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이미 행하신 일도 과분한데 …

 

 

 

 

그러자 다윗은 성막에 들어가서 여호와 앞에 앉아 이렇게 기도하였다. '주 여호와여, 나는 누구며 내 가족은 무엇인데 나에게 이런 축복을 베풀어 주셨습니까?  여호와께서 나를 위해 이미 행하신 일도 과분한데 이제 내 집안의 장래 일까지 말씀해 주셨으니 그런 관대하심이 어찌 인간의 표준과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사무엘하7장 18-19절, 현대인의 성경)

 

 

새 찬송가 429장 “세상 모든 풍파 너를 흔들어”를 보시면 1절과 2절과 후렴 가사는 이렇습니다: (1절) 세상 모든 풍파 너를 흔들어 약한 마음 낙심하게 될 때에 내려 주신 주의 복을 세어라 주의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 (2절) 세상 근심 걱정 너를 누르고 십자가를 등에 지고 나갈 때 주가 네게 주신 복을 세어라 두렴없이 항상 찬송하리라, (후렴) 받은 복을 세어 보아라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 받은 복을 세어보아라 주의 크신 복을 네가 알리라.  저는 지난 주일과 이번주 화요일에 온라인으로 가족 기도 모임을 하나님께 드리면서 이 찬송가를 부르고 또 부르면서 주님께서 저와 제 가정과 온 가족 친척 식구들에게 내려주신 복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저는 제 사촌 여동생이 3년 넘도록 암 투병 중에 있는 상황에서도 이 찬송가 가사처럼 “세상 모든 풍파 너를 흔들어 약한 마음 낙심하게 될 때에”든지 “세상 근심 걱정 너를 누르고 십자가를 등에 지고 나갈 때”에든지 주님께서 우리에게 내려 주신 복이 무엇인지를 묵상하므로 성령님께서 깨닫게 하시는 그 받은 복들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과 경배를 드리는 축복을 누렸습니다.  그런 후 이렇게 오늘 하나님께 토요새벽기도회를 드리면서 또 다시 사무엘하 7장 18-19절 말씀 중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우리 승리공동체에게 주시는 말씀과 교훈을 받아 적용하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 사무엘하 7장 18-19절은 다윗 왕이 나단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의 모든 (언약의) 말씀을 받은 후(17절, 현대인의 성경) 성막에 들어가서 하나님 앞에 앉아 기도한 내용의 일 부분입니다: “주 여호와여, 나는 누구며 내 가족은 무엇인데 나에게 이런 축복을 베풀어 주셨습니까?  여호와께서 나를 위해 이미 행하신 일도 과분한데 이제 내 집안의 장래 일까지 말씀해 주셨으니 그런 관대하심이 어찌 인간의 표준과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현대인의 성경)  저는 이 말씀 중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이미 행하신 일도 과분한데 …”라는 제목 아래 한 2가지로 묵상하면서 주시는 은혜와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1) 하나님께서 우리 승리장로교회에게 지난 약 43년 동안 이미 행하신 일이 무엇인가?  (2)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에게 이미 행하신 일도 과분한데 이제 우리 교회의 장래 일까지 말씀해 주신 것이 무엇인가?

 

첫째로, 하나님께서 우리 승리장로교회에게 지난 약 43년 동안 이미 행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 사무엘하 7장 18절 현대인의 성경을 보면 다윗은 하나님 앞에 앉아 이렇게 기도한 것을 우리는 알 수가 있습니다: “주 여호와여, 나는 누구며 내 가족은 무엇인데 나에게 이런 축복을 베풀어 주셨습니까?”  다윗이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한 이유는 한 마디로 말한다면, 그는 자기 자신이 “보잘 것 없는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주님께서 그에게 축복을 베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사무엘상 18장 23절 현대인의 성경 말씀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나처럼 가난하고 보잘 것 없는 사람이 어떻게 왕의 사위가 될 수 있겠소?' 하고 대답하였다.”  이 말씀의 배경은 사울 왕이 자기 딸 미갈이 다윗을 사랑하는 것을 알고(20절, 현대인의 성경) 그녀를 다윗에게 주고 딸을 이용해서 다윗을 함정에 빠뜨려 블레셋 사람의 손에 죽게하려고(21절, 현대인의 성경) 자기 신하들을 통해 다윗에게 사울 왕의 사위가 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말했을 때(22절, 현대인의 성경) 다윗이 그리 대답한 내용입니다(23절, 현대인의 성경).  이 다윗의 대답한 내용뿐만 아니라 사울 왕이 다윗을 죽이려고 추격하고 있었을 때에도 다윗은 사울 왕에게 말한 내용도 보면 다윗은 자기 자신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었는지를 좀 알 수가 있습니다.  사무엘상 24장 14절 현대인의 성경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왕이 잡으려고 하는 자가 누구입니까?  어째서 왕은 죽은 개나 벼룩 같은 자를 쫓고 있습니까?”  다윗이 자신을 “죽은 개”라고 부르는 것은 자신이 비열하고 무력하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훨씬 더 하찮은 것은 “벼룩”, 히브리어로 "벼룩 한 마리", "한 마리의 벼룩"임.  다윗은 왕이 벼룩 한 마리를 잡으러 3000명을 거느리고 나가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합니다(주석).  비슷한 내용이 사무엘상 26장 20절에도 나옵니다.  현대인의 성경 말씀입니다: “… 어째서 이스라엘 왕은 산에서 메추라기를 사냥하듯 이 벼룩과 같은 나의 생명을 찾아 나섰습니까?”  이렇게 자기 자신을 죽은 개나 벼룩과 같은 자로 생각할 정도로 심히 보잘 것 없는 다윗을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통치자)로 삼으셨습니다.  사무엘하 7장 8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내 종 다윗에게 이와 같이 말하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목장 곧 양을 따르는 데에서 데려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고”[(현대인의 성경) “그러므로 너는 내 종 다윗에게 전능한 나 여호와가 이렇게 말한다고 일러주어라.  내가 들에서 양을 치던 너를 택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의 통치자로 삼았고”].  이 하나님의 말씀을 나단 선지자를 통해 전해 들은 다윗의 입장에서는 ‘죽은 개와 같고 벼룩 한 마리와 같이 매우 보잘 것 없는 나 같은 사람을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왕으)로 삼으신 이 은혜와 축복이 얼마나 대단한 축복이요 큰 축복이었겠습니까?  뿐만 아니라 사무엘하 7장 9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그와 함께 하셔서 다윗 앞에서 그의 모든 대적을 파멸해 주셨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이기게 하셨음[다윗이 가는 곳마다 그에게 승리를 주셨습니다(현대인의 성경)](삼하8:14; 23:10; 대상18:6, 13).  그래서 다윗은 사무엘하 7장 20절에서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주 여호와는 주의 종을 아시오니 다윗이 다시 주께 무슨 말씀을 하오리이까” [(현대인의 성경) “여호와께서는 이 종이 어떤 사람인가를 다 알고 계시는데 내가 주께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이 말씀을 다시금 묵상하면서 우리 승리장로교회에게 적용해 보았을 때 과연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에게 지난 약 43년 동안 행한 일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참으로 우리가 보기에도 ‘보잘 것 없는 교회’가 아닌지요?  지리학적으로도 Los Angeles inner city에 좁은 골목 길에 있는 우리 교회가 아닙니까?  또한 숫자적으로 보아도 한 50-60명되는 적은 교회가 아닌가요?  우리 교회가 사람들 보기에 무슨 특별히 우리가 내세울 만한 게 있는 교회인가요?  주님께 보잘 것 없는 저를 구원해 주신 것만해도 과분한 축복인데 저를 기름 부어 주님의 종(목사)으로 세우시고 이렇게 주님의 몸 된 승리장로교회의 목사로 세우신 것이 얼마나 과분한 축복입니까?  특별히 주님께서 저희 교회에게 마태복음 16장 18절 말씀을 주셔서 주님께서 친히 주님의 교회를 여기까지 세워 나아가신 것을 생각하면 참 주님의 과분한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이 곳에 승리장로교회를 1980년 7월에 세워주시사 지난 약 43년 동안 원로 목사님의 약 24년 목회와 또한 저의 19년 목회에 함께하셔서 어떠한 일이 있었던지 간에 승리케 하시사 여기까지 오게 하신 것은 참으로 주님의 과분한 축복이라 생각합니다.

 

마지막 둘째로, 하나님께서 우리 승리장로교회에게 이미 행하신 일도 과분한데 이제 우리 교회의 장래 일까지 말씀해 주신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는 나단 선지자를 통해 다윗에게 그의 집에 있을 먼 장래의 일까지도 말씀하셨습니다(삼하7:19).  그 먼 장래의 일이란 한 6가지로 오늘 본문 문맥에서 알아 볼 수가 있습니다:

 

  •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이름을 땅에서 위대한 자들의 이름 같이 위대하게 만들어 주시겠다고 말씀(약속)하셨습니다.

 

사무엘하 7장 9절 하반절 말씀입니다: “…  땅에서 위대한 자들의 이름 같이 네 이름을 위대하게 만들어 주리라” [(현대인의 성경) “앞으로 나는 네 이름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의 이름처럼 높여 주겠다”].  실제로 “다윗”의 이름은 마태복음 1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족보에까지 나옵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1절), “이새는 다윗 왕을 낳으니라 다윗은 우리아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6절), “그런즉 모든 대 수가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열네대요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17절).  또한 “다윗”의 이름은 로마서 1장 3절에도 나옵니다: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이 말씀은 사도 바울이 로마 교회 성도들에게 복음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말씀인데 그 말씀에도 “다윗”이란 이름이 언급된 것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우리 승리장로교회에 적용할 때 주님께서 주님의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약속하셨사오니(마16:18) 주님의 교회를 통해 ‘예수 그 이름’이 더욱더 위대하게 하시고 높여 주시길 기원합니다.

 

  •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죽어도 그의 아들 하나를 왕으로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시겠다고 말씀(약속)하셨습니다.

 

사무엘하 7장 12절 말씀입니다: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누울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네 씨를 네 뒤에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현대인의 성경) “네가 죽어도 나는 네 아들 하나를 왕으로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겠다”].  여기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다윗이 죽어도 다윗의 아들 중 하나를 왕으로 세우시겠다고 말씀하셨는데 그 아들은 바로 우리가 알고 있듯이 “솔로몬”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약속하신대로 다윗의 후계자로 솔로몬을 이스라엘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우리 승리장로교회에 적용할 때 담임 목사인 제가 죽어도 주님께서 후임자를 세우셔서 계속해서 주님의 교회를 반석위에 견고히 세워 나아가실 것임을 믿습니다.

 

  •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아들 솔로몬 왕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위해 성전을 건축할 것이라고 말씀(약속)하셨습니다.

 

사무엘하 7장 13절 상반절 말씀입니다: “그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현대인의 성경) “바로 그가 나를 위해 성전을 건축할 자이다 …”].  우리가 이미 알고 있듯이 다윗왕은 그리도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고 싶어했지만 하나님께서는 나단 선지자를 통해 다윗에게 “너는 내 성전을 지을 자가 아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5절, 현대인의 성경).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 내용으로 말한다면, 다윗의 뜻은 자기가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는 것이었지만 하나님의 뜻은 다윗의 아들인 솔로몬 왕이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할 것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다윗은 예수님처럼 자기의 뜻대로 하지 마옵시고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되어지길 기원했습니다(참고: 마26:39).

 

저는 이 말씀을 우리 승리장로교회에 적용할 때 하나님의 뜻이 계시다면 제가 죽은 후에라도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해서 헌당할 수 있길 기원합니다.

 

  •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아들 솔로몬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시겠다고 말씀(약속)하셨습니다.

 

사무엘하 7장 12절 하반절과 13절 하반절 말씀입니다: “…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  …  나는 그의 나라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현대인의 성경) “…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겠다.  …  그리고 나는 그의 나라가 영원히 지속되게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현대인의 성경으로 말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의 나라가 영원히 지속되게 할 것이라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사무엘하 7장 16절 말씀입니다: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현대인의 성경) “그리고 네 집안과 네 왕조는 끊어지지 않고 영원히 지속될 것이다”].

 

저는 이 말씀을 승리장로교회에 적용할 때, 주님께서는 주님의 교회를 앞으로도 계속 세우시므로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견고하게 세워주시길 기원합니다.  비록 승리장로교회에는 영원히 지속될 수 없겠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히 지속될 것입니다.

 

  •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아들인 솔로몬 왕의 아버지가 되고 솔로몬은 하나님의 아들이 될 것이라고 말씀(약속)하셨습니다.

 

사무엘하 7장 14절 상반절 말씀입니다: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니 …”[(현대인의 성경)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될 것이다”].  이 약속의 말씀은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솔로몬의 아버지가 되고 솔로몬은 하나님의 아들이 될 것이라는 언약의 말씀으로서 구약에서 주로 말씀하고 있는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될 것이니라’(레26:12; 렘31:33; 겔11:20; 36:28; 37:23, 27; 슥8:8)는 언약의 말씀과 좀 다릅니다.  이 언약의 말씀은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시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 될 것이라는 언약의 말씀이지만 다윗에게는 하나님께서 솔로몬 왕의 아버지가 되시고 솔로몬은 하나님의 아들이 되시겠다고 약속하신 말씀입니다.  즉, 하나님과 솔로몬의 관계는 아버지와 아들인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과의 관계와 다릅니다.  이러한 놀라운 약속의 말씀이요 축복의 말씀을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승리장로교회에 적용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시요 우리는 하나님의 보배롭고 존귀한 자녀들이라고 믿음으로 생각할 때 우리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이미 놀라운 약속의 말씀의 성취의 축복을 누리고 있습니다.

 

  •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은총(자비)를 다윗의 아들인 솔로몬에게 빼앗지(거두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약속)하셨습니다.

 

사무엘하 7장 14절 하반절에서 15절 말씀입니다: “그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의 매와 인생의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내가 네 앞에서 물러나게 한 사울에게서 내 은총을 빼앗은 것처럼 그에게서 빼앗지는 아니하리라”[(현대인의 성경) “만일 그가 범죄하면 나는 사람을 막대기와 채찍으로 사용하여 그를 벌하겠다.  그러나 내가 네 앞에서 제거한 사울에게서 내 자비를 거둔 것처럼 그에게서는 내 자비를 거두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사울 왕이 범죄했을 때 그에게서 은총을 빼앗으셨습니다(자비를 거두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의 아버지가 되셔서 아들인 솔로몬이 범죄하면 사람의 매와 인생의 채찍으로 그를 징계하시면서도 하나님의 은총(자비)을 솔로몬에게서 빼앗지(거두지) 않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우리 승리장로교회에 적용할 때 하나님은 우리가 범죄할 때 우리의 아버지가 되셔서 사랑으로 우리를 징계하시사 결코 하나님의 은총(자비)을 우리에게서 빼앗지(거두지) 않으실 것입니다.

 

말씀 묵상을 맺고자 합니다.  다윗은 나단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전해 들었을 때(17절) 하나님 앞에 나아가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주 여호와여, 나는 누구며 내 가족은 무엇인데 나에게 이런 축복을 베풀어 주셨습니까?”라고 기도했습니다(18절, 현대인의 성경).  뿐만 아니라 다윗은 “여호와께서 나를 위해 이미 행하신 일도 과분한데 이제 내 집안의 장래 일까지 말씀해 주셨으니 그런 관대하심이 어찌 인간의 표준과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기도했습니다(19절, 현대인의 성경).  우리도 다윗처럼 하나님 앞에 나아가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할 수 있길 기원합니다: ‘하나님, 제가 누구며 제 가족과 교회가 무엇인데 저에게 이런 놀라운 축복들을 베풀어 주셨습니까?’  ‘주님께서 저와 주님의 교회를 위해 이미 행하신 일도 과분한데 이제 제 집안과 교회의 장래 일까지 말씀해 주셨으니 그런 관대하심이 어찌 우리 인간의 표준과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보잘 것 없는,

 

 

제임스 김 나눔

(2023년 2월 25일, 주님께서 이미 나와 내 가정과 섬기는 교회에게 내려주신 복과 장래의 내려주실 복을 믿음으로 감사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