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인과 고용주의 의무 (3)

 

 

 

 

[골로새서 3장 22절 – 4장 1절]

 

  

 

그러면 어떻게 고용인의 고용주에게 순종해야 합니까? 한 3가지로 묵상하고자 합니다:

 

  • 고용인은 고용주가 지켜보고 있을 때만 열심히 또는 부지런히 일하면 안 됩니다.

 

  • 고용인은 모든 일에 주님을 섬기듯 오직 주님을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과 기쁜 마음으로 고용주를 섬겨야 합니다.

 

골로새서 3장 22-23절 말씀입니다: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현대인의 성경) “종들은 모든 일에 자기 주인에게 순종하십시오. 단순히 사람을 기쁘게 하는 사람들처럼 눈가림만 하지 말고 주님을 두려워하며 성실한 마음으로 주인을 섬기십시오 무슨 일을 하든지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고 주님께 하듯 성실하게 하십시오”].  에베소서 6장 5절과 7절 말씀입니다: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라  …  기쁜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현대인의 성경) “종들은 그리스도를 대하듯 두렵고 성실한 마음으로 주인에게 순종하십시오  …  그리고 주님을 섬기듯 기쁨으로 주인을 섬기며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마십시오”].           여기 에베소서 6장 5절에서 “두려워하고 떨며”라는 말씀은 “단순한 마음에서 우러나는 주의 깊은 존경심으로”라는 의미가 있습니다(칼빈).  고용인은 고용주의 권위를 인정하며 존중하므로 그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그러나 고용인이 자신의 고용주에게 불순종하는 변명 중 하나는 바로 그가 고용주를 존중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제 생각엔 마치 아내가 존경스럽지 않은 남편을 주님께 하듯 존경해야 하는 것처럼(5:33) 고용인은 존중할만한 고용주에게만 순종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존중할 수 없는 고용주에게도 순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고용인은 주님을 두려워(경외)해야 합니다(골3:22).  그리할 때 그는 자신의 고용주에 두려워하고 떨며 순종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고용인은 비록 자신의 고용주를 향한 존경심이 없다 할지라도 주님을 향한 단순한 마음에서 우러나는 주의 깊은 존경심으로 인해 주님을 섬기듯 고용주를 섬겨야 합니다.

 

저는 이 교훈을 부부 관계에 관한 에베소서 5장 33절 하반절 말씀에도 적용을 하게 되었습니다: “…  아내도 자기 남편을 존경하라”[(현대인의 성경) “… 아내도 자기 남편을 존경하십시오”].  비록 아내의 입장에서 자신의 남편을 생각할 때 단순한 마음에서 우러나는 주의 깊은 존경심이 없다 할지라도 주님을 향한 그러한 존경심이 있으면서 주님을 섬기듯 남편을 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오늘 본문 골로새서 3장 22절(참고: 엡6:5) 현대인의 성경에서 ‘성실한 마음으로 주인을 섬기십시오”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여기서 “성실한 마음”(in singleness of heart)이란 정직한 마음(honest heart) 또는 단순한 마음(simple heart)란 의미입니다.  킹제임스 성경 주석은 “성실한 마음”이란 ‘마음 속에 숨길 수 있는 거짓된 동기가 없는, 진심으로. 그리스도인들은 겉치레나 숨은 동기 없이, 마음이 나뉘지 않은 진실한 준비된 마음을 가져야 하며, 반쪽 마음이 아닌 진실해야’ 함을 의미한다고 말했습니다(KJV 성경 주석).  이 의미를 다시 좀 생각할 때 얻는 교훈이 적어도 2가지가 있습니다:

 

  • 첫 번째 교훈은, 고용인은 마음 속에 거짓된 동기를 숨겨 놓고 그냥 겉치레로 고용주를 섬기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고용인의 입장에서 나쁜 고용주를 만났으면 그 고용주에 대한 마음 속에 불만과 불평과 원망이 충분히 있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적어도 고용주 앞에서는 그것을 내색하지 않고 억눌러서라도 참고 고용주를 섬기는 척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할 때 고용주는 고용인의 그러한 마음 속에 불만이나 불평 등을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고용인의 마음을 다 보고 계시고 알고 계십니다.  그러기에 만일 고용인이 그저 고용주의 마음을 기쁘게 하려고 눈가림만 하면서 고용주에 말에 순종하면서 그를 섬기는 척하면 고용주는 속아 넘어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고용인들에게 그렇게 고용주를 섬기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고용인은 ‘주님을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고용주를 섬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말은 고용인은 마음 속에 거짓된 동기를 숨겨 놓고 그냥 겉치레로 고용주를 섬기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 두 번째 교훈은, 오히려 고용인은 마음이 나뉘지 않은 진실한 마음(진심)으로 주님을 섬기듯 고용주를 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고용인은 나뉘지 않은 마음으로 고용주를 섬겨야 한다 할 때 저는 시편 86편 11절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여호와여 주의 도를 내게 가르치소서 내가 주의 진리에 행하오리니 일심으로(an undivided heart) 주의 이름을 경외하게 하소서”[(현대인의 성경) “여호와여, 주의 길을 나에게 가르치소서. 내가 주의 진리 가운데 걸어가겠습니다. 나에게 한결같은 마음을 주셔서 내가 주의 이름을 두려워하게 하소서”].  우리가 주님을 섬김에 있어서 이렇게 한결 같은 마음, 일심으로, 나뉘지 않은 마음으로 섬겨야 합니다.  그와 같이럼, 고용인은 주님을 그렇게 섬기듯 자기의 고용주도 나뉘지 않은 한결 같은 마음, 일심으로 섬겨야 합니다.  섬기되 특히 진실한 마음, 진심으로 고용주를 섬겨야 합니다.

 

또한 에베소서 6장 7절을 보면 “기쁜 마음으로” 섬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고용인은 “주님을 섬기듯”(현대인의 성경) “기쁜 마음으로” 고용주를 섬겨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여기서 “기쁜 마음으로”라는 단어의 원어 의미는 “with good will”(선의로)입니다.  즉, 고용인은 선의로 고용주를 섬기라는 의미입니다.  다시 말하면, 고용인은 ‘겉으로는 순종하는 척하면서도 속으로는 분노로 끓어오르는 것이 아니라, 기쁘고 자발적으로’ 고용주를 섬겨야 한다는 말입니다(Believer’s 성경 주석).  ‘비록 고용주가 고압적이거나, 학대하거나, 부당하더라도, 예수님을 믿는 고용인의 일은 여전히 사람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 하듯이 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Believer’s 성경 주석).

 

이것이 어떻게 가능할까요?  이것은 예수님을 믿는 고용인이 골로새서 3장 24절과 에베소서 6장 8절 말씀을 믿고 소망할 때만이 가능합니다: (골3:24상) “이는 기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아나니 …”[(현대인의 성경) “여러분은 주님에게 하늘의 축복을 상으로 받게 될 것을 기억하십시오 …”]; (엡6:8) “이는 각 사람이 무슨 선을 행하든지 종이나 자유인이나 주께로부터 그대로 받을 줄을 앎이라”[(현대인의 성경) “종이든 자유인이든 누구든지 선한 일을 하면 주님에게 그만한 상을 받는다는 것을 아십시오”].  고용인이 주님에게 하늘의 축복을 상으로 받게 될 것을 믿고 소망하기에 “기쁜 마음으로”(선의로) 주님을 섬기듯 고용주를 섬깁니다. 

 

히브리서 11장 24-26절 말씀이 생각납니다(현대인의 성경): “성장한 모세는 믿음으로 이집트 공주의 아들이 되는 것을 거절했습니다.  그는 일시적인 죄의 쾌락을 누리는 것보다는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통 당하는 길을 택한 것입니다.  모세는 약속된 메시아를 위해 받는 고난을 이집트의 보물보다 더 값진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것은 장차 상 받을 것을 기대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믿음으로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통 당하는 길을 선택한 이유는 그는 “장차 상 받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복음을 위해서 어떠한 억울한 고난을 당한다 할지라도 참고 견딜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가 주님 앞에 설 때에 주님께서 우리에게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Well done, good an faithful servant!)(마25:21)이란 칭찬을 받길 간절히 소망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