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로마서 7장 24-25절]

 

 

로마서 7장 24-25절 말씀입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여기서 “오호라”라는 말씀은 탄식 소리입니다.  심히 괴롭거나 마음이 한없이 슬플 때에 “오호라”라고 절규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가 “곤고한 사람”이라고 탄식하며 절규를 했습니다.  이렇게 탄식하면 절규한 사도 바울은 선교 여행을 3번이나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제1차 선교 여행 때 루스드라 지방을 갔었는데 거기서 복음을 전하다가 돌에 맞아 거의 죽음에 이르게 되기도 했었습니다(행14:19-20).  그런데 “이튿날 그는 바나바와 함께 더베(루스드라에서 약 27km 떨어진 곳)로 갔습니다(20절).  또한 바울은 제2차 선교 여행 때에는 빌립보에서 깊은 감옥에 갇혔었는데 거기서 그는 실라와 함께 한 밤중에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그랬을 때 그는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경험했습니다(16:25-26).  그런데 이렇게 훌륭한 믿음의 사람인 사도 바울이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롬7:24)라고 탄식하고 절규를 했습니다.  그 이유는 그는 자기가 원하는 것은 하지 않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하였기 때문입니다(15절).

 

그러면 사도 바울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그는 (a) 믿음으로 살기를 원했고, (b) 사랑을 베풀면서 살길 원했으면 (c) 거룩하게 살기를 원했고 또한 (d) 예수님을 닮기를 원했음[참고: 새 찬송가 463장 “신자되기 원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사도 바울은 그가 원하는 데로 살았습니다.  그는 선한 싸움을 싸웠고 그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습니다.  디모데후서 4장 7절 말씀입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현대인의 성경)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모든 일을 다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그는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을 향하여 넘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고린도후서 2장 4절 말씀입니다: “내가 마음에 큰 눌림과 걱정이 있어 많은 눈물로 너희에게 썼노니 이는 너희로 근심하게 하려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내가 너희를 향하여 넘치는 사랑이 있음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라”[(현대인의 성경) “내가 근심하고 몹시 괴로와하며 많은 눈물로 그 편지를 쓴 것은 여러분을 슬프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여러분에 대한 나의 넘치는 사랑을 여러분이 알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이웃을 자신 같이 사랑하며 살았었기에 고린도전서 13장(사랑 장)을 기록했습니다.  또한 사도 바울은 거룩하고 옮고 흠 없이 행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2장 10절 말씀입니다: “우리가 너희 믿는 자들을 향하여 어떻게 거룩하고 옳고 흠 없이 행하였는지에 대하여 너희가 증인이요 하나님도 그러하시도다”[(현대인의 성경) “또 믿는 여러분 앞에서 우리가 얼마나 경건하고 올바르고 흠 없이 살았는가를 여러분이 보았으며 하나님도 이것에 대한 증인이십니다”].  그리고 그는 예수님을 닮았습니다.  고린도전서 11장 1절 말씀입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현대인의 성경)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처럼 여러분도 나를 본받으십시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 바울은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함이라”고 말했습니다(롬7:15).  그리고 그는 “이제는 그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고 말했습니다(17절).  그가 깨달은 것은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었습니다(21절).  그는 “내 육체에는 또 다른 법”(23절, 현대인의 성경)[“죄의 법”(23, 25절)이 있어서 그것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았습니다(23절).  그래서 사도 바울은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현대인의 성경) “아아, 나는 얼마나 비참한 사람인가요! 누가 이 죽음의 몸에서 나를 구해 내겠습니까?”]라고 탄식하며 절규했습니다(24절).  그는 자기 자신이 스스로 “이 사망의 몸”에서 건져낼 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어느 누구도 자기를 “이 사망의 몸”에서 건져낼 수 없음을 인정하면서 탄식하고 절규를 했습니다.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이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은 “이 사망의 몸”에서 건져주실 수가 있습니다(25절).

 

우리도 사도 바울처럼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24절)라고 탄식하며 절규해야 합니다.  특히 사도 바울처럼 우리가 믿음으로 살기를 원하고 사랑을 베풀면서 살기를 원하며 거룩하길 원하고 예수님을 닮기는 원하는 마음이 간절할수록 우리 자신이 그렇게 살기보다 오히려 우리가 미워하는 것인 불신으로 살고, 미워하고, 더럽고 추한 죄들을 범하면서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먹칠하면서 너무나도 예수님을 닮지 못한 자신의 모습을 직시하게 될 때 우리는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라고 탄식하며 절규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한 가운데서 우리는 현재 우리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지만 또 다른 법인 죄의 법이 우리 마음의 법과 싸우는 영적 전쟁을 하고 있음.  우리는 이 싸움을 죽을 때까지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사도 바울과 같은 고백을 할 수 있길 기원합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딤후4: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