도 바울은 그의 제자들에게 마음을 굳게 하라고 권면했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천국)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어느 면으로 보면 환난이란 천국가는 여정의 필수 과목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천국을 향해야 나아갈 때 우리는 예수님처럼 십자가의 길이요 좁은 길을 걷기에 거기에는 환난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천국 가는 길에 겪는 환난도 즐거워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주님을 위해서, 주님의 나라를 위해서, 주님의 일을 위해서 환난을 당하는 것은 즐거운 일입니다.  앞서간 신앙인들이 그렇게 환난을 즐거워했습니다.  마태복음 5장 10-11절 말씀입니다: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칭의를 받은 자들은 심지어 주님을 위해서가 아니고 주님의 일을 하지 않으면서 환난을 당할 때도(예를 들어, 코로나 바이러스 같은 전염병) 즐거워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허락없이 되는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모든 것(환난도) 하나님의 뜻 가운데 일어나는 것이기에 우리는 환난을 당할 때고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사야 45장 7절 말씀입니다: “나는 빛도 짓고 어둠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들을 행하는 자니라 하였노라.”  그러니 우리가 칭의를 받았다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이요 얼마나 감사할 일입니까!  우리가 환난 중에서 즐거워하는 이유는 환난은 인내를 이루는 줄 알기 때문임(롬5:3).  우리가 환난 당할 때 가장 필요한 것은 인내하는 것이요 끝까지 견디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환난을 당할 때 인내를 배워서 인내자가 돼야 합니다.

 

성경은 인내는 연단을 이룬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롬5:4).  우리가 인내는 거듭할수록 연단을 이룹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연단을 받은 자들로서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그 좋은 예가 디모데입니다.  빌립보서 2장 22절 말씀입니다: “디모데의 연단을 너희가 아나니 자식이 아버지에게 함같이 나와 함께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였느니라.”  그러나 연단은 결코 쉽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전서 1장 7절 말씀입니다: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우리가 정금같이 하기 위해서는 불로 연단을 받아야 합니다.  새 찬송가 450장 “내 평생 소원 이것뿐” 3절 가사입니다: “불 같은 시험 많으나 겁내지 맙시다 ....”  우리가 연단되면 주님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실 것입니다. 

 

성경은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롬5:4).  우리의 소망은 천국입니다.  이렇게 연단되면 결국은 소망(천국)에까지 이르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천국을 소망하는 이유는 우리가 천국에 가게 되면 영원히 주님과 함께 살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주일 김현수 목사님이 저희 교회에 오셔서 설교를 하셨는데 그 분이 우리에게 “영원”에 대해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를 들어, 지구 주위에 한 행성에서 새 한 마리가 있는데 그 새의 사명은 지구에 가서 모래를 운반해 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행성에서 지구까지 가려면 백만 년이 걸립니다.  그래서 그 새가 백만 년이 걸려서 지구에 가서 바닷가에 있는 모래를 또 다른 백만 년이 걸려서 그 행성으로 옮긴 후 또 다시 백만 년이 걸려서 지구에 가서 모래를 또 다른 백만 년이 걸려서 그 행성으로 옮기는 것을 되풀이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그 새가 그 바닷가에 있는 모래를 다 행성으로 옮겼습니다.  그런데 영원이라 그 모든 세월보다 더 훨씬 더 많은 영원한 기간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기도문을 드릴 때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라고 말할 때 그 “영원히”를 좀 더 묵상하면서 기도를 드리면 좋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천국)에 들어가 예수님과 함께 영원히 산다는 것을 생각해 보십시다.  이 얼마나 놀라운 복입니까.  이 놀라운 복을 하나님께서는 칭의를 받은 자들에게 주셨습니다.  그러면 칭의를 받지 못한 사람들은 소망을 이루지 못합니다.  그들은 저 지옥에서 영원히 형벌을 받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에게 이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들로 하여금 우리와 함께 천국에서 영생 복락을 누리도록 해야 합니다.

 

하박국 3장 17-19절 말씀입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 이 노래는 지휘하는 사람을 위하여 내 수금에 맞춘 것이니라.”  우리는 칭의를 받은 자들로서 극한 환난을 당한다 할지라도 우리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우리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해야 합니다.  우리는 칭의를 받은 자들로서 환난을 즐거워하는 자리까지 나아가야 함(롬5:3).  사도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려고 했을 때 다들 올라가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20:24).  결국 사도 바울은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붙잡혀 감옥에 가서 순교했습니다.  지금 우크라이나가 전쟁 속에 있는데 그곳을 떠나지 않고 선교하는 선교사님들이 있다고 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환난이 닥칠 줄을 알고도 거기에 아직 남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환난 중에서만 즐거워하는 것이 아니라 환난도 기뻐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