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의 3가지 마지막 권면
[골로새서 4장 2-6절]
“권면”이란 무엇입니까? 네이버 사전을 보니까 한국어로 “권면”하면 “알아듣도록 권하고 격려하여 힘쓰게 함”이라고 정의를 내리고 있습니다(네이버 사전). 그런데 원어 헬라어로 “권면”이란 “간곡한 권고, 장려”(exhortation), “격려”(encouragement), “위로”(comfort)란 의미입니다. 빌립보서 2장 1절 상반절을 보면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권면”이란 단어의 뜻은 ‘신자들의 믿음을 견고케 하며 확고히 하는 목적으로 간곡히 권고(장려)(exhortation)하던지 책망(경고)(admonition)하던지 또는 격려(위로) (encouragement)하는 것을 의미함(The Complete Word Study Dictionary: New Testament). 이 단어를 사도 바울이 오늘 본문 외에도 그의 편지에 여러 번 사용하였는데 그 중에 하나가 바로 고린도후서 8장 4절입니다: “이 은혜와 성도 섬기는 일에 참여함에 대하여 우리에게 간절히 구하니.” 그러면 빌립보서 2장 1절에서 사도 바울이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그리스도 안에서 간절히 구하는 것(urgently plead), 즉 그가 간곡히 권고하는 것(exhort)은 무엇일까요? 바로 ‘마음을 같이하라’는 말씀입니다(빌2:2상). 여기서 ‘마음을 같이하라’는 말씀은 사도 바울이 이미 빌립보서 1장 27절에서 말한 것처럼 “한 마음”(one mind)을 말씀합니다. 즉,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한 마음을 품으라고 그리스도 안에서 권면/간곡히 권고한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것이 바로 교회가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1:27). 그런데 불행하게도 빌립보 교회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고 있지 못했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면 빌립보서4장 2절을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빌립보 교회 안에서 이 두 여인들은 같은 마음을 품지 못하고 있었기에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한 마음을 품으십시오’ (1:27), ‘마음을 같이하십시오’(2:2)라고 온 교회 성도들에게 말하면서 4장 2절에 와서는 유오디아와 순두게란 이름을 구체적으로 언급하면서 그 두 여인에게 ‘같은 마음을 품으라’고 간곡히 권면하였던 것입니다. 또한 빌립보서 2장 3절 상반절을 보면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라는 것을 보면 그들 가운데서 다툼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들 가운데 다툼이 있었던 원인은 바로 허영심(vain conceit)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골로새서 4장 2-6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골로새에 있는 성도들 곧 그리스도 안에서 신실한 형제들에게 편지”를 쓰면서(1:2) 마지막으로 그들에게 3가지로 권면하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부터 그 권면의 말씀들을 묵상하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을 받아 우리 모두가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로 겸손히 진실되게 실천에 옮기는데 노력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기원합니다.
첫째로, 바울은 골로새 교회 성도들에게 항상 기도에 힘쓰라고 권면했습니다.
골로새서 4장 2절 말씀입니다: “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현대인의 성경) “항상 기도에 힘쓰십시오. 기도할 때 정신을 바짝 차리고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미국 작가 바세비스 싱어는 이러한 말을 했다고 합니다: "고난 가운데 있을 때, 나는 단지 기도합니다. 그런데 나는 항상 고난 가운데 있기 때문에 항상 기도합니다." 참으로 고난이 많은 세상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고난 가운데 있을 때 우리는 하나님을 찾습니다. 특히 여기 저기서 들리는 소식들이 참으로 어렵고 힘든 가운데 있는 사랑하는 형제, 자매들이 있습니다. 그 소식들을 들을 때 마음이 아프고 무겁지만 그럴 때마다 우리는 함께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런데 싱어라는 작가의 말처럼 “항상 고난 가운데 있”는 형제, 자매들은 하나님께 “항상 기도”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 골로새서 4장 2절 현대인의 성경 말씀을 보면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회 성도들에게 “항상 기도에 힘쓰십시오”라고 권면했습니다. 이 말씀의 원어(헬라어) 의미는 “용감하게 끈기 있게” 또는 “굳게 붙잡고 놓지 않는 것”이며 여기서는 끈기 있는 기도를 가리킵니다(맥아더). 사도 바울이 골로새 교회 성도들에게 말한 이 끈기 있는 기도에 관하여 이미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귀한 교훈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는 그 교훈을 누가복음 11장에서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한 곳에서 기도하시고 마치”셨을 때 “제자 중 하나가”(1절) “주님, 요한이 그의 제자들에게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준 것처럼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십시오”하였습니다(1절, 현대인의 성경).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우리가 알고 있는 ‘주기도문’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우리에게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 죄도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소서”(2-4절). 그러신 후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너희 중 어떤 사람에게 친구 하나가 있다고 하자. 그런데 그 친구가 한밤중에 찾아와서 '여보게, 빵 세 개만 꾸어주게”(5절, 현대인의 성경)라고 말씀하신 후 결국에 예수님께서는 그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가 비록 자기 친구라는 이유 때문에 일어나 주지는 않을지라도 그가 끈질기게 졸라대기 때문에 일어나 그에게 필요한 것을 줄 것이다”(8절, 현대인의 성경). 그렇게 말씀하신 후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구하라. 그러면 받을 것이다. 찾아라. 그러면 찾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 누구든지 구하는 사람은 받을 것이며 찾는 사람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사람에게는 열릴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9-10절, 현대인의 성경). 이 예수님의 말씀은 끈기 있게 하나님께 기도할 때 포기하지 않기로 결심하고 계속해서 기도 응답 받을 때까지 기도하라는 교훈을 우리게 줍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누가복음 18장에서도 실망하지 말고 항상 또는 끈기 있게 기도함에 대해서 제자들을 가르치시고자 비유를 들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1절, 현대인의 성경):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관이 있었다. 그리고 그 도시에는 한 과부도 있었는데 그녀는 자주 재판관에게 찾아가서 자기 원수를 갚아 달라고 애원하였다. 재판관은 얼마 동안 그녀의 간청을 들어주지 않고 있다가 마침내 이렇게 중얼거렸다.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데도 이 과부가 계속 나를 성가시게 하니 내가 그녀의 간청을 들어주어야겠다. 그렇지 않으면 이 여자가 계속 와서 나를 괴롭힐 것이다'”(2-5절, 현대인의 성경). 그리고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이 옳지 못한 재판관의 말에 귀를 기울여라. 하나님께서 직접 택하신 백성이 밤낮 부르짖는데 원수를 갚아 주시지 않고 계속 그대로 두실 것 같으냐? 내가 너희에게 말하지만 하나님이 속히 그들의 원수를 갚아 주실 것이다. 그러나 내가 다시 올 때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보겠느냐?”(6-8절, 현대인의 성경) 이 예수님의 말씀은 끈기 있게 하나님께 기도할 때 낙심하지 말고 계속해서 기도 응답 받을 때까지 기도하라는 교훈을 우리게 줍니다.
제가 대학교 때 어느 목사님으로부터 제자 훈련을 받았을 때 배운 ‘기도 응답의 확신’ 성경 구절이 생각납니다. 요한복음 16장 24절 말씀입니다: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우리가 가져야 할 기도 응답의 확신은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대로 실망하지 않고 끈기 있게 하나님께 기도(간구)하면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반드시 우리의 기도를 응답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어린 아이가 자기를 사랑하는 아빠에게 자기가 원하는 것을 끈질기게 졸라대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다른 것은 성숙한 하나님의 자녀는 아빠 아버지께 끈질기게 졸라대는 기도를 드릴 때에 예수님처럼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간구합니다(눅22:42).
사도 바울은 골로새서 4장 2절에서 “항상 기도에 힘쓰십시오”(현대인의 성경)라고 골로새 교회 성도들에게 권면을 한 후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라고 권면했습니다. 현대인의 성경으로 말한다면, 바울은 그들에게 “기도할 때 정신을 바짝 차리고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라고 권면을 했습니다. 여기서 “깨어있으라”, 현대인의 성경으로는 “기도할 때 정신을 바짝 차리”라는 말씀의 문자적인 의미는 ‘깨어 있고, 엄격하게 주의를 기울이고, 영적으로 경계하면서 기도하라는 말입니다(KJV 성경 주석). 무엇을 영적으로 경계해야 하는가 하면 기도할 때 떠도는 생각(wandering thoughts)에 대해 경계해야 하며 또한 무관심에 주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KJV 성경 주석). 실제로 우리가 정신을 바짝 차리고 기도하지 않으면 충분히 별의별 생각이 들 수가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우리는 모호하고(vague) 초점이 맞지 않는(unfocused) 기도를 하나님께 드릴 확률이 참 많습니다(참고: 맥아더). 이러한 기도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한다고 말하기보다 결국 “허공에다가 말하는 셈이 됩니다”(고전14:9, 현대인의 성경).
흥미로운 점은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회 성도들에게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고 말씀한 것입니다(골4:2). 현대인의 성경으로 말한다면, “기도할 때 정신을 바짝 차리고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왜 사도 바울은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고 말씀한 것일까요? 저는 이 질문을 제 자신에게 던졌을 때 골로새서 1장 3절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감사하노라”[(현대인의 성경) “우리는 여러분을 위해 기도할 때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께 항상 감사를 드립니다”]. 바울이 골로새 교회 성도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했던 이유는 그들이 그리스도 예수님을 잘 믿고 모든 성도를 사랑하며 하늘 나라의 소망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입니다(4-5절, 현대인의 성경). 그러므로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4:2)는 말씀의 의미는 계속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잘 믿고 모든 성도를 사랑하며 하늘 나라의 소망을 가지고 있을 때에야 감사함이 있을 것이기에 한 마디로 말한다면, 정신을 바짝 차리고 믿음, 사랑, 소망의 생활을 하면서 기도하라는 말이라 생각합니다. 비슷한 말씀이 데살로니가전서 5장에도 나옵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게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릴지라”(6절)고 말씀한 후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정신을 차리고 믿음과 사랑의 호심경을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고 말씀했습니다[(현대인의 성경) “그러나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므로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믿음과 사랑과 구원의 희망으로 완전 무장합시다”].
그리고 나서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회 성도들에게 오늘 본문 골로새서 4장 3-4절에서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또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되 하나님이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 주사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 내가 이 일 때문에 매임을 당하였노라 그리하면 내가 마땅히 할 말로써 이 비밀을 나타내리라”[(현대인의 성경)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전도의 문을 열어 주셔서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할 수 있도록 우리를 위해 기도해주십시오. 나는 이 일 때문에 지금 갇혀 있습니다. 내가 이 비밀을 명확하게 전하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여기서 우리는 바울이 골로새 교회 성도들에게 자신과 디모데(1:1)를 위하여 기도 부탁(prayer request)을 하는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 기도 부탁이란 하나님이 바울과 디모데에게 “전도의 문”(a door for the word)을 열어 주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전도의 문”(현대인의 성경) 또는 “전도할 문”(개역개정)이란 문자적으로는 ‘말씀을 위한 문’으로서 ‘설교를 위한 문’입니다(a door for preaching)임(Word Picture in the NT 주석). 그리고 여기서 바울이 “설교”하길 원했던 내용은 “그리스도의 비밀”(the mystery of Christ)이었습니다(3절). “그리스도의 비밀”이란 바울 당시의 이단인 영지주의자들의 어리석은 ‘비밀’을 비교할 수 없게 만드는 “비밀”인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골로새서 2장 2절 현대인의 성경 말씀입니다: “내가 이처럼 애쓰는 것은 그들이 마음에 용기를 얻고 사랑으로 단합하며 이해함으로 얻게 되는 완전한 확신의 부요함에 이르러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알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바울은 이 그리스도(의 복음)를 “명확하게” 전하길 원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골로새 교회 성도들에게 “내가 이 비밀을 명확하게 전하도록 기도해 주십시오”라고 기도 부탁을 했던 것입니다(4절, 현대인의 성경).
바울이 에베소 교회에 쓴 편지에서도 마지막 부분에 이렇게 기도 부탁을 했습니다: “또 내가 입을 열 때마다 나에게 말씀을 주셔서 기쁜 소식의 비밀을 담대하게 전할 수 있도록 나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이 일을 위해서 나는 쇠사슬에 묶인 사신이 되었습니다. 내가 당연히 해야 할 말을 담대하게 말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엡6:19-20, 현대인의 성경). 이 기도부탁의 말씀을 보면 사도 바울의 관심은 기쁜 소식, 즉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전하는 것임을 우리는 알 수가 있습니다. 바울은 이 복음 전파하는 일에 “쇠사슬에 묶인 사신”이 되었기에 자기는 당연히 해야 할 말을 담대히 말할 수 있도록 에베소 교회 성도들에게 기도를 부탁한 것입니다. 이것은 사도 바울이 얼마나 주님께서 자기에게 주신 사명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면서 살고자 열심을 냈었는지를 좀 엿볼 수가 있습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에 쓴 편지에도 마지막 부분에 이렇게 기도 부탁을 했습니다: “형제 여러분, 끝으로 다시 한번 부탁합니다. 주님의 말씀이 여러분 가운데서와 같이 급속히 퍼져 나가 사람들이 경건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살후3:1, 현대인의 성경). 이 기도부탁의 말씀을 보면 사도 바울의 관심은 주님의 말씀이 급속히 퍼져 나가 사람들이 경건하게 받아드리는 것임을 우리는 알 수가 있습니다.
저는 이 기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 이유를 사도행전 16장 14절에서 찾아보는 것입니다: “두아디라 시에 있는 자색 옷감 장사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말을 듣고 있을 때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신지라”[(현대인의 성경) “그 자리에는 두아디라에서 온 루디아라는 자색 옷감 장수도 있었다. 그녀는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었다. 주님은 그 여자의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하셨다”]. 즉, 하나님께서 주님의 말씀, 즉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는 사람들의 마음을 열여주셔야 바울이나 우리가 이 복음을 전할 때에 그들이 복음을 받아드릴 수 있기 때문에 ‘주님의 말씀이 급속이 퍼져 나가 사람들이 경건하게 받아드리도록 기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우리 모두 항상 기도에 힘쓰십시다. 기도할 때 정신을 바짝 차리고 하나님께 감사하십시다(골4:2, 현대인의 성경). 우리 모두 예수님을 잘 믿고 서로 사랑하면서 소망을 주님께만 두면서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리십시다. 특히 우리 모두 하나님께 우리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명확하게 잘 전할 수 있도록 기도하십시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에게 전도의 문을 열어주시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할 때 듣는 사람들의 마음 문을 열어 주시사 예수 그리스도를 그들의 구세주와 주님으로 영접케 하여 주시길 기원합니다.
둘째로, 바울은 골로새 교회 성도들에게 믿지 않는 사람들을 대할 때 지혜롭게 행동하라고 권면했습니다.
오늘 본문 골로새서 4장 5절 말씀입니다: “외인에게 대해서는 지혜로 행하여 세월을 아끼라”[(현대인의 성경) “믿지 않는 사람들을 대할 때는 지혜롭게 행동하고 기회를 최대한 이용하십시오”]. 제가2017년 5월 7일에 창세가 39장에서 41장에 나오는 요셉에 관한 말씀을 묵상하다가 “하나님께서는 불신자들과의 만남을 통해서도 우리의 삶 속에 역사하십니다”란 제목 아래 이러한 짧은 말씀 묵상의 글을 썼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불신자를 통해서도 우리 믿는자들에게 은혜를 베푸시기도 하시지만(창39:4) 또한 동일한 그 불신자를 통해서 우리로 하여금 억울한 일을 당하도록 허락하시기도 하십니다(19-20절).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억울한 일을 당하는 가운데서도 또 다른 불신자를 만나게 하시사(40:1) 그 불신자에게 도움을 받게하시기도 하십니다(41:9-13). 그리고 결국에 하나님께서는 또 다른 불신자를 만나게 하시사 우리를 높이시기도 하십니다(37-45절). 그러므로 우리는 꼭 예수님을 믿는 신자들 속에서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서는 아니 됩니다. 우리는 주님 안에서만 살아가면 됩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우리의 삶 속에 허락하시는 모든 만남들을 통해서 우리의 삶 속에 선하게 역사하시사(롬8:28)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이루실 것입니다(12:2).” 예수님을 믿는 우리 신자들은 불신자들 가운데서 선한 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악을 행한다고 비난하는 불신자들이 우리의 선한 행실을 보고 그들이 회개하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될 것입니다(벧전2:12, 현대인의 성경). 그러나 만일 우리가 요란한 생활을 하고 남의 일에 간섭을 하며 손수 일하기보다 일하기 싫어하므로 다른 사람에게 공밥(free meal)을 얻어먹으면서 그 사람에게 짐이 된다면 우리는 불신자들에게도 존경을 받지 못할 것입니다(살전4:11-12; 살후3:8, 10, 현대인의 성경).
사도 바울은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만일 여러분들이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받았다면 의롭다 함을 받은 자들로서 믿음으로만 살아야 합니다’(1:16-17)라고 권면하면서 하나님의 진노 가운데 있는 자들, 또한 앞으로 장차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불신자들의 죄악 된 삶을 본받지 말라고 권면하였습니다. 여기서 말씀하고 있는 불신자들의 죄악 된 삶이란 로마서 1장18-32절에 나와 있는 모든 죄를 가리키지만 특히 바울은 로마서 2장 1-4절에서 ‘남을 판단하는 죄’를 본받지 말라고 권면하였습니다. 즉, 남을 ‘용서하지 않고 정죄’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지금 얼마나 많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용서하지 않고 있습니까? 그러면서 우리는 로마교회의 유대인 신자들처럼 영적 우월감 속에서 남을 정죄하는 죄를 범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러한 우리의 삶은 불신자들에게 본이 되지 못하는 삶이요 오히려 그들을 향한 전도의 문을 막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골로새서 4장 5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회의 성도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였습니다: “외인에게 대해서는 지혜로 행하여 세월을 아끼라.” 여기서 “외인”이란 불신자들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현대인의 성경은 이렇게 번역을 했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을 대할 때는 지혜롭게 행동하고 기회를 최대한 이용하십시오.” 왜 사도 바울은 “믿지 않는 사람들을 대할 때 지혜롭게 행동하고 기회를 최대한 이용하십시오”라고 말씀했을까요? 저는 그 이유를 3-4절 말씀에서 찾아보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전도의 문을 열어 주셔서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할 수 있도록 우리를 위해 기도해주십시오. 나는 이 일 때문에 지금 갇혀 있습니다. 내가 이 비밀을 명확하게 전하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즉, 바울은 골로새 교회 성도들이 믿지 않는 불신자들을 대할 때 지혜롭게 행동하고 기회를 최대한 이용해서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길 원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바울은 자신뿐만 아니라 골로새 교회 성도들에게도 주님께서 전도의 문을 열어주시사 그들도 자기처럼 불신자들의 영혼 구원을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명확하게 전하길 원했습니다.
우리도 바울이나 골로새 교회 성도들처럼 주님께서 우리에게 전도의 문을 열어주시사 불신자들의 영혼 구원을 위하여 그들을 대할 때 지혜롭게 행동하고 기회를 최대한 이용하여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명확하게 전해야 합니다. 제가 아직 잊지 못하는 것은 저의 전도 대상자 친구 중 한 명이 제가 교회 목양실에 있는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데 갑자기 저에게 전화를 해서 자기 아버님이 심장마비로 죽으셨다고 말했습니다. 그 때 저는 놀래서 친구와 유족과 친구의 아버님의 시신이 누워있는 병원으로 운전해서 부랴부랴 갔었습니다. 저는 그 때 아버님을 갑작스럽게 떠나보낸 사랑하는 친구와 유족을 위하여 기도하면서 어쩌면 이 때가 제가 친구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아마 그 친구의 아버님의 장례식이 다 끝난 후 나중에 한인 타운 카페에서 그 친구와 일대일로 만났었는데 그 친구가 저에게 자기 아버님에 대해서 마음을 나누면서 울었습니다. 이러한 위기 때가 우리 신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 생각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로 불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포착하여 지혜롭게 행하여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여기서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바로 빌립보서 1장 27절 말씀입니다: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에게 가 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한마음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현대인의 성경)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기쁜 소식을 믿는 사람답게 생활하십시오. 그래서 내가 함께 있든지 떠나 있든지 여러분이 한마음 한 뜻으로 기쁜 소식의 신앙을 위해서 함께 싸운다는 소식을 듣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우리의 입술로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서는 아니 됩니다. 우리는 우리의 생활로도 복음을 불신자들에게 전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해야 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한다는 말씀은 3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1)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는 것이란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한 마음, 한 뜻으로 서서 서로 협력하는 것입니다(27절).
바울이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듣고 싶었던 일은 빌립보 교회 모든 형제, 자매들이 “한 마음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고 있다는 소식이었습니다(27절). “한 마음”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해야 합니다. 특히 바울은 유오디아와 순두게에게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고 권면하였습니다(4:2). 또한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이 주님의 겸손한 마음으로 한 마음을 품고 주님의 뜻을 이루어 드림에 있어서 같은 의지와 욕망으로 주님의 일을 하고 있다는 소식 듣기를 원했습니다.
우리는 바울의 말을 듣고 우리도 서로 협력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서로 돕고 힘을 합쳐야 합니다. 우리 교회 모든 식구들이 다 한 마음과 한 뜻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신앙을 위하여 서로 협력해야 합니다.
(2)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는 것이란 무슨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1장 28절 말씀입니다: “무슨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이 일을 듣고자 함이라 이것이 그들에게는 멸망의 증거요 너희에게는 구원의 증거니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라.” ‘당신들이 핍박을 받는 것은 당신들을 핍박하는 대적자들에게는 멸망의 증거이지만 당신들에게는 구원의 증거입니다. 당신들이 그 대적자들의 핍박을 믿음으로 끝까지 견디고 이겨 나아가는 것은 당신들에게는 구원받은 증거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들에게 견딜 수 있는 힘을 선물로 주셔서 그 핍박을 이기게 하실 것입니다.’ 예수님과 그분의 복음 때문에 핍박을 받고 고난을 당하는 것은 우리에게는 구원받은 증거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힘과 용기를 주시사 그 핍박과 고난을 견디며 이기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를 대적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두려운 상황에 처하게 되는 것을 두려워하기보다 그 두려운 상황에 처하게 될지라도 그 상황을 극복해 나아갈 수 있는 믿음이 우리에게 없음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담대히 전하는 믿음이 우리 안에 없음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 분의 복음 때문에 우리를 미워하고 싫어할 뿐만 아니라 우리를 반대하며 괴롭히는 사람들을 두려워하기 보다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어떠한 두려운 상황에도 하나님의 도우심을 힘입어 용기를 내어 담대하게 우리의 믿음을 지키고 우리에게 맡겨진 사명, 즉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입술로 전할 뿐만 아니라 그 복음의 합당하게 생활을 해야 합니다.
(3)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는 것이란 그리스도를 위하여 믿음으로 고난을 받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1장 29절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 고난은 유익합니다(시119:67, 71). 그 이유는 우리가 고난당하기 전에 그릇행하였다가 고난을 통하여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배우므로 그 말씀을 지키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위하여 빌립보 교회 성도들이나 우리에게 주신 은혜는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엡2:8). 또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위하여 우리에게 주신 은혜는 예수님을 위하여 고난을 받는 것입니다(빌1:29).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공통된 이중 사명(twofold calling)이 있습니다. 그것은 외면적으로는 복음을 증거하는 것(행20:24)과 내면적으로는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빌1:27). 그러나 한국 교회는 복음을 증거하는 외면적인 사명을 너무 강조한 반면에 내면적인 사명인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너무 강조하고 있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 결과 입술로는 복음이 전해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의 삶은 복음 전파의 거침돌(장애물)이 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 골로새서 4장 5절에서 “외인에게 대해서는 지혜로 행하며 세월을 아끼라”[(현대인의 성경) “믿지 않는 사람들을 대할 때는 지혜롭게 행동하고 기회를 최대한 이용하십시오”]고 말씀했을 뿐만 아니라 에베소서 5장 15-16절에서도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현대인의 성경) “그러므로 여러분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조심스럽게 살피고 지혜 없는 사람이 아니라 지혜있는 사람처럼 시간을 아끼십시오. 이 시대는 악합니다”]. 저는 여기서 “지혜 있는 자”[(현대인의 성경) “지혜 있는 사람”]를 묵상할 때 열왕기상 2장 9절 말씀을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를 무죄한 자로 여기지 말지어다 너는 지혜 있는 사람이므로 그에게 행할 일을 알지니 그의 백발이 피 가운데 스올에 내려가게 하라.” 이 말씀은 다윗이 죽을 날이 가까워 오자 자기 아들 솔로몬을 불러 그에게 유언(1절, 현대인의 성경)한 말씀입니다. 이 유언의 말씀 내용은 다윗은 그의 아들 솔로몬이 지혜로운 사람이니까 다윗이 마하나임으로 갈 때에 악독한 말로 다윗을 저주하였던 시므이에게 지혜대로 행하라고 솔로몬에게 유언한 것입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이렇게 아버지 다윗은 자기 아들 솔로몬이 지혜로운 사람인 줄 이미 알고 있었는데 열왕기상 3장에서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꿈에 나타나셔서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고 말씀하셨을 때(3:5) 솔로몬이 하나님께 “지혜로운 마음”을 구했다는 것입니다(9절, 현대인의 성경). 이미 지혜로운 사람인 솔로몬(2:6, 9)은 왜 하나님께 지혜를 구한 것일까요? 솔로몬은 자기 아버지 다윗이 모든 일을 지혜롭게 행하는 사람인 줄을 알았을 것이고(삼상18:14, 15, 30) 또한 아버지 다윗이 자기를 위하여 하나님께 지혜를 주시길 간구한 것도 알고 있었을텐데(대상22:12) 그는 왜 하나님께 지혜를 구한 것일까요? 그 이유는 솔로몬은 자기 자신이 아직 어린 아이와 같은데 자기 아버지 다윗을 이어 왕이 되게하셨고 게다가 자기가 다스릴 주님의 택한 백성들의 수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아서 이처럼 많은 주님의 백성들을 잘 다스리기 위해서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로운 마음을 하나님께 구한 것입니다(왕상3:7-9, 현대인의 성경, 참고: 대상29:1).
이렇게 이미 지혜로운 솔로몬 왕이 하나님께 지혜로운 마음을 구했다면 우리는 얼마나 더 열심히 하나님께 지혜로운 마음을 구해야 하겠습니까? 야고보서 1장 5절 말씀입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현대인의 성경) “여러분 가운데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한 사람은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꾸짖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 후하게 주시는 하나님께서 주실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며 그 말씀을 지켜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지혜로운 사람이 될 것입니다. 시편 119편 98-100절 말씀입니다: “주의 계명들이 항상 나와 함께 하므로 그것들이 나를 원수보다 지혜롭게 하나이다 내가 주의 증거들을 늘 읊조리므로 나의 명철함이 나의 모든 스승보다 나으며 주의 법도들을 지키므로 나의 명철함이 노인보다 나으니이다”[(현대인의 성경) “주의 계명이 항상 나에게 있으므로 그것이 나를 내 원수보다 지혜롭게 합니다. 내가 주의 교훈을 묵상하므로 내가 나의 모든 스승들보다 더 많은 것을 이해하며 내가 주의 법을 지키므로 노인들보다 더 지혜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어리석음을 계속해서 버리고 생명의 길을 찾아 지혜롭게 행해야 합니다(참고: 잠9:6, 현대인의 성경). 특히 우리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우리 전도 대상자들을 대할 때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롭게 행(동)해야 합니다(엡5;15).
그 한 예로 데살로니전서 4장 11-12절 현대인의 성경 말씀을 들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여러분에게 명령한 것처럼 조용한 생활을 하고 남의 일에 간섭하지 말며 손수 일하도록 하십시오. 그러면 불신자들에게 존경을 받을 것이며 경제적으로도 부족한 것이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지혜롭게 행해야 우리 전도 대상자들에게 존경을 받을 것인지도 좀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복음 전파자들인 우리가 그들에게 존경을 받지 못하면서 복음을 전파한다면 어떻겠습니까? 또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조심스럽게 살피고 지혜 없는 사람이 아니라 지혜있는 사람처럼 시간을 아껴야 합니다(골4:5; 엡5:16). 여기서 저는 기독교인의 시간관리에 대하여 매우 귀한 교훈을 우리에게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지혜롭게 살라는 권면의 말씀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자세히 주의하여" 어떻게 살 것인지 깊이 생각해 봐야 한다고 바울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How shall I live?' 지나간 세월은 과거로 돌려보낸다 할지라도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심각하게 고민하며 하나님께 간구해야 합니다. 그러한 고민과 간구 가운데 지혜로운 자는 "세월을 아"낄줄 아는 지혜를 하나님으로부터 받습니다. 그 지혜 중 하나는 우선순위를 분명히 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즉, 세월을 아끼는 자는 우선순위가 하나님 앞에서 바로 세워져 실천하는 자입니다. 무엇을 먼저 언제 해야 할지 아는 자는 중요하지 않는 것들에 시간을 무턱대고 투자하는 자는 아닐 것입니다. 그러면 왜 지혜로운 사람은 시간을 바로 사용할 수 있을까요? 그 이유는 그는 "때가 악”한 줄 알기 때문입니다(엡6:16). 때가 악해지면 악해질 수록 주님의 재림이 가까이 옴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합니다. 그것을 알고 있는 지혜로운 사람은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에 참예하"(11절)는데 시간을 함부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주님 다시 오시는 날 주님께 아무 열매를 드리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큰 죄임을 알기에 지혜로운 자는 어두움의 일에 참예하기를 마음으로부터 거부하면서 빛의 자녀로서의 삶을 충성되이 살 것입니다. 또한 그는 때가 악한 것을 알기에 주님의 재림을 소망하며 기다리는 가운데 어두움을 들춰내어 책망하는 빛의 삶을 사는데 시간을 투자할 것입니다(13절). 지혜로운 사람은 그 시간 투자는 "성령의 충만"(18절)함을 추구하는데 사용할 것입니다. 말씀 묵상 및 말씀 순종의 삶을 위하여 시간을 사용하는 지혜로운 자는 무조건 적으로 이 세상을 떠나서 사는 미련한 자가 아니라 세상 속에서 빛의 자녀로서 일상 생활 속에서 바른 우선순위를 세워 영적인 일에 시간을 사용할 것입니다.
죤 맥아더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신자들은 기독교 신앙의 신뢰성을 확립하고 모든 전도의 기회를 최대한 활용하도록 살도록 부름을 받았습니다’(“Believers are called to so live that they establish the credibility of the Christian faith”)(맥아더). 지금 우리 기독교인들은 세상 사람들에게 신뢰성을 잃었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말하는 내용을 믿지 않을 뿐만 아니라 우리를 믿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지금 우리의 믿음은 살아있는 믿음이기보다 행함이 없는 죽음 믿음이기에 우리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아도 아무 할 말이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때에 우리는 사도 바울의 권면의 말씀대로 “믿지 않는 사람들을 대할 때 지혜롭게 행동”해야 합니다(골4:5, 현대인의 성경). 그리고 우리는 세월을 아껴서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주시는 기회를 최대한 지혜롭게 사용해야 할 것입니다(5절, 현대인의 성경).
마지막 셋째로, 바울은 골로새 교회 성도들에게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맛을 냄과 같이 말을 하라고 권면했습니다.
골로새서 4장 6절 말씀입니다: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맛을 냄과 같이 하라 그리하면 각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것을 알리라”[(현대인의 성경) “그리고 말은 언제나 친절하고 재치 있게 하십시오. 그러면 각 사람에게 바른 대답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2024년 9월 19일에 어느 기독교 웹사이트에서 읽고 여러분에게도 나눈 기사(article)가 있습니다. 그 기사 제목은 “말, 교회의 모임에 내재된 단점”입니다(인터넷): (a) “교인들이 무심코 한 이야기가 다른 교인에게 전달되면서 마음 상하는 일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일이 있었다는 말을 들으면, 저도 마음이 상합니다. 말하는 사람은 자신이 하는 말이 다른 교인의 마음을 상하게 할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저 걱정되어 한 말이거나, 말 그대로 무심코 했겠지요. 그런데 어찌어찌하여 그 말을 들은 본인은 ‘아, 교인들이 나를 이렇게 보는구나’하면서 마음이 상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만나면 말을 안 할 수는 없습니다. 서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다가가지 못하는 남성들보다는 하고 싶은 말을 하면서 금세 친해지는 여성들이 분위기를 잘 만듭니다. 그러나 말이 말을 끌고 나가 ‘아차!’ 싶을 정도로 빨리 말해 버린다면 조심해야 합니다. 상대를 걱정해서 하는 말이라도 듣는 사람 처지를 생각해, 빨리 표현해선 안 됩니다. ‘나 같으면 그렇게 안 한다’는 식으로 말해도 안 됩니다. ‘우리끼리니까 그러지 다른 데서는 안 그렇다’며 합리화해도 안 됩니다. 언제든 실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아시지 않습니까? 인간관계는 결국 돈이나 말, 이런 것으로 인해 깨진다는 것을." 저는 그 때 이 기사를 읽고나서 우리 교회를 뒤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 교회 안에서도 서로의 말로 인해 원치 않게 상대방의 마음을 상하게 할 위험이 충분히 있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위에 기사 내용대로 “말하는 사람은 자신이 하는 말이 다른 교인의 마음을 상하게 할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이지만 그 말을 들은 상대방의 마음은 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상대를 걱정해서 하는 말이라도 듣는 사람 처지를 생각해, 빨리 표현해선 안 됩니다”라는 말에 동의를 합니다.
오늘 본문 골로새서 4장 6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회 성도들에게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맛을 냄과 같이 하라 그리하면 각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것을 알리라”[(현대인의 성경) “그리고 말은 언제나 친절하고 재치 있게 하십시오. 그러면 각 사람에게 바른 대답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3부분으로 나눠서 묵상할 수가 있습니다:
(1)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 하라”입니다(6절).
이 말씀의 의미는 ‘영적이고, 건전하고, 적합하고, 친절하고, 예민하고, 목적이 있고, 칭찬적이고, 온유하고, 진실하고, 사랑스럽고, 사려 깊은 말을 하라’는 것이라고 죤 맥아더 목사님은 말하고 있습니다(맥아더). 우리의 대화가 항상 은혜로워야 한다면, 그것은 예의 바르고, 겸손하고, 그리스도와 같아야 합니다. 그것은 험담, 경박함, 더러움, 비통함이 없어야 합니다(Believer’s 성경 주석). 우리는 남의 말하기를 좋아해서는 아니 됩니다.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남의 말하기를 좋아하면 상대방에게 피해를 입힐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한 예로, 우리가 남의 말을 하다보면 “다툼”을 일으킬 수도 있고(잠18:6, 26:20) 또한 “친한 벗을 이간”할(갈라놓을) 수도 있습니다(16:28). 그래서 성경 시편 101편 5절에서 “자기 이웃을 은근히 헐뜯”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고 잠언 17장 9절은 허물을 거듭 말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무익한 말을”(함부로 지껄이지 말)아야 합니다(마12:36). 또한 우리는 집집으로 돌아다니면서 쓸데없는 말이나 헌담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딤전5:13)(Nelson).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미 골로새서 3장 8-9절 상반절에서 이렇게 말씀했음: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 버리라 곧 분함과 노여움과 악의와 비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말라 …”[(현대인의 성경) “이제는 분한 생각과 화내는 것과 악의와 비방과 입에서 나오는 더러운 말을 버리십시오. 여러분은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마십시오. …”]. 그리고 바울은 에베소서 4장 29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였습니다: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현대인의 성경) “더러운 말은 입밖에도 내지 말고 기회 있는 대로 남에게 도움이 되는 유익한 말을 하십시오”].
(2) “너희 말을 … 소금으로 맛을 냄과 같이 하라”입니다(골4:6).
소금으로 양념했다는 표현은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질 수 있습니다. 어떤 주석가들은 우리의 언어가 은혜로워야 하지만, 정직하고 위선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주석가들은 소금을 맛을 더하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그래서 바울은 우리의 대화가 결코 지루하거나, 밋밋하거나, 싱거워서는 안 되지만, 항상 가치 있고 유익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죤 맥아더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소금이 맛을 내는 것뿐만 아니라 부패를 막는 것처럼, 그리스도인의 말은 다른 사람들에게 축복이 될 뿐만 아니라 쇠퇴하는 세상 사회에서 정화하는 영향력이 되어야 합니다’(맥아더). 라이트풋(Lightfoot)라는 학자는 이교 작가들이 "소금"을 "재치"(wit)에 대한 비유로 사용했다고 말하면서 바울은 재치를 ‘지혜’(wisdom)로 바꿨습니다. 아마도 이 표현을 설명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주 예수님의 언어를 연구하는 것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간음하다 잡힌 여자에게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8:11). 여기에는 은혜와 소금이 있습니다. 우선, 은혜는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라’이고, 소금은 ‘가서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입니다 (Believer’s 성경 주석). 바울은 에베소서 5장 4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였습니다: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오히려 감사하는 말을 하라” [(현대인의 성경) “추잡한 짓이나 어리석은 말이나 유치한 농담을 버리고 오히려 하나님께 감사하며 생활하십시오”].
2024년 1월 11일에 원로 목사님이 수요 예배 때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란 제목 아래 로마서 6장 15-23절 말씀 중심으로 설교를 하신 내용을 보면 우리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들 중에 “삼”이 있는데 그것은 인삼, 홍삼, 흑삼, 산삼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4가지 삼들보다 제일 좋은 것은 “천삼”인데 여기서 “천삼”이란 “감사”를 가리킵니다. 즉,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사는 것을 제일 좋은 것입니다. 우리들이 불평하고 원망하면 영육간에 유익이 되지 못하지만 감사하면서 살면 영육간에 유익이 됩니다(김창세). 제가2021년 12월 4일에 쓴 칼럼 “하나님께 감사합시다.”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할 때마다 감사합시다. 하나님께 찬양을 올려드릴 때마다 감사합시다. 사람들에게 말을 할 때마다 감사합시다. 우리 모두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합시다. 교회를 생각하며 기도할 때 주님께서 우리 교회에게 주신 마태복음 16장18절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주님께서 주님의 교회를 세우고 계심을 믿음으로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가정을 생각하며 기도할 때 주님께서 로마서 8장28절의 말씀대로 가정의 모든 역경과 고통 등을 통해서도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줄 믿고 감사합시다. 개개인을 생각하며 기도할 때 주님께서는 디모데후서 2장13절의 말씀대로 비록 우리는 신실하지 못했을지라도 진실하신 주님은 우리 각자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을 신실하게 성취해나아가고 계심을 믿음으로 감사합니다. 하나님은 선하시고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영원합니다!”
(3) “그리하면 각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것을 알리라”입니다(골4:6).
골로새 교회 성도들은 사도 바울처럼 복음을 수호하기 위해 세워졌고, 이단에 맞선 투쟁의 선두에 섰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모든 재치를 갖고 있어야 했고, 필요할 때마다 반대자와 질문자에게 대답할 수 있어야 했으며, 지혜롭게 싸울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열렬하게 믿음을 위해 싸울 수 있었습니다(The Pulpit 주석). 베드로전서 3장 15절은 이 구절에 대한 해설입니다. 평행성이 더 가까운 이유는 그 서신이 영지주의가 생겨난 논쟁이 만연해지기 시작한 소아시아의 교회들에게 보내졌고, 마찬가지로 그들 안에 있던 소망이 골로새 성도들에게 가해진 공격의 주요 대상이었기 때문입니다(1:5, 23, 27; 2:18; 3:15)(The Pulpit 주석). 베드로전서 3장 15절 말씀입니다: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현대인의 성경) “마음에 주님이신 그리스도를 거룩하게 모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이 간직한 희망에 대해서 그 이유를 묻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부드럽고 공손하게 대답할 준비를 하고”].
말씀 묵상을 맺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 골로새서 4장 2-6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골로새에 있는 신실한 성도들에게 마지막으로 그들에게 3가지로 권면을 했습니다: (1) 바울은 골로새 교회 성도들에게 항상 기도에 힘쓰라고 권면했습니다. 골로새서 4장 2절 말씀입니다: “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현대인의 성경) “항상 기도에 힘쓰십시오. 기도할 때 정신을 바짝 차리고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2) 바울은 골로새 교회 성도들에게 믿지 않는 사람들을 대할 때 지혜롭게 행동하라고 권면했습니다. 골로새서 4장 5절 말씀입니다: “외인에게 대해서는 지혜로 행하여 세월을 아끼라”[(현대인의 성경) “믿지 않는 사람들을 대할 때는 지혜롭게 행동하고 기회를 최대한 이용하십시오”]. (3) 바울은 골로새 교회 성도들에게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맛을 냄과 같이 말을 하라고 권면했습니다. 골로새서 4장 6절 말씀입니다: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맛을 냄과 같이 하라 그리하면 각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것을 알리라”[(현대인의 성경) “그리고 말은 언제나 친절하고 재치 있게 하십시오. 그러면 각 사람에게 바른 대답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 이 3가지 권면을 겸손히 받아들여 순종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