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이 죄냐” (1)
[로마서 7장 7-13절]
지난 주 수요예배 때 우리는 로마서 7장 5-6절 말씀을 묵상했었습니다. 이 말씀은 어려운 말씀이지만 매우 중요한 말씀입니다. 로마서 7장 5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5절)라고 말씀했는데 여기서 “육신”이란 죄가 있는 육신을 말합니다. 즉, “육신에 있을 때에”란 예수님을 믿기 전에 죄의 종(죄인)으로서 모든 지체가 다 죄로 인해서 사망에 이르는 열매를 맺고 있었던 때를 말합니다. 여기서 “육신”(7:5)은 로마서 1장 3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다는 말씀에서의 “육신”과 반대입니다. 즉, 로마서 1장 3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육신”은 죄와는 아무 관계가 없는 육신으로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죄가 없으신 의인이심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7장 6절을 보면 “이제는”이란 단어로 시작하는데 그 단어는 삼증으로 강한 뜻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이제는”이란 단어의 원어 헬라어인 “νυνὶ”(nyni) 또한 강조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원어 헬라어를 보면 “이제는”이란 단어 앞에 “그러나”(δὲ)(However)란 단어가 있어서 5절 말씀인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와 대조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즉, 6절 말씀은 5절 말씀과 대조적인 말씀으로서 5절은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지만 6절에 와서는 “그러나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율법에 대하여 죽고 거기서 해방되었”기에 “우리는 율법의 의한 낡은 방법이 아니라 성령님의 새로운 방법으로 하나님을 섬기게 되었습니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6절, 현대인의 성경).
오늘은 우리가 로마서 7장 7-9절 말씀을 묵상하고 다음 주 수요 예배 때에는 로마서 7장 10-13절 말씀을 묵상하려고 합니다.
로마서 7장 7절 말씀입니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현대인의 성경) “그러면 율법이 죄입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율법이 없었다면 내가 죄를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만일 율법이 '탐내지 말아라.' 하고 말하지 않았다면 탐욕이 무엇인지도 몰랐을 것입니다”]. 여기서 “그런즉”(οὖν)이란 단어는 6절 하반절인 “율법 조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라는 말씀과 연결해주므로 ‘율법이 죄가 아닌가?’라는 생각을 들게 할 수 있겠지만 사도 바울은 “그러면 율법이 죄입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7절, 현대인의 성경)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3가지입니다:
- 율법은 거룩하시고 의로우시며 선하신 하나님께서 주셨기 때문에 율법은 결코 죄가 아닙니다.
그래서 거룩하시고 의로우시며 선하신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은 “다 거룩하고 의롭고 선합니다”(12절, 현대인의 성경).
- 율법은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구원해 내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40일 동안이나 식음을 전폐하고 성결을 노력한 모세를 통하여 주신 것이기 때문에 율법은 결코 죄가 아닙니다(참고: 출24장).
거룩하시고 의로우시며 선하신 하나님께서 다 거룩하고 의롭고 선한 율법을 애굽에서 구원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셨기에 그 율법은 결코 죄가 아닙니다.
- 율법은 죄를 알려주기에 결코 죄가 아닙니다(롬7:7).
로마서 3장 20절 말씀입니다: “…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현대인의 성경) “… 율법은 다마 우리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것뿐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로마서 7장 7절에서 “율법이 없었다면 내가 죄를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만일 율법이 ‘탐내지 말아라.’하고 말하지 않았다면 탐욕이 무엇인지도 몰랐을 것입니다”(현대인의 성경)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사도 바울이 “율법이 ‘탐내지 말아라’하고 말”했다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십계명 중 열 번째 계명을 가리킵니다. 출애굽기 20장 17절 말씀입니다: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현대인의 성경) “너희 이웃집을 탐내지 말아라. 너희 이웃의 아내나 종이나 소나 나귀나 너희 이웃이 소유한 그 어떤 것도 탐을 내서는 안 된다”](참고: 신 5:21). 사도 바울은 자기가 ‘육신에 있었을 때’(롬7:5), 즉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전에 “율법이 ‘탐내지 말아라’하고 말”씀한 것(7절, 현대인의 성경)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는 모세의 율법을 잘 알고 있었고 그러므로 십계명 중의 열 번째 계명도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빌3:6)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그러므로 그는 율법이 ‘탐내지 말라’하고 말했음을 알고 있었기에 탐욕(탐심)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롬7:7). 그러나 그가 몰랐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그 율법을 주신 목적이었습니다. 그 목적 중에 하나는 “율법은 다만 우리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것”(롬3:20, 현대인의 성경)인데 사울(사도 바울)은 자신이 죄인인 줄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율법을 지켜 행하므로 의롭다 함을 얻고자 하였습니다. 또한 사울(바울)은 “율법은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가정교사 구실을 하여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는 인정을 받도록” 한다(갈3:24, 현대인의 성경)는 율법의 목적도 몰랐었습니다.
로마서 7장 8-9절 말씀입니다: “그러나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내 속에서 온갖 탐심을 이루었나니 이는 율법이 없으면 죄가 죽은 것임이라 전에 율법을 깨닫지 못했을 때에는 내가 살았더니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현대인의 성경) “그러나 죄가 계명으로 기회를 틈타서 내 속에 온갖 탐심을 일으켜 놓았습니다. 그것은 율법이 없으면 죄는 죽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한때는 율법 없이 살았습니다. 그러나 계명을 알게 되자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율법이 ‘탐내지 말아라’하고 말씀하였기에 탐심(탐욕)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는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자기 속에서 “온갖 탐심”을 일으켜 놓았다고 말했습니다(8절, 현대인의 성경). 예를 들어 돈에 대한 탐심을 가진 사람이 돈에 욕심을 내어 온갖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많이 모아 갑부가 되었다 할지라도 만족하지 못하고 더욱더 탐욕에 눈이 멀어 온갖 탐심을 이룹니다. 사도 바울은 “전에”(9절) 즉, 그가 ‘육신에 있었을 때에는’(5절) “율법을 깨닫지 못했”습니다(9절). 즉, 그는 죄를 깨닫게 하는 “율법 없이 살았(었)습니다”(9절, 현대인의 성경). 즉, 그는 “율법은 다만 우리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것”(롬3:20, 현대인의 성경)을 깨닫지 못했기에 그는 자신이 죄인인 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랬기에 그는 “율법은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가정교사 구실을 하여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는 인정을 받도록” 한다(갈3:24, 현대인의 성경)는 것도 깨닫지 못했기에 율법을 지켜 행하므로 의롭다는 인정을 받고자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빌3:6). 즉, 사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전에(하나님께 칭의를 받기 전에)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그의 지체 중에 역사하여 그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습니다(롬7:5). 그랬던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난 후에는 이러한 고백을 했습니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었던 사람이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율법이 죄입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롬7:7, 현대인의 성경). 왜 율법이 결코 죄가 아닙니까? 첫째로, 율법은 거룩하시고 의로우시며 선하신 하나님께서 주셨기 때문에 율법은 결코 죄가 아닙니다. 둘째로, 율법은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구원해 내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40일 동안이나 식음을 전폐하고 성결을 노력한 모세를 통하여 주신 것이기 때문에 율법은 결코 죄가 아닙니다(참고: 출24장). 셋째로, 율법은 죄를 알려주기에 결코 죄가 아닙니다(롬7:7). 사도 바울은 율법으로 말미암아 자기가 죄인을 깊이 깨닫게 되어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딤전1:15)라고 고백했을 뿐만 아니라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입니다(고전15:10)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나서 율법을 통해 죄를 더욱더 많이 크게 깊께 깨달아 갔으므로 더욱더 풍성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고 누리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로마서 5장 20절에서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현대인의 성경) “율법이 들어와서 범죄가 늘어나게 되었으나 죄가 늘어난 곳에는 은혜도 더욱 풍성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내게 주신 그분의 은혜가 헛되지 않아 내가 다른 모든 사도들보다 더 많이 일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내가 한 것이 아니라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라고 말한 것입니다(고전15:10, 현대인의 성경). 우리도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로 주님을 섬기되 “율법에 의한 낡은 방법이 아니라 성령님의 새로운 방법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롬7:6, 현대인의 성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