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에 못 박으니라”

 

 

 

[마가복음 15장 25-38절]

 

 

우리가 “총체적 칭의론”에 대해서 묵상해 오다가 오늘은 고난 주간 수요일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기에 마가복음 15장 25-38절 말씀 중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으니라”(25절)란 제목 아래 예수님의 고난을 함께 묵상하고자 합니다.  예수님의 고난을 칭의과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당하심은 칭의의 근거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고난을 당하시고 피 흘려 죽으심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칭의를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칭의를 받은 자들로서 예수님의 십자가에 고난을 묵상하고자 합니다.

 

예수님의 고난에 대해서는 마가복음뿐만 아니라 마태/누가/요한복음에도 다 기록돼 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고난에 대해서 사복음서에 다 기록돼 있지만 마가복음이 다른 복음서보다 비율로 보면 제일 많이 기록돼 있습니다[비록 예수님의 강생(탄생)에 대해서는 마가복음에는 기록이 없지만].  그래서 예수님의 고난에 대해서 제일 많이 기록돼 있는 마가복음 15장 25-38절 말씀을 함께 묵상하고자 합니다.

 

마가복음 15장 25절 말씀입니다: “때가 제삼시가 되어 십자가에 못 박으니라.”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제 삼시”, 즉 “오전 9시경”(현대인의 성경)에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죄명이 적힌 죄패에는 ‘유대인의 왕’이라고 쓰여 있었”습니다(26절, 현대인의 성경).  “그들은 또 예수님과 함께 두 강도도 십자가에 못박았는데 하나는 예수님이 오른편에, 하나는 왼편에 매달았”습니다(27절, 현대인의 성경).

 

마가복음 15장 29절 말씀입니다: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이르되 아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다는 자여”[(현대인의 성경) “지나가던 사람들도 머리를 흔들며 '야! 성전을 헐고 3일만에 짓겠다는 자야”].  여기서 “지나가는 자들”이란 그 때, 즉 유월절 명절 때, 많은 사람들이 왕래했을 것이고 예수님께서는 골고다 언덕에 십자가에 못박히셔 계셨기에 지나가는 자들이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 “지나가는 자들”인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을 보고 “머리는 흔들며 예수를 모역”한 것입니다.

 

마가복음 15장 31절 말씀입니다: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함께 희롱하며 서로 말하되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현대인의 성경)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도 그와 같이 예수님을 조롱하며 '남은 구원하면서 자기는 구원하지 못하는군”].  “지나가는 자들”(29절)뿐만 아니라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함께” 예수님을 “희롱”했다(31절)고 마가복음은 말씀하고 있는데 마태복음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과 함께 희롱”했다(마27:41)는 말씀하고 있고, 누가복음에는 “군인들도 희롱”했다고 말씀하고 있음(눅23:36)[마가복음에는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자들도 예수를 욕하더라”(막15:32)고 말씀하고 있고 마태복음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들도 이와 같이 욕하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마27:44)].  여기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을 희롱한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은 그 당시 종교 지도자들로서 예루살렘 산헤드린 공회원들이었습니다.  이렇게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을 조롱한 사람들은 “지나가는 자들”과 산헤드린 공회원들인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과 “군인들”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강도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아무 죄가 없으신 데도 불구하고 우리를 속량하시고자(죄사하시고자) 그들의 조롱/희롱/욕을 다 받으셨습니다.  그러면 이들의 조롱/희롱/욕 내용은 무엇이었습니까?  한 3가지로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 마가복음 15장 29절 말씀입니다: “… 아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다는 자여”[(현대인의 성경) “야!  성전을 헐고 3일만에 짓겠다는 자야”].

 

비록 “지나가는 자들”이 이렇게 말하면서 예수님을 모욕했지만 실제로 예수님은 자신이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겠다고 말씀하신 적이 없으십니다.  실제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현대인의 성경) “이 성전을 헐어라.  내가 3일 안에 다시 세우겠다”](요2:19).  분명히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에게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고 말씀하셨지 예수님께서 스스로 성전을 헐겠다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더 나아가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성전은 자신의 몸을 가리킨 것이었”음(21절, 현대인의 성경).  그러나 그 “지나가는 자들”은 이 예수님의 말씀의 깊은 뜻을 모르고 예수님을 “모욕”[“조롱”(현대인의 성경)](막15:29)한 것입니다.

 

  • 마가복음 15장 31절 말씀입니다: “…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현대인의 성경) “남은 구원하면서 자기는 구원하지 못하는군”].

 

실제로 예수님께서는 많은 병자들과 귀신들린 자들과 심지어 죽은 자까지도 구원해주셨지만 자기 자신을 구원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예를 들어, 마태복음 4장 3절을 보면 “시험하는 자”인 마귀가 예수님께 와서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고 말했을 때 비록 예수님은 그렇게 하실 능력이 있으셨지만 자기 자신을 위해서 그러지 않으셨습니다.

 

  • 마가복음 15장 32절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의 왕 그리스도가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우리가 보고 믿게 할지어다 …”[(현대인의 성경) “이봐, 이스라엘의 왕 그리스도야, 당장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아라. 그러면 우리도 믿겠다”].

 

만일 종교 지도자들이었던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및 장로들)이 함께 희롱한대로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께서 그 십자가에서 내려오신다면 그들이 말한대로 예수님을 믿었을까요?  결코 아닙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3년 동안이나 예수님과 함께 있었으면서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고도 믿지 못했습니다.  누가복음 24장 36-41절 말씀입니다: “이 말을 할 때에 예수께서 친히 그들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니 그들이 놀라고 무서워하여 그 보는 것을 영으로 생각하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발을 보이시나 그들이 너무 기쁘므로 아직도 믿지 못하고 놀랍게 여길 때에 이르시되 여기 무슨 먹을 것이 있느냐 하시니.”  우리 사람은 예수님을 구주로 모실 능력이 우리 자신에게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종교 지도자들은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께서 “당장 십자가에 내려와 보아라.  그러면 우리도 믿겠다”(막15:32, 현대인의 성경)고 말한 것입니다.

 

마가복음 15장 33-34절 말씀입니다: “제육시가 되매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하더니 제구시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지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를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현대인의 성경) “낮 12시가 되자 온 땅에 어두움이 뒤덮이더니 무려 3시간 동안 계속되었다.  오후 3시에 예수님은 '엘로이, 엘로이, 라마 사박다니' 하고 크게 외치셨다.  이 말씀은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왜 나를 버리셨습니까?'라는 뜻이었다”].  여기서 “제 육시”란 “낮 12시”로서 가장 밝을 때인데 성경은 “온 땅에 어둠이 임”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어두움은 “제 구시”인 “오후 3시”까지 3시간 동안이나 계속되었습니다.  그리고 “제 구시”인 “오후3시”에 예수님께서는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크게 소리를 지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박히신 “오전 9시경”(25절, 현대인의 성경)부터 “오후3시”(34절, 현대인의 성경)까지 6시간동안이나 아무 말씀을 하지 않으시고 침묵하시다가 “오후 3시”에 이렇게 크게 소리를 지르셨습니다.

 

구약 성경에는 예수님의 고난에 대하여 많이 예언되어 있습니다.  그 중에 대표적인 말씀이 바로 이사야 53장입니다.  이사야 53장을 보면 “그는”/”그를”/”그가”/”그에게”/ ”그의”란 말씀이 30번이상 나옵니다.  예를 들어 이사야 53장 4-6절을 보십시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이 말씀만 보아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10번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예는 시편 22편 1절임: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 하여 돕지 아니하시오며 내 신음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막15:34)라고 크게 소리지르심으로 이루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께 버림을 받으셨다는 것은 신비 중에 신비임.  이 고통이야 말로 예수님께서 당하신 고난 중에 제일 고통스러웠던 고난입니다.  이렇게까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고난을 당하시고 죽으심을 근거로 해서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었던 죄인들인 우리가 하나님께 의롭다 하심(칭의)을 받은 것입니다.

마가복음 15장 35-37절 말씀입니다: “곁에 섰던 자 중 어떤 이들이 듣고 이르되 보라 엘리야를 부른다 하고 한 사람이 달려가서 해면에 신 포도주를 적시어 갈대에 꿰어 마시게 하고 이르되 가만 두라 엘리야가 와서 그를 내려 주나 보자 하더라 예수께서 큰 소리를 지르시고 숨지시니라.”  여기서 예수님께서 지르신 “큰 소리”는 무엇입니까?  바로 “다 이루셨다”(요19:30)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원복음인 창세기 3장 15절의 언약의 말씀을 다 이루셨음: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하나님께서는 “뱀”(사탄)에게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라고 말씀하셨는데 여기서 “여자의 후손”은 요셉과 약혼했지만 아직 결혼 전이었던 마리아를 통해 성령으로 잉태되시사(마1:18) 낳은바 되신(25절)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뱀”(사탄)에게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창3:15)고 말씀하셨는데 그 의미는 갈보리 산 십자가에서 사탄이 자기의 후손(예: 대제사장 안나스와 가야바, 유대인 지도자들)을 사용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을 가리킵니다. 

 

마가복음 15장 38절 말씀입니다: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니라.”  여기서 “성소 휘장”은 성소 안에 보면 성소와 지성소가 있는데 성소에서 지성소로 들어가는 입구에 휘장이 있었습니다.  그 휘장을 통해서 성소에서 지성소에 들어갈 수가 있었음.  또 다른 휘장은 성소와 지성소를 막는 휘장이었습니다.  여기서 “휘장”은 제일 좋은 실로 짰습니다.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엮어서 그 휘장을 짰습니다.  그래서 손 등(2cm)만큼 두꺼웠습니다.  이 휘장은 누가 찢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휘장 앞에 수를 놓았는데 그룹(천사) 셋을 수놓았습니다.  그 의미는 천사들이 지키니까 아무나 지성소에 함부로 들어올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지성소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휘장으로 지성소를 막은 이유는 거룩한 하나님께서 계시는 곳이었기에 아무나 함부로 들어오다 가는 죽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천사들이 못 들어오도록 지성소 앞에서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1년 단 한 번 속죄일 때만 대제사장만이 자기 자신과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정결 예식을 다하고 지성소에 들어올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 휘장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숨지셨을 때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된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로 된 이 성소 휘장으로 인해 아무도 거룩하신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지성소에 들어갈 수가 없었지만 예수님이 죽으시므로 이 성소 휘장이 찢어져 둘이 되었기에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에 들어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롬5:2).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자 우리의 모든 죄를 담당하시고 고난당하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습니다.  그 결과 우리가 죄사함(속량)을 받고 하나님께 의롭다 하심(칭의)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진정한 지성소인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히브리서 10장 19-20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히브리서 4장 16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