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에 익숙합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고난에 익숙하신데 (사 53:3)

나는 편안에 익숙합니다.

 

 

 

 

 

 

가까운 사랑하는 사람을 사용해서라도 우리를 꾀는 사탄?

 

 

사탄은 우리를 꾀되

우리의 형제(자매)나

우리의 자녀나

우리 품의 아내(남편)나

우리와 생명을 함께 하는 친구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신 13:1-5).

 

 

 

 

가까워 질수가 없습니다.

 

회개하지 않고 
죄사함 받지 못한 사람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가까워 질 수가 없습니다.
(참고: 엡 2:13)

가까이 가지 말았어야 했다.

 

장차 주님께서 멸망시킬 그곳을 
롯은 가까이 가지 말았어야 했다(창13:10, 12).
결국에는 그는 그곳(안)에서 살게 되었고(14:12)
또한 그곳 사람들을 친구로 삼게 되었다(19:7).
그리고 그는 그곳에서 권위있는 지위까지 얻었다 (1절).
그곳은 다름 아닌 악하고 큰 죄인들이 살고 있었던 소돔과 고모라다(13:13).

 

 

 

가난하게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술 취하는 것과

음식을 탐하는 것과

잠자기를 즐겨하는 것은 연관이 있습니다.

그 결과는 가난하게 되는 것입니다(잠 23:21).

 

 

 

가난해도 진실하게 살아야 …

 

가난해도 진실하게 사는 지혜로운 사람이

거짓되고 둔하여 경고를 받을 줄 모르는 미련한 사람보다 낫습니다

(잠 19:1; 전 4:13).

 

가담하지 말아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두 형제가 서로 다투고 있는데 지나친 관심을 갔다보면

왜 그 두 형제들이 싸우는지 궁금해 하다가 알고 싶어 간섭하게 될 수 있습니다.

그러다가 보면 그 두 형제들의 말을 듣다가

중립을 지키지 못하고 가담하여 한쪽으로 기울어져 한 형제와 같은 편이 되어서

다툼을 더 크게 만들 수 있습니다(참고: 잠26:17).

 

 

 

“가인 같이 하지 말라”

 

"가인 같이 하지 말라" (요일 3:12).

가인 같이 형제를 미워하지 말아야 합니다(15절).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입니다(15절).

가인 같이 형제를 죽이면 안됩니다(12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합니다(15절).

그가 동생을 죽인 이유는 "자기의 행위가 악하"기 때문입니다(12절).

 

아벨 같이 하라!

아벨 같이 죽임을 당해야 합니다.

아벨 같이 하는 것은 자신의 죽임을 통해서 상대방을 살리는 것입니다.

아벨 같이 하는 것은 예수님 같이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살리시려고(4:9)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우리도 예수님 같이 죽임을 당해야 합니다.

 

 

 

가인 같이 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자기 형제(자매)의 행위는 의로우므로

악한 자에게 속하여 자기 형제(자매)를 죽이면 안됩니다(요일 3:12).

자기 형제(자매)를 사랑하지 않고

미워하는 자는 살인하는 자입니다(15절).

 

 

가장/가식 하는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할텐데 ...

 

우리는 가장하는 사람,

가식적인 사람이 되어서는 아니 됩니다

(고후 11:13-15).

 

 

 

가정적으로 광야의 시련을 격게 하시는 하나님의 목적은 ...

 

 

  1. 우리 가족 식구들을 시험하사 우리의 마음이 어떠한지

     아실려고, 과연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를 알기 원하셔서(신 8:2),

 

  1. 우리 가족 식구들로 하여금 오직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알게 하시려고(3절)

 

  1. "마침내" 우리 가족 식구들에게 복을 주시려고(16절).

 

 

가족에게 미움을 받고 받을 수록?

 

 

하나님께서 형들에게 미움을 받고 더욱 미움을 받았던 요셉에게

인자를 더하셨던 것처럼(창 37:3-5, 8; 39:21)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사람들에게(특히 가족에게) 미움을 받으면 받을 수록

인자를 더 하시는 하나님이시라 생각합니다.

 

 

간교한 여자(남자)의 숨겨진 의도?

 

"간교한" 여자(음녀)는

자신의의도를숨기도

지혜없는 어리석은 남자를 맞이합니다(잠 7:10).

그녀의 숨겨인 의도는 "함정"을 놓아(23:27-28)

그로 하여금 결혼 생활에 충실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음녀의숨겨진참된의도는

많은결혼한남자들로하여금결혼할때에언약하였던것을

파기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박윤선).

 

간섭하지 마십시다.

 

 

 

길을 지나가다가 우리와 상관없는 싸움에 간섭하여

불필요한 어려움을 당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한 싸움에 참견하는 것은

지혜로운 행동이 아닐 뿐만 아니라

이웃 사랑도 아닙니다

(잠 26:17; 벧전 4:15).

간음 죄인 줄 알면서도

 

 

보지 말아야 할 장면을 보았습니다.

관심을 갖지 말아야 할 사람인데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러다가 결국엔 간음 죄인 줄 알면서도 죄를 범했습니다(삼하 11:2-4).

 

 

갇혔다고 생각할지라도

 

 

우리의 대적은 우리가 갇혔다고 생각할지라도(출14:3, 삼상 23:7)

하나님께서는 피할 길을 내사 우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십니다(고전10:13).

 

 

“갈대 지팡이”

 

 

겉으로 볼 때에

우리가 의지해도 될만하게 보이는 "갈대 지팡이"와 같은 것(혹은 사람)(겔29:6),

그래서 우리는 그 갈대 지팡이를 우리의 손으로 잡고 걷지만

결국에 가서는 그 지팡이가 부러져서

우리의 어깨를 찢고 또한 우리의 허리가 흔들리게 됩니다(7절).

 

그러므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께서는

우리가 주님보다 더 의지하던 그 "갈대 지팡이"를 지극히 미약하게 하시사

다시는 우리로 하여금 그 갈대 지팡이를 바라보며 의지하지 못하게 만드십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우리가 주님보다 그 "갈대 지팡이"를 의지하던 죄악을

기억되지 않게 하십니다(15-16절).

하나님의 은혜요 사랑이 아닐 수 없습니다.

감당 그래야 담당

 

 

"감당"할 강한 믿음이 있어야 "담당"을 할 수 있습니다(롬 15:1).

 

 

감사기도 드리자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내가 구할 것을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자(빌 4:6).

 

 

감사하는 마음으로 나눔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나누는 것이 남는 것입니다(막 8:6-8).

 

감사하는 마음으로 찬양을 시작할 때에 ...

 

이 큰 위기도 하나님께 속하였다는 사실과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실 것을 신뢰하므로
하나님의 영원하신 인자하심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찬양을 시작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역사하시사
우리의 대적들을 물리치실 것입니다
(역대하 20장 1-23절).

감사하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주님께 불쌍히 여김을 받아 병 치유를 받은 자는

주님께 나이와 엎드려 감사하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눅 17:11-19).

 

 

 

감사할 수 밖에 없습니다.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로서(딤전1:13)

"죄인 중에 내가 괴수"인데(15절)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셨으니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할 수 밖에 없습니다(12절).

 

 

감사할 조건을 찾아보십시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염려하지 말고
오히려 염려할 수도 있는 상황 속에서도
믿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감사할 조건을 찾아보십시다.
그리고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기도하십시다
(빌 4:6).

갑질하는 자들은

 

갑질하는 자들은 가난한 자들을 학대하고 있습니다(시 10:2, 현대인의 성경).

그들은 약하고(the weak)(2절) 무력하고(the helpless)(9, 12절),

가련하고(10절), 죄 없는 사람들(the innocent)(8절)에게 

고통과 슬픔을 줍니다(14절, 현대인의 성경).

그들의 입에는 저주와 거짓과 협박이 가득하여 

그 혀로 남을 해치고 범죄합니다(7절, 현대인의 성경).

그들은 마음 으슥한 곳에 숨어 있다가

죄 없는 행인들을 죽이며 몰래 해칠 자를 찾고 있습니다(8절, 현대인의 성경).

그들은 사자처럼 가만히 엎드려서 무력한 자를 잡으려고 기다리다가 

그를 그물로 덮쳐 끌고 갑니다(9절, 현대인의 성경).

 

그들은 자기들의 마음의 욕심을 자랑하며 탐욕을 부리는 자들입니다(3절).

그들은 아주 교만하고 거만한 자들입니다(4절, 현대인의 성경).

그래서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절대로 흔들리지 않을 것이며 

어떤 경우에도 어려움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6절, 현대인의 성경).

그들은 하나님을 찾지도 않으며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4절, 현대인의 성경).

그들은 하나님이 자기들을 잊어버리고 

그 얼굴을 가려 보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11절, 현대인의 성경).

그들은 하는 일마다 성공합니다.

그러기에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이 기다리고 있음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5절, 현대인의 성경).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들이 행하는 악한 일을 보셨습니다.

그들이 주는 고통과 슬픔을 주님께서는 아십니다(14절, 현대인의 성경).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그들을 심판하실 것입니다(18절).

 

그러나 주님께서는 주님을 의지하는 힘없는 자를 도와주시며(14절, 현대인의 성경) 또한 고통과 슬픔(14절) 가운데 있는 겸손한 자들(the afflicted)의 소원을 들으시고 그들을 격려하시며 그들이 부르짖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십니다(17절, 현대인의 성경).

값을 치루는 예배?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면서

내가 결심하여 치루는 값은 ...?

(삼하 24:24)

 

 

 

갚을 능력이 없는 자들에게 베풀어야

 

 

우리는 이웃에게 베풀 때에

우리에게 도로 갚을 능력이 있는 “부한 이웃”에게 베풀기 보다

“차라리” 갚을 능력이 없는 “가난한 자들”에게 베풀어야 합니다.

그 이유는 그리하면 그들이 갚을 것이 없으므로 우리에게 복이 될 것입니다.

그 복이란 의인들의 부활시에 우리가 갚음을 받는 것입니다

(눅 14:12-14; 참고: 마 25:40).

 

 

 

개보다 못한 목자들

 

개보다 못한 목자들은 각각 제 길로 가는 양 떼들에게 옳은 길을 가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이러한 목자들을 가리켜 짖지 못하는 "벙어리 개들"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사 56:10).

 

 

거룩하신 하나님은 공의로우십니다.

 

 

나발을 치신 하나님께서(삼상 25:38)

사울도 치실 것을 확신했던 다윗(26:10) ...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므로(삼하 11:27)

우리아의 아내(밧세바)가 자신에게 낳은 아이를

하나님께서 치시사(12:15) 결국에는 그 아이가 죽습니다(18절).

결국 다윗은 나발과 사울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이도 치신 것을 경험하였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은 공의로우십니다.

 

 

거리낌 없이 하나님의 명령에 경솔히

불순종하는 우리 그리스도인들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므로(신 1:32)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했으면서도(26절)

진정한 회개가 없이 경솔히 하나님께서 명령하신대로 행하겠다는 것은 (41절)

결국에 가서는 또 다시 하나님의 명령을 거리낌 없이 거역하는(43절)

죄를 범하는 결과를 낳습니다.

 

 

거부하고 거절합니다.

 

미련하고 교만한 자는

지혜로운 자들의 충고 듣기를 거부(refuses)하고 거절(rejects)합니다(대하 10:1-15).

거스르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계시를 거스르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의 부르심을 거스르지 말아야 합니다(행 26:19).

 

 

 

 

거짓 목사들은 나쁜 열매를 맺습니다.

 

 

"못된 나무"와 같은 거짓 목사들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한다 할지라도

불법을 행하므로 "나쁜 열매"를 맺습니다

(참고: 마 7:17, 22, 23).

 

 

 

 

 

 

 

 

 

 

 

거짓 복음을 좋게 여기면 아니 됩니다.

 

 

지금 우리도 회개치 않은 우리의 죄들로 인하여

평강이 없을 때인데

우리는 “평강하다 평강하다”라고 말하고 있는

거짓 복음을 좋게 여기고 있습니다. 

분명히 그리스도인 우리 자신들도 우리가 지금 하나님께 죄를 범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어떻게 이러한 평강이 없는 때에 “평강하다 평강하다”라는 메시지를 듣고

마음에 평강을 누릴 수 있겠습니까? 

먼저 우리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이켜야

하나님께 죄사함을 받아 평강을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어찌하여 우리는 회개와 돌이킴이 없는 평강을 누리고자 하는 것입니까? 

어찌하여 우리는 죄사함도 없이 죄에서 자유를 누리고자 하는 것입니까? 

왠지 우리 생각에는 더 이상 성경적인 “죄”개념이 없어진 것 같습니다. 

우리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징벌이 더디닌까 하나님께 죄를 범하는 것을 담대히 하고 있습니다. 

왜 우리가 이 지경까지 온 것입니까? 

그 원인은 우리 목회자들이 거짓 복음

또는 다른 복음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설교하고 또한 가르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 많은 목회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모르면서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가는 길과 하나님의 계명을 성도들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 목회자들은 “지식과 명철”로 하나님의 백성을 양육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렘3:15). 

그 결과 지금 교회 성도들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3:2)란 진리보다

‘복 받으세요’, ‘긍정적으로 사세요.  그러면 이 땅에서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라는

거짓을 더 좋게 여기고 있습니다. 

이러한 거짓 복음을 좋게 여기면 아니되는데 말입니다 (렘 5:31).

 

 

 

 

거짓 선지자, 거짓 목사?

 

 

 

예레미야 선지자 시대 때

하나님의 말씀을 도둑질한 거짓 선지자들처럼(렘 23:30)

지금 이 시대에도

설교를 표절하는 거짓 목사들이 있습니다.

 

 

“거짓된 부자”

 

"거짓된 부자"는

"두 길로 속이는 부자"입니다(잠28:6, 현대인의 성경).

겉으로는 선한 길을 가는 체 하지만

실제로는 악한 길로 행하고 있는 사람입니다(박윤선).

 

한 마디로,

거짓된 부자는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와

보지 않은 뒤에서의 불일치된 행함으로 재물을 모으고 있습니다.

 

 

 

거짓말이 아닌가요?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면서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말"이 아닌가요? (요일 4:20)

 

 

“거짓말하는 영”의 꾀임을 받은 사람도 …

 

 

"거짓말하는 영"의 꾀임을 받은 사람도(대하 18:21)

자기에 대한 하나님의 (재앙의) 말씀이 "진실한 것"인지를 압니다(15절, 참고: 18-22절, 29절).

그러면서도 그는 그 진실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이유는

그 말씀이 자기에 대하여 "좋은 일"이 아나리 "나쁜 일"이기 때문입니다(7, 17절).

 

 

 

거짓을 즐겨하는 자

 

 

 

거짓을 즐겨 하는 자는

입으로는 축복이요 속으로는 저주합니다

(시 62:4).

 

 

 

거치는 자가 되면 안됩니다.

 

 

 

우리는 우리의 전도 대상자로 하여금 구원 받게 하기 위해서 거치는 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거치는 자는 ...
덕을 세우지 않습니다.
전도 대상자의 유익을 구하지 않고 자기 유익을 구합니다.
양심 것 행동하지 않습니다
(고전 10:23-33).

겉으로는, 그러나 안에는 …

 

겉으로는 깨끗하고, 아름답고, 옳게 보이는데

안으로는 탐욕과 방탕과 외식과 불법과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니 ...

먼저 안을 깨끗이 해야!

(마 23:25-28)

 

 

 

게으른 자

 

게으른 자는 손을 게으르게 놀리지만(잠 10:4) 자기의 머리는 부지런히 돌립니다(15:19).

 

 

 

게으른 자

 

 

(1) 게으른 자는 마음으로만 재물을 원합니다(잠 13:4).

(2) 게으른 자는 불의의 이를 탐합니다(12:12).

(3) 게으른 자는 불의의 방법을 다 동원해서라도 남은 것을 약탈합니다(12절).

(4) 게으른 자는 아무 가치도 없고 헛된 방탕한 것을 좇습니다(13:11).

(5) 게으른 자는 큰 낭비자(a great waster)입니다(18:9).

 

그 결과 게으른 자는 가난하게 됩니다(10:4).

 

 

게으른 자는 지혜 없는 자입니다.

지혜 없는 자는 판단력이 부족한 자입니다.

 

게으른 자는 지혜 없는 자입니다(잠 24:30).

지혜 없는 자는 판단력이 부족한 자입니다.

게으른 자는 판단력이 부족한 자입니다.

게으른 자가 부족한 판단력은 우선순위입니다.

게으른 자는 무엇을 먼저해야 하고

무엇을 나중에 해야 하는지

그 판단력이 부족합니다.



예를 들어,

지혜가 없는 게으른 자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지 않고(마 6:33)

먼저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합니다(25절).

지혜가 없는 게으른 자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31-33절)을 믿지 못하기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우선순위대로 살고 있지 않습니다.

 

 

 

 

 

 

 

 

게으름, 미련함, 교만함

 

 

게으름과 미련함,

게으름과 교만함은

연관이 있는 것 같습니다.

 

게으른 자는 자기 자신을 분별력 있게 대답하는 7명보다

더 지혜롭게 여긴다는 것은

그/녀가 교만할 뿐만 아니라

미련해서 분별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잠 26:16, 현대인의 성경).

 

 

 

게하시 같은 목사?  엘리사 같은 목사?

 

 

"엘리사" 같은 목사가 되야 할텐데 ...

 

아무리 교인이 "예물"을 받으라고 강권해도

거절을 할 줄 알아야 할텐데.

지금은 그런 것을 받을 때가

아닌 줄을 알아야 할텐데.

(왕하 5:15-16, 26).

 

 

 

 

 

"게하시" 같은 목사가 되어서는 아니 됩니다.

 

무엇이든지 교인들에게서 받으려고

그들을 쫓아다녀서는 아니 됩니다(왕하 5:20).

거짓말까지 해가면서 교인들에게

돈을 받아서는 아니 됩니다(22절).

받은 돈을 아무도 모르게

감추고 숨기려고 해서도 아니 됩니다(24-25절).

 

 

 

 

 

 

결국에는 부끄러움을 당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항상 하나님을 떠나 물러가는 교인들은

지혜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스스로 지혜롭게 여깁니다.

그들은 정직을 말하지 않으며

거짓을 고집하고

자신들의 악을 뉘우쳐서

"내가 행한 것이 무엇인고" 말하지도 않습니다.

그들은 거짓된 길로 행하므로

결국에는 부끄러움을 당할 것입니다

(렘 8:5-9).

 

 

 

결국에는 회복하시는 하나님

 

 

비록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거룩한 이름을 위하여

우리의 더러움과 범죄한 대로 행하사 우리에게 자신의 얼굴을 가리우시지만

결국에는 우리를 회복하시사 우리에게 사랑을 베푸시므로

우리가 평안히 지내고 두려움이 없을 때에 우리로 하여금 부끄러움을 품고

하나님에게 범한 죄를 뉘우치게 하십니다(겔 39:24-26).

 

 

결국엔 빈궁이 임합니다.

 

탐욕의 눈을 가진 자는 속히 부하고자
재물을 얻기에 급하여 굽은 길로 행합니다.
그 결과는 형벌을 면하지 못하여 넘어지고
결국에는 빈궁이 임합니다(잠 28:18, 20, 22).

 

 

결코 좋게 여기지 말아야 하는데

 

 

씻어 버리지 못한 마음의 악과

오래 머물고 있는 우리의 악한 생각은

결코 마땅히 좋게 여겨야 할 것을 좋게 여기지 못하고

결코 좋게 여기지 말아야 할 것을 좋게 여기는

혼동 속에서 하나님께 범죄하게 만듭니다. 

(참고: 렘 4-6장, 5:31)

결코 하나님은 시간을 허비하지 않으십니다.

 

 

결코 하나님은 시간을 허비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보기엔

요셉이 17살 때(창37:2)

형들에게 미움을 받아 상인에게 팔려(25-28절)

애굽 사람 보디발의 노예로 살다가(39:1)

감옥에서도(20-23절) 2년 동안있다가(41:1)

그의 나이 30살 때(46절) 애굽의 총리가 될 때까지

약 13년의 그의 인생이 허비된 것 같아 보이지만

하나님께서는 그의 시간을 결코 허비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구덩이"에 있었던 요셉을(37:20, 22)

애굽 사람 보디발의 집의 "가정 총무"로 세우시고(39:4),

우리가 보기엔 억욱하게 누명을 쓰고 감옥에 2년 동안 갇혀 있었던 시간이

너무나 허비한 시간 같아 보일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감옥에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셔서 그 제반 사무를 요셉이 처리하였을 뿐만 아니라(39:21-22)

요셉으로 하여금 애굽 왕 바로의 술 맡은 관원장을 만나게 하시사(40:1)

결국에는 만 2년 후 그 술 맡은 관원장으로 하여금 요셉을 꿈꾸었던 바로 왕에게 소개하게 하시므로(41:9-13)

결국에는 요셉으로 하여금 바로 왕의 꿈을 해석케 하시므로

그로 하여금 애굽의 총리가 되게 하셨습니다(41절).

 

이렇게 하나님께서 요셉의 13년 인생(17-30살)을 허비하지 않으시고

그를 높이고 높이시사

애굽의 총리까지 되게 하신 이유는

그로 하여금 야곱과 그의 자녀들 및 후손들의 생명을 구원(보전)하시사

이 세상에 두시려고 하신 것입니다(45:5, 7).

결코 허비하는 것이 아닙니다.

 

 

한 여인이 예수님의 장례를 미리 준비하고자

값진 향유를 예수님의 몸에 부은 것인데(막 14:8)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 값진 향유를 "허비"한다고 생각했습니다(4절).

 

예수님의 재림을 미리 준비하고자

주님께 드려지는 것들은 값진 것이지

결코 허비하는 것이 아닙니다.

 

 

 

결혼한 남자들이여, (외동) 아들을 둔 어머니들이여!

 

 

하나님께서는

결혼한 남자에게

"부모를 떠나"라고 말씀하시는데(창 2:24)

만일 부모(엄마)가 자기의 외동 아들을

떠나 "보내기를 거절하고 억지로 잡아두면"(출 9:2) ...?

 

 

 

겸손한 자에게는 ...

 

 

겸손한 자에게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쁨이 더할 것입니다(사 29:19).

 

"겸하여"

 

 

우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면 안됩니다(마 6:24).

 

우리는 주님의 잔과 식탁을 귀신의 잔과 식탁과

겸하여 참여하면 안됩니다(고전 10:21).

 

참고:

주님의 잔과 식탁이란

신자가 그리스도의 피와 몸에 참여하는 것을 가리키는 반면에(16절)

귀신의 잔과 식탁이란

불신자가 우상에게 제사하는 것을 가리킵니다(19-20절).

 

 

 

 

경건한 자는 ...

 

 

 

경건한 자는
죄가 없는 사람이 아니라
지은 죄를 숨기지 않고
하나님께 자복하므로
죄사함 받고
가려진바 되었으며
또한 정죄를 당하지 아니한 자입니다
(시 32:1-6).

 

 

경계해야 할 위험한 패턴

 

 

우리는 이러한 패턴을 경계해야 합니다:

범죄  à  하나님의 징계 à  역경/고난/고통(조롱/비방) à  낙망  à  불신 (시 42편)

 

 

 

곁길로 가게 하고 있는 목사들

 

 

지금 우리 목사들은 양 떼인 성도들을 곁길로 가게 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성도들은 쉴 곳을 잃어 이리저리 방황하고 있습니다(렘 50:6).

 

 

계속해서 변화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변질되어 가고 있습니까?

 

 

구약에 나오는

사울 왕은 겸손했다가 교만한 자로

변질된 사람인 반면에

(삼상 15장, 특히 11-12, 17, 22)

 

신약에 나오는

사도 바울(사울)은 교만했다가 겸손한 자로

변화된 사람이었습니다

(고전 15:8-10; 딤전 1:12-15)

 

지금 나는 (계속해서) 변화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변질되어 가고 있는지 ...?

고난 넘침, 위로 넘침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쳐나듯이

(롬5:20),

고난이 넘치는 곳에

하나님의 위로도 넘쳐 납니다

(고후1:5).

 

 

 

고난 자체가 위로입니다.

 

 

우리는 고난 당한다는 그 자체로도 위로를 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의 죄의 결과로 당하는 고난이면 우리에게 유익이요(시 119:71),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교회를 위한 고난이면 하나님의 은혜이기 때문입니다(빌 1:29).

 

 

 

고난 중에 있을 때

 

 

고난 중에 있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잊지 말고

그 말씀만을 찾으며

그 말씀만을 생각하면서

그 말씀을 즐거워해야 합니다.

그 말씀이 우리를 살게 할 것입니다

(시 119:92-95).

고난 중에 있을 때에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생각해야 합니다(시 119:95).

그 이유는 주님의 말씀이 "나를 살게 하"시기 때문입니다(93절).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찾아야 합니다(94절).

그 이유는 우리는 주님의 구원(건지심)을 바라고 있기 때문입니다(94절).

 

진실한 신자는 그 소망을 하나님의 말씀에 둡니다. 

그러므로 그는 그 말씀을 잊지 않고 찾습니다(박윤선).

 

고난 중에 소망은 주님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난 중에서 더욱더 주님의 말씀을 찾고 생각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주님의 말씀으로 고난 중에 있는 우리를 견고케 하실 것입니다.

주님께서 주님의 말씀대로 우리를 구원해(건져) 주실 것입니다.

 

 

고난으로 요란케 하시는 주님?

 

어쩌면 주님께서
고난으로 요란케 하시사 
우리로 하여금 
평안하지 못하게 하시고 
또한 서로 상한바 되게 하시는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과
말씀을 가르치시는 성경 교사와 
하나님의 계명이 없이 산 죄를 
회개하길 원하시는지도 ...
(대하 15:3-6)

고난은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게 만드는 유혹이 될 수도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더 가까이하고,

그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하나님께 간구하며,

그 말씀을 지키므로 내 소유로 만들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시 119 : 49-56).

 

 

 

고난을 견디게 하는 위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사랑하는 형제, 자매들을 위로케 하시는 목적은

그들의 고난을 없애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이 위로가 그들 속에 역사하여

그들로 하여금 고난을 견디게 하기 위해서입니다(고후 1:6).

 

 

고난을 마다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예수님과 그분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고난 받는 것을 마다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므로 우리가 순종함을 배우기 때문이며(히브리서 5:8)

또한 “지금 우리가 받는 고난은 앞으로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전혀 비교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로마서 8:18, 현대인의 성경).

고난을 통하여, 순종함을 통하여

 

 

고난을 통하여 순종함을 배우고 (히 5:8)

순종함을 통하여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을 배웁니다 (호 1장).

 

 

 

고난을 통해서라도 배우길 원합니다.

 

 

우리는 "이 고난의 잔을 내게서 거두어 주십시오"라고 간구하기보다(마26:39, 현대인의 성경)

"이 고난의 잔"을 통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처럼

"순종함을 배워서"(히 5:8)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십시오"(마26:39, 현대인의 성경)라고 간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고난이 없어지는게 아니라

고난을 통해 순종함을 배우는 것입니다.

 

 

 

고난의 길, 은혜의 길

 

 

예수님의 길, 고난의 길은 은혜의 길입니다(빌 1:29).

 

고난의 유익은

 

 

고난의 유익은

그 고난을 통하여

내가 하나님 보시기에 그릇행하였다는 것을 깨닫는 것과

하나님의 법을 배우게 된 것과

이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게 된 것입니다

(시 119:67, 71).

 

이러한 깨달음(나의 죄)과

배움(하나님의 말씀)과 지킴(말씀 순종)이

없는 고난은 무익합니다.

 

 

고난의 풀무 불을 지나가게 하시는 대장장이가 되시는 주님

 

대장장이가 되시는 주님은

우리로 하여금 고난의 풀무 불을 지나가게 하십니다(사48:10).

그 목적은

주님은 우리의 마음을 연단하셔서(잠17:3)

우리 안에 있는 모든 불순물을 제거하시고

또한 우리를 순금같이 되어 나오게 하시므로(욥 23:10)

주님이 쓰시기에

쓸 만하고(잠25:4하)

귀히 쓰는 그릇(딤후2:21)이 되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고난이란 기회?

 

 

우리의 삶 속에 많은 고난은

오히려 주님을 본받는 기회가 될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는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그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살전 1:6).

 

 

 

 

 

 

고된 노동으로 인한 고통의 소리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부르짖을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우리와 우리에게 세우신 하나님의 언약을 기억하사 우리를 돌보십니다

(출 2:23-25).

 

 

 

고쳐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죄악된 탐심의 길로 걸어가는 것을 보고 계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고쳐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다시 위로를 얻게 하실 것입니다(사 57:17-18).

 

고통 보다 죄

 

고통 가운데 있는 것 보다

죄 가운데 있는 것을 훨씬 더 두려워해야 합니다(고전 15:17).

 

 

고통 중에 고통은

 

고통 중에 고통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버림받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께 버림을 받으셨습니다.

"제구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마 27:46)

 

 

 

고통 중에서 하나님께 던지는 두 질문

 

우리가 개인의 고통과 하나님의 약속사이에 긴장 상태 가운데 있을 때

두 가지 질문을 하나님께 던질 수 있습니다:

 

  1. 하나님, 언제까지 저로 하여금 이 고통을 겪게 하실 것입니까?
  2. 하나님, 언제 저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을 성취하실 것입니까?

(시편 13편)

 

(Mark D. Futato 교수님의 "The Book of Psalms" 주석을 읽으면서)

고통당하는 사랑하는 이의 모습을 보면 ...

 

 

 

고통당하는 사랑하는 이의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아프고 눈물이 나오지만

그 아픈 마음으로 아빠 아버지 하나님께 나아가

간절히 눈물을 흘리며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주권과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이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시다는 것을 인정케 하시고(롬12:2)

또한 하나님은 이 모든 고통스러운 상황을 통해서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줄 믿게 하시사(8:28)

결국에는 '하나님은 하나님이시다'라고 고백케 하십니다(시43:4).

 

 

 

고통을 주는 위로자는

 

 

고통을 주는 위로자는 ... (욥 16:2)

 

나에게 헛된 말을 끝없이 합니다(3절).

내 입장에서 말을하지 못합니다(4절).

말로 나를 괴롭힙니다(19:2).

나를 향하여 자만합니다(5절).

나보다 낫다고 생각합니다(5절, 현대인의 성경).

 

 

 

고통을 통해

 

 

예수님의 제자들인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본받아

고난을 통해

순종함을 배우는 것 같습니다(히 5:8).

 

 

 

 

고통이 그치면?

 

 

우리의 죄의 결과로 고통을 당할 때는
하나님을 간절히 찾다가 고통이 그치면
우리는 다시 죄를 범하여 마음을 완악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또 다시 불순종합니다(출 9:34).

 

 

 

 

고통이란 말씀을 내 소유로 만들 수 있는 기회입니다.

 

 

극심한 고통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지 않고

오히려 그 말씀을 더욱더 잘 지키면 그 말씀이 내 소유가 될 것입니다(시 119:51, 55-56).

골라서 들으려고 하는 영적 편식을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사 선택한 우리들에게 말씀하실 때에

우리는 그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가 듣기에

"좋든지 좋지 않든지를"(렘42:6) 구분하여

선택에서 들으려는 마음 자세를 버려야 합니다(대하18:5, 7, 11, 12, 17).

선포되는 영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골라서 들으려고 하는 영적 편식은 우리의 영혼을 건강하게 만들지 못합니다.

 

 

공동체적인 책임이 있습니다.

 

교회란 공동체 안에서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주님의 몸된 교회의 한 지체로서 공동체적인 책임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우리 자신만을 위하여 믿음이 성장해야 할뿐만 아니라

공동체 전체를 위해서도 믿음이 성장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우리 자신의 영혼을 위해서 죄를 범하지 말아야 하지만

공동체 전체를 위해서도 죄를 범하지 않아야 합니다.

 

특히 우리는 탐심을 죄를 물리쳐야 합니다.

우리는 탐심을 매우 경계해야 합니다(전7:7).

그 이유는 탐심은 탈취하게 만듭니다.

우리 안에 아간처럼 탐심이 있으면

우리는 온전히 하나님께 받쳐져야 할 물건을 도둑질하기까지 합니다.

그 결과 아간이란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이스라엘 전체가 고통을 당한 것처럼(수6:18)

나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온 교회가 괴로움을 당할 수 있습니다(7:25, 고전12:26).

과거를 그리워하는 그리스도인?

 

 

과거에 노예 생활을 했었던 애굽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말한 엘리압의 아들 다단과 아비람처럼(민 15:12-13)

과거에 예수님을 믿기 전에 죄의 노예 생활을 하던 이 죄악된 세상을 진정한 약속의 땅인

천국으로 생각하며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많은 듯 ... ㅠ

 

 

과거와 현재

 

 

과거에 우리는 법 아래 있었습니다(롬 6:15).
본래 우리는 죄의 종이었습니다(17절).
전에 우리가 우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내주어 불법에 이르렀습니다(19절).
그 때에 우리는 부끄러운 열매를 얻었습니다(21절).
이렇게 우리가 죄의 종이 되었을 때에는 의에 대하여 자유로웠습니다(20절).
그러므로 우리는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렀습니다(16, 21절).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23절).

현재 우리는 은혜 아래 있습니다(15절).
지금 우리는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렀습니다(16절).
우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습니다

(17-18절).
이제는 우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내주어 거룩함에 이르고 있습니다(19절).
이제는 우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입니다(22절).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입니다(23절).

(어제 수요기도회 때 원로 목사님의 설교를 다시금 묵상하면서)

과대평가 받는 것을 조심!

 

 

사람들이 나에 대하여 보고 들은 것 이상으로

나를 지나치게 생각(평가)할 것 같아서 자랑은 그만 둬야하는 거구나

(고후 12:6).

 

과연 나는 ...?

 

 

과연 나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지는 것을

체험하고 있는가? (고후 12:9)

 

과연 나는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고 있는가? (9절)

 

과연 나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한 줄 알고 있는가? (10절)

 

과연 나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내 약한 것들도 기뻐하고 있는가? (10절)

 

 

관계가 끊어질까봐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더 이상 사랑의 관계에서 끊어질까봐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롬 8:35, 39).

괴로움을 당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버리고

돈을 우상화하여 따르는 지도자로 말미암아

교회가 괴로움을 당하고 있습니다(왕상 18:18).

 

 

교만은

 

 

교만은 우리를 장님으로 만듭니다.

교만은 우리 자신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뒤돌아 보며

자아성찰하게 하지 않고

다른 형제, 자매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끄집어 내어

은근히 자기 자신과 비교하여

자기 자신이 그 형제, 자매보다 더 훌륭한 그리스도인임을

자랑합니다(참고: 롬 2:19-20).

 

교만한 마음으로

 

 

교만한 마음으로(사 16:6) ...

 

피곤하도록 봉사하는 것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12절).

성전에 나아가서 기도할지라도 소용이 없습니다(12절).

자랑하는 것 헛됩니다(6절).

 

주님께서는 교만한 마음에서 나오는 즐거움과 기쁨의 소리를 그치게 하십니다(10절). 

그리고 주님은 그 즐거움과 기쁨을 돌이켜 슬픔과 근심(7절)과 눈물과 울음으로(9절) 바꾸십니다.

교만한 자에게는 ...

 

 

교만한 자에게는 참는 마음이 없습니다. 
그/녀에게는 급한 마음과 분노가 있습니다. 
그러나 겸손한 자에게는 참는 마음이 있습니다. 
(전 7:8-9)

 

 

교인 숫자 세는 것?

 

 

교인 숫자 세는 것을 기뻐하지 말아야 ...?

(삼하 24:1-3)

 

 

 

교인들이 조롱할까봐 두려워하는 목사님?

 

 

만일 교회 지도자가

교인들이 자기를 조롱할까봐 두려워서

하나님의 목소리에 불순종 한다면

참 지도자라고 말할 수 있나요?

(참고: 렘 38:19-20)

교제(사귐)의 기쁨

 

 

주님과 교제를 하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의 사랑으로 형제, 자매와

교제하므로

우리 마음에는 기쁨이 충만합니다(요일 1:1-4).

 

 

교회 안에 무섭고 놀라운 일은 ...

 

교회 안에 무섭고 놀라운 일은

목사들이 거짓을 예언하고 자기 권력으로 다스리며

교인들은 그것을 좋게 여기고 있다는 것입니다(렘 5:30-31).

 

 

교회 안에 있는 부요하고 힘있는 죄인들은 ...

 

교회 안에 있는 부요하고 힘있는 죄인들은
(prosperous and powerful sinners)
하나님을 섬기는 목적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마치 성경에 나오는 "바알"처럼 여겨
"하나님"께로 부터 더 많은 
경제적인 복과 개인적인 형통을 위해서입니다
(참고: 스바냐 1:4-6).

(Iain M. Duguid & Matthew P. Harmon의 "Zephaniah, Haggai,

Malachi" REFORMED EXPOSITORY COMMENTARY"를 읽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