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령한 율법, 육신에 속한 나
[로마서 7장 14-16절]
먼저 로마서 책을 다시금 복습합니다. 로마서 구조입니다: (1) 로마서 1-11장은 교리를 다룹니다. (a) 로마서 1장 1-17절은 로마서의 서론입니다. (b) 로마서 1장 18절에서 3장 20절은 죄를 다루고 있습니다. (c) 로마서 3장 21절에서 5장 26절은 칭의론을 다루고 있습니다. (d) 로마서 6장 1절에서 8장 30절은 성화론을 다루고 있습니다. (e) 로마서 8장 31-39절은 영화론을 다루고 있습니다. (f) 로마서 9장에서 11장까지는 예정론을 다루고 있습니다. (2) 로마서 12-16장은 실천을 다루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로마서 7장 14-16절은 로마서 구조에 있어서 “성화론”(칭의를 얻는 사람들은 거룩한 생활을 해야 함)의 한 부분 말씀입니다. 로마서 7장 14-16절 말씀입니다: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에 팔렸도다 내가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함이라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행하면 내가 이로써 율법이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 오늘은 로마서 7장 14절 말씀만 묵상하고자 합니다: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에 팔렸도다.”
로마서 7장 14절 상반절 말씀입니다: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 여기서 “율법”의 핵심은 십계명(출20:1-17)으로서 그것이 신령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손수 만드신 돌판으로서 그 글자는 하나님이 직접 판에 새겨 쓰신 것이기 때문입니다(32:16, 현대인의 성경). 이 십계명 외에 “율법”인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는 비록 하나님께서 직접 쓰신 것이 아니지만 모세가 성령님의 감화와 감동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것이기에(딤후3:16; 벧후1:21) 이 또한 신령한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3장 16절 말씀입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베드로후서 1장 21절 현대인의 성경 말씀입니다: “예언은 결코 사람의 뜻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성령님의 감동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에게 받아 말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7장 14절 하반절 말씀입니다: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에 팔렸도다.” 여기서 “나”는 사도 바울을 말합니다[로마서 7장 14-16절에 “나”라는 단어가 6번이나 나옴]. 여기서 바울이 “나”라고 말했을 때 그가 어떠한 때에 있었는지 학자들은 3가지로 말하고 있습니다: (1) “나”란 바울이 예수님을 믿지 전인 불신자였을 때를 말합니다. (2) “나”란 바울이 예수님을 믿은 지 얼마되지 않은 초신자였을 때를 말합니다. (3) “나”란 바울이 믿음이 장성(성숙)한 때를 말합니다. 이 3가지 학자들의 주장들 중 세 번째인 “나”란 바울이 믿음의 장성(성숙)한 때였다는 주장이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사도 바울이 로마서 편지를 썼을 때에는 그가 실라와 함께 복음을 전하다가 빌립보 감옥에 갇힌바 된(행16:25-26) 후인 고린도[“헬라”(20:2-3)]에 3달동안 있었을 때였기 때문입니다. 즉, 그가 실라와 함께 빌립보 감옥에 갇힌바 되었을 때 그는 실라와 함께 그 다음 날 처형을 당할 수 있었던 상황에서도 하나님께 기도하고 찬송을 드릴 정도로 믿음이 장성(성숙)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일 후에 바울은 고린도에 있었을 때 로마서 편지를 기록했기에 로마서 7장 14절 하반절에서 바울이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에 팔렸도다”라고 말했을 때 그는 불신자도 아니요 초신자도 아니요 믿음이 장성(성숙)한 때였습니다. 그러한 믿음이 장성(성숙)한 때에 사도 바울은 자기가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에 팔렸도다”라고 말한 것을 보면 그는 두 법인 “하나님의 법”(22절)과 “내 육체에는 또 다른 법”(23절, 현대인의 성경)이 자기 안에 존재하고 있어서 서로 싸우고 있었음을 우리는 알 수가 있습니다. 로마서 7장 21-23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현대인의 성경) “여기서 나는 하나의 원리를 발견했는데 그것은 선한 일을 하려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다는 사실입니다. 나의 내적 존재는 하나님의 법을 좋아하지만 내 육체에는 또 다른 법이 있습니다. 그것이 내 마음과 싸워서 나를 아직도 내 안에 있는 죄의 종으로 만들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지금 영적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 속사람은 신령한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여 그 법대로 살기를 원하고 있지만 우리 육체에는 또 다른 법이 있어 그 하나님의 법에 불순종하여 육신에 속한 사람처럼 육체의 욕심을 따라 육체의 일을 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 두 법이 우리 안에서 싸우고 있는 지금 우리는 성령님의 인도하심 따라 살아가므로 육체의 욕망과 싸워 이겨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엡6:17)으로 우리 육체에 있는 또 다른 법과 싸워 이겨 나아가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5장 16-15절 현대인의 성경 말씀입니다: “그래서 내가 하는 말입니다만 여러분은 성령님의 인도를 따라 사십시오. 그러면 육체의 욕망을 채우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육체의 욕망과 성령님이 바라시는 것은 정반대입니다. 그러므로 이 둘은 서로 대적하여 여러분이 하고 싶은 일을 못하게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성령님의 인도를 받으면 율법의 지배를 받지 않습니다. 육체의 행위는 명백하게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이것은 음행과 더러움과 방탕과 우상 숭배와 마술과 원수 맺는 것과 다툼과 시기와 화내는 것과 당파심과 분열과 이단과 질투와 술주정과 흥청대며 먹고 마시는 것과 그리고 이와 같은 것들입니다. 내가 전에도 여러분에게 경고했지만 다시 경고합니다. 이런 생활을 일삼는 사람들은 결코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님이 지배하는 생활에는 사랑과 기쁨과 평안과 인내와 친절과 선과 신실함과 온유와 절제의 열매가 맺힙니다. 이런 것을 막을 율법은 없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정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만일 우리가 성령님을 따라 산다면 그분의 가르침을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가 사도 바울처럼 이러한 신앙 고백을 할 수 있길 기원합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모든 일을 다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남은 것은 의의 면류관을 받는 일뿐입니다. 이것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신 주님이 재림하시는 날에 나에게 주실 것이며 나에게만 아니라 주님이 다시 오시기를 사모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주실 것입니다”(딤후 4:7-8, 현대인의 성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