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을 따라 행하는 자

 

 

 

[로마서 8장 5-6절]

 

 

로마서8장 5-6절 말씀입니다: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현대인의 성경) “육신을 따라 사는 사람은 육신의 일을 생각하지만 성령님을 따라 사는 사람은 성령님의 일을 생각합니다.  육적인 생각은 죽음을 뜻하고 영적인 생각은 생명과 평안을 뜻합니다”].  성경은 두 부류의 사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1) “육신을 따르는 자”와 (2) “영을 따르는 자”.  여기서 “영”이란 “성령님”(현대인의 성경)을 말씀합니다(로마서 8장 5-11절에서 “영”이라는 말씀이 9번이나 나옴.  그 9번 중에 10절에 나오는 “영”만 우리 사람의 영을 말씀하고 나머지 8번은 “성령님”을 말씀함).  그러므로 “영을 따르는 자”란 ‘성령님을 따르는 사람’을 말합니다.

 

성령님을 따르는 사람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한 성령님으로 거듭난(중생한) 새 사람을 말합니다.  이렇게 성령님으로 거듭한(중생한) 새 사람은 “성령님을 따라 사는 사람”으로서 “성령님의 일을 생각합니다”(5절, 현대인의 성경).  여기서 ‘성령님의 일’이란 특히 하나님의 말씀과 연관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성령님께서 하신 일을 성경을 기록하셨습니다.  디모데후서 3장 16절 말씀입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베드로후서 1장 20-21절 현대인의 성경 말씀입니다: “그러나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성경의 예언을 자기 멋대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점입니다.  예언은 결코 사람의 뜻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성령님의 감동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에게 받아 말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성령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십니다.  요한복음 5장 39절 말씀입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현대인의 성경) “너희는 성경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 줄로 생각하고 성경을 부지런히 연구하고 있는데 바로 이 성경이 나를 증거하고 있다”]. 

 

이렇게 성령님의 일을 생각하는 성령님을 따르는 사람의 “영적인 생각은 생명과 평안”입니다(롬8:6).  여기서 “생명”이란 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생명의 성령의 법”[“생명을 주시는 성령님의 능력”(현대인의 성경)]이란 말씀을 생각나게 합니다(2절).  즉, 성령님은 “생명의 성령님”으로서 성령님은 “생명”이시요 또한 “생명을 주시는”(2절, 현대인의 성경)(거듭나게 하셔서 새 생명을 주시는) 성령님이십니다.  그리고 여기서 “평안”이란 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성령님의 열매 중 하나인 “화평”[“평안”(현대인의 성경)]이란 말씀을 생각나게 합니다(갈5:22).  성령님의 생각은 화평/평안/평화입니다.  로마서 5장 1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칭의)을 받은 우리는 하나님과 화평/평화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전에는 죄로 인해 하나님과 교제가 끊어진(단절된) 상태였고 영적으로 죽은 사람들이었습니다[(엡2:1, 현대인의 성경) “여러분은 불순종과 죄 때문에 영적으로 죽었던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원수 되었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습니다(롬5:10).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게 된 우리는(1절) 이웃과도 평화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평화가 없고 오히려 분쟁과 분열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평화의 도구가 되야 합니다.  “평화의 기도”입니다: “주님, 저를 당신의 도구로 써 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신앙을, 그릇됨이 있는 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두움에 빛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가져오는 자 되게 하소서.  위로 받기보다는 위로하고, 이해 받기보다는 이해하며,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게 하여주소서.  우리는 줌으로써 받고, 용서함으로써 용서받으며, 자기를 버리고 죽음으로써 영생을 얻기 때문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화평의 하나님”이십니다(고전14:33).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화평”이십니다(엡2:14).  “그분은 유대인과 이방인을 갈라 놓은 담을 헐어서 둘이 하나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들을 원수로 만들었던 계명의 율법을 예수님이 자신의 육체적인 죽음으로 폐지하신 것은 유대인과 이방인을 자기 안에서 하나의 새로운 백성으로 만들어 화목하게 하고 또 십자가로 그들의 적개심을 죽이고 둘을 한 몸으로 만들어 하나님과 화해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오셔서 여러분과 같이 하나님을 멀리 떠나 있던 이방인이나 하나님과 가까이 있던 유대인들에게 평화의 기쁜 소식을 전하셨습니다.  그래서 이방인이나 유대인이 모두 그리스도를 통해 한 성령님 안에서 아버지께로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여러분이 외국인이나 나그네가 아니라 성도들과 똑같은 시민이며 하나님의 가족입니다”(14-19절, 현대인의 성경).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을 자기와 화해시키시고 사람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않으셨으며 화해의 말씀을 우리에게 맡기셨습니다”(고후5:19, 현대인의 성경).  하나님은 “화평 중에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고전7:15).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평화롭게 살라고 우리를 부르셨습니다”(15절, 현대인의 성경).  그러므로 우리는 “화평하게 하는 자”(마5:9)로서 먼저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면서 마음의 평안을 누리는 가운데서 이웃과도 화평을 이루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 모두를 평화의 도구로 사용해 주시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