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인과 고용주의 의무

 

 

 

 

[골로새서 3 22 – 4 1 ]

 

 

내일 9 월 2 일은 노동절입니다.  노동절은 근로자의 노고를 위로하고 그들의 근무의욕을 높이기 위해 제정된 휴일입니다(인터넷).  저는 오늘 노동절 주일을 맞이하여 한 3 가지 질문을 던지면서 성경에서 그 대답을 찾아보고자 합니다.

 

  • 첫번째 질문은, 언제까지 우리가 일을 해야 합니까? 구체적으로 질문을 한다면, 우리는 일주일에 몇일을 일을 해야 합니까?

 

신명기 5 장 13-14 절 말씀입니다: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소나 네 나귀나 네 모든 가축이나 네 문 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못하게 하고 네 남종이나 네 여종에게 너 같이 안식하게 할지니라.”  성경은 6 일은 일하고 7 일째 주일은 안식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오늘 주님의 날에 하나님의 전에 올라와 안식을 지키려고 하나님께 찬양과 경배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영혼의 안식과 쉼을 주시길 기원합니다.

 

  • 번째 질문은, 우리는 무슨 일을 해야 합니까?

 

우리는 주님의 일을 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5 장 58 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우리는 항상 주님의 일에 힘쓰는 자들이 되야 합니다.  우리는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님의 일에 더욱 힘써야 합니다.  결코 우리의 수고가 주님 안에서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의 일이 무엇입니까?  요한복음 6 장 28-29 절을 보면 예수님을 좇는 무리들이 예수님에게 이렇게 질문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28 절).  그 때 예수님의 대답은 이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일에 항상 힘을 써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믿게 하는 일에 더욱 힘을 써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는데 힘을 써야 합니다.

 

  • 마지막 번째 질문은, 우리는 어떻게 일을 해야 합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주님의 일을 해야 합니다(살전 1:3).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죽어가는 영혼들에게 전파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주님의 일을 하면서 만족해야 합니다(전 5:18).  우리는 결코 불만족하면서 주님의 일을 해서는 아니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모든 수고를 기뻐해야 합니다(전 2:10).  

 

로마서 8 장 12 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로마 성도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여기서 “빚진 자”란 헬라어 원어로는 “a debtor”(채무자)란 말입니다.  이 “채무자”란 단어에는 가능성 있는 두 의미가 있습니다: (a) 하나는 ‘돈을 빚진 자’란 의미요 (b) 또 다른 의미는 ‘의무가 있는 자’란 뜻입니다.  그래서 영어로는 “we are under obligation”(우리에게는 의무가 있습니다)라고 적혀 있습니다.  한 마디로, “빚진 자”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로서(1 절) ‘의무를 가진 자”(갈 5:3)를 가리킵니다.  바울은 이 단어를 로마서 1 장 14 절에서 3 사용하였습니다: “헬라인이나 야만이나 지혜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I am under obligation both to Greeks and to barbarians, both to the wiseand to the foolish).  그래서 바울은 빚진 자로서 그가 마땅히 감당해야 할 의무인 복음 전파에 힘을 쓰고 있었고, 그래서 로마에 가서도 복음 전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15 절).  

우리는 지난 몇 주 동안 골로새서 3 장 18-21 절 말씀 중심으로 가정에서 우리 각자의 의무에 대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교훈을 받았습니다.  아내들의 의무는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이고(18 절), 남편의 의무는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않는 것입니다(19 절).  그리고 자녀들의 의무는 ‘모든 일에 주님 안에서 부모님에게 순종하는 것이고(20 절), 부모님들의 의무는 자녀를 노엽게 하지 않는 것입니다(21 절).  그리고 나서 오늘 본문 골로새서 3 장 22 절에서 4 장 1 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종(노예)과 주인의 의무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로 한다면, 성경은 고용인(employee)과 고용주(employer)의 의무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고용인과 고용주의 의무를 묵상하면서 주시는 은혜와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번째, 고용인의 의무 (Duties of employee): 고용주에게 순종하는 .  

 

고용인은 고용주에게 순종하되 성경은 “관용하는 자들에게만 아니라 또한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리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2 장 18 절 말씀입니다: “사환들아 범사에 두려워함으로 주인들에게 순종하되 선하고 관용하는 자들에게만 아니라 또한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리하라”[(현대인의 성경) “종들은 두려움으로 주인에게 복종하십시오. 선하고 너그러운 주인에게만 아니라 까다로운 주인에게도 그렇게 하십시오”].  여기서 ‘까다롭다’라는 말은 다’는 말은 ‘꾸부러졌다’(crooked), ‘패역하다’(rebellious), ‘공평하지 않다’(unjust)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박윤선).  즉, 고용주가 패역하고 또한 공평하게 고용인을 대해주지 않을지라도 고용인은 그의 고용주에게 순종하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용인은 애매히 4 까다로운 고용주에게 고난을 받아서 슬픔을 당해도 참고 순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성경은 까다로운 고용주에게도 순종을 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적어도 2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 번째 이유는,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전서 2 장 19-20 절 말씀입니다: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 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현대인의 성경) “억울하게 고난을 받더라도 하나님을 생각하고 슬픔을 참으면 이것은 칭찬할 만한 일이지만 죄가 있어서 벌을 받고 참으면 무슨 자랑거리가 되겠습니까?  그러나 선한 일을 하다가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칭찬을 받을 만한 일입니다”].

 

  • 번째 이유는, 고용인은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음을 위하여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우리가 직장에서 신적 소명 의식을 갖아야 할 것을 도전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2 장 21 절 말씀입니다: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 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예수님을 믿는 고용인은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르기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습니다.  그 발자취는 결코 편안하고 고난이 없는 발자취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그는 예수님의 본을 본받아서 까다로운 고용주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애매히 고난을 받을지라도 “하나님의 생각하므로” 슬픔을 참고 이겨 나아가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고용인의 고용주에게 순종해야 합니까?  한 3가지로 묵상하고자 합니다:

 

  • 고용인은 고용주가 지켜보고 있을 때만 열심히 또는 부지런히 일하면 됩니다.

 

골로새서 3장 22절 상반절 말씀입니다: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현대인의 성경) “종들은 모든 일에 자기 주인에게 순종하십시오. 단순히 사람을 기쁘게 하는 사람들처럼 눈가림만 하지 말고 …”]; (엡6:6상)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현대인의 성경) “아첨하는 사람처럼 눈가림으로 하지 말고 …”].   제가 고등학교 때 칼스 주니어(Carl’s Jr.)라는 햄버거 식당에서 일을 했었습니다.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것은 저는 그 때 미국 사람 메니저(manager)가 식당에 와 있으면 열심히 일을 하다가 그 메니저가 식당에 없을 때에는 주방에서 햄버거를 만들면서 몰래 훔쳐 먹었었습니다. ㅠ  그러다가 제가 대학교에 가서도 대학 후배 자매의 부모님이 운영하시는 가게에서 일을 했었는데 그 때에도 가게 주인되시는 후배의 부모님이 가게에 오시면 그분들 보는데서 열심히 일을 하다가 그분들이 가시고 나면 더 이상 열심히 일하는 척하지 않고 그냥 제 편안한대로 일을 했었습니다.   오늘 본문 골로새서 3장 22절 상반절을 보면 성경은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눈가림”이란 영어로 “eyeservice”라고 번역을 했는데 그 의미는 “주인 눈앞에서만 일함”입니다(네이버 사전).   왜 고용인은 그의 주인인 고용주 눈앞에서만 일하는 것입니까?   그 이유는 사람을 기쁘게 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22절).   즉, 고용인은 고용주를 기쁘게 하려고 고용주의 눈앞에서만 열심히 일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고용주가 더 이상 자기를 보지 않거나 볼 수가 없을 때에는 열심히 일하지 않습니다.   왜 고용인이 고용주가 보고 있을 때만 열심히 일하는 것입니까?   그 목적은 고용주에게 열심히 일하고 있다는 것을 의도적으로 보이므로 고용주에게 칭찬을 받기 위해서입니다(KJV 성경 주석).   여기서 저는 ‘사람을 기쁘게 하려는 사람’에 대해서 좀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그 이유는 고용인이 고용주가 지켜보고 있을 때만 열심히 또는 부지런히 일하는 이유가 그 고용인이 ‘사람을 기쁘게 하려는 사람’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직장에서 직장인이 자기 상관을 기쁘게 하려고 할 때 그 상관의 비위를 맞추면서 아부하고 아첨하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다보면 그 직장인은 상관을 향한 자신의 솔직한 (미운) 감정도 숨길(감출)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참고: 잠26:24).  그러면 교만한 상관은 그 직장인의 아첨에 넘어가기가 쉽습니다[“교만한 사람들은 아첨에 넘어 가기가 쉽다”(유진 피터슨)].  그리고 그 직장인은 자기 상관이 없는 곳에서 친한 동료 직장인(들)에게 상관에 대한 자신의 미운 감정이든 불만이든 불평하며 원망의 소리를 낼 위험이 많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지금 사람들의 마음을 기쁘게 하려 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 드리려 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사람의 환심을 사려고 하고 있습니까?  내가 아직도 사람의 환심을 사려고 하고 있다면, 나는 그리스도의 종이 아닙니다”(갈라디아서 1:10, 새 번역),  “오히려 우리는 하나님의 인정을 받아 기쁜 소식을 전하라고 부탁을 받은 사람으로서 말합니다.  우리는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하지 않고 우리 마음을 살피시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려고 합니다”(데살로니가전서 2:4, 현대인의 성경).  이 말씀들을 보면 바울은 사람들의 마음을 기쁘게 하려고 그들의 환심을 사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만일 자기가 그리했다면 그는 “나는 그리스도의 종이 아닙니다”라고까지 말했습니다.  오히려 바울은 “하나님의 인정을 받아 기쁜 소식을 전하라고 부탁을 받은 사람”으로서 오직 자기의 “마음을 살피시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누구에게도 아첨하지 않았습니다.  고용인이 고용주에게 아첨한다는 것은 그가 고용주의 기분을 맞추기 위해 과장된 칭찬을 하거나 호의를 표시하는 것입니다(인터넷 사전).

 

그러나 에베소서 6장 6절 현대인의 성경을 보면 “아첨하는 사람처럼 눈가림으로 하지 말고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용주를 기쁘게 하여 그에게 칭찬을 받고자만 열심히 일하는 척하는 것을 가리켜 영어로는 “sight-labor”라고 합니다.  그 의미는 고용주의 눈 앞에서만 행하는(performing) 섬김(service)입니다[“service performed (only) under the master’s eyes (“ophthalmodouleia” “눈가림”이란 헬라어 단어의 의미)].  이런 경우 고용인의 입장에서는 고용주가 보고만 있어야 열심히 또는 부지런히 일하도록 자극(stimulation)을 받습니다.  반면에 고용주가 없으면 그는 게으릅니다(나태함, 부진함)(sluggish).  저는 여기서 “게으름”에 대해서 좀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제 생각엔 고용인이 고용주가 지켜보고 있을 때만 열심히 또는 부지런히 일하는 이유는 물론 그가 고용주를 기쁘게 하려는 의도가 있지만 고용주가 자기를 지켜보고 있지 않으면 그는 나태해지고 게으름을 피우기 때문입니다.  김병삼 목사님이란 분은 그의 책 “성공의 7가지 장애”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잘 넘어가야 할 성공 속에 감추어진 장애물 7가지를 말했는데 그 7가지 중에 하나가 바로 “게으름”입니다.  김 목사님은 게으름은 하나님과 의사소통이 단절되기 때문에 죄이고, 불평이 많아지고, 모든 사람들과 관계의 단절을 가져오기 때문에 죄라고 말했습니다(인터넷).  성경 잠언 말씀을 보면 “게으름”에 대해 여러 번 말씀하고 있는데 그 공통된 메시지는 ‘게으른 자는 가난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게으른 자는 자기의 손은 게으르게 놀리지만 자기의 머리는 부지런히 굴린다는 것입니다[꾀를 많이 부림(참고: 잠15:19)]. 

 

  • 고용인은 모든 일에 주님을 섬기듯 오직 주님을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과 기쁜 마음으로 고용주를 섬겨야 합니다.

 

골로새서 3장 22-23절 말씀입니다: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현대인의 성경) “종들은 모든 일에 자기 주인에게 순종하십시오.  단순히 사람을 기쁘게 하는 사람들처럼 눈가림만 하지 말고 주님을 두려워하며 성실한 마음으로 주인을 섬기십시오 무슨 일을 하든지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고 주님께 하듯 성실하게 하십시오”].  에베소서 6장 5절과 7절 말씀입니다: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라 … 기쁜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현대인의 성경) “종들은 그리스도를 대하듯 두렵고 성실한 마음으로 주인에게 순종하십시오 … 그리고 주님을 섬기듯 기쁨으로 주인을 섬기며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마십시오”].  여기 에베소서 6장 5절에서 “두려워하고 떨며”라는 말씀은 “단순한 마음에서 우러나는 주의 깊은 존경심으로”라는 의미가 있습니다(칼빈).  고용인은 고용주의 권위를 인정하며 존중하므로 그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그러나 고용인이 자신의 고용주에게 불순종하는 변명 중 하나는 바로 그가 고용주를 존중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제 생각엔 마치 아내가 존경스럽지 않은 남편을 주님께 하듯 존경해야 하는 것처럼(5:33) 고용인은 존중할만한 고용주에게만 순종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존중할 수 없는 고용주에게도 순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고용인은 주님을 두려워(경외)해야 합니다(골3:22).  그리할 때 그는 자신의 고용주에 두려워하고 떨며 순종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고용인은 비록 자신의 고용주를 향한 존경심이 없다 할지라도 주님을 향한 단순한 마음에서 우러나는 주의 깊은 존경심으로 인해 주님을 섬기듯 고용주를 섬겨야 합니다.

저는 이 교훈을 부부 관계에 관한 에베소서 5장 33절 하반절 말씀에도 적용을 하게 되었습니다: “… 아내도 자기 남편을 존경하라”[(현대인의 성경) “… 아내도 자기 남편을 존경하십시오”].  비록 아내의 입장에서 자신의 남편을 생각할 때 단순한 마음에서 우러나는 주의 깊은 존경심이 없다 할지라도 주님을 향한 그러한 존경심이 있으면서 주님을 섬기듯 남편을 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오늘 본문 골로새서 3장 22절(참고: 엡6:5) 현대인의 성경에서 ‘성실한 마음으로 주인을 섬기십시오”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여기서 “성실한 마음”(in singleness of heart)이란 정직한 마음(honest heart) 또는 단순한 마음(simple heart)란 의미입니다.  킹제임스 성경 주석은 “성실한 마음”이란 ‘마음 속에 숨길 수 있는 거짓된 동기가 없는, 진심으로. 그리스도인들은 겉치레나 숨은 동기 없이, 마음이 나뉘지 않은 진실한 준비된 마음을 가져야 하며, 반쪽 마음이 아닌 진실해야’ 함을 의미한다고 말했습니다(KJV 성경 주석).  이 의미를 다시 좀 생각할 때 얻는 교훈이 적어도 2가지가 있습니다:

 

  • 번째 교훈은, 고용인은 마음 속에 거짓된 동기를 숨겨 놓고 그냥 겉치레로 고용주를 섬기면 된다는 것입니다.

 

고용인의 입장에서 나쁜 고용주를 만났으면 그 고용주에 대한 마음 속에 불만과 불평과 원망이 충분히 있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적어도 고용주 앞에서는 그것을 내색하지 않고 억눌러서라도 참고 고용주를 섬기는 척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할 때 고용주는 고용인의 그러한 마음 속에 불만이나 불평 등을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고용인의 마음을 다 보고 계시고 알고 계십니다.  그러기에 만일 고용인이 그저 고용주의 마음을 기쁘게 하려고 눈가림만 하면서 고용주에 말에 순종하면서 그를 섬기는 척하면 고용주는 속아 넘어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고용인들에게 그렇게 고용주를 섬기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고용인은 ‘주님을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고용주를 섬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말은 고용인은 마음 속에 거짓된 동기를 숨겨 놓고 그냥 겉치레로 고용주를 섬기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 번째 교훈은, 오히려 고용인은 마음이 나뉘지 않은 진실한 마음(진심)으로 주님을 섬기듯 고용주를 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고용인은 나뉘지 않은 마음으로 고용주를 섬겨야 한다 할 때 저는 시편 86편 11절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여호와여 주의 도를 내게 가르치소서 내가 주의 진리에 행하오리니 일심으로(an undivided heart) 주의 이름을 경외하게 하소서”[(현대인의 성경) “여호와여, 주의 길을 나에게 가르치소서.  내가 주의 진리 가운데 걸어가겠습니다.  나에게 한결같은 마음을 주셔서 내가 주의 이름을 두려워하게 하소서”].  우리가 주님을 섬김에 있어서 이렇게 한결 같은 마음, 일심으로, 나뉘지 않은 마음으로 섬겨야 합니다.  그와 같이럼, 고용인은 주님을 그렇게 섬기듯 자기의 고용주도 나뉘지 않은 한결 같은 마음, 일심으로 섬겨야 합니다.  섬기되 특히 진실한 마음, 진심으로 고용주를 섬겨야 합니다.

 

또한 에베소서 6장 7절을 보면 “기쁜 마음으로” 섬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고용인은 “주님을 섬기듯”(현대인의 성경) “기쁜 마음으로” 고용주를 섬겨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여기서 “기쁜 마음으로”라는 단어의 원어 의미는 “with good will”(선의로)입니다.  즉, 고용인은 선의로 고용주를 섬기라는 의미입니다.  다시 말하면, 고용인은 ‘겉으로는 순종하는 척하면서도 속으로는 분노로 끓어오르는 것이 아니라, 기쁘고 자발적으로’ 고용주를 섬겨야 한다는 말입니다(Believer’s 성경 주석).  ‘비록 고용주가 고압적이거나, 학대하거나, 부당하더라도, 예수님을 믿는 고용인의 일은 여전히 사람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 하듯이 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Believer’s 성경 주석).

 

이것이 어떻게 가능할까요?  이것은 예수님을 믿는 고용인이 골로새서 3장 24절과 에베소서 6장 8절 말씀을 믿고 소망할 때만이 가능합니다: (골3:24상) “이는 기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아나니 …”[(현대인의 성경) “여러분은 주님에게 하늘의 축복을 상으로 받게 될 것을 기억하십시오 …”]; (엡6:8) “이는 각 사람이 무슨 선을 행하든지 종이나 자유인이나 주께로부터 그대로 받을 줄을 앎이라”[(현대인의 성경) “종이든 자유인이든 누구든지 선한 일을 하면 주님에게 그만한 상을 받는다는 것을 아십시오”].  고용인이 주님에게 하늘의 축복을 상으로 받게 될 것을 믿고 소망하기에 “기쁜 마음으로”(선의로) 주님을 섬기듯 고용주를 섬깁니다.

 

히브리서 11장 24-26절 말씀이 생각납니다(현대인의 성경): “성장한 모세는 믿음으로 이집트 공주의 아들이 되는 것을 거절했습니다.  그는 일시적인 죄의 쾌락을 누리는 것보다는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통 당하는 길을 택한 것입니다.  모세는 약속된 메시아를 위해 받는 고난을 이집트의 보물보다 더 값진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것은 장차 상 받을 것을 기대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믿음으로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통 당하는 길을 선택한 이유는 그는 “장차 상 받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복음을 위해서 어떠한 억울한 고난을 당한다 할지라도 참고 견딜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가 주님 앞에 설 때에 주님께서 우리에게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Well done, good an faithful servant!)(마25:21)이란 칭찬을 받길 간절히 소망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요?

 

마지막 셋째로, 고용인은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의 뜻을 행해야 합니다.

 

에베소서 6장 6절 하반절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현대인의 성경) “…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의 뜻을 행하십시오”].  고용인의 마음 자세는 그리스도가 주님이시기에 그는 그리스도의 종으로서(6절) 고용주에게 순종하고 섬겨야 합니다(골3:22, 현대인의 성경).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골로새서 3장 23절에서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성경은 비록 고용인은 고용주에게 순종하고 섬기지만 마음을 다하여 주님께 하듯 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말은 고용인은 주님의 종으로써 사람인 고용주를 의식하기보다 주님을 더욱더 의식하면서 고용주에게 순종하고 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고용인은 그저 “아첨하는 사람처럼” 고용주 앞에서만 “눈가림으로 하지 말”아야 합니다(엡6:6, 현대인의 성경).  특히 고용인은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뜻을 십자가에 죽기까지 순종하여 이루신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온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도록 힘써야 합니다.  그런 마음 자세로 고용인은 고용주에게 순종하고 섬겨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요?

  • 하나님의 중에 하나는 골로새서 3 17절입니다: “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현대인의 성경) “그리고 무엇을 하든지 말과 행동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고 그분을 통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십시오”].

 

이 말씀을 고용인에게 적용한다면, 고용인은 직장에서 일을 할 때 말이나 행동에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고용인은 예수님을 이름을 지닌 자로서 말과 행동에 있어서 본이 돼야 합니다.  특히 그가 말을 할 때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기보다 고용주에 대해 불평과 원망을 한다면 그것은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8절 말씀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 또한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도록 힘쓰는 고용인은 고난을 받아도 계속 선한 일을 해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4장 19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에 그 영혼을 미쁘신 창조주께 의탁할지어다” [(현대인의 성경)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에 따라 고난을 받는 사람은 계속 선한 일을 하면서 그 영혼을 신실하신 창조주 하나님께 맡겨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고용인은 자신의 영혼 구원을(18절) 신실하신 창조주 하나님께 의탁합니다(19절).  그리고 그는 계속해서 선한 일을 합니다(19절, 현대인의 성경).  심지어 그는 그리스도인으로서 고난을 당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선한 일 행하는 것을 멈추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그는 자신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새롭게 지으심을 받은 자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엡2:10).  그러므로 그는 선한 일을 하다가 고난을 당해도 낙심하지 않으며(살후3:13) 그 선한 일 행함을 포기하지도 않습니다(갈6:9).

 

  • 외에도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고용인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합니다.

 

베드로전서 4장 13절 말씀입니다: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고용인은 자기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않습니다(12절).  다시 말하면, 그는 자기를 시험하려고 오는 불 같은 시련을 당할 때에 마치 이상한 일이 일어난 것처럼 놀라지 않습니다(13절, 현대인의 성경).  오히려 그는 그 불 같은 시련을 당할 때에 자신이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한다고 생각하고 기뻐합니다.  그는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더라도 그것을 기쁨으로 여깁니다(약1:2, 현대인의 성경).  그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고용인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자신이 복 있는 자라고 생각합니다(벧전4:14).  그가 그렇게 생각하고 믿을 수 있는 이유는 “영광의 영이신 하나님의 성령이” 그에게 머물러 계시기 때문입니다(14절, 현대인의 성경).

  •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고용인은 고난을 받을 때에 부끄러워하지 않고 도리어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얻게 그것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베드로전서 4장 16절 말씀입니다: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으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현대인의 성경) “그러나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로 고난을 받는다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히려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 그것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십시오”].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고용인은 그리스도인으로서 고난을 받을 때에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16절).  그 이유는 그는 예수님을 믿기 전에처럼 자신의 정욕을 따라(2, 3절) 살인이나 도둑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일로 고난을 받는 것이 아니라(15절) 오히려 예수님을 믿음으로 죄사함을 받고 죄의 관계를 끊은 상태에서(1절)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2절).  그러므로 그는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로 고난을 받을 때에 부끄러워하지 않고 오히려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 그것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16절).  즉,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고용인은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의 복음에 순종하므로(17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16절).

 

  • 이렇게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데 힘을 쓰는 헌신된 고용인은 에베소서 5 10 말씀처럼주님을 기쁘시게 일이 무엇인지 살펴봅니다(현대인의 성경).

 

주님께 헌신된 고용인은 주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빛의 자녀 답게” 살므로 “빛의 열매”를 맺습니다(8-9절, 현대인의 성경). 그 빛의 열매란 “선하고 의롭고 진실하게 사는 것”입니다(9절, 현대인의 성경).  그는 직장에서도 “선한 일”을 행하고(엡2:10) “의를 행하”되 (요3:10)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대로(2:6) 주님의 계명인(3, 4절) “서로 사랑”합니다(3:11).  그리고 그는 진실하게 말할 뿐만 아니라 진실하게 행함으로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받습니다(잠12:22, 현대인의 성경).

 

마지막 번째, 고용주의 의무(Duties of employer): 하늘에 주님이 계신다는 것을 알고 (right) 공평(fair) 베풀되 그에게 윽박지르면서 위협하지 말아야 합니다.

골로새서 4 장 1 절 말씀입니다: “상전들아 의와 공평을 종들에게 베풀지니 너희에게도 하늘에 상전이 계심을 알지어다”[(현대인의 성경) “주인 된 사람들은 하늘에도 자기 주인이 계신다는 것을 알고 종들을 공정하고 정당하게 대우하십시오”]. 에베소서 6 장 9 절 말씀입니다: “상전들아 너희도 그들에게 이와 같이 하고 위협을 그치라 이는 그들과 너희의 상전이 하늘에 계시고 그에게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는 일이 없는 줄 너희가 앎이라”[(현대인의 성경) “마찬가지로 주인들도 종들을 그렇게 대하고 욱박지르지 마십시오. 여러분과 종들의 주인 되시는 분이 하늘에 계신다는 것과 그분은 사람의 겉모양을 보지 않으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저는 이 두 말씀 중심으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믿는 고용주에게 하시는 말씀(교훈)이 무엇인지 한 3 가지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 고용인의상전”/”주인 고용주는하늘에도 자기 주인이 계시다는 것을 아야 합니다.

 

골로새서 4 장 1 절 상반절 현대인의 성경 말씀입니다: “주인 된 사람들은 하늘에도 자기 주인이 계신다는 것을 알고 ….”  에베소서 6 장 9 절 현대인의 성경 말씀입니다: “… 여러분과 종들의 주인 되시는 분이 하늘에 계신다는 것과 ….”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예수님을 믿는 고용인의 상전/주인인 고용주는 주님 중심된 신앙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그 말은 고용주는 주님께서 통치하시고 다스리시고 계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KJV 성경 주석).  그리고 고용주는 주님의 권위있는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이것이 주님 중심된 신앙입니다.  이렇게 주님 중심된 신앙을 가진 고용주는 예수님의 이중 계명인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와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마 22:37, 39)는 말씀에 순종합니다.  그래서 그는 주님이 사랑하시는 고용인을 자신도 주님의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 고용주는 (right) 공평(fair) 고용인에게 베풀어야 합니다.

 

골로새서 4 장 1 절 말씀입니다: “상전들아 의와 공평을 종들에게 베풀지니 너희에게도 하늘에 상전이 계심을 알지어다.”  여기서 “의”를 베풀어야 한다는 말씀의 의미는 고용주는 고용인에게 의를 행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의를 행한다’(요일 2:29)는 말씀의 의미는 고용주는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께서(1 절) 행하시는 대로 행하는 것으로서(6 절)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이중 계명에 순종하는 것입니다(7-11 절).  다시 말하면, 고용주는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로서(17 절) 예수님의 이중 계명 중 두 번째 계명대로 그의 이웃인 고용인을 자신 같이 사랑한다는 것입니다(마 22:39).  이 말씀을 요한일서 2 장 3-11 절의 말씀의 관점으로 말(적용)한다면 고용인을 사랑하고 미워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계명의 순종하여 고용인을 사랑하는 고용주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하게 되었”음(5 절). 그리고 그는 빛 가운데 거하여[“빛 가운데 살기 때문에” (현대인의 성경)] 자기 속에 거리낄 만한 것이 없습니다(10 절, 현대인의 성경).  

 

또한 고용주는 고용인에게 “공평”을 베풀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는데(골 4:1) 그 구체적인 적용은 고용주는 고용인에게 봉급도 제대로 주시 않으면서 일만 많이 시키거나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즉, 고용주는 공평한 봉급을 고용인에게 지불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잠언 3 장 27-28 절 말씀입니다: “네 손이 선을 베풀 힘이 있거든 마땅히 받을 자에게 베풀기를 아끼지 말며 네게 있거든 이웃에게 이르기를 갔다가 다시 오라 내일 주겠노라 하지 말며”[(현대인의 성경) “선을 베풀 능력이 있거든 그것을 필요로 하는 자에게 베풀기를 주저하지 말며 너에게 가진 것이 있으면 네 이웃에게 '갔다가 다시 오너라. 내일 주겠다.' 라고 말하지 말아라”].  저는 이 말씀을 고용주와 고용인의 관계에 적용해 보았습니다.  예를 들어 가게 주인의 입장에서 재정적 여유가 있을 때 자기가 고용한 종업원의 입장에 서서 생각하여 그 종업원에게 주급이던 월급이던 그 때 그 때 임금(wage)를 지불(pay)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첫째로, 고용인은 임금(wage)를 “마땅히 받을 자”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잠언 3 장 27 절을 문자적으로 번역하면 이렇습니다: ‘좋은 것을 마땅히 그 주인들에게 주는 것을 거부(보류)하지 마십시오’[“Do not withhold good from its owners”(Walvoord)].  무슨 말씀입니까?  가게에서 고용주가 가지고 있는 돈 중 고용인이 일주일이나 한달 동안 일하여 번 돈은 더 이상 고용주 것이 아니라 고용인의 것이기에 고용주는 그 돈의 주인이 고용인에게 마땅히 지불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또 다른 이유는 여유있는 고용주는 여유가 없는 고용인이 주급일 경우 일 주일 일주일 살아가는 것, 월급인 경우 한달 한달 살아가는데 여유가 없고 오히려 재정적으로 빡빡하게 살므로 그 주급 또는 그 월급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기 때문에 고용주는 고용인에게 주급이던 월급이던 그 때 그 때 임금을 지불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만일 고용주라면 한번 고용인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십시오. 고용인이 일주일이던 한달이던 열심히 일을 했는데 자기가 일한 만큼 임금을 그 때 그 때 받지 못한다면 여러분 같으면 어떻게 반응하겠습니까?  만일 내가 고용주에게 받아 마땅한 임금을 받지 못하고 계속을 일을 해야 한다면 그래도 여러분은 그 고용주를 위해서 계속 일을 하겠습니까?  지금 여러분은 일주일 일주일, 또한 한달 한달 받은 임금으로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데 그 주급이나 월급을 고용주란 사람이 여유가 있으면서도 지급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래서 성경 신명기 24 장 15 절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품삯을 당일에 주고 해 진후까지 끌지 말라 이는 그가 빈궁하므로 마음에 품삯을 사모함이라 두렵건대 그가 너를 여호와께 호소하면 죄가 네게로 돌아갈까 하노라.”  고용주는 마땅히 임금을 받을 고용인에게 베풀기를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고용주는 고용인이 일하는데 즐겁게 일 할 수 있도록 필요한 것들을 베풀도록 힘써야 합니다.

 

  • 고용주는 고용인에게 윽박지르면서 위협하지 말아야 합니다.

 

에베소서 6 장 9 절 말씀입니다: “상전들아 너희도 그들에게 이와 같이 하고 위협을 그치라 이는 그들과 너희의 상전이 하늘에 계시고 그에게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는 일이 없는 줄 너희가 앎이라”[(현대인의 성경) “마찬가지로 주인들도 종들을 그렇게 대하고 욱박지르지 마십시오. 여러분과 종들의 주인 되시는 분이 하늘에 계신다는 것과 그분은 사람의 겉모양을 보지 않으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고용주가 고용인에게 윽박지르면서 위협하는 모습이 상상이 되시지 않습니까?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고용인이 고용주에게 무슨 큰 잘못을 해서 그럴까요?  아니면, 혹시 고용주가 자신의 권위(authority)와 힘(power)을 고용인에게 남용해서 그러는 것은 아닐까요?  존 맥아더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성령 충만한 상사는 자신의 권위와 권력을 공의와 은혜로 사용합니다.  결코 그는 사람들을 위협하거나 학대하거나 배려하지 않는 행동을 하지 않습니다.  그는 편견 없이 대하시는 하늘에 계신 주님이 있음을 깨닫고 있습니다’(“The Spirit-filled boss uses his authority and power with justice and grace—never putting people under threats, never abusive or inconsiderate. He realizes that he has a heavenly Master who is impartial”)(맥아더).  만일 고용주가 고용인의 외모를 보고 그게 대한 편견을 갖고 있다면 충분히 고용주는 자신의 권위와 권력을 남용하여 고용인을 위협하거나 언어로도 학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한국 식당의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장(주인, 고용주)이 종업원(고용인)인 히스패닉 사람에 대한 편견을 갖고(농땡이를 핀다/게으르다 등등) 자신의 불과 같은 성격대로 그 히스패닉 종업원에게 일을 “빨리빨리”하라고 윽박지르면서 만일 자기 말을 듣지 않고 일을 빨리 빨리하지 않으면 자기 식당에서 더 이상 일하지 말라는 식으로 말한다면 그 고용주는 결코 지혜로운 고용주가 아닙니다.  지혜로운 고용주는 그의 고용인에게 선하게 대하는 자요 또한 고용인에게 베푸는 자입니다.  그러나 크리스찬 고용주라고 하면서 너무나 고용인에게 인색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고용인을 엄하게 부리며 위협하는 고용주도 많은 것 같음. 그 원인은 성화된 인격을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손봉호).  

 

성경은 고용주에게 고용인에게 위협을 그치라[공갈하지 말라(개역한글)](엡 6:9)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 고용주는 고용인에게 “의와 공평을 … 베풀”라고(골 4:1)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봉급도 제대로 주시 않으면서 일만 많이 시키거나 하면 안 됩니다.   공평한 봉급을 지불해야 하며 또한 고용인이 일하는데 즐겁게 일 할 수 있도록 필요한 것들을 베풀도록 힘써야 합니다.  그 이유는 고용주도 하늘에 상전, 곧 주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1 절).  고용주는 주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고용인을 선대하며 베풀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 골로새서 3 장 25 절 하반절 말씀입니다: “… 주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심이 없느니라”[(현대인의 성경) “하나님은 외형적인 것을 보고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십니다”]. 그런데 실제로 지금 얼마나 많은 기독교인 고용주들 조차도 사람을 차별하고 있습니까?  성경 야고보서2장4절 새 번역은 “바로 여러분은 서로 차별을 하고, 나쁜 생각으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이 된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 요한복음 7 장 24 절은 “외모로 판단하지 말고 공의롭게 판단하라”고 8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혜가 있는 고용주(신 1:13, 15)는 고용인의 말을 듣습니다(16 절).  듣되 그는 귀천을 차별없이 듣습니다(17 절).  그리고 그는 고용인의 외모를 보지 않습니다(17 절).  그는 사람의 낯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17 절).

 

                말씀 묵상을 맺고자 합니다.  고용인의 의무는 고용주에게 순종하는 것입니다.  순종하되 까다로운 고용주에게도 순종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고용인이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용주에게 고난을 받고 참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아름답기 때문이요 또한 고용인은 선을 행함으로 고용주에게 고난을 받고 참음을 위하여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고용인은 고용주에게 순종해야 합니까?  고용인은 고용주가 지켜보고 있을 때만 열심히 또는 부지런히 일하면 안 됩니다.  또한 고용인은 모든 일에 주님을 섬기듯 오직 주님을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과 기쁜 마음으로 고용주를 섬겨야 합니다.   고용인은 마음 속에 거짓된 동기를 숨겨 놓고 그냥 겉치레로 고용주를 섬기면 안 됩니다.  오히려 고용인은 마음이 나뉘지 않은 진실한 마음(진심)으로 주님을 섬기듯 고용주를 섬겨야 합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고용인이 주님에게 하늘의 축복을 상으로 받게 될 것을 믿고 소망하기에 기쁜 마음으로(선의로) 주님을 섬기듯 고용주를 섬깁니다.  고용인은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의 뜻을 행해야 합니다.  그 하나님의 뜻 중에 하나는 고용인은 직장에서 일을 할 때 말이나 행동에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고용인은 예수님을 이름을 지닌 자로서 말과 행동에 있어서 본이 돼야 합니다.  특히 그가 말을 할 때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해야 합니다.  또한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도록 힘쓰는 고용인은 고난을 받아도 계속 선한 일을 해야 합니다.  이 외에도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고용인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고용인은 고난을 받을 때에 부끄러워하지 않고 도리어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 그것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데 힘을 쓰는 헌신된 고용인은 주님을 기쁘시게 할 일이 무엇인지 살펴봅니다.

 

고용주의 의무는 하늘에 주님이 계신다는 것을 알고 의(right)와 공평(fair)을 베풀되 그에게 윽박지르면서 위협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고용주는 하늘에도 자기 주님이 계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한 가운데서 고용주는 고용인에게 의를 행하되 예수님처럼 고용인을 사랑해야 하며 또한 고용인에게 공평을 베풀어야 합니다. 그 구체적인 적용은 고용주는 고용인에게 봉급도 제대로 주시 않으면서 일만 많이 시키거나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즉, 고용주는 공평한 봉급을 고용인에게 지불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고용주는 마땅히 임금을 받을 고용인에게 베풀기를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고용주는 고용인이 일하는데 즐겁게 일 할 수 있도록 필요한 것들을 베풀도록 힘써야 합니다.  고용주는 고용인에게 윽박지르면서 위협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고용주는 주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고용인을 선대하며 베풀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