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체적 칭의론 (19)

 

 

 

[로마서 4장 17-25절]

 

 

우리가 “총체적 칭의론”이란 대주제 아래 7가지 소주제를 묵상하고 있습니다: (1) 첫 번째 소주제는 “칭의의 필요성”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기에(롬3:23) “모든 사람”이 절대적으로 칭의가 필요합니다. (2) 두 번째 소주제는 “칭의의 근원”입니다. 칭의의 근원은 성부 하나님이십니다. 성부 하나님께서 의롭다 칭하십니다(롬3:2). (3) 세 번째 소주제는 “칭의의 근거”입니다. 칭의의 근거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성부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 제물과 화목 제물에 근거로 해서 죄인을 의롭다 하십니다. (4) 네 번째 소주제는, “칭의의 방편”입니다. 우리는 성부 하나님이 주시는 칭의를 믿음으로만 받습니다(롬3:22). (5) 다섯 번째 소주제는, “칭의의 보편성”입니다. 성부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이시기에 그분이 행하시는 모든 일이 공평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믿는 자”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의”(칭의)는 “차별”이 없습니다(22절). (6) 여섯 번째 소주제는, “칭의의 목적”입니다. 칭의의 이중목적은 (1) 하나님은 의로우신 분이시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과 (2) 예수님을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시는 것입니다(26절).  (7) 일곱 번째 소주제는, “칭의의 예증”입니다.  사도 바울은 아브라함을 칭의의 예를 들어 증언했습니다.

 

오늘은 로마서 4장 17-25절 말씀 중심으로 계속해서 “칭의의 예증”인 아브라함이 무엇을 행해서가 아니라[예를 들어, 율법을 지킴으로나 할례를 행함으로나 선을 행함으로나 착한(좋은) 일을 행함으로] 의롭다 칭함을 받은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을 믿음으로 의롭다 칭함을 받았다는 사실에 대해 마지막으로 묵상하고자 합니다.  창세기 15장 6절 말씀입니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현대인의 성경)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었으므로 여호와께서는 이 믿음 때문에 그를 의롭게 여기셨다”].  하나님을 믿은 아브라함의 믿음은 어떠한 믿음이었습니까? 

 

로마서 4장 17절 말씀입니다: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현대인의 성경) “이것은 성경에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라고 기록된 말씀과 같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 조상이 된 것입니다.  그가 믿은 하나님은 죽은 사람을 살리시고 없는 것을 있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우시겠다고 약속하셨고 그 약속을 성취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믿은 하나님은 “죽은 사람을 살리시고 없는 것을 있게 하시는 분이십니다”(17절, 현대인의 성경).

 

로마서 4장 18절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현대인의 성경) “아브라함은 도저히 불가능한 것을 바라고 믿었으므로 '네 후손도 저 별들처럼 많을 것이다.' 라고 하신 약속대로 그는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도저히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는 믿음이었습니다.  현대인의 성경으로 말하면, 그의 믿음은 “도저히 불가능한 것을 바라고 믿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인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는 말씀을 믿었습니다.  이 말씀은 창세기 15장 5절의 약속입니다: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 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현대인의 성경) “그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하늘을 쳐다보고 별을 세어 보아라.  네 후손도 저 별들처럼 많을 것이다”].  아브라함이 이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을 때 자식이 한 명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하늘의 별처럼 아브라함의 후손이 많을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의 입장에서 이 하나님의 약속은 바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즉, 그의 입장에서 하나님의 약속은 도저히 불가능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죽은 사람을 살리시고 없는 것을 있게 하시는” 하나님(롬4:17, 현대인의 성경)을 믿었습니다[여기서 죽은 사람을 살리시는 하나님을 생각할 때 우리는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것을 생각할 수 있음(요11장).  그리고 없는 것을 있게 하시는 하나님을 생각할 때 우리는 천지 창조를 생각할 수 있음(창1장)].  그 결과 아브라함은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었습니다”(롬4:18, 현대인의 성경).

 

로마서 4장 19절 말씀입니다: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현대인의 성경) “아브라함은 자기 나이가 백 세가 다 되어 몸은 죽은 것과 다름이 없었고 그의 아내 사라도 나이가 많아 도저히 출산할 수 없는 것을 알고도 믿음이 약해지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은 100세에도 건강했습니다.  그는 다른 데는 다 건강했는데 자식을 낳는 생산의 부분만 죽은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자식을 낳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이 99세가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나타나(창17:1, 현대인의 성경) 그의 아내 사라를 통해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16절, 현대인의 성경).  그 약속의 말씀을 받은 아브라함은 “속으로 웃으며 '100세가 된 사람이 어떻게 자식을 낳을 수 있을까?  사라는 90세나 되었는데 어떻게 자식을 낳을 수 있겠는가?' 하고 중얼거”렸습니다(17절, 현대인의 성경).  즉, 아브라함은 자기나 사라나 도저히 자식을 낳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도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로마서 4장 20절 말씀입니다: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현대인의 성경) “그는 불신앙으로 하나님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에 더욱 굳게 서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아브라함은 도저히 자식을 낳을 수 없는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약속인 “네 후손도 저 별들처럼 많을 것이다”(18절, 현대인의 성경; 창15:5)라는 말씀을 의심하지 않고 오히려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로마서 4장 21절 말씀입니다: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현대인의 성경)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이루실 수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것을 희미하게 믿은 게 아니라 능히 이루실 줄 확신했습니다.  그가 이렇게 확신까지 할 수 있는 큰 믿음이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그런 믿음을 아브라함에게 주셨기 때문입니다(그는 믿은 것이 아니라 믿게 된 것임).

 

로마서 4장 22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현대인의 성경) “그래서 하나님은 이 믿음 때문에 그를 의롭게 여기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칭의를 받은 것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은혜로, 값없이 믿음을 선물로 주셨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 2장 8절 말씀입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현대인의 성경) “하나님의 은혜로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힘으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로마서 4장 23-24절 말씀입니다: “그에게 의로 여겨졌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현대인의 성경) “하나님이 그를 의롭게 여기셨다는 말은 그에게만 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도 하신 말씀입니다.  우리 주 예수님을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다 의롭다는 인정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의롭다 여기셨다는 말은 그에게만 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 주 예수님을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신 (성부) 하나님을 믿는 우리”에게도 하신 말씀입니다(24절, 현대인의 성경).

 

로마서 4장 25절 말씀입니다: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현대인의 성경) “예수님은 우리 죄 때문에 죽임을 당하셨고 우리가 의롭다는 인정을 받게 하시려고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아들 예수님을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해 십자가에 내어 주셨습니다(롬8:32, 현대인의 성경).  여기서 성부 하나님께서 성자 예수님을 아끼지 않으셨다는 말씀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분명히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께서는 영원전부터 서로 사랑하시고 또한 영화를 함께 하셨는데(요17:4-5) 성부 하나님께서 성자 예수님을 아끼지 않으시고 십자가에 내어주셨다는 말씀은 성부 하나님께서 때가 차매 머뭇거리지 않으시고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주신 것입니다.  그 길 밖에는 우리가 구원받을 방법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죄가 얼마나 큰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죽음 밖에 방법이 없었습니다.  또한 성부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해서 성자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셨습니다.  사도행전 3장 15절 말씀입니다: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라”[(현대인의 성경) “생명의 주를 죽였으나 하나님은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그분을 살리셨습니다. 우리는 다 이 일의 증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