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령한 율법, 육신에 속한 나 (3)
[로마서 7장 14-16절]
로마서 7장 14절 말씀입니다: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에 팔렸도다.” 여기서 “율법”이란 10계명과 모세 5경(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과 심지어 구약성경 창세기에서 말라기까지를 말씀합니다. 이 3가지 중 10계명이 “신령”하다는 말씀을 좀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10계명이 신령한 이유는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10계명을 두 돌 판에 친히 쓰셨기 때문입니다(출31:18).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신령한 10계명이 쓰여진 돌 판 둘을 잘 보관라하고 명하셔서 모세는 그 돌판 둘을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자기가 만든 “궤”에 넣어 보존했습니다(신10:5). 히브리서 9장 4절 말씀입니다: “금 향로와 사면을 금으로 싼 언약궤가 있고 그 안에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언약의 돌판들이 있고.” 여기서 “언약의 돌판들”이란 바로 10계명이 쓰여진 돌판 둘을 말합니다.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이 친히 쓰셔서 주신 신령한 10계명이 귀하고 중요했는데 이 10계명 외에도 그들에게 있어서 귀하고 중요한 것은 바로 “놋 뱀”이었습니다(민21:4-9). 구리로 만든 이 뱀을 그들이 어느 정도로 귀하고 중요하게 여겼는냐면 히스기야 왕 시대에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가 만든 놋 뱀을 향해 분향했습니다(왕하18:4). 이스라엘 백성들이 10계명이 쓰여진 돌판 둘을 귀하고 중요하게 여겨 잘 보관했기에 나중에 예루살렘이 다 불탔을 때에도 그 돌판 둘을 보관한 언약궤가 불탔다는 말씀이 성경에 나와있지 않습니다.
이 말씀을 우리 각자에게 적용해 볼 때 우리도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10계명을 귀하고 중요시 여겨야 합니다. 성령님께서 그 10계명을 우리 각자의 마음 판에 친히 새겨주시길 기원합니다. 그리고 그 10계명을 묵상하고 그 계명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므로 말미암아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신앙생활을 할 수 있길 기원합니다.
로마서 7장 14절 하반절 말씀입니다: “…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에 팔렸도다.” 여기서 “나”는 이미 하나님께 칭의를 받은 사도 바울을 말합니다. 그가 “죄 아래에 팔렸도다”라는 말씀은 ‘죄의 종’이라는 말입니다. 여기서 “죄 아래에 팔렸도다”는 과거사로서 사도 바울은 자신이 이미 죄 아래에 팔렸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나는 육신에 속하여”(I am of flesh)란 말씀은 현재형입니다. 즉, 바울은 지금 자기가 육신에 속하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종합해서 말한다면, 바울은 자기가 죄 아래에 이미 팔려서 지금 육신에 속하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육신”이란 죄로 인해 부패한 사람을 가리킵니다. 죄의 종이 되어 육신에 속한 자가 된 이유는 하나님께서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므로 “생령”이 된 사람 아담(창2:7) 하나님의 언약(17절)을 어기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음으로(3:6) 하나님께 범죄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흙인 아담은 이마에 땀을 흘리며 고되게 일을 해서 먹고 살다가 마침내 흙으로 돌아가게 된 것입니다(19절, 현대인의 성경).
로마서 7장 15절 말씀입니다: “내가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함이라.” 죄의 종이 된 육신에 속한 바울은 자기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않고 도리어 자기가 미워하는 것을 행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고도의 신앙인인데도 불구하고 바울은 그가 원하는 선(선행)이나 의(의로운 삶이)나 거룩(거룩한 삶)은 살지 않고 도리어 그가 미워하는 악(악행)이나 불의(불의의 삶)이나 불경건 등을 행했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그리 행했다면 우리는 어떠합니까? 우리도 우리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않고 원치 않고 오히려 미워하는 것을 행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래서 사도 바울은 “내가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현대인의 성경) “나는 내가 하는 일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15절상). 즉, 그는 왜 자기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않고 원치않고 미워하는 것을 행하는지 자기 자신도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도 바울은 그가 죽기 전에 디모데에게 쓴 편지에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현대인의 성경)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모든 일을 다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딤후4:7). 우리도 사도 바울은 본받아 선한 싸움을 끝까지 믿음으로 싸워야 합니다. 로마서 7장 22-23절 말씀입니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현대인의 성경) “나의 내적 존재는 하나님의 법을 좋아하지만 내 육체에는 또 다른 법이 있습니다. 그것이 내 마음과 싸워서 나를 아직도 내 안에 있는 죄의 종으로 만들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원치 않는 것과 미워하는 것과 싸워서 더 이상 육신에 속하여 “죄의 종” 노릇을 하여 “악”을 행하지 말아야 합니다(21, 23절, 현대인의 성경). 도리어 우리는 믿음으로 우리가 원하는 것, 즉 “선한 일”을 하고 싶은 것을 실천해야 합니다(18-19절, 현대인의 성경). 즉, 우리는 우리 “속사람”이 즐거워하는(좋아하는)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면서 살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