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인과 고용주의 의무 (2)
[골로새서 3장 22절 – 4장 1절]
그러면 어떻게 고용인의 고용주에게 순종해야 합니까? 한 3가지로 묵상하고자 합니다:
- 고용인은 고용주가 지켜보고 있을 때만 열심히 또는 부지런히 일하면 안 됩니다.
골로새서 3장 22절 상반절 말씀입니다: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현대인의 성경) “종들은 모든 일에 자기 주인에게 순종하십시오. 단순히 사람을 기쁘게 하는 사람들처럼 눈가림만 하지 말고 …”]; (엡6:6상)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현대인의 성경) “아첨하는 사람처럼 눈가림으로 하지 말고 …”]. 제가 고등학교 때 칼스 주니어(Carl’s Jr.)라는 햄버거 식당에서 일을 했었습니다.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것은 저는 그 때 미국 사람 메니저(manager)가 식당에 와 있으면 열심히 일을 하다가 그 메니저가 식당에 없을 때에는 주방에서 햄버거를 만들면서 몰래 훔쳐 먹었었습니다. ㅠ 그러다가 제가 대학교에 가서도 대학 후배 자매의 부모님이 운영하시는 가게에서 일을 했었는데 그 때에도 가게 주인되시는 후배의 부모님이 가게에 오시면 그분들 보는데서 열심히 일을 하다가 그분들이 가시고 나면 더 이상 열심히 일하는 척하지 않고 그냥 제 편안한대로 일을 했었습니다. 오늘 본문 골로새서 3장 22절 상반절을 보면 성경은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눈가림”이란 영어로 “eyeservice”라고 번역을 했는데 그 의미는 “주인 눈앞에서만 일함”입니다(네이버 사전). 왜 고용인은 그의 주인인 고용주 눈앞에서만 일하는 것입니까? 그 이유는 사람을 기쁘게 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22절). 즉, 고용인은 고용주를 기쁘게 하려고 고용주의 눈앞에서만 열심히 일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고용주가 더 이상 자기를 보지 않거나 볼 수가 없을 때에는 열심히 일하지 않습니다. 왜 고용인이 고용주가 보고 있을 때만 열심히 일하는 것입니까? 그 목적은 고용주에게 열심히 일하고 있다는 것을 의도적으로 보이므로 고용주에게 칭찬을 받기 위해서입니다(KJV 성경 주석). 여기서 저는 ‘사람을 기쁘게 하려는 사람’에 대해서 좀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그 이유는 고용인이 고용주가 지켜보고 있을 때만 열심히 또는 부지런히 일하는 이유가 그 고용인이 ‘사람을 기쁘게 하려는 사람’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직장에서 직장인이 자기 상관을 기쁘게 하려고 할 때 그 상관의 비위를 맞추면서 아부하고 아첨하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다보면 그 직장인은 상관을 향한 자신의 솔직한 (미운) 감정도 숨길(감출)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참고: 잠26:24). 그러면 교만한 상관은 그 직장인의 아첨에 넘어가기가 쉽습니다[“교만한 사람들은 아첨에 넘어 가기가 쉽다”(유진 피터슨)]. 그리고 그 직장인은 자기 상관이 없는 곳에서 친한 동료 직장인(들)에게 상관에 대한 자신의 미운 감정이든 불만이든 불평하며 원망의 소리를 낼 위험이 많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지금 사람들의 마음을 기쁘게 하려 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 드리려 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사람의 환심을 사려고 하고 있습니까? 내가 아직도 사람의 환심을 사려고 하고 있다면, 나는 그리스도의 종이 아닙니다”(갈라디아서 1:10, 새 번역), “오히려 우리는 하나님의 인정을 받아 기쁜 소식을 전하라고 부탁을 받은 사람으로서 말합니다. 우리는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하지 않고 우리 마음을 살피시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려고 합니다”(데살로니가전서 2:4, 현대인의 성경). 이 말씀들을 보면 바울은 사람들의 마음을 기쁘게 하려고 그들의 환심을 사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만일 자기가 그리했다면 그는 “나는 그리스도의 종이 아닙니다”라고까지 말했습니다. 오히려 바울은 “하나님의 인정을 받아 기쁜 소식을 전하라고 부탁을 받은 사람”으로서 오직 자기의 “마음을 살피시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누구에게도 아첨하지 않았습니다. 고용인이 고용주에게 아첨한다는 것은 그가 고용주의 기분을 맞추기 위해 과장된 칭찬을 하거나 호의를 표시하는 것입니다(인터넷 사전).
그러나 에베소서 6장 6절 현대인의 성경을 보면 “아첨하는 사람처럼 눈가림으로 하지 말고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용주를 기쁘게 하여 그에게 칭찬을 받고자만 열심히 일하는 척하는 것을 가리켜 영어로는 “sight-labor”라고 합니다. 그 의미는 고용주의 눈 앞에서만 행하는(performing) 섬김(service)입니다[“service performed (only) under the master’s eyes (“ophthalmodouleia” “눈가림”이란 헬라어 단어의 의미)]. 이런 경우 고용인의 입장에서는 고용주가 보고만 있어야 열심히 또는 부지런히 일하도록 자극(stimulation)을 받습니다. 반면에 고용주가 없으면 그는 게으릅니다(나태함, 부진함)(sluggish). 저는 여기서 “게으름”에 대해서 좀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제 생각엔 고용인이 고용주가 지켜보고 있을 때만 열심히 또는 부지런히 일하는 이유는 물론 그가 고용주를 기쁘게 하려는 의도가 있지만 고용주가 자기를 지켜보고 있지 않으면 그는 나태해지고 게으름을 피우기 때문입니다. 김병삼 목사님이란 분은 그의 책 “성공의 7가지 장애”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잘 넘어가야 할 성공 속에 감추어진 장애물 7가지를 말했는데 그 7가지 중에 하나가 바로 “게으름”입니다. 김 목사님은 게으름은 하나님과 의사소통이 단절되기 때문에 죄이고, 불평이 많아지고, 모든 사람들과 관계의 단절을 가져오기 때문에 죄라고 말했습니다(인터넷). 성경 잠언 말씀을 보면 “게으름”에 대해 여러 번 말씀하고 있는데 그 공통된 메시지는 ‘게으른 자는 가난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게으른 자는 자기의 손은 게으르게 놀리지만 자기의 머리는 부지런히 굴린다는 것입니다[꾀를 많이 부림(참고: 잠15: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