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빼앗으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들을

우리가 은혜로 여기다가

점진적으로 우리 공로로 여기게 될 때

이미 우리의 마음은 교만해진 것입니다.

그 교만한 죄의 결과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선물들을 다 빼앗으십니다

(참고: 단 5:18-20).

 

 

 

다가올 궁핍함을 대비해야 하는데 …

 

 

전에 풍부함이 기억되지 않을 정도로

극심한 궁핍함이 앞으로 올 수도 있음을 예상해야 합니다(창 41:31).

그러므로 풍부할 때  다가올 심한 궁핍함을 대비하여 저장해 놓아야 합니다 (36절).

양심에 걸리는 교훈입니다.

 

 

 

다릅니다. 천지 차이입니다.

 

 

하나님의 계산법과 우리의 계산법이 다르고(삿 7:1-7),

하나님의 관점과 우리의 관점이 다르며(16:7),

하나님의 생각과 우리의 생각은 천지 차이입니다(사 55:8-9).

다시는 거짓된 예배를 드리면 안되는데 ... ㅠ

 

 

 

반복적으로 나의 마음을 완강하게 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것은

(출 7:13, 22; 8:15, 19, 32; 9:7, 12, 34; 10:1, 20, 27; 11:10)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일에

또 "다시 거짓을 행하"는 것이다(8:29).

 

 

 

닫힌 마음, 열린 입

 

 

미련한 자는 닫힌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녀는 자기 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사람입니다.

그러면서 미련한 자의 입은 열려 있어서

자기의 의사만 드러내기를 좋아합니다(잠 18:2).

 

 

 

달음질해야 합니다.

 

달리기 선수는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달리기 시합에 임합니다.

그 목적은 바로 이겨서 상을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녀는 골라인에 초점을 맞추고

그 골라인 방향으로 최선을 다해서 달립니다(고전 9:24-27).

 

지금 우리는 신앙의 경주를 달리고 있습니다.

당신은 어떠한 교인이기에 …?

 

 

어떻게 "여호와 앞에 악하며 큰 죄인"인 사람들이 살고 있는

"소돔과 고모라"를 "여호와의 동산" 같이 볼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어떻게 "여호와의 동산" 같다는 표현을

"애굽 땅"과 같다는 표현과 동등시 할 수 있단 말인가(창 13:10, 13).

과연 롯이란 인물은 어떠한 인물이기에 ...?

 

어떻게 주님이 멸하실 "소돔과 고모라"와 같은 이 죄악된 세상을

"여호와의 동산" 같이 볼수 있단 말인가.

과연 당신은 어떠한 교인이기에 ...?

 

 

 

당신은 주님에게 잊혀지지 않을 것입니다!

 

 

'너 지원아(제임스야),

너는 주님에게 결코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사 44:21).

 

자신의 이름을 넣고 자신 스스로에게 믿음으로 선포하며

하나님께 기도하면 어떨까요.

 

 

당신이 돕고자 하는 그 열심이 …

 

도움이 필요한 지체에게

당신이 돕고자 하는 그 준비된 열심이

퍽 많은 사람들을 분발하게 할 수 있습니다(고후 9:2).

당신이 반드시 구원을 받는 이유는?

 

 

재난 속에서도 반드시 구원을 받는 이유는 당신이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렘 39:15-18).

 

 

당신이 아니라 바로 나입니다.

 

 

모세와 아론은 물이 없으므로 다투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반역한(rebels) 너희여 들으라 ..."고 말했습니다(민 20:2-3, 10절).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아론에게

"... 이는 너희가 므리바 물에서 내 말을 거역한(rebelled) 까닭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24절).

나단 선지자가 다윗에게 한 성읍에 양과 소가 심히 많은 부한 사람이

자기에게 온 행인을 위하여 자기의 양과 소를 아껴 잡지 아니하고 아무것도 없고 자기가 사서 기르는 작은 암양 새끼 한 마리 밖에 없는 가난한 사람의 양 새끼를 빼앗아다가 자기에게 온 사람을 위하여 잡았습니다(삼하 12:1-4).

그 말을 들은 다윗은 그 부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노하여

나단에게 "여호와의 살아 계심을 두고 멩세하노니

이 일을 행한 그 사람은 마땅히 죽을 자라"고 말했습니다(5절).

그 때 나단은 다윗에게 "당신이 그 사람이라 ..."고 말했습니다(7절).

저 사람들이 반역한 자들이지 설마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한 자라고

전혀 생각하고 있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너가 내 말을 거역했다'(민 20:24),

'너가 그 사람이다'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삼 12:7).

 

 

대적자들을 일으키시는 하나님

 

 

우리가 하나님께 죄를 범하고도 회개하지 않을 때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일으켜

우리를 대적(반대?)하게 만드십니다(왕상 11:23-27).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대적자들(반대자들)로 말미암아

우리의 죄를 인정하고 돌이키는 계기로 삼아야 합니다.

더 나은 현실로 …

 

우리가 보기엔 우리가 처한 상황이 더 나빠진 것(worst) 같을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 상황도 사용하셔서

결국에는 우리로 하여금 더 나은(better) 현실로 인도하십니다

(참고: 단 1:15, 20; 2:46-49).

 

 

더 위험한 사람입니다.

 

 

자신의 미운 감정을 잘 숨기지 못하고 오히려 어떠한 모양으로도 표출하는 사람보다

(예: 가인, 에서, 요셉의 형들, 사울 왕) 미운 감정을 어떤 모양으로도 표출하지 않고

상대방을 속이는 사람이 더 무섭고 더 위험합니다(예: 압살롬).

 

 

 

더 이상 이렇게 가증한 일을 하는

목사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교인들이 세상에 나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하나님께 죄를 범하고 있는데

목사인 내가 그들이 교회 와서 예배 드릴 때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이키시라는 설교보다

오히려 거짓 위로와 격려의 설교로 말미암아 힘을 얻어

그들로 하여금 세상에 나가서 양심의 가책이 없이

더 담대하게 죄를 범하게 만들어서는 아니 됩니다

(참고: 렘 23장 13-14절). 

더 이상 이렇게 살아서는 아니될 텐데 ...

 

 

사람들은 나의 행위 밖에 볼 수가 없다. 

그래서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나는 충분히 행위로

사람들 보기게 옳바른 복음 전파자임을 증명해 보일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 보기에 모두 옳게 보일 수가 있을 것이다. 

심지어 나는 내 스스로 나 자신을 보기에도 모두 정직할 수가 있다(잠21:2). 

그러면서도 나는 마음으로는 내가 전하는 복음과는 정반대로 살아갈 수 있다. 

나는 교인들 앞에서는 거룩한 삶을 사는척 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하나님 앞에서만은 결코 거룩한 삶을 사는 척을 할 수가 없다. 

그 이유는 하나님은 내 마음을 감찰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나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마음을 감찰하시고 정직을 기뻐하시는 줄을 내가 아나이다 …”(대상29:17),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아시고 나를 보시며 내 마음이 주를 향하여 어떠함을 감찰하시오니 …”(렘12:3),

“… 의로우신 하나님이 사람의 마음과 양심을 감찰하시느니라”(시7:9). 

과연 나는 이 진리의 말씀들을 믿고 있는가? 

만일 내가 이 말씀들을 진정 믿고 있다면 이렇게 계속해서 살아도 되는 것일까? 

사람들 앞에서 내 행위보다 하나님 앞에서 내 마음을 가꾸어 나아가는데 헌신해야 하지 않는가? 

왜 제임스 너는 그리도 사람들을 의식하는 것인가? 

왜 너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있는 것인가? 

언행으로 하나님께 죄를 범하는 것보다 마음으로 하나님께 죄를 범하는 것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더 많고 크건만,

제임스 너는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더 이상 나는 사람들 앞에서 종교생활을 하고 싶지 않다. 

나는 하나님 앞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싶다. 

더 이상 나는 사람들을 기쁘게 하려고 내 양심까지 내팽켜 치고 싶지 않다. 

나는 내 양심과 마음을 보고 계시는 오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싶다. 

나는 하나님께 합당하게 행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싶다(골1:10). 

나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으로 인정을 받고 싶다(히11:5, 현대인의 성경). 

만일 내가 진정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면 사람들에게도 칭찬을 받을 것이다(롬14:18).  

더 이상 혼자서 짐을 질 수 없을 때

 

 

"나는 홀로 너희의 짐을 질 수 없도다",

"나 홀로 어찌 능히

너희의 괴로운 일과

너희의 힘겨운 일과

너희의 다투는 일을 담당할 수 있으랴"

(신 1:9, 12).

 

나는 더 이상 혼자서 담당할 수 없음을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인정할 수 밖에 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 때에 나는 나 자신의 무기력감(과 무능력함)을

깊게 많이 느낍니다.

그 때서야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짐을 함께 질만한 일꾼을 붙혀주십니다(13-15절).

 

 

 

 

더 이상 홀로 감당할 수 없는 마음의 무거운 짐으로 인해 ...

 

 

마음에 있어야 할 기쁨은 없고

오히려 마음의 괴로움이 있기에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지 못할 뿐만 아니라

"왜?"라는 질문 속에서

더 이상 홀로 감당할 수 없는 마음의 무거운 짐으로 인해

하나님께 '즉시 나를 죽여 더 이상 내가 고난 당함을 내가 보지 않게 해주세요'라고

 간구할 수 있습니다

(참고: 민 11:10-15).

 

덕을 세우기 위하여 은사를 사용해야 하는데 …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인 은사로

주님의 교회를 섬기면서

열매를 보게 될 때에

그것을 자신의 공로로 돌리므로

자기 의를 들어내는 계기가 되면

결국에 가서는 교회의 덕을 세우지 못하고 

자신의 교만을 세우게 될 뿐입니다

(참고: 고전 14:12).

 

 

도구일 뿐입니다!

 

도구는 도구일 뿐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도구입니다.

도구는 스스로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오직 주님만 자랑.

도구는 자기 뜻대로 행하지 않습니다.

오직 주님의 뜻만(참고: 사 10:15).

 

 

도리어 증거의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큰 어려움과 고통을 당할 때에

그 큰 어려운 일과 고통스러운 일이

도리어 우리에게는 증거의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눅 21:12-13).

도망가고 싶을 때

 

 

주어진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데

요나 선지자처럼 도망가고 싶을 때

요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은

심지어 자기의 사명을 묵묵히 감당하는

벌해를 통해서도 나를 사랑으로 책망하시사

결국에는 나로 하여금 사명을 감당케 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욘 1:3; 4:7).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하나님의 명령

 

 

하나님의 명령은

우리의 지성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될수도 있습니다.

 

아니, 비도 이슬도 없는데

어떻게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그릿 시냇가로 가서

"그 시냇물을 마시라"는 명령하실 수 있습니까.

분명히 "얼마 후에 그 시내가 마"를 건인데 말입니다

(왕상 17장 1-7절).

 

그래서 하나님의 명령은 우리 머리로 이해한 후 순종하기 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순종하는 것 같습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구원(건지심)

 

 

하나님의 구원(건지심)은

우리의 지성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될수도 있습니다.

 

아니, 어떻게 하나님께서는

그릿 시냇가에 숨어 있었던 엘리야를

땅에 비가 내리지 않으므로 그 시내가 말랐을 때

건져주심에 있어서

시돈에 속한 사르밧에 사는

좀 부자 과부를 만나게 하시지

한끼 음식 만들어서 자기 아들과 먹고

죽을려고 하는 가난한 과부에게 인도해 주셨는지

우리의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왕상 17장 8-12절).

 

그래서 하나님의 구원(건지심)은

우리의 기대 밖으로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예상해야 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의 구원자 하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뜻과 계획과 방법대로

우리를 구원해 주실 것을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일하심

 

 

하나님의 일하심은

우리의 지성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될수도 있습니다.

 

아니, 어떻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종 엘리야의 말을 듣고 순종하여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한 사르밧 과부에게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이 죽는 위기를 허락하실 수 있습니까

(왕상 17:13-24).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한 후에

더 큰 기적이 없다할지라도

적어도 아무 재앙이 없어야하지 않나요.

 

어쩌면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위기를 통해서

우리의 죄를 생각나게 하시길 원하실 수도 있습니다(18절).

그 정도로 우리는 우리의 삶 속에 위기가 없이는 우리의 죄를 생각하지 못하는가 봅니다.

 

어쩌면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위기를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께 부르짖기를 원하실 수도

있습니다(19-21절).

그 정도로 우리는 우리의 삶 속에 위기가 없이는

하나님께 부르짖지 않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위기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응답해 주신다는 것과

하나님의 종과 하나님의 말씀의 진실성을 깨닫게 하시려는 것 같습니다(22-24절).

 

 

돈을 버는 지식을 추구하기 보다 ...

 

 

돈을 버는 지식을 추구하기 보다

지혜를 얻는 지식을 추구하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그 이유는 돈이 아니라 지혜가 지혜있는 자를 살릴 것이기 때문입니다(전 7:12).

 

 

돌려 인도하시고 갇힌 바 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의 의도?

 

 

삶을 뒤돌아 볼 때 하나님께서는 저의 기도와 기대대로 저를 지름길로 인도해주지 않으시고

오히려 멀리 돌려 인도해주셨고(출 13:17-18),

또한 제가 아무리 동서남북을 보아도 문제 해결점이 안보이는

갇힌 바된 상황으로 인도해주시기도 하셨습니다(14:3).

왜 하나님께서는 그리 인도하셨을까 생각해 볼 때

어쩌면 하나님께서는 저로 하여금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길 원하시지 않았나 생각합니다(13-14절).

 

 

동과 서가 매우 가까워서 좋습니다. 하하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습니다(시 103:12).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나눔에 있어서는

동이 서에서 매우 가깝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는 형제, 자매들의 마음에는

동과 서는 매우 가깝습니다.

두 가지 확신을 가지고 말씀을 선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만 확신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해서는 아니됩니다(렘 23:29).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이 이루어진다는 확신도  가지고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해야 합니다.

 

 

 

두 부류의 사람들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영생을 얻기에 합당하지 않은 자로 자처하"는 사람들과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들 입니다(행13:46, 48).

 

 

 

두려운 상황에서도

 

 

두려운 상황에서도

하나님께 간구하며

임마누엘 믿음으로 하나님을 신뢰하므로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는 그리스도인은

구윈의 기쁨과 승리의 기쁨을 맛볼 것입니다

(대하 20:1-30).

 

두려울 때

 

두려울 때,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시 56:3).

 

두려울 때,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긍휼)을 구해야 합니다(1절).

우리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9절).

 

두려울 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해야 합니다(4, 10절).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질 줄 알고

믿음으로 하나님께 찬송해야 합니다(참고: 사도행전 16:25).

 

두려울 때,

우리는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시편 56:13).

우리는 하나님께 서원한 것을 이행할 것을 결심하면서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12절).

 

 

두려움 속에서 건져주시는 하나님

 

심히 두려워하여 하나님께 부르짖으면서

하나님의 종 모세에게 원망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모세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하여 싸우사

그들에게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모세는 그들에게 그들이 두려워하는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고 말했습니다(출 14:10-14).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두려움과 원망 속에서

부르짖는 소리조차 들으시고 우리를 건져주시되

우리가 두려워하는 대상조차 우리 앞에서 제거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두려워 할수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모르면

믿음이 없는 것이며,

믿음이 없으면

위태로운 상황에서 두려워 할수 밖에 없습니다

(눅 8:22-25).

 

 

두려워하던 일을 실제화하시는 하나님?

 

 

애굽 왕 나름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 땅에서 나갈까봐

두려움 가운데서 지혜롭게 행했지만(출 1:10)

하나님께서는

애굽 왕이 두려워하던 일을

모세를 통해 이루시사(3:9-10)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 땅에서 나오게 하셨습니다(12:31).

 

 

둔해진 마음?

 

 

주님께서 행하셨던 놀라운 일을

깨닫지 못하는 마음은 둔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둔해진 마음은

주님께서 행하신 또 다른 놀라운 일로 인해

심히 놀랬니다

(참고: 막 6:51-52).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왕상 18:21).

우리는 비겁한 침묵을 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둘 중에 하나를 택해야 합니다.

하나님입니까? 아니면 돈입니까?  더 이상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해서는 안됩니다.

 

 

둘 중에 하나입니다.

 

 

둘 중에 하나입니다.

우리의 마음에 “보물”이 “하나님”이든지 아니면 “재물”입니다.

그 말은 만일 우리의 보물이 하나님이면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을 주님으로 모시고 살고 있다는 것이요,

만일 재물이 우리의 보물이라면 우리의 마음은 재물을 주인으로 모시고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우리의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고 있다는 것은 우리 마음에 음식과 의복을 우리의 목숨과 몸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는 증거요, 음식과 의복을 목숨과 몸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는 것은 하나님 보다 재물을 더 중요히 여기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 보다 재물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는 말은 우리는 하나님을 경히 여기고 있다는 말입니다.  결국 지금 우리는 재물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미워하고 있다는 말입니다(마 6:21, 24, 25).

우리는 이래서는 아니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재물을 미워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중요하게 여기고 재물을 경히 여겨야 합니다. 우리의 보물을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의 마음에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목숨을 위하여 음식을 염려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몸을 위하여 의복을 염려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마음에는 우리가 보물이요 예수님의 마음에는 우리가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의 목숨과 몸을 십자가에서 주셨습니다.

“자기 아들까지도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해 내어주신 하나님이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다른 모든 것도 우리에게 아낌없이 주시지 않겠습니까?”(롬8:32, 현대인의 성경).

둘중에 하나입니다.

 

둘중에 하나입니다.  

무엇이든지 내 눈이 원하는 것을 내가 금하지 아니할 정도로(전 2:10)

안목의 정욕(요한일서 2:16)에 이끌려 보지 말아야 할 여자를 보던지

아니면

내 눈과 약속하여 처녀를 주목하지 않던지(욥기 31:1)

둘 중에 하나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눈을 통제해야지 우리 자신이 눈에 통제를 받으면 안됩니다.   

 

(유진 피터슨의 "물총새에 불이 붙듯"을 읽으면서)

 

 

 

 

 

 

듣고 배워서 지켜 행해야 ...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 경외하기를 배워서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해야 합니다

(신 31:9-13).

 

 

 

 

 

 

 

듣는 마음이 있는 지혜로운 그리스도인은 ...

 

듣는 마음이 있는 지혜로운 그리스도인은 ... (왕상 3:9)

 

바른 교훈을 듣지

자기 욕심을 따르면서

자기의 귀를 즐겁게하는 말을 듣지 않습니다(딤후4:3).

 

하나님의 종의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양심에 찔림이 있어서

그 하나님의 종을 미워하며 싫어하는 목사 킬러가 되지 않고(행7:54),

오히려 그 목사님의 권면대로 자신의 죄를 하나님께 회개합니다(2:37-38).

 

신사적인 사람으로서 고상한 심령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녀는 열심을 다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합니다.

그/녀는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습니다.

그/녀는 모든 열심으로, 모든 자원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습니다.

그/녀는 마치 시냇가에 심은 나무의 뿌리가 시냇가에 흐르는 물을 빨라 들이듯이

하나님의 말씀을 잘 받아들입니다.  그/녀는 말씀의 수용력이 있습니다.

또한 그/녀는 하나님의 종을 통하여 들은 말씀이

과연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과 부합하는지 날마다 성경을 통해서 직접 자신이 확인합니다.

그/녀는 말씀의 수용력과 더불어 균형있게 그 말씀을 잘 필터(filter) 하여 듣습니다(행 17:10-15).

 

 

듣지 않게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요 진리인데

사탄은 그 진리의 말씀을 거짓말로 여기고

우리로 하여금 그 진리의 말씀을

듣지 않게 하고 있습니다(참고: 애 5:9).

듣지 않으면 들으시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명령을 듣지 않으면

하나님도 우리의 기도 소리를 듣지 않으십니다

(신 1:26, 43, 45).

 

 

땅에 속한 그리스도인들?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이미 받았음에도 불구하고(엡 1:3)

이 땅에 속한 복들만을 사모하며 추구하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위의 것을 생각하는 자들이 아니요 땅의 것을 생각하는 자들이요(골 3:2)

하늘에 속한 자들이라기 보다 이 땅에 속한 자들입니다

(참고: 고전 15:48).

 

 

 

 

때가 악한데 ...

 

때가 악한데 어리석은 자가 되어

내 마음대로 방탕하게 술 취하며

세월을 허송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 ㅠ

(엡 5:16-18)

떠나고 돌아가야

 

우리는 거짓을 떠나고 진리로 돌아가야

참된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참고: 요 8:32).

 

 

 

떠나야 합니다.

 

교활한 말과 아첨하는 말로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미혹하는 자들에게서

떠나야 합니다(롬 16:17-18).

 

 

 

 

뜻을 막으시는 하나님?

 

주님께서는

사랑하사 택하시고 구원하실 뿐만 아니라

사명을 주시사 주님의 뜻을 이루시고자 하시는

주님의 종이 그를 죽이려하는 사람들로 인해

생사의 갈림길에 놓였을 때에

심지어 불신자도 사용하시사

그 죽이려는 사람들의 뜻을 막으시사

주님의 종을 구원해 내시기도 하십니다(행 27:42-43).

뜻을 정한 청년들에게

  

"뜻을 정하여" 자기 자신을 더럽히지 아니하려고 결심한 그리스도인 청년들에게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다니엘 1:8ff).

하나님께서 그들로 하여금 불신자에게 은혜와 긍휼을 얻게 하십니다(9절).

하나님께서 "지혜"와 "총명"을를 주시사 불신자들보다 "십 배"나 더 낫게하십니다( 17절).

 

그러나 그들에게는 위기도 충분히 올 수가 있습니다.  생명을 위협받는 위기일 수도 있습니다

(2:12-13).  그러나 이러한 위기는 그들에게 기회입니다.

 

  1. 바로하나님의 은총을 받을 수 있는 기회입니다.

 

바베론 왕 느브갓네살은 자기 나라의 "박수와 술객과 점쟁이와 갈대아 술사"들(2절)에게

자기가 꾼 꿈과 그 해석(6절)을 그에게 보이는 "시간"을 주지 않았습니다(8절). 

오히려 그는 그들이 "시간을 지연하려"는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8절).

그러나 그는 다니엘에게는 "시간을 주"었습니다(16절).

아니, 자기 나라 "모든 지혜자들"에게는(13절)는 시간을 주지 않았으면서

왜 이방 나라 사람인 히브리인 다니엘에게는 시간을 준 것일까요?

하나님께서 개입하셔서 하나님께서 다니엘로 하여금 

느브갓네살 왕에게 은총을 입게 하시지 않았다면 가능한 일일까요?

 

  1. 바로하나님께 기도 응답을 받아 하나님께 찬송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다니엘은 자기에게 시간이 주어졌을 때 자기 세 친구들에게 가서 기도 부탁을 하였습니다

(17-18절). 

그리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기도를 응답하시사 

"밤에 환상으로 다니엘에게 나타나 보이"셨습니다(19절).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지혜와 능력"을 주셨습니다(20, 21, 23절).

그 결과 다니엘은 느브갓네살 왕이 꾼 꿈과 해석을 그에게 다 말해 줄 수 있었습니다(25-45절).

그 결과 그는 하나님께 찬송할 수 있었습니다(19, 20, 23절).

 

  1. 바로하나님께 세움을 받고 높임을 받을 수 있는 기회입니다.

 

다니엘은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와 능력으로 느브갓네살의 꿈과 그 꿈의 해석을 그 왕에게 말해주었습니다.

그 때 그 말을 다 들은 느부갓네살 왕은 “엎드려 다니엘에게 절하”였습니다(46절).

그리고 그는 다니엘에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너희 하나님은 참으로 모든 신들의 신이시요 모든 왕의 주재시로다 네가 능히 이 은밀한 것을 나타내었으니 네 하나님은 또 은밀한 것을 나타내시는 이시로다”(47절).

그런 후 그는 다니엘을 “높여 귀한 선물을 많이 주며 그를 세워

바벨론 온 지방을 다스리게 하며 또 바벨론 모든 지혜자의 어른을 삼았으며” 

그의 요구대로 그의 세 친구들을 세워 바벨론 지방의 일을 다스리게 하였습니다(48-49절).

결국 하나님께서는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들로 하여금 느브갓네살 왕을 통하여 세우시고 높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뜻을 정한 그리스도인 청년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당면한 위기를 통해서도 은혜를 베풀어 주시사

 

결국에는 그들을 이 세상에서 높이십니다. 

 

 

뜻이 계셔서 만나게 하시는 것일텐데 …

 

 

다윗이 사울 왕에게 도망 다닐 때

"고통을 당하는 자와 빚진 자와

불만을 가진 자들" 한 400명이

다 그에게로 모여들었습니다

(삼상22:1-2, 현대인의 성경).

 

우리가 힘들고 어려울 때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접하게 하시고 만나게 하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이유가 뭘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