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얼마나 하나님의 구원의 역전 드라마에 멋진 장면입니까!!
왕후 에스더의 두 번째 잔치에 아하수에로 왕과 하만이 참석했습니다. 왕후 에스더는 아하수에로 왕이 세 번째로 “에스더 왕후, 당신의 소원이 무엇인지 말해 보시오. 내가 들어주겠소. 만일 당신이 나라의 절반을 요구한다고 해도 내가 그것을 허락하겠소”라고 말했을 때에야 자기의 소원을 그에게 말했습니다. 그 소원이란 “나와 내 민족의 생명을 구해 주소서”였습니다. 그녀가 그에게 그리 말한 이유는 자기와 자기 백성인 유다 사람들을 죽이려는 사람들의 손에 팔려 전멸을 당하게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아하수에로 왕은 에스더 왕후에게 “감히 그런 음모를 꾸미고 있는 자가 누구요? 그놈이 어디 있소?”하고 물으니까 에스더는 “우리를 죽이려고 하는 악한 원수는 바로 이 하만입니다”하고 대답했습니다(에스더 7:1-6, 현대인의 성경).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먼저 왕후 에스더의 첫 번째 잔치(5:4-5)와 두 번째 잔치(7:1) 사이에 일어난 에스더 6장의 일(사건)이 흥미롭다고 생각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에스더 6장에서 아하수에로 왕은 모르드개를 높이기 시작했고(1-11절) 하만은 굴욕을 당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13절, 현대인의 성경). 분명히 하만은 에스더 5장에서 왕후 에스더의 첫 번째 잔치 자리를 떠날 때 무척 기분이 좋았는데 그 이유는 에스더 왕후가 베푼 잔치에 왕과 함께 초대받은 사람은 자기 하나밖에 없었는데 왕후가 그 다음 날에도 왕과 함께 오라고 자기를 초대했기 때문입니다(5:9, 12, 현대인의 성경). 그러나 하만은 유다 사람 모르드개가 궁궐 문 앞에 앉아 있는 것을 보는 한 “이 모든 일”[자기의 부귀와 많은 자녀와 왕이 자기에게 높은 지위를 준 일들(11절, 현대인의 성경)]도 만족을 주지 못했기에 자기 아내 세레스와 그의 모든 친구들의 조언대로 약 23미터 높이의 나무(교수대)를 세워 거기에 모르드개를 매달기를 왕에게 구하려고 했습니다(13-14절, 현대인의 성경). 그런데 에스더 6장에 가서 하만이 높은 나무(교수대)에 매달고 싶어했던 모르드개를 아하수에로 왕이 높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하만은 왕이 “존귀하게 하기를 원하는 사람”(6:6)이 “자기 외에는 없을 것으로 생각하고”있었는데(6절, 현대인의 성경). 그 사람이 바로 자기가 아니라 모르드개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창피해서 얼굴을 들지 못한 채 머리를 싸매고 급히 집으로 돌아가 자기 아내 세레스와 모든 친구들에게 자기가 당한 일을 다 말하였”습니다(12-13절, 현대인의 성경). 그 때 그의 지혜로운 친구들은 하만이 굴욕을 당하기 시작한 것이라고 말해줬습니다(13절, 현대인의 성경). 그러한 가운데서 하만은 왕의 내시들이 와서 자기를 에스더 왕후가 베푼 두 번째 잔치에 급히 데리고 가서(14절, 현대인의 성경) 그 에스더 왕후의 두 번째 잔치에 참석한 것입니다(7:1). 두 번째로 흥미로운 점은 아하수에로 왕인 에스더 왕후에게 세 번이나 그녀의 소원이 무엇인지 물어보았다는 것입니다(5:3, 6; 7:2). 저는 이 사실을 묵상할 때 요한복음 21장에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사(요한복음 21:14) 사도 베드로에게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세 번이나 질문한 말씀이 생각났습니다(15, 16, 17절). 물론 예수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그리 세 번이나 질문하신 이유는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었기 때문이었습니다(마태복음 26:70, 72, 74). 그래서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세 번이나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심으로 그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 죄를 용서해주시고자 하셨다고 생각합니다. 더 나아가서,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사명[“내 어린 양을 먹이라”(요한복음 21:15), “내 양을 치라”(16절), “내 양을 먹이라”(17절)]을 주시기 위해서 그리 세 번이나 질문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이 말씀들을 연관해서 묵상할 때 우리 주님은 우리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는 질문과 ‘네 소원이 무엇이냐?’라는 질문은 각각 세 번씩이나 하신다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 생각할 때 저의 대답은 이렇습니다: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것을 아십니다’(요한복음 21:17, 현대인의 성경), ‘주님, 제 평생 소원은 주님의 일 하다가 이 세상 이 별하는 날 주님 앞에 가는 것입니다’(새 찬송가 450장, “내 평생 소원 이것뿐” 1절 가사). 세 번째로 흥미로운 점은 아하수에로 왕인 에스더 왕후에게 세 번째로 “당신의 소원이 무엇인지 말해 보시오. 내가 들어주겠소”라고 말했을 때 에스더 왕후가 “나와 내 민족의 생명을 구해 주소서”라고 대답했다는 것입니다(에스더 7:2-3, 현대인의 성경). 이것이 왜 흥미롭냐면 에스더 왕후는 그 전까지는 자기의 사촌 오빠인 모르드개의 말에 어릴 때처럼 순종하여 자기가 유다 사람이라는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2:10, 20, 현대인의 성경). 그런데 그녀는 자기가 베푼 두 번째 잔치에 아하수에로 왕이 세 번째 “당신의 소원이 무엇인지 말해 보시고. 내가 들어주겠소”라고 물었을 때서야 자기와 자기의 민족인 유다 사람들의 생명을 하나로 묶어서 왕이 구해주는 것이 자기의 소원이요 간청이라고 말했던 것입니다(7:2-3, 현대인의 성경). “죽으면 죽으리이다”라는 각오로 왕에게 나아갔던 에스더(4:16)는 자기 민족인 유다 사람들이 다 “전멸을 당하게 되었”기에(7:4, 현대인의 성경) 아하수에로 왕에게 자기와 자기 민족을 생명을 구해 주길 간청한 것입니다. 왜 에스더는 모르드개의 말에 순종하여 자기가 유다 사람임을 말하고 있지 않다가 아하수에로 왕이 세 번째 “당신의 소원이 무엇인지 말해 보시오”라고 물었을 때에야 자기의 소원을 말하면서 자기가 유다 사람임을 말한 것일까요? 분명히 아하수에로 왕은 그 전까지 에스더 왕후가 유다 사람인 줄 전혀 모르고 있었을 것입니다. 만일 그가 그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다면 그는 “모든 여자보다 … 더 사랑하”는 에스더(2:17)요 “매우 사랑스러”운 에스더(5:2)를 위해서라도 하만으로 하여금 페르시아 제국 안에 있는 모든 유다 사람들을 전멸시키도록(3:6, 현대인의 성경) 하만이 “좋을 대로 처리”하게하지 않았을 것입니다(11절, 현대인의 성경). 저는 이것을 생각할 때 하나님의 구원의 역전 드라마에 하나님께서 유다 사람들을 하만의 손에서 건지심에 있어서 에스더를 사용하실 때 에스더가 자기의 소원을 아하수에로 왕에게 말했을 때와 자기가 유다 사람임을 말한 때가 흥미롭습니다. 그 때는 하나님의 타이밍이란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에스더 왕후가 자기의 소원을 아하수에로 왕에게 말했던 그 상황도 너무나 멋진 하나님의 구원의 역전 드라마의 전환점(turning point) 장면이라 생각합니다. 제가 그리 생각하는 이유는 에스더 황후가 왕에게 자기의 소원을 말했을 때 상황은 그녀의 두 번째 잔치에 왕과 하만이 참석했던 상황으로서 에스더가 자기와 자기 민족의 생명을 구해달라고 왕에게 간청했을 때 그들을 죽이려고 음모를 꾸미고 있던 자가 바로 그들과 함께 잔치에 있었던 나머지 한 사람인 바로 하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하수에로 왕이 “그 놈이 어디 있소?”라고 물었을 때 에스더 왕후는 “우리를 죽이려고 하는 악한 원수는 바로 이 하만입니다”하고 대답한 것입니다(5-6절, 현대인의 성경). 이 얼마나 하나님의 구원의 역전 드라마에 멋진 장면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