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명을 받은 교회의 일꾼

 

 

 

[골로새서 1장 24-29절]

 

 

우리 주님은 우리 모두에게 “소명”과 “사명”을 주셨습니다. 여기서 “소명”이란 주님께서 우리 모두를 ‘부르셨다’는 말이고, “사명”이란 주님께서 우리 모두를 ‘보내셨다’는 말입니다. 소명이란 '부를 소'에 '목숨 명'을 써서 '부름 받은 목숨'이란 뜻이고, 사명이란 '심부름 사'에 '목숨 명'을 써서 '심부름하는 목숨'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를 은혜로 부르셨고, 우리 각자에게 주신 은사로 사명을 감당케 하십니다(인터넷). 예를 들어, 주님께서는 저를 은혜로 부르시사 주님의 일꾼으로 삼아주셨고 또한 저를 제 가정으로 보내셨을 뿐만 아니라 주님의 몸 된 교회로 보내셔서 하나님의 은혜의 힘으로 주님의 일을 하게 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저는 사명감을 가지고 가정 사역과 교회 사역을 감당함에 있어서 저에게는 가정 사명 선언문과 교회 사명 선언문이 있습니다: (1) 가정 사명 선언문은 ‘주님의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므로, 주님 중심된 가정 증인-공동체로 세움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전도의 도구로 쓰임 받는 것’입니다. (2) 교회 사명 선언문은 ‘그리스도 중심된 꿈을 가진 일꾼을 세워 파송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골로새서 1장 25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회의 신실한 성도들에게 이렇게 편지를 통해 말씀했음: “내가 교회의 일꾼 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직분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 현대인의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여러분에게 아낌없이 전하라는 사명을 받은 교회의 일꾼입니다.” 오늘 이 말씀 중심으로 “사명을 받은 교회의 일꾼”이란 제목 아래 한 3가지로 오늘 본문 골로새서 1장 24-29절 말씀을 묵상하면서 주시는 은혜와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첫째로, 사명을 받은 교회의 일꾼은 교회를 위하여 고난을 받습니다.

 

골로새서 1장 24절 말씀입니다: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현대인의 성경) “지금 나는 여러분을 위해 받는 고난을 오히려 기뻐하며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몸인 교회를 위해 받으신 고난에 남은 부분을 내 몸으로 겪고 있습니다”]. 제가 목회자로서 교회에 관한 책들 중에 좋아하는 책 제목이 있습니다. 그 책 제목은 “교회, 나의 고민 나의 사랑”입니다. 저는 이 책 제목을 좋아해서 지금 제가 운영하고 있는 ‘목사, 강도사, 전도사, 사모님’(“목.강.전.사”) 페이스북에 표지에는 “교회, 나의 고민 나의 사랑”이라는 책 표지 사진을 올려놓았습니다. 이 책은 미국의 기독작가인 필립 얀시라는 목사님이 쓴 책으로서 얀시 목사님은 왜 자신이 교회를 떠났는지와 왜 다시 교회로 돌아왔는지, 그리고 돌아온 교회에서 어떻게 자신이 적응했는지를 설명합니다. 결국, 그는 교회에서 의미를 찾게 된 과정이 어떠했는지를 고백적으로 말합니다. 그 책에 필립 얀시 목사님이 한 말 몇 마디를 인용합니다: (1) “여러 과정을 통해 바른 교회를 찾는 열쇠는 내 안에 있음을 배웠다. 내 시각이 관건이었다. 교회를 겨우 참고 견디던 내가 교회를 사랑할 수 있게 된 것도 바로 새로운 시각 덕분이다.” (2) “과거 비판적 소비자 정신으로 교회를 대하며, 예배를 공연으로 보았던 그는 예배에서 우리가 해야 할 질문은 ‘내가 무엇을 얻었는가’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이 기뻐하셨는가’라는 점을 실감했다”고 합니다. (3) “교회가 존재하는 주된 이유는 즐거움을 제공하거나 약한 모습을 받아주거나 자존감을 세워주거나 우정을 북돋는 게 아니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다. 그 일에 실패하면 교회는 실패하는 것이다.” (4) “교회는 가족이며, 가장 함께 살기 싫은 사람이 반드시 살고 있는 곳, 자신의 고통을 가져갈 수 있는 곳이라는 것도 알게 됐다. 교회는 하나님의 모험이요 도박이었다. 위험한 도박을 하면서까지 교회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게 됐다.” (5) “교회가 사명에 실패하고 중대한 과오를 범하는 것은 바로 교회가 하나님의 영광에 늘 미달일 수밖에 없는 인간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하나님이 감행하신 모험이다. 완전한 모습을 기대하며 교회에 들어서는 사람은 그 모험의 본질이나 인간의 본성을 모르는 것이다. 결혼이 끝이 아니라 사랑을 실천하는 씨름의 시작임을 모든 신혼부부가 결국 배우듯 교회 또한 시작일 뿐임을 모든 그리스도인이 배워야 한다”(인터넷).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는 이 얀시 목사님의 글들을 생각할 때 제가 목사로서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으로서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할 것은 바로 교회를 사랑하는 하나님의 마음이다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이유는 제가 그 하나님의 마음을 깨달아가면 갈수록 저는 더욱더 하나님이 하나님의 교회를 사랑하시듯이 저 또한 하나님의 교회를 사랑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제가 하나님의 마음으로 하나님의 교회를 사랑하면 할수록 예수님과 사도 바울을 본받아 교회를 위하여 고난을 받는 것을 기뻐하기까지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오늘 본문 골로새서 1장 24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회의 신실한 성도들에게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고 말씀을 했습니다. 현대인의 성경으로 다시 말한다면,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회의 신실한 성도들을 위해 받는 고난을 오히려 기뻐했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몸인 교회를 위해 받으신 고난에 남은 부분을 바울은 자기 몸으로 겪고 있다고 말씀을 했습니다. 어떻게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회 성도들을 위해 받는 고난을 기뻐할 수 있었을까요? 과연 저와 여러분은 주님의 교회를 위해 고난을 받고 있다면 그 고난을 겪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이고 힘들 텐데 어떻게 사도 바울처럼 그 고난을 기뻐할 수 있을까요? 저는 그 비결이 적어도 3가지라 생각합니다:

 

  • 첫번째 비결은,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을 받는 것은 “은혜”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빌립보서 1장 29절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

 

  • 두번째 비결은, 사도 바울은 고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 된 인격을, 연단 된 인격은 희망(소망)을 갖게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5장 3-4절 현대인의 성경 말씀입니다: “이것뿐만 아니라 우리가 고난 중에서도 기뻐하는 것은 고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 된 인격을, 연단 된 인격은 희망을 갖게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 세번째 비결은, 사도 바울은 자기가 주님과 주님의 교회를 위하여 고난을 받는다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되었기 때문에 기뻐하고 기뻐했습니다.

 

빌립보서 1장 12-18절 말씀입니다: “형제들아 내가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이러므로 나의 매임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시위대 안과 그 밖의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으니 형제 중 다수가 나의 매임으로 말미암아 주 안에서 신뢰함으로 겁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히 전하게 되었느니라 어떤 이들은 투기와 분쟁으로, 어떤 이들은 착한 뜻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나니 이들은 내가 복음을 변증하기 위하여 세우심을 받은 줄 알고 사랑으로 하나 그들은 나의 매임에 괴로움을 더하게 할 줄로 생각하여 순수하지 못하게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느니라 그러면 무엇이냐 겉치레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 골로새서 1장 24절에서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몸인 교회를 위해 받으신 고난에 남은 부분을 자기 몸으로 겪고 있다고 말했는데 그 의미는 무엇일까요? 이 말씀의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교회를 위해 몸소 당하신 모든 고난이 우리를 구원하심에 있어서 충분하지 않거나 부족하다는 의미가 결코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당하신 고난을 충분(sufficient)합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신랑되신 예수님께서 우리 교회를 위해 이 땅에 계실 동안 고난을 받으셨던 것처럼 신부 된 교회인 우리 또한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자기는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여, 그분의 죽으심을 본받길” 원한다(빌3:10, 새 번역)고 말했을 뿐만 아니라 “여러분이 나의 고난에 동참한 것은 잘 한 일입니다”라고도 말했습니다(4:14, 새 번역). 또한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도 “여러분이 고난에 동참하는 것과 같이”(고후1:7, 새 번역)라고 말한 것을 보면 사도 요한이나 사도 바울이 교회를 위하여 고난을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처럼 그들 또한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고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계시록 1장 9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현대인의 성경) “같은 형제이며 하늘 나라 백성으로서 여러분과 함께 고난을 견뎌 온 나 요한은 …”].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회의 신실한 성도들에게도 편지를 쓰면서 “지금 나는 여러분을 위해 받는 고난을 오히려 기뻐하며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몸인 교회를 위해 받으신 고난에 남은 부분을 내 몸으로 겪고 있습니다”라고 말한 것입니다(골1:24, 현대인의 성경). 실제로 바울은 고린도후서 11장 23-28절에서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몸인 교회를 위해 받으신 고난에 남은 부분을 자기 몸으로 겪은 것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아직도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이 편지를 쓰고 있었을 때에도 그의 마음 속에 눌리는 일인 교회를 위하여 염려가 있었다는 사실이 마음에 다가옵니다. 주님을 사랑하기에 주님이 사랑하시는 교회를 사랑하므로 날마다 교회를 위하여 염려했던 바울의 마음은 무거울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28절, 현대인의 성경). 그래서 바울은 성도들 중 누가 약해지면 자기 마음도 약해진 기분이었고 누가 죄를 지으면 자기의 마음도 아파했습니다(29절, 현대인의 성경). 이러한 마음 아픔이 우리에게도 있지 않습니까?

 

우리도 사도 바울처럼 주님의 교회를 위해 받는 고난을 기뻐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을 받는 것은 은혜이기 때문입니다(빌1:29). 우리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의 선물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된 것처럼(엡2:8) 우리는 우리가 믿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을 받는 것은 마땅한 것이요 더 나아가서 그것이 은혜임을 알아야 합니다. 또한 우리가 고난 중에서도 기뻐하는 것은 고난이 인내를, 안내는 연단 된 인격을, 연단 된 인격은 소망을 갖게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롬5:3-4, 현대인의 성경). 그리하면 우리도 바울처럼 주님의 교회를 위해 받는 고난을 오히려 기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랑 되신 예수님께서 신부 된 우리 교회를 위해 고난을 받으신 것을 본받아 우리도 예수님과 복음을 위하여(막8:35; 10:29) 고난을 받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기원합니다.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현대인의 성경) “지금 우리가 받는 고난은 앞으로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전혀 비교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롬8:18).\

 

둘째로, 사명을 받은 교회의 일꾼은 하나님의 말씀을 교회 성도들에게 아낌없이 전합니다.

 

골로새서 1장 25절 말씀입니다: “내가 교회의 일꾼 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직분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현대인의 성경)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여러분에게 아낌없이 전하라는 사명을 받은 교회의 일꾼입니다”]. 고 옥한흠 목사님은 "옥한흠 목사가 목사에게"란 책에서 “구원의 감격이 없으면 직분에 대한 감격도 있을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우리 직분자들 자신에게 반영해 볼 때 2가지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1) 과연 나는 직분에 대한 감격이 있는가? (2) 만일 직분에 대한 감격이 없다면 나는 구원의 감격이 없기 때문이 아닌가? 우리에게 주어진 직분은 우리가 그 직분을 받을 자격이 있어서가 결코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선물입니다(참고: 민18:7, 현대인의 성경).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다양한 직분을 주신 목적은 성도들을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고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자라게 하신 위한 것입니다(엡4:11-12, 현대인의 성경). 우리는 우리 직분이 비난을 받지 않게 하기 위해서 아무에게도 거치는 장애물(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닏ㅏ(고후6:3, 현대인의 성경).

 

오늘 본문 골로새서 1장 25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회의 신실한 성도들에게 이렇게 편지를 썼습니다: “내가 교회의 일꾼 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직분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현대인의 성경)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여러분에게 아낌없이 전하라는 사명을 받은 교회의 일꾼입니다”]. 여기서 사도 바울은 자기 자신이 “교회의 일꾼”(25절)이라고 말씀했는데 이미 23절에서 자기는 “복음의 일꾼”이라고 골로새 교회 성도들에게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기가 교회의 일꾼이 된 것은 하나님이 골로새 교회의 신실한 성도들을 위하여 바울에게 주신 “직분”을 따라 된 것이라 말씀했습니다(25절). 여기서 “직분”이란 영어로 “stewardship”로서 한국어 번역은 “청지기”입니다. 청지기”란 ‘주인의 집을 관리하고, 다른 종들을 감독하고, 자원을 분배하고, 사업과 재정 문제를 처리하는 노예였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사역을 주님의 청지기 직분으로 여겼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집이며(딤전 3:16), 바울은 교회를 돌보고 영의 양식을 먹이고 인도하는 임무를 받았고, 그 일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바울에게 그 책임을 맡기셨습니다(참조, 히 13:17)(맥아더).

 

우리 모든 신자들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능력과 자원을 관리할 책임이 있습니다(맥아더). 베드로전서 4장 10절 말씀입니다: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현대인의 성경) “여러분이 각자 받은 은혜의 선물이 무엇이든간에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관리인답게 서로를 섬기는 데 그것을 사용하십시오”]. 우리는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로서 선한 양심을 가지고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3:16-17; 4:10). 베드로전서 3장 16-17절 현대인의 성경 말씀입니다: “선한 양심으로 생활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이 그리스도 안에서 행한 선한 일을 헐뜯고 욕하는 사람들이 도리어 부끄러움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선한 일을 하면서 고난을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악한 일을 하면서 고난을 받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바울은 주님의 선한 청지기로서 주님께서 그에게 주신 책임 또는 “사명”(골1:25, 현대인의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골로새 교회 성도들에게 아낌없이 전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사도 바울이 말씀하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은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 골로새서 1장 27절을 보면 “이 비밀”(this mystery)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비밀이란 지금까지 감추어져 있었으나 신약에서 처음으로 “하나님의 성도들”에게(26절, 현대인의 성경) 계시된 진리를 가리킵니다(맥아더).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게 하”셨는데(27절) 그것은 구약에서 예언한 메시야(그리스도)가 오는 것이요 또한 메시야(그리스도)가 오시면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구원에 참여할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맥아더). 그래서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 골로새서 1장 27절 하반절에서 “…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를 “영광의 소망”이라고 말씀했는데(27절) 이미 그는 5절에서 골로새 교회의 신실한 성도들이 전에 복음의 진리의 말씀[구원의 복음(엡1:13)]을 들어서 확신하고 있는 “하늘에 쌓아 둔 소망”[“하늘 나라의 소망”(현대인의 성경)]을 말씀했습니다. 이 소망에 대해서 사도 베드로는 베드로전서 1장 3-5절에서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현대인의 성경 말씀입니다: “… 그분은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고 살 희망을 갖게 하셨으며 썩지 않고 더럽혀지지 않고 시들지 않는 하늘에 간직한 축복을 여러분이 받도록 하셨습니다. 여러분은 마지막 때에 나타나도록 예비된 구원을 얻기 위해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하늘에 쌓아 둔 소망”(하늘 나라의 소망)이란 하나님의 긍휼로 거듭난 우리가 마지막 때에 나타나도록 예비된 구원으로서 “하늘에 간직한 축복”입니다. 디모데후서 4장 8절 말씀입니다: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현대인의 성경) “이제 남은 것은 의의 면류관을 받는 일뿐입니다. 이것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신 주님이 재림하시는 날에 나에게 주실 것이며 나에게만 아니라 주님이 다시 오시기를 사모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골로새서 1장 23절에서 골로새 교회 성도들에게 믿음에 굳게 서서 그들이 (에바브라에게) 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말라고 권면했습니다. 결국 바울은 그들에게 “하늘 나라의 소망”(5절, 현대인의 성경)과 “복음의 소망”(23절)과 “영광의 소망”이신 예수 그리스도(28절)를 믿는 믿음에 굳게 서서 흔들리지 말라(23절)고 권면한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하나님의 말씀”(골1:25)인 “영광의 소망”이신 “그리스도”(27절)를 “아낌없이” 골로새 교회 성도들에게 전했습니다(25절, 현대인의 성경). 그는 하나님께서 자기를 보내신 사람들에게 “꺼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다” 전하는데 일심전력(single-minded devotion)을 했습니다(행20:27)(맥아더). 그 이유는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뜻”(행20:27)이요 “하나님의 말씀”(골1:25)이요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행20:27)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는 것이 주님께 받은 사명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20장 24절 말씀입니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오래 전에 저희 교회 전도사님이었던 분이 찬양의 밤(Praise Night)에 하나님께 찬양 드렸던 “사명”이란 복음성가가 생각났습니다: “주님이 홀로 가신 그 길 나도 따라 가오 모든 물과 피를 흘리신 그 길을 나도 가오 험한 산도 나는 괜찮소 바다 끝이라도 나는 괜찮소 죽어가는 저들을 위해 나를 버리길 바라오 아버지 나를 보내주오 나는 달려가겠소 목숨도 아끼지 않겠소 나를 보내주오 … 세상이 나를 미워해도 나는 사랑하겠소 세상을 구원한 십자가 나도 따라 가오 생명을 버리면서까지 나를 사랑한 당신 이 작은 나를 받아 주오 나도 사랑하오.” 우리는 주님께 사명을 받은 교회의 일꾼임. 우리의 사명은 영광의 소망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아낌없이 또한 꺼리지 않고 일심전력으로 전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주님께 받은 이 사명을 묵묵히 신실하게 끝까지 잘 감당하다가 주님께서 오라 하실 때 주님 앞에서 설 때에 주님께 “착하고 충성된 종아”(마25:21)라고 칭찬을 받으며 “의의 면류관”(딤후4:8)를 받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원합니다.

 

마지막 셋째로, 사명을 받은 교회의 일꾼은 그리스도를 전파하며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권면하고 가르칩니다.

 

골로새서 1장 28절 말씀입니다: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현대인의 성경) “우리가 그리스도를 전파하며 온갖 지혜로 모든 사람을 권면하고 가르치는 것은 그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사람으로 하나님께 바치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는 지혜로운 부모가 돼야 합니다.  지혜로운 부모는 에베소서 6장 4절 말씀처럼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자녀를 “양육”합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 부모는 자녀를 교육하고 강건하게 하며 그들이 성숙할 때까지 양육해야 합니다.  여기서 ‘양육하라”는 단어는 에베소서 5장29절에 나와있는 남편은 아내를 ‘양육하라’는 말과 같은 단어입니다.  즉, 아버지는 가정에 영적 지도자로서 아내를 양육할 뿐만 아니라 자녀들도 양육해야 할 책임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부모로서 자녀를 어떻게 양육해야 합니까? 

 

  • 우리 부모들은 우리 자녀들을 “주의 교양”으로(in the training of the Lord) 양육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 부모가 먼저 주님께 징계를 받아 고치심을 받은 후 주님이 걸어가신 길을 걷듯이 우리는 우리 자녀들을 이렇게 양육해야 합니다.  잠언 22장 6절 말씀입니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우리는 우리 자녀들에게 마땅히 행할 길, 지혜로운 길 또는 경건한 삶의 길을 가르쳐야 합니다.  가르침에 있어서 저는 특히 제 자녀들과 교회 자녀들에게 세 가지를 가르치려고 부족하나마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1) 바른 가치관(Right Value), (2) 뚜렷한 목적관(Clear Purpose) 그리고 (3) 영원한 인생관(Eternal View of Life)입니다.

 

  • 우리 부모들은 우리 자녀들을 주님의 “훈계”로(in the instruction of the Lord) 양육해야 합니다.

 

즉, 우리들은 우리 자녀를 사랑으로 충고하며 경고하며 또한 권고해야 합니다.  그 훈계의 목적은 바로 우리 자녀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는 것입니다(골1:28).

 

오늘 본문 골로새서 1장 28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회의 신실한 성도들에게 이렇게 편지를 썼습니다: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이 말씀을 보면 사도 바울은 3개의 동사를 사용했습니다: (1) ‘전파하다’(proclaim), (2) ‘권하다’(warn), (3) ‘가르치다’(teach).  첫 번째 동사인 ‘전파하다’를 생각할 때, 사도 바울이 골로새 교회 성도들에게 무엇을 전파하라고 말했냐면 바로 “영광의 소망”이신 “그리스도”이십니다(27절).  다시 말하면, 바울은 그들이 하늘 나라의 소망이시요 복음의 소망이시며 영광의 소망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라고 권면한 것입니다.  두 번째 동상인 ‘권하다’를 생각할 때,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회 성도들에게 “온갖 지혜로 모든 사람을 권면”한다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권면한다’란 단어의 의미는 ‘훈계하다’(exhortation) ‘경고하다’ 또는 ‘고치다/수정하다/바로잡다’(correction)입니다(NIGTC).  즉, 권한다는 것은 신앙인의 삶을 훈계하는 것으로서 주로 마음의 태도와 관계가 있는데 잘못한 일이 있으면 회개하도록 이끄는 것을 포함합니다(인터넷).  예를 들어,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에게 이렇게 경고를 했습니다: “질투와 술주정과 흥청대며 먹고 마시는 것과 그리고 이와 같은 것들입니다.  내가 전에도 여러분에게 경고했지만 다시 경고합니다.  이런 생활을 일삼는 사람들은 결코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지 못할 것입니다”(갈5:21, 현대인의 성경).  또한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모세 시대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범죄한 것이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본보기(거울)가 되어 우리도 그들처럼 악을 좋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경고해 주고 있”다고 말했습니다(고전10:6, 현대인의 성경).  바울은 디도에게 “분열을 일삼는 사람은 한두 번 경고한 후에 물리치시오”(딛3:10, 현대인의 성경)라고 말했는데 여기서 “분열을 일삼는 사람”이란 “이단에 속한 사람”입니다(개역개정).  우리가 이미 배웠듯이 골로새 교회도 그 당시 이단 사상들의 위협을 받고 있었기에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회 성도들을 경고하면서 믿음에 굳게 서 있으라고 권면한 것입니다(골1:23).  그리고 바울은 그리스도를 전파하면서 “온갖 지혜로 모든 사람을 권면(경고)”했습니다(28절).  세 번째 동사인 ‘가르치다’를 생각할 때,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회 성도들에게 “복음 진리의 말씀”(5절), “하나님의 말씀”(25절)을 가르쳤습니다.  사도 바울은 주님께 사명을 받은 교회의 일꾼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복음을 전파하면서, 이단 사상의 위협을 경고하고, 이단 사상이 주로 공격하는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이신지와 예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행하신 일을 가르쳤습니다.  또한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회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새 사람이 된 자들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가르쳤습니다(3:1-10).  이렇게 사도 바울이 골로새 교회 성도들에 그리스도를 전파하고 각 사람을 권면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친 목적은 무엇이었습니까?  골로새서 1장 28절 하반절 말씀입니다: “…  각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현대인의 성경) “… 그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사람으로 하나님께 바치기 위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회 성도들 한 사람 한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즉, 사도 바울이 골로새 교회 성도들에게 그리스도를 전파하고, 각 사람을 모든 지혜로 권면하고 가르친 목적은 그들을 성숙한 신앙인의 삶을 살아가는 자들로 세우기 위해서입니다(인터넷).  흥미로운 점은 바울은 이미 골로새서 1장 22절에서 하나님 아버지께서 전에 악한 행실로 하나님을 떠나 마음으로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던 골로새인들을 그리스도의 육체적인 죽음을 통해 화목하게 하신 목적이 그들이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하나님 앞에 세우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종합해서 말한다면, 사도 바울의 목적은 골로새 교회 성도들이 거룩하고 흠 업고 책망할 것이 없는 그리스도 안에서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하나님 앞에 세우기 위한 것이라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하여” 사도 바울은 자기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했습니다.  골로래서 1장 29절 현대인의 성경 말씀입니다: “이 일을 위해 나는 내 속에서 힘 있게 일하시는 분의 능력으로 최선을 다해 힘써 일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사도 바울은 자기 속에서 힘 있게 일하시는 성령님의 능력으로 최선을 다해 힘써 일했는데 그러면서 그는 자기의 소망을 모든 믿는 사람들의 구주이신 살아계신 하나님께 뒀습니다.  디모데전서 4징 10절 말씀입니다: “이를 위하여 우리가 수고하고 힘쓰는 것은 우리 소망을 살아 계신 하나님께 둠이니 곧 모든 사람 특히 믿는 자들의 구주시라”[(현대인의 성경) “이것을 위해 우리가 수고하고 애쓰는 것은 우리의 희망을 살아 계신 하나님께 두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 특별히 믿는 사람들의 구주이십니다”].  우리도 우리의 소망을 우리 구주이신 살아계신 하나님께 두고 우리 속에서 힘 있게 일하시는 성령님의 능력으로 최선을 다해 그리스도를 전파하며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권면하고 가르쳐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주님께 사명을 받은 교회의 일꾼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바입니다.  우리의 목적은 한 사람 한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성숙한 신앙인으로서 세우는 것입니다.  이 귀한 열매를 주님께서 맺어드려서 주님께서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고 칭찬을 받을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기원합니다.

 

말씀 묵상을 맺고자 합니다.  우리는 주님께 사명을 받은 교회의 일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셨듯이 우리도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고난을 받아야 합니다(골1:24).  또한 우리는 주님께 사명을 받은 교회의 일꾼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교회 성도들에게 아낌없이 전해야 합니다(25절).  그리고 우리는 그리스도를 전파하며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권면하고 가르쳐서 한 사람 한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성숙한 신앙인으로 세워야 합니다.  우리 모두 소망을 우리 구주이신 살아계신 하나님께 두고 우리 속에서 힘 있게 일하시는 성령님의 능력으로 최선을 다해 그리스도를 전파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아낌없이 전하며,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권면하고 가르치면서 교회를 위하여 고난을 받는 가운데 주님께 이 귀한 열매를 맺어드려서 주님께 칭찬 받는 우리 모두가 되길 기원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주님께 사명을 받은 교회의 일꾼이 된,

 

 

 

제임스 김 나눔

(2023년 3월 5일, 주님께 받은 사명 따라 살다가 주님 앞에 설 때에 주님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고 칭찬받길 간절히 기원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