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자녀 (1)
[로마서 8장 14-17절]
로마서 8장 14절 말씀입니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여기서 “하나님의 영”이란 성령님을 말씀합니다. 성령님의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자녀)입니다. 오늘 우리가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살았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은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님께서 어떻게 우리를 인도하십니까? 성령님께서는 우리가 가고자 하는 길을 막으심으로 인도하실 때도 있지만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가 가길 원하시는 길을 열어주시사 그 길로 인도하십니다. 그 좋은 예가 바로 사도행전 16장 6-10절입니다. 사도 바울과 그의 일행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고자 했지만 성령님이 막으셨습니다(6절). 그래서 그들은 부르기아와 갈라디아 지방을 지나 무시아에 이른 후에 비두니아로 가려고 하였지만 성령님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6-7절, 현대인의 성경). 그래서 그들은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갔는데 그 날 밤 바울이 환상을 보았는데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고 간청하였습니다(8-9절). 결국 성령님께서는 바울과 그의 일행을 마게도냐로 인도하시사 복음을 전하게 하시되(10절) 마게도냐 지방의 첫 성이요 로마의 식민지인 빌립보에서(12절) 루디아라 하는 여자가 주님을 믿게 되어 그녀과 그녀의 온 집안 식구들이 다 세례를 받게 되었습니다(14-15절).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는 성령님께서 길을 막으실 때 그 길을 계속 가려고 자기 뜻을 관철하려고 하면 아니 됨. 오히려 우리는 성령님께서 열어주시는 길로 순종하여 걸어가야 합니다.
로마서 8장 15절 말씀입니다: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여기에 “영”이라는 단어가 두 번 나옵니다: “무서워하는 종의 영”과 “양자의 영”. 여기서 “양자의 영”이란 성령님을 말씀합니다. 그러면 “무서워하는 종의 영”도 성령님을 가리키는 것입니까? 성령님을 가리킨다고 생각합니다.
- 그 생각의 첫 번째 근거입니다. 한국어 성경을 보면 “영”이란 단어가 성령님을 가리키는지 아니면 사람의 영을 가리키는지 분별할 수가 없지만 영어 성경을 보면 대문자 “Spirit”이면 성령님을 가리키고 소문자 “spirit”이면 사람의 영을 가리킵니다. “무서워하는 종의 영”이란 말씀에서 “영”은 64개 영어 성경 번역본을 보니까 대부분 사람의 영인 “spirit”이라고 번역이 되어있는데 딱 하나 “1955 Geneva Bible” 번역본에만 “the Spirit of bondage”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그리고 부과 설명에는 ‘영이란 성령을 뜻하는데, 성령이 우리의 마음 속에서 일하실 때 우리가 성령을 받는다고 합니다’라고 써 있습니다(BibleGateway).
- 그 생각의 두 번째 근거입니다: 성경 빌립보서 2장 12절을 보면 바울은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현대인의 성경) “더욱더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여러분의 구원을 계속 이루어 가십시오”]고 말씀하였습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는 구원을 이룸에 있어서 두려워해야 하는데 그 두려움은 이 세상에서 예수님과 복음을 위해서 살면서 당하는 핍박이나 환난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두려움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주기도문)를 하나님께 드릴 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라고 기도하는데 이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두려움으로서 우리가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만 할뿐만 아니라 성령님의 인도하심 따라 하나님의 뜻대로 우리는 거룩하게 살아야 합니다[(살전4:3, 현대인의 성경) “하나님의 뜻은 여러분이 거룩하게 사는 것입니다. …”]. 이렇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악을 미워하는 것입니다[(잠8:13)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 …”].
비록 우리가 사랑의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의롭다하심을 받고 하나님과 화평을 이룬 하나님의 자녀들로서 “양자의 영”이신 성령님을 통해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으며 하나님 아버지께 담대히 나아가지만 우리는 연약하여 죄를 범합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이 죄를 대항하여 피를 흘리면서까지 싸워야 하는데(히12:4, 현대인의 성경) 그렇게 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우리의 유익을 위해서(10절) 자녀인 우리를 징계하시고(5, 10절) 채찍질하심으로(6절) 결국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십니다(10절, 현대인의 성경). 이렇게 성령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게 하시고자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하시고 회개케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사 주님을 닮아가게 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간절한 기원 찬송은 새 찬송가 463장 “신자 되기 원합니다”입니다: (1절) 신자되기 원합니다 진심으로 진심으로 신자되기 원합니다 진심으로 진심으로 진심으로 신자되기 원합니다 진심으로 진심으로, (2절) 사랑하기 원합니다 진심으로 진심으로 사랑하기 원합니다 진심으로 진심으로 진심으로 사랑하기 원합니다 진심으로, (3절) 거룩하기 원합니다 진심으로 진심으로 거룩하기 원합니다 진심으로 진심으로 진심으로 거룩하기 원합니다 진심으로, (4절) 예수 닮기 원합니다 진심으로 진심으로 예수 닮기 원합니다 진심으로 진심으로 진심으로 예수 닮기 원합니다 진심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