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정을 공격하는 간교한 사탄 (2)

 

 

 

[사무엘하 13장 1-3절]

 

 

둘째로, 간교한 사탄이 우리 가정을 공격할 때 가정의 가장인 아버지의 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

 

진재혁이란 사람이 “부모의 리더십이 자녀의 미래를 결정한다”라는 제목 아래 글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권위주의적인 카리스마로 사람들로부터 원하는 결과를 바로 가져올 수 있을지 모르지만 진정으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고 따르는 자들의 신뢰를 얻지 못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리더십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인터넷).  과연 자녀들을 향한 아버지의 진정한 리더십이란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는 가정의 가장인 아버지(남편)들에게 권위(authority)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가장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이 신적 권위를 가지고 가정을 잘 이끌어야(lead)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많은 아버지들이 자녀들에게 권위주의적인 아버지(authoritarian father)란 말을 듣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어쩌면 그 이유는 우리가 인내심이 부족해서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자녀들에게 빠른 결과를 원하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권위주의적인 카리스마로는 자녀들에게 원하는 행동이나 결과는 바로 가져올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진정으로 자녀들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합니다.  우리 아버지들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요?  가정의 가장인 우리 아버지들은 가정을 어떻게 잘 이끌 수 있을까요?  한 3가지로 생각해 보았습니다:

 

  • 가정의 가장인 아버지들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권위를 남용(abuse)해서는 안 됩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신 권위를 남용할 때 우리는 결코 자녀들의 마음을 얻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권위를 지혜롭게 사용하여 가정의 평화와 질서를 지켜 나아가야 합니다.  요즘 많은 가정들을 보면 아버지의 권위가 땅에 떨어진 것 같습니다. 아내도 남편의 권위를 무시하다 보니 자녀들도 어머니를 본받아 아버지를 무시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심각한 문제입니다.  권위가 남용되는 것도 심각한 문제이지만 권위가 무시당하는 것도 심각한 문제입니다.  

 

  • 가정의 가장인 아버지들은 자녀들을 신뢰해야 합니다.

 

물론 이것은 쉽지 않을 것입니다.  특히 자녀들이 부모에게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을 하게 되면 그들을 신뢰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우리 자녀들을 하나님께 의탁한다면 우리 자녀들을 신뢰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하므로 자녀들을 신뢰하는데 헌신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자녀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비록 우리가 원하고 기대하는 빠른 결과는 겉으로 잘 보이지 않을지라도 자녀들을 신뢰하는데 헌신할 때 점진적으로 자녀들의 마음이 아버지들을 믿고 따르게 될 것입니다.

 

  • 가정의 가장인 아버지들은 자녀들과 마음과 마음이 이어지는 대화를 해야 합니다.

 

특히 아버지는 아들하고 마음 문을 열고 일대일 대화를 해야 합니다.  물론 이것도 쉽지 않을 것입니다.  특히 말이 없는 아버지들에게는 자녀들과 대화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해야 합니다.  우리는 의도적이 로라도 자녀들과 대화를 시도해야 합니다. 형식적인 대화보다 서로의 마음 문을 열고 진솔한 대화를 나눠야 합니다.  마음과 마음이 이어지는 대화가 이뤄질 때 우리 아버지들은 자녀들을 잘 이끌 수 있을 것입니다.

 

제 생각엔 오늘 본문 사무엘하 13장 1-3절 문맥에 나오는 아버지 다윗은 한 나라를 잘 다스렸는지는 모르겠지만 자기 가정을 잘 이끌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그리 생각하는 이유는 다윗은 아들 암논에 대해서 너무나 모르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다윗은 자기 아들 암논이 이복 여동생 다말을 몹시 사랑하고 연모하고 있었던 것을 몰랐던 것 같습니다.  또한 다윗은 암논인 ‘침대에 누워 병든 척하고 있었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만일 다윗이 그것을 알고 있었다면 암논이 자기에게 “동생 다말을 보내 내가 보는 앞에서 직접 음식을 만들어 나에게 먹여 주라고 하십시오”라고 말했을 때 “다윗은 다말에게 사람을 보내 암논의 집에 가서 그를 위해 음식을 만들어 주라고 지시하”지 않았어야 했습니다(6-7절, 현대인의 성경).  그 이유는 그것은 마치 고양이에게 생선을 주는 것과 같은 지시였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다윗은 다말을 사랑하고 연모하여 사모하여 병까지 든 암논에게 다말로 하여금 그의 집에 가서 그를 위해 음식을 만들어 주라고 지시할 수가 있었겠습니까?  그 결과로 암논은 다말을 강간했습니다(14절, 현대인의 성경).  그 책임이 아버지 다윗에게 전혀 없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저는 다말이 암논의 집에 가는 것은 마치 “소가 도살장으로 가는 것 같고 사슴이 올가미 속으로 뛰어들어가는 것 같았”다고 생각합니다(잠7:22, 현대인의 성경).  물론 이 모든 간교한 계획의 실행은 심히 간교한 요나답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지만 저는 암논과 다말의 아버지인 다윗도 전혀 책임이 없었다고 말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듭니다.  이 일 후에 이복 오빠인 암논에게 강간을 당한 다말은 자기 오빠 압살롬의 집에서 처량하게 지냈습니다.  그 때 압살롬은 암논이 자기 동생 다말을 욕보인 일로 그를 미워하여 그와 일체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삼하 13:20, 22, 현대인의 성경).  그로부터 2년 후에 압살롬은 잔치를 베풀어 모든 왕자들뿐만 아니라 자기 아버지인 다윗 왕도 초청했습니다(23-24절, 현대인의 성경).  그 때 아버지 다윗은 압살롬에게 “너무 큰 부담이 될 것” 같아 그 잔치에 가지 않고 압살롬에게 복을 빌어 주었습니다(25절, 현대인의 성경).  그 때 압살롬은 아버지 다윗에게 “그러시다면 내 형 암논이라도 우리와 함께 가게 해 주십시오”하자 다윗 왕은 “암논이 너와 함께 가야 할 이유가 무엇이냐?”하고 물었습니다(26절, 현대인의 성경).  그러나 압살롬이 계속 간청하므로 다윗왕은 암논이 압살롬과 함께 가야 할 이유를 모르면서도 암논과 다른 모든 왕자들을 압살롬과 함께 보냈습니다(27절, 현대인의 성경).  자식에게 너무 큰 부담을 주기 싫어하는 아버지 다윗은 그 자식이 자기에게 간청하는 영문도 모른 체 그가 계속 간청하므로 결국 압살롬의 간청을 들어줬습니다.  그 결과 압살롬은 암논을 죽였습니다(29절, 현대인의 성경).  그 2년 동안 압살롬은 자기의 여동생을 욕보인 암논을 미워하여 그를 죽이려고 얼마나 복수의 칼을 갈았을까요?  그 와중에 아버지 다윗은 암논이 다말에게 행한 모든 일을 듣고 “심히 노하”기만 했습니다(21절).  성경은 아버지 다윗이 어리석은 아들 암논을 사랑으로 징계는커녕 책망을 했다는 말씀도 없습니다.  또한 성경은 아버지 다윗이 압살롬의 집에서 처량하게 지내고 있었던 자기의 딸 다말을 찾아가 위로했다는 말씀도 없습니다.  아마도 다윗은 이스라엘 왕으로서 나라의 일을 하느라 무지 바빠서 가정 사역을 할 시간이 없었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