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명을 받은 교회의 일꾼 (1)

 

 

 

 

[골로새서 1장 24-29절]

 

 

 

           우리 주님은 우리 모두에게 “소명”과 “사명”을 주셨습니다.  여기서 “소명”이란 주님께서 우리 모두를 ‘부르셨다’는 말이고, “사명”이란 주님께서 우리 모두를 ‘보내셨다’는 말입니다.  소명이란 '부를 소'에 '목숨 명'을 써서 '부름 받은 목숨'이란 뜻이고, 사명이란 '심부름 사'에 '목숨 명'을 써서 '심부름하는 목숨'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를 은혜로 부르셨고, 우리 각자에게 주신 은사로 사명을 감당케 하십니다(인터넷).  예를 들어, 주님께서는 저를 은혜로 부르시사 주님의 일꾼으로 삼아주셨고 또한 저를 제 가정으로 보내셨을 뿐만 아니라 주님의 몸 된 교회로 보내셔서 하나님의 은혜의 힘으로 주님의 일을 하게 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저는 사명감을 가지고 가정 사역과 교회 사역을 감당함에 있어서 저에게는 가정 사명 선언문과 교회 사명 선언문이 있습니다: (1) 가정 사명 선언문은 ‘주님의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므로, 주님 중심된 가정 증인-공동체로 세움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전도의 도구로 쓰임 받는 것’입니다.  (2) 교회 사명 선언문은 ‘그리스도 중심된 꿈을 가진 일꾼을 세워 파송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골로새서 1장 25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회의 신실한 성도들에게 이렇게 편지를 통해 말씀했음: “내가 교회의 일꾼 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직분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  현대인의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여러분에게 아낌없이 전하라는 사명을 받은 교회의 일꾼입니다.”  오늘 이 말씀 중심으로 “사명을 받은 교회의 일꾼”이란 제목 아래 한 3가지로 오늘 본문 골로새서 1장 24-29절 말씀을 묵상하면서 주시는 은혜와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첫째로, 사명을 받은 교회의 일꾼은 교회를 위하여 고난을 받습니다.

 

골로새서 1장 24절 말씀입니다: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현대인의 성경) “지금 나는 여러분을 위해 받는 고난을 오히려 기뻐하며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몸인 교회를 위해 받으신 고난에 남은 부분을 내 몸으로 겪고 있습니다”].  제가 목회자로서 교회에 관한 책들 중에 좋아하는 책 제목이 있습니다.  그 책 제목은 “교회, 나의 고민 나의 사랑”입니다.  저는 이 책 제목을 좋아해서 지금 제가 운영하고 있는 ‘목사, 강도사, 전도사, 사모님’(“목.강.전.사”) 페이스북에 표지에는 “교회, 나의 고민 나의 사랑”이라는 책 표지 사진을 올려놓았습니다.  이 책은 미국의 기독작가인 필립 얀시라는 목사님이 쓴 책으로서 얀시 목사님은 왜 자신이 교회를 떠났는지와 왜 다시 교회로 돌아왔는지, 그리고 돌아온 교회에서 어떻게 자신이 적응했는지를 설명합니다.  결국, 그는 교회에서 의미를 찾게 된 과정이 어떠했는지를 고백적으로 말합니다.  그 책에 필립 얀시 목사님이 한 말 몇 마디를 인용합니다: (1)           “여러 과정을 통해 바른 교회를 찾는 열쇠는 내 안에 있음을 배웠다.  내 시각이 관건이었다.  교회를 겨우 참고 견디던 내가 교회를 사랑할 수 있게 된 것도 바로 새로운 시각 덕분이다.”  (2) “과거 비판적 소비자 정신으로 교회를 대하며, 예배를 공연으로 보았던 그는 예배에서 우리가 해야 할 질문은 ‘내가 무엇을 얻었는가’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이 기뻐하셨는가’라는 점을 실감했다”고 합니다.  (3) “교회가 존재하는 주된 이유는 즐거움을 제공하거나 약한 모습을 받아주거나 자존감을 세워주거나 우정을 북돋는 게 아니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다. 그 일에 실패하면 교회는 실패하는 것이다.”  (4) “교회는 가족이며, 가장 함께 살기 싫은 사람이 반드시 살고 있는 곳, 자신의 고통을 가져갈 수 있는 곳이라는 것도 알게 됐다.  교회는 하나님의 모험이요 도박이었다.  위험한 도박을 하면서까지 교회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게 됐다.”  (5) “교회가 사명에 실패하고 중대한 과오를 범하는 것은 바로 교회가 하나님의 영광에 늘 미달일 수밖에 없는 인간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하나님이 감행하신 모험이다.  완전한 모습을 기대하며 교회에 들어서는 사람은 그 모험의 본질이나 인간의 본성을 모르는 것이다.  결혼이 끝이 아니라 사랑을 실천하는 씨름의 시작임을 모든 신혼부부가 결국 배우듯 교회 또한 시작일 뿐임을 모든 그리스도인이 배워야 한다”(인터넷).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는 이 얀시 목사님의 글들을 생각할 때 제가 목사로서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으로서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할 것은 바로 교회를 사랑하는 하나님의 마음이다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이유는 제가 그 하나님의 마음을 깨달아가면 갈수록 저는 더욱더 하나님이 하나님의 교회를 사랑하시듯이 저 또한 하나님의 교회를 사랑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제가 하나님의 마음으로 하나님의 교회를 사랑하면 할수록 예수님과 사도 바울을 본받아 교회를 위하여 고난을 받는 것을 기뻐하기까지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오늘 본문 골로새서 1장 24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회의 신실한 성도들에게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고 말씀을 했습니다.  현대인의 성경으로 다시 말한다면,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회의 신실한 성도들을 위해 받는 고난을 오히려 기뻐했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몸인 교회를 위해 받으신 고난에 남은 부분을 바울은 자기 몸으로 겪고 있다고 말씀을 했습니다.  어떻게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회 성도들을 위해 받는 고난을 기뻐할 수 있었을까요?  과연 저와 여러분은 주님의 교회를 위해 고난을 받고 있다면 그 고난을 겪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이고 힘들 텐데 어떻게 사도 바울처럼 그 고난을 기뻐할 수 있을까요?  저는 그 비결이 적어도 3가지라 생각합니다:  

 

  • 첫번째 비결은,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을 받는 것은 “은혜”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빌립보서 1장 29절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

 

  • 두번째 비결은, 사도 바울은 고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 된 인격을, 연단 된 인격은 희망(소망)을 갖게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5장 3-4절 현대인의 성경 말씀입니다: “이것 뿐만 아니라 우리가 고난 중에서도 기뻐하는 것은 고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 된 인격을, 연단 된 인격은 희망을 갖게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 세번째 비결은, 사도 바울은 자기가 주님과 주님의 교회를 위하여 고난을 받는다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되었기 때문에 기뻐하고 기뻐했습니다.

 

빌립보서 1장 12-18절 말씀입니다: “형제들아 내가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이러므로 나의 매임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시위대 안과 그 밖의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으니 형제 중 다수가 나의 매임으로 말미암아 주 안에서 신뢰함으로 겁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히 전하게 되었느니라 어떤 이들은 투기와 분쟁으로, 어떤 이들은 착한 뜻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나니 이들은 내가 복음을 변증하기 위하여 세우심을 받은 줄 알고 사랑으로 하나 그들은 나의 매임에 괴로움을 더하게 할 줄로 생각하여 순수하지 못하게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느니라 그러면 무엇이냐 겉치레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 골로새서 1장 24절에서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몸인 교회를 위해 받으신 고난에 남은 부분을 자기 몸으로 겪고 있다고 말했는데 그 의미는 무엇일까요?  이 말씀의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교회를 위해 몸소 당하신 모든 고난이 우리를 구원하심에 있어서 충분하지 않거나 부족하다는 의미가 결코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당하신 고난을 충분(sufficient)합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신랑되신 예수님께서 우리 교회를 위해 이 땅에 계실 동안 고난을 받으셨던 것처럼 신부 된 교회인 우리 또한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자기는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여, 그분의 죽으심을 본받길” 원한다(빌3:10, 새 번역)고 말했을 뿐만 아니라 “여러분이 나의 고난에 동참한 것은 잘 한 일입니다”라고도 말했습니다(4:14, 새 번역).  또한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도 “여러분이 고난에 동참하는 것과 같이”(고후1:7, 새 번역)라고 말한 것을 보면 사도 요한이나 사도 바울이 교회를 위하여 고난을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처럼 그들 또한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고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계시록 1장 9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현대인의 성경) “같은 형제이며 하늘 나라 백성으로서 여러분과 함께 고난을 견뎌 온 나 요한은 …”].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회의 신실한 성도들에게도 편지를 쓰면서 “지금 나는 여러분을 위해 받는 고난을 오히려 기뻐하며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몸인 교회를 위해 받으신 고난에 남은 부분을 내 몸으로 겪고 있습니다”라고 말한 것입니다(골1:24, 현대인의 성경).  실제로 바울은 고린도후서 11장 23-28절에서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몸인 교회를 위해 받으신 고난에 남은 부분을 자기 몸으로 겪은 것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아직도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이 편지를 쓰고 있었을 때에도 그의 마음 속에 눌리는 일인 교회를 위하여 염려가 있었다는 사실이 마음에 다가옵니다.  주님을 사랑하기에 주님이 사랑하시는 교회를 사랑하므로 날마다 교회를 위하여 염려했던 바울의 마음은 무거울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28절, 현대인의 성경).  그래서 바울은 성도들 중 누가 약해지면 자기 마음도 약해진 기분이었고 누가 죄를 지으면 자기의 마음도 아파했습니다(29절, 현대인의 성경).  이러한 마음 아픔이 우리에게도 있지 않습니까?

 

우리도 사도 바울처럼 주님의 교회를 위해 받는 고난을 기뻐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을 받는 것은 은혜이기 때문입니다(빌1:29).  우리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의 선물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된 것처럼(엡2:8) 우리는 우리가 믿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을 받는 것은 마땅한 것이요 더 나아가서 그것이 은혜임을 알아야 합니다.  또한 우리가 고난 중에서도 기뻐하는 것은 고난이 인내를, 안내는 연단 된 인격을, 연단 된 인격은 소망을 갖게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롬5:3-4, 현대인의 성경).  그리하면 우리도 바울처럼 주님의 교회를 위해 받는 고난을 오히려 기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랑 되신 예수님께서 신부 된 우리 교회를 위해 고난을 받으신 것을 본받아 우리도 예수님과 복음을 위하여(막8:35; 10:29) 고난을 받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기원합니다.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현대인의 성경) “지금 우리가 받는 고난은 앞으로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전혀 비교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롬8:18).\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부르심을 받아 주님의 일꾼이 된,

 

 

 

 

제임스 김 나눔

(2023년 2월 12일, 주님께서 사명을 받아 은혜로 주신 은사를 사용하여 예수님과 복음을 위해서 살면서 어떠한 괴로움이나 고난을 당한다 할지라도 주님 안에서 기뻐하길 기원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