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하라” (1)

 

 

 

 

[골로새서 2장 8-23절]

 

 

 

여러분, “이단”으로 분류하는 기준은 무엇입니까?  황대우 교수란 분이 “개혁주의 학술원”이란 웹사이트에 올린 글을 보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단’(이단(異端)이란 ‘다를 이’에 ‘끝 단’자로 구성된 단어이며 ‘끝이 다른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단을 의미하는 영어 명사 ‘헤러시’(heresy)의 어근에 해당하는 헬라어 단어 ‘하이레시스’가 신약성경에서는 ‘사두개파’(행 5:17), ‘바리새파’(행 5:17), ‘파당’(행 26:5; 고전 11:19; 갈 5:20) 등과 같은 ‘분파’를 의미하는 중립적 개념이다.  1세기의 사도들은 일종의 ‘특정 집단’을 가리키는 의미로 그 단어를 사용한 것이다.  하지만 2세기의 속사도교부들은 그 용어를 부정(否定)과 차별(差別)의 의미를 내포한 평가적 의미로 사용하기 시작하는데, 이것이 오늘 우리가 사용하는 이단의 의미다.  그러므로 이단이란 용어는 이미 2세기부터 기독교인들에게 아주 익숙한 개념이다.  영국 신학자 맥그래스(McGrath)에 의하면, “이단은 우발적이든 고의든 주인의 집안에 대안적 신념 체계를 세우는 수단, 즉 일종의 트로이 목마 같은 것이다.  이단은 겉으로는 기독교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파괴적 씨앗을 심는 신앙의 원수이다. ….”  “오늘날 ‘이단’이란 말은 ‘완전히 다른 복음’, 즉 기독교에 포함시킬 수 없는 단체나 모임에 적용하는 용어다.  그렇다면 과연 ‘기독교’가 아니라고 단정할 수 있는 기준, 즉 이단의 기준은 무엇인가?  기독교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전혀 기독교가 아닌 집단으로 분류할 수 있는 기준은 ‘삼위일체’와 ‘그리스도의 양성’에 관한 정통 기독교 교리를 부인하거나 크게 벗어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믿음의 대상인 신론과 기독론이 다를 경우, 이것을 ‘이단’으로 규정할 수 있다”(인터넷).

 

여러분, 사탄의 나라에는 오직 속임수(deception)와 사악함(wickedness)만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에는 오직 진리(truth)와 순결(purity)이 있습니다(맥아더).  우리는 속임수로 우리를 유혹하는 자들을 대적해야 합니다(민25:17-18).  시편 기자는 시편 4편 2절에서 “인생들아 어느 때까지 나의 영광을 바꾸어 욕되게 하며 헛된 일을 좋아하고 거짓을 구하려는가”[(현대인의 성경) “사람들아, 너희가 언제까지 나를 모욕하려느냐? 너희가 언제까지 헛된 일을 좋아하고 거짓된 것을 추구할 작정이냐?]라고 말씀했습니다.  여기서 “거짓”이란 ‘속임수’(deception)를 말씀합니다.  시편 3편2절에서 시편 기자 다윗은 많은 대적들은 이미 다윗의 영혼에게 ‘하나님께서 너를 구원하시지 않는다’라고 거짓말로 대적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시편 4편에서도 다윗의 대적들은 계속해서 어떻게 해서든지 속임수를 써서라도 다윗을 계속 대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속임수란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시지 않는다’라는 것으로서 그것은 결국 ‘하나님은 구원자가 아니다’라고 거짓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구원자 하나님을 부인하게 만드는 속임수입니다.  이러한 속임수는 지금도 사탄이 우리에게 사용하여 하나님의 구원을 의심하게 만들려고 힘쓰고 있습니다.  거짓말의 아버지인 사탄은 우리로 하여금 그의 속임수에 넘어가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과 그가 우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의심하게 만들려고 무척이나 애쓰고 있습니다.  또 다른 사탄의 속임수는 우리 자신 스스로를 속이게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1장 22절 말씀입니다: “너희는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만 하고 행하지 말라는 사탄의 속임수에 우리는 너무나 수없이 넘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 에베소서 4장 14절은 우리에게도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새번역): “우리는 이 이상 더 어린아이로 있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인간의 속임수나, 간교한 술수에 빠져서, 온갖 교훈의 풍조에 흔들리거나, 이리저리 밀려다니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 골로새서 2장 8-23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회의 성도들과 라오디게아 교회의 성도들과 자기의 얼굴을 보지 못한 성도들(1절)에게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8절)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사도 바울이 그들에게 경고하고 있는 “철학과 헛된 속임수”는 4가지임 (The Outline Bible).  이 4가지를 묵상하면서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첫째로, 사도 바울은 영지주의(Gnosticism)를 주의하라고 경고했습니다(골2:8-10).

 

제가 웨스트민스터 신학교를 다닐 때 Peter Jones라는 교수님의 과목을 선택한 적이 있었음.  아직도 기억나는 것은 그 교수님이 쓴 “The Gnostic Empire Strikes Back”이란 책입니다.  한국어로 책 제목을 번역한다면 “영지주의 제국의 반격”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제 기억으로는 그 때 저는 처음으로 “영지주의”(Gnosticism)이란 이단에 대해서 접하게 되었습니다.  “영지주의 영적 지식(gnosis)을 추종하는 동방 종교와 희랍철학과 신지학(theosophy)[“그리스어의 ‘신성(theos)’과 ‘지혜(sophia)’가 결합된 용어로 ‘신성한 지혜’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신과 우주와 인간에 대한 신성한 진리를 말하는 것이면 다 신지학이라 할 수 있다”(인터넷)], 그리고 그리스도교 신앙의 혼합형태로 주후 80년부터 150년 사이에 초대교회와 경쟁했던 가장 강력하고 위협적인 운동이었”습니다(인터넷).  “영지주의가 일어났던 때는 사도들이 이미 세상을 떠나고 사도들의 신앙을 계승한 초대교회의 지도자들을 중심으로 교회가 어렵사리 자리를 잡아가던 상황이었다.  교회에 침투한 영지주의 사상으로 인하여 초대교회는 크게 몸살을 앓게 되었다.  초대교회 속으로 침투한 영지주의는 ‘영지주의 이단’을 형성하여 교회의 참 복음을 심각하게 위협하였”습니다(인터넷).  “알렉산드리아의 클리멘트(Clement, 150-215)가 남긴 기록에 의하면, 영지주의의 창시자는 시몬 마구스(Simon Margus)라는 인물이다.  시몬 마구스는 사도행전 8장 9-13절에서 등장하는 마술사 시몬과 동일 인물이며, 그는 마술을 행하여 사람들을 크게 놀라게 하는 재주를 부렸고, 많은 인기를 얻자 자신이 사람의 형태로 나타난 신이라고 주장하며 사람들이 자신을 경배하도록 만들었다.  시몬은 자신이 겉으로는 사람처럼 보이나 실제로는 하나님이라고 가르쳤다”(인터넷).  “예수 그리스도께서 버가모에 있는 교회에 보내신 편지의 내용 중에 “니골라 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계 2:15)라는 내용이 있다.  이것이 초대교회에 침투한 영지주의와 관련된 흔적이다.  ‘니골라당’(Nicolaitans)이라는 말은 초기 영지주의의 지도자 니콜라스(Nicolas)라는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니콜라스는 안디옥 출신으로서, 사도들에게서 신앙을 전수받고 집사의 직분을 받았으나 결국 이단의 길로 빠지고 말았다”(인터넷).

 

이 영지주의 이단에 대한 교리에 대해 한 2 가지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1) 영지주의의 영육이원론(dualism)입니다.  이 거짓된 이론은 영적이고 정신적인 것은 선하지만 물질과 육신 혹은 몸이 악하다고 보는 관점을 말합니다.  “성경은 결코 영육이원론을 지지하지 않는다.  성경적 관점에서 볼 때 하나님이 본래 창조하신 바 영혼과 몸과 물질은 근본적으로 선하다.  물질이나 몸이 본래적으로 악하다는 관점은 성경과 정면으로 배치된다”(인터넷).  이 영육이원론은 극단적인 금욕주의로서 일체의 육식과 결혼을 금할 뿐만 아니라 이와는 정반대로 육신은 전혀 쓸모없는 것이기 때문에 어떠한 짓을 해도 상관없다는 윤리적 방탕주의에 빠지게 됩니다(인터넷).  (2) 영지주의는 구원은 영적 깨달음에서 온다고 믿었습니다.  “구원은 영적 지식의 각성에 의해 이뤄진다.  영적인 인간임을 망각하고 살아가는 육체의 감옥에 갇힌 인간이 자신이 영적 존재라는 각성에 이르게 되어야 구원을 얻는다.  영적 각성은 영적 지식을 통해 가능하다, 따라서 영지를 중시한다”(인터넷).  “영지, 영적 비밀에 대한 지식을 중시한 것이 영지주의의 가장 큰 특징이다.  지성적이며 과학적인 지식이 아니고 직관적이며 직접적인 지식, 신적인 것에 참여함으로 얻는 영적인 지식을 말한다.  합일의 지식이며 구원의 직접적인 경험이다.  자신의 현재 상태로부터 해방과 구원을 성취하는 자기인식(깨달음)의 행위이다”(인터넷).  “영지주의에 따르면(지방교회와 구원파가 영지주의다), 진정한 구원은 우리의 믿음이나 행함이 아니라 참 지식의 소유 여부에 달려 있다.  그 결과 영지주의자들은 윤리에 대해 부정적이고 소극적이었다.  그들은 율법에서의 해방과 양심의 해방을 강조한다.  이 지식은 특별한 사람들에 의해서 비밀스럽게 전수된다고 주장하였다”(인터넷).

 

오늘 본문 골로새서 2장 8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회의 성도들과 라오디게아 교회의 성도들과 자기의 얼굴을 보지 못한 성도들에게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고 권면하면서 그 이유를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름이요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니니라”[(현대인의 성경) “이것은 전통적으로 전해 내려오는 사람의 가르침이나 이 세상의 초보적인 원리에 근거한 것이지 그리스도에게 근거한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너희를 사로 잡을까”라는 말씀은 그 당시 초대 교회 때 거짓 선생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로 하여금 거짓을 믿게 하는 데 성공하여 그 성도들에게서 진리와 구원과 축복을 앗아가는 것을 말합니다(맥아더).  그리고 “철학”[문자적 의미는 ‘지혜를 사랑’(love of wisdom)]이란 단어는 하나님이나 세계(이 세상이)나 또는 삶의 의미에 대한 모든 이론을 설명하는 것으로서 그 당시 초대 교회 때 골로새 이단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그들이 얻었다고 주장하는 더 높은 지식(higher knowledge)을 설명하기 위해 그것을 사용했습니다(맥아더).  여기서 골로새 이단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얻었다고 주장하는 ‘더 높은 지식’을 생각할 때 우리는 그들이 영지주의 이단에 빠진 사람들임을 좀 알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 골로새서 2장 8절에서 골로새 이단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얻었다고 주장하는 더 높은 지식을 설명하는 거짓 선생들의 “철학”(philosophy)을 “헛된 속임수”(empty deceit)와 동일시했습니다(맥아더).  그 당시 골로새 교회의 성도들이나 라오디게아 교회의 성도들을 미혹하던 영지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철학과 헛된 속임수에 근거하여 몸을 악하다고 믿었기에 예수님은 단지 영일뿐이라고 주장했으므로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을 부인했습니다(8절).  그리고 영지주의자들은 신의 충만함이 물질 세계를 마지막으로 창조한 많은 천사 존재들 사이에서 나누어졌다고 생각했습니다(The Gnostics thought the fullness of God had been divided among a number of angelic beings, the last creating the material world)(The Nelson Study Bible 주석).  그러나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가 육체의 형태로 성육신하신 하나님이시라고 말씀했습니다(9절).  9절 말씀입니다: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현대인의 성경) “그리스도 안에는 온갖 신적 성품이 육체적인 형태로 나타나 있습니다”].  여기서 “그리스도 안에서 온갖 신적 성품이 육체적인 형태로 나타나 있습니다”란 한 마디로 하나님의 모든 속성과 본질은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의미입니다.  즉,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같은 본성이라는 의미입니다(KJV 주석).  바울은 하나님의 충만이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말했습니다(The Nelson Study Bible 주석).  흥미로운 점은 사도 바울은 디모데전서 6장 20절에서 골로새 이단(영지주의 이단)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얻었다고 주장하는 ‘더 높은 지식’을 “거짓된 지식”이라고 말씀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거짓된 지식에서 나오는 말을 “망령되고 헛된 말”이라고 말씀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도 바울은 그의 영적 아들 디모데에게 “이런 지식을 가졌다는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고 말았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21절).  디모데전서 6장 20-21절 말씀입니다: “디모데야 망령되고 헛된 말과 거짓된 지식의 반론을 피함으로 네게 부탁한 것을 지키라 이것을 따르는 사람들이 있어 믿음에서 벗어났느니라 은혜가 너희와 함께 있을지어다”[(현대인의 성경) “디모데여.  그대는 맡은 일을 잘 실천하시오.  거짓된 지식에서 나오는 모독적인 무가치한 잡담과 변론을 피하시오.  이런 지식을 가졌다는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여러분과 함께 하기를 기도합니다”].  이렇게 더 높은 지식을 추구했던 초대 교회 때의 영지주의 이단이 지금 20세기를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전혀 상관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초기 교회가 영지주의 이단에서 직면한 많은 것들이 오늘날 “New Age movement”(뉴 에이지 운동)라는 새 이름으로 교회를 괴롭히고 있다고 Peter Jones 교수님은 그의 책 “The Gnostic Empire Strikes Back”(영지주의 제국의 반격)에서 주장하고 있습니다.  Peter Jones 교수님은 그의 책에서 뉴 에이지 운동이 어떻게 세상과 교회를 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재방문하는 오래된 영지주의 이단인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존스 자신은 뉴 에이지의 정의를 "고정"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고 말합니다.  그는 그것을 "미끄러운 뱀장어"에 비유합니다.  그것은 자유, 평등, 다양성, 영성, 책임 있는 생태학 및 국제 평화에 대한 관대하고 부드러운 판매 방법(soft-sell) 촉진으로 성공적으로 위장합니다.  그것은 스스로를 "종교"라고 부르지 않고 오히려 "인간의 영성"이라는 문구를 선택하여 특별히 "종교" 신문이 허용되지 않는 공공 도서관의 무료 문학 저장소로 만듭니다.  관용과 다양성에 대한 주장으로 전 세계 비밀 종교 네트워크의 실제 의제를 가립니다’(인터넷).  존스는 우주론(Cosmology), 구속론(Redemption), 기독론(Chritology), 성생활(sexuality) 영역에서 뉴 에이지(영지주의)의 가르침을 살펴보도록 도와주는데 구속론만 예를 들고 싶습니다: ‘영지주의 그리스도는 그의 대속 속죄로 죄를 처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분은 자신의 신성과 잠재력에 대한 지식인 "그노시스"의 계시자(a revealer of “gnosis”)로 오십니다.  …  영지주의 가르침과 뉴 에이지에서 여성 원리는 구원의 열쇠를 쥐고 있습니다.  구세주 여신이 중심입니다(Goddess savior is central).  앤 프리마베시는 그녀의 저서 “From Apocalypse to Genesis”(묵시록에서 창세기까지)에서 창세기에 대한 재평가를 제공합니다.  그녀는 "이브의 이야기"는 인류의 "타락"이 아니라 성숙의 도래로 읽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녀는 뱀이 무력의 규칙으로 작동하는 규칙을 지키는 문제를 폭로했기 때문에 인류에게 제공되는 지혜의 상징이라고 말합니다.  극단적인 페미니스트인 프란시스 왓슨 역시 뱀을 해방자로, 이브를 용감하게 지혜를 추구하는 여주인공으로, 주 하나님을 자신의 특권을 보존하는 데에만 관심이 있는 질투심 많은 폭군으로 보아야 한다고 믿습니다’(인터넷). 

 

여러분, 이렇게 우리를 믿음에서 떠나게 만들려고 하는 ‘더 높은 지식’을 추구하는 영지주의 이단 사상에 사로잡히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견고히 서 있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요?  먼저 우리는 오늘 본문 골로새서 2장 8절 하반절 현대인의 성경에서 사도 바울이 말씀한 것처럼 “이것은 전통적으로 전해 내려오는 사람의 가르침이나 이 세상의 초보적인 원리에 근거한 것이지 그리스도에게 근거한 것이 아닙니다”라는 진리를 확고히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이 20절에서 말씀했듯이 우리는 이미 “세상의 초등학문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이 세상의 초보적 원리에 대해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현대인의 성경)]는 사실을 알고(믿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고린도후서 10장 4-5절 현대인의 성경 말씀을 귀담아 들어야 합니다: “우리의 무기는 육적인 것이 아니라 마귀의 요새라도 파괴할 수 있는 하나님께 강력한 무기입니다.  이 무기로 우리는 여러 가지 헛된 이론과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대항하는 온갖 교만한 사상을 무너뜨리고 사람들의 마음이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대로 우리는 하나님의 강력한 무기로 여러 가지 헛된 이론과 하나님의 대한 지식을 대항하는 온갖 교만한 사랑을 무너뜨리고 우리의 마음으로 하여금 그리스도에게 복종하도록 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