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령한 율법, 육신에 속한 나 (2)

 

 

 

[로마서 7장 14-16절]

 

 

총체적 칭의론을 복습합니다:

 

칭의의 필요성:

 

로마서 3장 23절 말씀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므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기에 “모든 사람”이 절대적으로 칭의가 필요합니다.  여기서 “모든 사람”이란 인류의 첫 사람인 창세기에 나오는 아담부터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든 사람을 말씀합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이 “모든 사람”을 한 4 가지로 말씀하였습니다:

 

  • 이방 사람들 (1:18-32):

 

이방 사람들은 자신들이 범한 죄에 대하여 핑계하지 못함(변명할 수가 없습니다[(20절하) “…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하나님께서는 이방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알만하도록 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는 만물을 창조하셨기에 만물을 통해(자연계시) 이방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알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19-20절).  이방 사람들은 분명히 하나님을 알면서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않고 감사하지도 않았습니다(21절).  이방 사람들은 영원히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오히려 동물 형상의 우상을 섬겼습니다(21절).  이방 사람들은 동성애의 죄를 범했습니다(26-27절).  이방 사람들은 21가지의 죄를 범했음 [(29-31절)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이방사람들은 “이 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였습니다(32절).

 

  • 남을 판단하는 사람들 (2:1-16):

 

남을 판단하는 사람은 자기도 “같은 일”을 행하는 죄를 범하고 있습니다(1절).  남을 판단하는 사람이 “같은 일”을 행하는 예가 바로 로마서 2장 21-22절에 나와 있습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네가 네 자신은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도둑질하지 말라 선포하는 네가 도둑질하느냐 간음하지 말라 말하는 네가 간음하느냐 우상을 가증히 여기는 네가신전 물건을 도둑질하느냐.”  남을 판단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풍성한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을 멸시하는 죄를 범하고 있습니다(4절).  하나님께서는 남을 판단하는 죄를 범하고 있는 그 사람에게 하나님의 풍성한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을 베푸시사 그가 회개하고 돌이키길 원하여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러나 남을 판단하는 그 사람은 회개치 않고(자기 자신이 잘하고 있는 줄 착각하고 있기에) 하나님의 풍성한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을 멸시하고 있습니다(4절).  남을 판단하는 사람은 고집이 세서 회개하지 않는 죄를 범하고 있습니다(5절).  남을 판단하는 사람은 고집에 세서 하나님께서 회개할 기회를 주심에도 불구하고 회개치 않으므로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나는 진노의 날에 임할 진노를 쌓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의 최후의 심판의 날에 영원한 형벌에 처할 것입니다.

 

  • 유대인들 (2:17-3:8):

 

유대인들은 다른 사람들은 가르치면서 자가 자신을 가르치지 아니하는 죄를 범했습니다(21절).  유대인들은 “도둑질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고 하면서 자신들이 도둑질하고 간음을 하는 죄를 범했습니다(21-22절).  유대인들은 율법을 자랑하면서 그 율법을 범하는 죄를 범하므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죄를 범했습니다(23절).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이방인들 가운데서 모독을 받게 하는 죄를 범했습니다(24절).

 

  • 온 인류 (3:9-20):

 

로마서 3장 9절 말씀입니다: “그러면 어떠하냐 우리는 나으냐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여기서 사도 바울은 헬라인(이방인)이나 유대인이나 다 죄 아래 있다(다 같은 죄인이다)라고 말씀한 후(9절) 구약성경을 인용해서[“기록된 바”(10절)] 온 인류가 죄인이라는 것을 증언했습니다.  10-11절 말씀입니다: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3장 9절에서 “다 죄 아래에 있다”고 말씀했는데 19절에서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원어 헬라어에는 ‘율법 안에 있는 자들’이라고 말씀하고 있음)과“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즉, 온 인류가 죄 아래 있고(죄 안에 있고)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칭의의 주체:

 

칭의의 주체는 오직 성부 하나님이십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모든 죄인들을 의롭다 하실 수 있습니다.  로마서 3장 21절 말씀입니다: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여기서 “하나님의 한 의”란 하나님의 칭의를 가리킵니다(1:17).  우리가 율법을 지키므로 의롭다하심을 받을 수가 없음.  우리는 율법을 지켜 행함으로는 구원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의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그 하나님의 의로만이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는데 그것은 율법과 선지자들, 즉 구약 성경에 증거를 받은 것입니다.  구약 성경이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과 하나님의 의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칭의의 근거:

 

칭의의 근거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로마서 3장 21-22절 말씀입니다: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성부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그의 피로서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시사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자에게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속량(곧 죄사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려 하셨습니다’(21-26절).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대속은 칭의의 근거가 됩니다!   여기서 “대속”이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대신 십자가에 대속 죽으시므로 우리를 속죄해 주셨다는 의미입니다. 로마서 3장 24-25절 말씀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로마서 5장 9-10절 말씀입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칭의의 통로:

 

칭의의 통로는 믿음입니다.  로마서 3장 22절 말씀입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라는 말씀을 원어 헬라어를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말미암아”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문법: 소유격임 -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  즉, 이 믿음은 사람의 믿음(사람에게서 나온 믿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 즉 하나님께서 주신 믿음을 말씀합니다.  성경은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엡2:8).  결코 믿음은 사람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은혜의 선물로 주신 이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의롭다 하심(칭의)을 얻는 것입니다.  이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믿는 믿음입니다.  로마서 3장 25절 말씀입니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보배로운 피를 흘리신 이유는 우리를 대속하시기 위해서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은 우리를 속량하시기(죄를 사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즉,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칭의의 보편성:

 

로마서 3장 22절 말씀입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성부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이시기에 그분이 행하시는 모든 일이 공평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믿는 자”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의”(칭의)는 “차별”이 없습니다.

 

칭의의 목적:

 

로마서 3장 25-26절 말씀입니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께서는 “길이 참으”셨습니다(25절).  하나님은 약 4,000년을 참으신 것입니다.  범죄했으면 즉시 잡아서 처벌해야 하는데 하나님께서는 길이 참으셨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셨습니다(25절).  즉, 하나님께서는 전에 지은 죄를 본체만체 하셨습니다.  그 목적은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시고자 한 것입니다(26절).  언젠가면 바로 “이 때에”로서(26절) 그 때란 바로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피로서 화목제물로 세우셨을 때입니다(25절).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범죄한 것을 처벌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의로우시다는 것을 나타내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칭의의 첫 번째 목적입니다.  칭의의 두 번째 목적은 예수님을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시는 것입니다[(26하) “…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칭의의 예증:

 

칭의의 예증은 아브라함과 다윗입니다(롬4장).  아브라함이라 할지라도 그가 하나님께 죄를 범한 자로서 칭의를 받을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가 칭의를 받은 것은 자신의 “행위로써”가 결코 아니라(그랬으면 그는 자랑할 것이 있었겠지만)(롬4:2) 그게 아니라 그는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으로 칭의를 받았기에 자랑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면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다(3절)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참고: 창15:6).

 

칭의의 결과:

 

칭의의 결과는 하나님의 화평을 누리는 것(롬5:1)과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은 것(2절)과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는 것(2절)과 환난 중에 즐거워하는 것(3-4절)과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는 것(5절), 미래 구원을 받음(10절)과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함(11절)입니다.

 

칭의의 확증:

 

로마서 5장 8절 말씀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한 사람” 아담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을 때에(12절) “한 분 예수 그리스도”(17절)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8절).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우리의 형벌을 대신 받으시사 죽으심으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이 구체적이며 확실하게 나타내셨습니다.  이미 영원한 생명을 얻는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다(8절)는 확신과 칭의의 확신을 가지고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더 이상 우리 삶 속에는 사망이 왕 노릇 하는 것이 아니라(14절)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주님 안에서 영생 복락을 이 땅에서도 부분적으로 누리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천국에서 영생할 때에는 우리는 세세토록 왕 노릇할 것입니다(계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