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자녀 (2)

 

[로마서 8 14-17]

로마서 8장 15절 말씀입니다: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여기서 “양자의 영”은 성령님을 말씀합니다.  그러면 질문은 “무서워하는 종의 영”도 성령님을 말씀하는 것인가 입니다.

 

“무서워하는 종의 영”은 성령님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만일 “무서워하는 종의 영”이 성령님이시면 “양자의 영”도 성령님이기에 성령님이 두 분이 되는 것이기에 “무서워하는 종의 영”은 성령님이 아닙니다.  성경을 보면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은 두려움을 주시지 않는다고 말씀하고 있음으로(딤후1:7; 요14:27) 성령님도 두려움을 주시지 않으시기에 “무서워하는 종의 영”은 성령님이 아닙니다.  디모데후서 1장 7절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성부 “하나님”은 우리에게 “두려워하는 마음”을 주시지 않으십니다.  요한복음 14장 27절 말씀입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 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성자 예수님도 우리에게 “두려”움을 주시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저는 “무서워하는 종의 영”이 성령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를 우리는 이미 지난 주 수요 예배 때 배웠습니다:

 

  • 번째 이유: “무서워하는 종의 영”이란 말씀에서 “영”은 64개 영어 성경 번역본을 보니까 대부분 사람의 영인 “spirit”이라고 번역이 되어있는데 딱 하나 “1955 Geneva Bible” 번역본에만 “the Spirit of bondage”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그리고 부과 설명에는 ‘영이란 성령을 뜻하는데, 성령이 우리의 마음 속에서 일하실 때 우리가 성령을 받는다고 합니다’라고 써 있습니다(BibleGateway).

 

  • 번째 이유: 성경 빌립보서 2장 12절을 보면 바울은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현대인의 성경) “더욱더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여러분의 구원을 계속 이루어 가십시오”]고 말씀하였습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는 구원을 이룸에 있어서 두려워해야 하는데 그 두려움은 이 세상에서 예수님과 복음을 위해서 살면서 당하는 핍박이나 환난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두려움입니다.

 

저는 오늘 “무서워하는 종의 영”은 성령님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두 가지 이유를 이렇게 반박합니다:

 

  • 결코 성령님은 두 분이 아니십니다. 성령님은 오직 한 분이십니다!  한 분이신 성령님께서 “무서워하는 종의 영”으로도 사역을 하시고 “양자의 영”으로 사역을 하셔서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아버지께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게 하십니다(롬8:15).

 

  • 성경 디모데후서 1장 7절과 요한복음 14장27절을 보면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은 두려움을 주시지 않는다고 말씀하고 있음으로 성령님도 두려움을 주시지 않으시기에 “무서워하는 종의 영”은 성령님이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그 두 성경 구절에 나오는 ‘두려움’이란 원어 헬라어 단어는 “δειλίας”(delias: 델리아스)로서 오늘 본문 로마서 8장 15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무서워 하는”이란 원어 헬라어 단어 “φόβον”(phobon: 포번)하고 다른 단어입니다.
  • ‘델리아스”는 종종 하나님에 대한 믿음에서 나오는 대담함과 용기와 대비되는 소심함이나 겁을 의미하는 영혼을 나타냅니다. 이는 믿음과 순종으로 행동하는 능력을 방해하는 자신감 부족이나 두려움을 설명하는 데 사용됩니다(인터넷).
  • ‘포번’은 주로 신성한 존재나 초자연적인 것에 대한 두려움이나 공포를 의미합니다.  또한 주님의 두려움의 맥락에서처럼, 하나님을 향한 깊은 존경과 하나님의 능력과 거룩함에 대한 인정을 나타낼 수도 있음.  이 용어는 위험이나 심판에 대한 두려움처럼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기도 하고, 하나님에 대한 경외처럼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되기도 합니다(인터넷).

 

  • 즉, 성령 하나님은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처럼 우리에게 믿음과 순종으로 행동하는 능력을 방해하는 자신감 부족이나 두려움(‘델리아스’)은 결코 주시지 않지만 우리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두려움(‘포번’)은 주십니다.
  • 성령 말씀을 보면 성령님께서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경외심을 주셨다는 말씀이 여러 번 나옵니다:
  • 사도행전 9장 31절 말씀입니다: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그리고 주님을 두려워하고”(현대인의 성경)]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 성령님께서는 교회로 하여금 주님을 경외(두려워)하게 하셨습니다. 
  • 고린도후서 5장 11절 말씀입니다: “우리는 주의 두려우심을 알므로[“우리는 주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기 때문에”(현대인의 성경)] 사람들을 권면하거니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알리어졌으니 또 너희의 양심에도 알리어지기를 바라노라.” 성령님께서 바울과 그의 일행으로 하여금 주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게 하셨습니다.
  • 믿음장인 히브리서 11장 35-38절을 보면 믿음의 사람들은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이 있었기에 “심한 고문을 받되 구차히 풀려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으며 …  조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습니다.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38절).
  • 이렇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성령 충만한 믿음의 사람들은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는 줄 “확신”하기에(롬8:38-39)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나(35절) 주님을 위해 하루 종일 죽음의 위험을 당하고 도살장의 양 같은 취급을 받아도(36절, 현대인의 성경)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리라”(37절)는 승리의 확신을 가지고 이 세상과 싸워 승리의 삶을 살았습니다.

“무서워하는 종의 영”이시요 또한 “양자의 영”(롬8:15)이신 성령님은 결코 우리에게 세상에 대해서 두려운 마음을 주시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성령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경외심을 주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연약하여 세상을 두려워하고 세상과 싸워 져서 쓰러질 때도 수없이 많지만 성령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주셔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 죽음을 의지하여 사죄의 확신을 갖고 우리의 죄를 회개케 하십니다.  요한일서 1장 9절 말씀입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현대인의 성경) “우리가 우리 죄를 고백하면 신실하시고 의로우신 하나님은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 모든 죄악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성령 충만하여 우리의 믿음과 주님께 순종으로 행동하는 능력을 방해하는 자신감 부족이나 두려움(‘델리아스’)을 다 벗어버리고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는 두려움(‘포번’)을 가지고 우리의 구원을 계속 이루어 가야 합니다[참고: (빌2:12, 현대인의 성경) “더욱더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여러분의 구원을 계속 이루어 가십시오”].  그리고 우리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우리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참고: (딤후4:7)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그리할 때 “이제 (우리에게) 남은 것은 의의 면류관을 받는 일뿐입니다”(8절, 현대인의 성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