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를 구원하소서!’
[요한복음 12장 12-15절 말씀]
저와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께 기대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 모든 신자들이 예수 그리스도께 기대하는 것은 “구원”이 아닙니까? 그러면 우리가 생각하는 이 “구원”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기도하며 기대하며 기다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은 무엇입니까? 아마 그 구원 중에는 사랑하는 이들의 질병에서 치유를 받는 구원도 있을 것입니다. 또한 상처나 아픔이나 고통에서 자유를 받는 구원도 있을 것입니다. 또한 가난과 궁핍 가운데서 물질(재물)의 축복을 받는 구원도 있을 것임. 또한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팬데믹과 같은 전염병에서도 건짐을 받는 구원도 우리는 하나님께 구하고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며 기대하며 기다리는 “구원”은 다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약 2,000년 전인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기 전에 유대인들이 기대하고 있었던 그리스도가 있었습니다. 그것을 신학적으로 ‘메시아적 기대’(Messianic expectation)이라고 말합니다. 그 의미는 유대인들이 기대하고 있었던 메시야, 즉 그리스도가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들이 기대하고 있었던 그리스도란 3가지였습니다: 첫째로, 사회적 공의(social justice), 둘째로, 경제적 풍부(economic prosperity), 셋째로, 정치적 자유(political freedom)였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가 오시면 로마 정부로부터 유대 나라를 자유케 하시고, 물질적인 축복 속에서 경제적으로 풍부함도 주시고 또한 유대 사회에 공의가 실천되길 기대했습니다. 특히 그들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수많은 기적들을 행하는 것을 보고 예수님이 그들이 기대하며 기다리고 있었던 메시야, 즉 그리스도라고 믿었던지 아니면 적어도 그리스도이길 기대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에게 있는 매주 중요하고 큰 유월절을 지키려고 예루살렘에 모인 큰 무리들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오신다 함을 듣고(요12:12) 예수님을 환영할 준비를 하였습니다. 그들의 대부분은 그 겉옷을 길에 펴며(마21:8) 다른 이들은 “종려 나무 가지”를 가지고 예수님을 맞으러 나아갔습니다. 그들이 많고 많은 나무 가지들 중에 “종려 나무 가지”를 가지고 예수님을 맞이한 이유는 종려 나무는 “의와 아름다움과 승리”를 상징이었기 때문입니다. 즉, 그 큰 무리들은 예수님을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스라엘의 승리의 왕으로 여겼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물고기 두 마리와 떡 다섯 덩어리로 남자만 5천명 먹이는 이적을 행하셨을 때 큰 무리들은 예수님을 억지로 잡아 왕으로 삼으려고 했습니다(요6:15). 왜 이들은 예수님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으려고 했었습니까? 그 이유는 그들은 예수님께서 왕이 되어 그들을 로마로부터 정치적 해방(political freedom)과 경제적 번영(economic prosperity)과 사회적 공의(social justice)을 가져다줄 것을 기대했기 때문입니다(김세윤). 그래서 그 큰 무리들은 예수님을 보면서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라고 외쳤던 것입니다(요12:13). 그리고 그들을 예수님을 보면서 “호산나”라고 외쳤는데 그 의미는 “지금 우리를 구원하소서”입니다. 그 이유는 그들은 승리의 왕이신 예수님께서 자신들을 로마 정부로부터 구원해 주시길 간절히 원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호산나”(지금 우리를 구원하소서)라고 외쳤던 그 큰 무리들이(12:13) 나중에 가서 예수님께서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심문을 받으셨을 때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큰 소리로 외쳐 댔습니다(19:6).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을 때에는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 욍이시여”라고 외쳤던 큰 무리들(요12:13)이 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그리도 크게 외쳤 댄 것일까요? (19:6) 그 이유는 대제사장들의 입장에서는 예수가 자칭 하나님의 아들이요 자신과 하나님은 하나라고 말하는(10:30) 등 하나님을 모독하는 죄(신성모독 죄)를 범했다고 확실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구약 성경에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신데(신6:4), 즉, 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신데 예수라는 사람이 자기도 하나님이라고 말하니까 그것은 마땅히 하나님께 저주를 받아야 하는 죄인으로 여겼던 것입니다. 그래서 대제사장들과 아래 사람들[“성전 경비병들”(현대인의 성경)](요19:6)이 예수님을 보고 큰 소리로 “십자가에 못 박으로서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6절)했습니다. 그 때 로마 총독 빌라도는 “너희가 친히 데려다가 십자가에 못 박으라 나는 그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였노라”고 말했고(6절) 그 유대인들은 “우리에게 법이 있으니 그 법대로 하면 그가 당연히 죽을 것은 그가 자기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함이니이다”[(현대인의 성경) “우리에게도 법이 있습니다. 저 사람이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였으니 우리 법대로 하면 마땅히 처형되어야 합니다”]하고 우겨댔습니다(7절). 이 말을 듣고 빌라도는 더욱 두려워했으므로(8절, 현대인의 성경) 결국에 가서는 유대인들에게 “여러분의 왕이 여기 있소”하자(14절, 현대인의 성경) 그들은 “큰 소리로 '죽여 버리시오! 십자가에 못박으시오!' 하며 외쳤”습니다(15절, 현대인의 성경). 결국 빌라도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그들에게 넘겨주었고, 그들의 손에 넘어간 예수님은 자기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라는 곳으로 나가셔서 거기서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16-18절, 현대인의 성경).
말씀 묵상을 맺고자 합니다. 제가 제 가족을 생각할 때 주님께 간절히 “호산나”(지금 우리를 구원하소서!) 기도를 드렸던 적이 적어도 두 번 있었습니다. 첫 번째 “호산나” 기도는 저희 부부의 첫째 아기가 중환자실에 있었을 때 저는 주님께 아기를 살려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었습니다. 그것이 제가 주님께 간절히 기도하며 기대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제 첫째 아기는 저의 기도와 기대와 달리 이 땅에서 더 이상 살지 못하고 짧은 55일의 일생을 중환자실에서만 살다가 제 품안에서 죽었습니다. 그 때 주님께서 저에게 주신 말씀은 시편 63편 3절 말씀이었습니다: “주의 인자하심이 생명보다 나으므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할 것이라.” 그리고 주님께서는 아기의 뼛가루를 물에 뿌리고 육지로 돌아올 때 저로 하여금 주님의 굉장하고 놀라운 구원의 사랑을 찬양케 하셨습니다. 두 번째 “호산나” 기도는 저희 부부의 딸 아이가 우울증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었을 때 저는 그녀의 손을 잡고 마룻바닥에 무릎을 끓고 주님께 살려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며 기대했던 것이었습니다. 그 때 주님께서 주신 약속의 말씀은 베드로전서 5장 10절 말씀이었습니다: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 그 결과 주님께서는 그 딸 아이에게뿐만 아니라 저희 부부에게도 베드로전서 5장 10절의 약속을 성취하시사 저희를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셨습니다. 그 결과 주님께서는 그 사랑하는 딸을 부르시사 대학을 졸업한 후 일본으로 보내십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work)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가 주님께 드리는 “호산나” 기도를 생각할 때 주님께서 우리의 호산나 기도와 기대대로 응답하실 때도 있고 그리하지 않으실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우리의 기도와 기대대로 응답하지 아니하실지라도(참고: 단3:18) 우리는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게 아버지 하나님께 간구하신 기도를 통해 배워야 할 것은 비록 우리의 “호산나” 기도는 “이 고난의 잔을 내게서 거두어 주십시오”이겠지만 우리는 예수님처럼 “그러나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십시오”라고 간구해야 합니다(마26:39, 현대인의 성경). 그리고 우리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기까지 하나님 아버지께 복종하신 것처럼(빌2:8) 우리 또한 예수님을 본받아 주님의 뜻에 죽기까지 복종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므로(마6:10, 현대인의 성경) 하나님의 영광이 들어나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모든 고난의 잔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죽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길 원하는,
제임스 김 나눔
[2023년 4월 2일, “호산나”, ‘지금 우리를 구원하소서’라고 성령님께서 생각나게 하시는 사람들을 기억하며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