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정을 공격하는 간교한 사탄 (3)

 

 

 

 

[사무엘하 13장 1-3절]

 

 

마지막 셋째로, 간교한 사탄은 우리 가정을 공격하여 서로 용서하지 못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우리를 용서하시듯이 우리도 서로 용서해야 합니다.

 

루 프리올로(Lou Priolo)는 그의 책 "Resolving Conflict"(갈등 해결)에서 왜 우리가 부모를 용서하지 못하고 있는지 또는 왜 우리가 배우자를 용서하지 않고 있는 것인지에 대해 이러한 말을 했습니다: ‘어쩌면 그 이유는 당신이 그들에게 입은 상처(hurts)와 그 상처들을 준 그 분들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당신에게 (깊은, 큰) 상처를 입혔 때 당신의 마음의 밭에는 쓰라림(bitterness)의 씨앗을 뿌렸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그 쓰라림의 씨앗이 좀 싹이 날 때에 그를 용서하므로 뿌리채 뽑지 않고 오히려 그가 당신에게 입힌 상처만 생각하고 또 생각하므로 재배했습니다.  이렇게 당신은 상처에만 오래 바라보고 있으므로 당신의 마음에 쓰라림이 생긴 것입니다.  쓰라림은 그들을 용서하지 않은 결과입니다.  용서란 당신을 아프게 하고 상처를 준 사람에게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그 상처를 준 사람과 그 상처를 통해서도 역사하시사 영광을 들어내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좋은 예가 요셉)’(프리올로).  성경 창세기에 나오는 요셉은 자기를 미워하고 자리를 죽이려고까지 한 자기의 형들을 진심으로 용서했을 뿐만 아니라 두려워하는 형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고 그들과 그들의 자녀들을 보살펴 주다가 110세에 죽었습니다(창 50:21, 26).  이것이 어떻게 가능하였었을까요?  요셉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았기에(시34:8) 자기를 해하려고 했던 형들에게 선을 행할 수가 있었습니다(엡 2:10).  다시 말하면, 요셉은 형들이 자기를 해하려고 했었지만 하나님께서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깨달았기에(창50:20; 참고: 롬12:2) 그는 형들을 진심으로 용서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여 죽을 때까지 형들과 그들의 자녀들을 보살펴 준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해를 입힌 사람뿐만 아니라 우리를 해하려고 한 악한 사람까지도 마음으로 용서하고 그를 위로하며 보살펴 주기까지 선을 행할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오직 하나님께서 그가 우리를 해하려 한 악한 것을 선으로 바꾸사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이루어 나아가심을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깨닫게 하실 때에 만이 가능합니다.  이 크나큰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합니다.

 

오늘 본문 사무엘하 13장 1-3절 문맥을 보면 압살롬은 암논이 자기 동생 다말을 욕보인 일로 암논을 미워하여 아마도 2년 동안 그와 일체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22-23절, 현대인의 성경).  그리고 그 2년이 지난 후 압살롬은 암논을 죽였으므로 도망하여 그술에서 3년간 지냈습니다(38절).  결국 압살롬은 5년 동안이나 아버지 다윗과 대화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아들 압살롬을 그리워하고 있었던 아버지 다윗(39절, 현대인의 성경)은 도망간 압살롬을 3년 동안이나 찾지 않았습니다.  이것을 생각할 때 아버지 다윗과 아들 압살롬의 관계가 건강해 보이진 않습니다.  결국 요압 장군이 다윗 왕이 압살롬을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드고아에 사람을 보내 지혜로운 여자 한 사람을 데려오게 하여(14:2, 현대인의 성경) 그녀에게 할 말을 일러준 후 다윗 왕에게 보냈습니다(19절, 현대인의 성경).  그 지혜로운 여자가 다윗 왕에게 “대왕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고 보니 죄 있는 사람처럼 되셨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13절, 현대인의 성경).  그 이유는 다윗 왕은 그 여인의 집안 문제는 자기가 맡아서 아무도 그녀의 남은 한 아들[다른 아들과 서로 싸우다가 쳐죽인 아들(6절, 현대인의 성경)]에게 손을 대지 못하도록 명령을 내리겠다고 말했을 뿐만 아니라(8절, 현대인의 성경) “내가 살아 계신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지만 네 아들의 머리카락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11절, 현대인의 성경)라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다윗은 망명 중에 있는 아들 압살롬을 왕궁으로 데려오지 않고 있었기에 그는 그 지혜로운 여자가 보기에 “죄 있는 사람처럼” 된 것입니다(13절, 현대인의 성경).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다윗 왕은 “죄 있는 사람처럼” 되었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그는 죄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죄란 압살롬을 용서하지 않은 죄입니다.  다윗은 자기 아들 암논을 죽인 다른 아들 압살롬을 진정으로 용서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결국에 가서 다윗은 압살롬을 그술에서 예루살렘으로 데려오게 했지만(21절) 그로 하여금 자기 집에 가서 머물러 있게 하고 자기 앞에 2년 동안이나 나타나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 이유는 다윗은 압살롬을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24, 28절, 현대인의 성경).  그 말은 혹시 압살롬이 암논을 2년 동안 미워했듯이(그를 죽이기 전까지) 다윗은 압살롬을 2년 동안 미워했던 것이 아닐까요?  아들 압살롬은 예루살렘에 2년 동안 있으면서 아직 한 번도 뵙지 못한 아버지 다윗왕을 뵈려고 요압 장군으로 하여금 자기를 위해 중재역을 해 달라고 부탁하려 했지만 요압이 그를 만나주지 않았습니다(29절, 현대인의 성경).  그래서 하는 수없이 압살롬은 자기 하인들을 시켜 요압의 보리밭에 불을 지르게 해서 결국 요압을 만났습니다(30-31절, 현대인의 성경).  그때 압살롬은 요압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당신을 부른 것은 당신을 왕에게 보내 왕이 나를 볼 생각이 없었다면 무엇때문에 나를 그술에서 데려왔는지 한번 물어봐 달라고 부탁하고 싶었기 때문이오.  내가 차라리 그 곳에 머물러 있었더라면 좋을 뻔하였소.  이제 나를 왕과 좀 만나게 해 주시오.  만일 나에게 죄가 있다면 왕이 나를 죽여도 좋소”(32절, 현대인의 성경).  저는 이 압살롬의 행동과 말을 생각할 때 압살롬은 아버지 다윗을 그리워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아버지 다윗을 보고 싶어했습니다.  그는 아버지를 만나고 싶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아버지 다윗은 자기를 그술에서 예루살렘으로 데려와 놓고서도 2년 동안이나 한 번도 만나주지 않으니까 자기가 차라리 그술에 머물러 있었더라면 좋을 뻔했다고까지 요압에게 말했던 것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아무리 아버지와 아들이 한 지붕 아래 함께 산다고 할지라도 용서하지 않는 마음은 그 사람 사이에 거리를 멀리 두게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미워하는 마음은 서로에게 거리를 두게 만들지만, 용서하는 마음은 서로의 거리를 좁힙니다.  아무리 그리운 마음이 있다 할지라도 용서하는 마음이 없으면 서로에게서 거리를 두게 만들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만일 다윗이 진심으로 아들 압살롬을 용서했다면 그술에 3년 동안이나 있으므로 못보았던 압살롬을 예루살렘에 데려오게 해 놓고서 또 다시 2년 동안이나 자기 앞에 나타나지 못하게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어느 아버지가 용서한 자식을 5년 동안이나 안 보고 지낼 수 있습니까?  제가 볼 때 다윗은 죄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식을 용서하지 않은 아버지였습니다.  유진 피터슨 목사님은 그의 책 "다윗: 현실에 뿌리박은 영성"에서 다윗이 그의 생애 동안 범한 중대한 죄 중에 가장 많은 대가를 지불한 죄가 바로 자기 아들 압살롬을 진정으로 용서하지 못한 죄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그의 아들 압살롬을 진정으로 용서하지 않고 거리를 두고 멀리하면 할 수록, 그는 하나님과도 멀어져 있었습니다(피터슨).

 

말씀 묵상을 맺고자 합니다.  용서하지 않는 마음은 우리에게 상처를 입힌 사람만 거리를 두고 멀리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하나님과도 멀어져 있습니다.  즉, 용서하지 않는 마음은 주님과 친밀한 교제를 누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셨듯이 우리 또한 가족을 용서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용서하신 것같이 우리도 서로 용서해야 합니다(엡 4:32, 현대인의 성경).  마귀가 지배하는 이 세상(This Age)에 속한 사람들은 "죽어도 용서 못해!"라고 말하지만, 다가오는 세상(The Coming Age)에 속한(하늘에 속한) 하나님의 천국 백성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기까지 용서하신 것처럼 죽기까지 용서합니다(눅 23:34; 고전 15:40, 48, 49; 빌3:20; 요일 5:19).  사랑하는 사람이 우리에게 잘못을 행했을 때 그 사람 앞에서 그 사람의 잘못함의 많음과 크기를 보기 보다 먼저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죄의 많음과 크기를 보아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용서하셨듯이 우리 또한 사랑하는 그 사람을 마음으로 용서할 뿐만 아니라 용기를 내어 그 사람을 마음으로 용납하여 전보다 더욱더 사랑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용서를 구하고 용서를 받을 뿐만 아니라 용서하는,

 

 

 

제임스 김 나눔

(2023년 3월 18일,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며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깨달은 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