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굳게 서 있는 교회
[골로새서 2장 1-7절]
“종교개혁의 5가지 원리”라는 책을 보면 오웬 스트라챈은 이러한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으로 고동치는 교회가 되려면 성경 중심의 교회가 되어야 한다. 말씀은 영적 성장의 토대이자 성령의 능력을 나타내는 도구다(딤후 3:16)." 주님이 세우시는 주님의 교회는 성경 중심의 교회입니다. 그리고 성경 중심의 교회는 성경 말씀에 이끌림을 받는 교회입니다. 우리 교회가 붙잡고 있는 주님의 약속의 말씀은 바로 마태복음 16장 18절 말씀입니다: “… 내가 … 내 교회를 세우리니 ….” 이 주님의 약속의 말씀에서 우리는 2가지를 믿고 확신해야 합니다. 그 2가지란 (1) 승리장로교회는 ‘주님의 교회’라는 사실입니다. 승리장로교회는 어느 누구의 교회도 아닙니다. 다시 말하면, 승리장로교회는 사람들의 교회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한 마디로, 승리장로교회는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주님의 교회라는 말씀입니다. (2) 승리장로교회는 ‘주님께서 세우시는 교회’라는 사실입니다. 이 사실이 우리에게 암시로 교훈 해 주는 메시지는 승리장로교회는 우리가 세울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주님의 교회인 승리장로교회는 우리의 힘과 우리의 능력으로 세울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 말은 승리장로교회는 오직 주님 만이 세우실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오직 주님의 힘과 주님의 능력으로 주님의 몸 된 교회는 세워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감사한 것은 주님께서는 연약한 우리를 주님의 교회를 세우시는데 도구로 사용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주님의 교회를 세우시는데 도구로 쓰시겠다고 하실 때 겸손히 주님의 뜻에 순종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골로새서 2장 5절 현대인의 성경 말씀임: “내가 몸은 여러분을 떠나 있으나 마음은 여러분과 함께 있어서 여러분이 질서 있는 생활을 하고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굳게 선 것을 보니 기쁩니다.” 저는 이 말씀 중심으로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굳게 서 있는 교회”란 제목 아래 오늘 본문 골로새서 2장 1-7절을 묵상하면서 주님께서 주님의 교회를 세우심에 있어서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굳게 서 있는 교회는 어떠한 교회인지 한 3가지로 묵상하면서 주시는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바라기는 우리 모두가 이 귀한 교훈을 받아 주님이 승리장로교회를 세우심에 있어서 겸손히 동참하여 우리 교회가 더욱더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굳게 서 있길 기원합니다.
첫째로,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굳게 서 있는 교회는 사랑 안에서 연합한 교회입니다.
골로새서 2장 1-2절 상반절 말씀입니다: “내가 너희와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 무릇 내 육신의 얼굴을 보지 못한 자들을 위하여 얼마나 힘쓰는지를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이는 그들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현대인의 성경) “여러분과 라오디게아의 성도들과 또 내 얼굴을 보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내가 얼마나 애쓰고 있는가를 여러분은 알기 바랍니다. 내가 이처럼 애쓰는 것은 그들이 마음에 용기를 얻고 사랑으로 단합하며 …”]. 진정한 교회의 아름다움은 주님 안에서 형제, 자매가 연합하여 함께 거하는 것입니다. 시편 133편 1절 말씀입니다: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현대인의 성경) “형제들이 함께 어울려 의좋게 사는 것은 정말 좋은 일이다”]. 시편 기자 다윗은 교회인 하나님의 백성들의 연합하여 동거함의 선함과 아름 다움을 2 가지로 비교했습니다(2-3절): (1)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의 옷기까지 내림 같”다는 것입니다. 현대인의 성경으로는, “그것은 값진 기름을 아론의 머리에 부어 그의 수염과 옷깃으로 흘러내리는 것 같”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2절). 이 말씀은 아론의 머리에 부은 기름은 향기롭고 윤택미있고 번지는 성격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 기름을 아론의 머리에 부었을 때, 수염에 흘러서 옷깃까지 내림 같이, 형제 사랑은 하나님이 부어 주셔서 퍼지는 사랑입니다(박윤선). (2)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는 것입니다(3절). 유다에 있어서 이슬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그것이 없으면 곡초가 살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다윗이 하나님의 백성인 교회가 연합하여 동거함의 선함과 아름다움을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같다고 한 이유는 마치 이슬이 높은 곳이 헐몬산에서 내려 퍼지는 것처럼, 진정한 하나님의 사랑은 위에서부터 하나님께서 교회에게 부어 주신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령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라고 다윗은 말씀했습니다(3절하). 이 말씀의 뜻은 하나님의 사랑이 있는 곳에 영생의 복이 있도록 하나님께서 명령하셨다는 뜻입니다(박윤선). 즉, 교회 안에 하나님의 사랑이 있을 때 교회는 영생의 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골로새서 2장 2절 상반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회의 신실한 성도들에게 “이는 그들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라고 편지를 통해 말했는데 현대인의 성경으로는 “내가 이처럼 애쓰는 것은 그들이 마음에 용기를 얻고 사랑으로 단합하며 …”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이 말씀의 문맥인 골로새서 2장 1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회의 성도들뿐만 아니라 라오디게아의 성도들[골로새의 성도들처럼 거짓 선생들로부터의 같은 위험에 노출되 있었기에(4:16)](주석)과 또한 바울의 얼굴을 보지 못한 사람들[(4:13) “히에라볼리” 사람들을 포함해서]을 위해 자기가 얼마나 힘쓰는지(애쓰고 있는가)를 그 성도님을 알기를 원한다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사도 바울이 ‘힘쓰고 있다’(애쓰고 있다)고 말했는데 이 단어(“great conflict” or “striving”)는 우리가 이미 묵상한 골로새서 1장 29절에서 사도 바울은 “힘을 다하여” (“agony of conflict”)수고한다는 단어와 똑 같은 뿌리에서 파생한 단어입니다(맥아더). 골로새서 1장 29절 말씀입니다: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현대인의 성경) “이 일을 위해 나는 내 속에서 힘 있게 일하시는 분의 능력으로 최선을 다해 힘써 일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회 성도들이 거룩하고 흠 업고 책망할 것이 없는(22절) 그리스도 안에서 성숙한 (mature) 그리스도인으로 하나님 앞에 세우기 위해(28절) 자기 속에서 힘 있게 일하시는 성령님의 능력으로 “힘을 다하여”(최선을 다해) 힘써 일했습니다. 결국 바울이 힘을 다할 수 있었던 것도 그의 속에 “힘 있게 일하시는” 성령님의 능력으로 가능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사도 바울이 성령님의 능력으로(1:29) 골로새의 성도들과 라오디게아의 성도들과 또한 바울의 얼굴을 보지 못한 성도들을 위해 힘쓴 것(2:1)은 무엇이었습니까? 2 가지 목적이 있었습니다: (1) 첫째 목적은 바울은 그 모든 성도들이 마음에 위한(comfort)을 받길 원했음[(2:2) “이는 그들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왜 바울은 그들의 마음을 위로하길 원했을까요? 그만큼 1세기 시대 때 그 성도들의 마음을 흔들리게 만드는 역경과 위험이 있어서 그랬지 않았을까요? 그래서 바울은 그들의 마음을 위안(위로)하고자 그의 속에 힘 있게 일하시는 위로의 성령님의 능력으로 힘썼던 것입니다. 바울은 그 모든 성도님들을 튼튼하게(strengthen)하고 격려(encourage)하며 강화(reinforce)하고자 성령님의 능력으로 힘썼습니다. (2) 그리할 때 사도 바울이 힘썼던 둘째 목적인 그 교회 성도들이 “사랑 안에서 연합”하는 것입니다[(2:2)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오늘 본문 골로새서 2장 2절에서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라는 말씀은 ‘사랑으로 함께 짜여져 있다’(being knit together in love)라는 의미로서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더 긴밀한 통합, 중요한 도움이 되는 관계, 함께 용접되는 단일체’(A closer unity, a vital helpful relationship, being welded together, a unibody)를 의미합니다(KJV Bible 주석). 왜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회나 라오디게아 교회가 이렇게 사랑 안에서 연합하도록 그리도 힘썼습니까? 그 이유는 그래야 그 교회들이 거짓 가르침의 부패(corruption)와 파괴(disruption)로부터 보호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KJV Bible 주석).
주님께서 주님의 교회를 세워주시겠다고 마태복음 16장 18절에서 약속하셨는데 저의 간절한 기원은 주님께서 우리 승리장로교회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굳게 서 있는 교회로 세워주시되 주님의 사랑 안에서 연합한 교회로 더욱더 견고히 세워주시길 기원합니다. 우리 모두가 함께 이것을 위해 주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음으로 붙잡고 우리 교회를 위해 계속해서 기도(간구)하는 가운데 우리의 책임은 사도 바울처럼 이것을 위해 힘쓰고 애써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승리장로교회가 주님의 사랑 안에서 연합한 교회로 세움을 받을 수 있도록 우리 속에서 힘 있게 일하시는 성령님의 능력으로 “힘을 다하여”(최선을 다해) 힘써 교회의 연합성(통일성)을 지켜 나아가야 합니다(참고: 엡4:3). 그러기 위해선 우리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요? 저는 빌립보서 2장 2절 말씀에 근거해서 적어도 3가지 원리에 따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 우리는 “한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빌2:2, 현대인의 성경). 즉, 우리는 예수님의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5절). (2) 우리는 “한 뜻”을 추구해야 합니다(2절, 현대인의 성경). 즉, 우리는 예수님처럼 ‘내 뜻대로 마시옵고 하나님의 뜻대로 하옵소서’(눅22:42, 현대인의 성경)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내 모든 일들을 다 주께 맡기고 저 천성 향하여 고요히 가리니 살든지 죽든지 뜻대로 하소서”라고 하나님께 찬양드려야 합니다(새 찬송가 549장, “내 주여 뜻대로” 3절). (3) 우리는 “같은 사랑”을 해야 함(빌2:2, 현대인의 성경). 즉, 우리는 예수님의 이중계명대로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자신들의 형제를 자신 같이 사랑해야 합니다(마22:37, 39). 그리할 때 우리는 무슨 일이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않고 겸손한 마음으로 자기보다 자기 형제를 낫게 여기고 자기 이익만 생각하지 않고 형제의 이익을 생각하므로(빌2:3-4, 현대인의 성경) 우리 모두가 함께 어울려 의좋게 살 수 있을 것입니다(시133:1, 현대인의 성경).
둘째로,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굳게 서 있는 교회는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달아 알아가는 교회입니다.
골로새서 2장 2절 하반절에서 3절 말씀입니다: “… 확실한 이해의 모든 풍성함과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니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현대인의 성경) “이해함으로 얻게 되는 완전한 확신의 부요함에 이르러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알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물이 감추어져 있습니다”]. 주님께서 저에게 마태복음 16장 18절 “… 내가 … 내 교회를 세우리니 …”라는 약속의 말씀을 주셔서 한국에서 미국에 있는 승리장로교회로 돌아오게 하셨을 때인 2003년 12월 21일부터 지금까지 담임 목사로서 주님의 교회를 섬겨오면서 주님께 간구하는 기도 제목이 있습니다. 그 기도 제목은 물론 약속의 말씀대로 ‘주님, 주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주님께서 주님의 교회를 세워주세요’입니다. 저는 이 기도 제목과 더불어 주님께 드리는 좀 더 구체적인 기도 제목 4개가 있습니다: (1) 주님, 우리 모두가 사도 베드로처럼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16절)라고 신앙 고백할 수 있게 해주세요, (2) 주님, 우리 모두가 주님께 신앙 고백한대로 살아갈 수 있게 해주세요, (3) 주님, 우리 교회를 반석 위에 견고하게 세워주세요(18절), (4) 주님, 우리 교회를 나 자신과 죄악과 세상과 사탄과 죽음과 싸워 승리하는 교회가 되게 해주세요(18절).
저는 이 4가지 구체적인 기도 제목 중에 첫 번째 기도 제목을 놓고 기도할 때 마태복음 16장 17절을 기억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함: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현대인의 성경) “그래서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요나의 아들 시몬아, 너는 행복한 사람이다. 이것을 너에게 알리신 분은 사람이 아니라 하늘에 계시는 내 아버지이시다”]. 저는 이 예수님의 말씀을 묵상할 때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우리에게 알게 해 주셔야 우리가 예수님이 누구이신 줄 알고 사도 베드로처럼 신앙 고백을 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 아버지의 계시(revelation)가 없이는 우리는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알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 정도로 하나님 아버지의 계시가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께 기도할 때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 아버지께서 계시해주시사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바로 알아가게 해주시길 기도합니다.
오늘 본문 골로새서 2장 2절 하반절에서 3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골로새의 성도들과 라도디게아의 성도들과 또한 바울의 얼굴을 보지 못한 성도들에게 이렇게 편지를 통해 말한 것을 우리는 알 수가 있습니다: “… 확실한 이해의 모든 풍성함과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니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현대인의 성경) “이해함으로 얻게 되는 완전한 확신의 부요함에 이르러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알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물이 감추어져 있습니다”]. 우리가 이미 묵상한 골로새서 1장 28-29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사명을 받은 교회의 일꾼으로서 그리스도를 전파하며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권면하고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성숙한 자)로 세우기 위해서였습니다. 이 일을 위하여 사도 바울은 자기 속에서 힘 있게 일하시는 성령님의 능력으로 최선을 다해 힘써 일했습니다. 이것이 저의 막중한 책임입니다. 저 또한 사도 바울처럼 제 속에서 힘 있게 일하시는 성령님의 능력으로 최선을 다해 힘써야 할 것은 여러분에게 그리스도를 전파하며 모든 지혜로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권면하고 가르쳐야 합니다. 그 목적은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성숙한 그리스도인들로 세우기 위해서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충만한 복음에 대한 이해가 있으므로 결국 구원의 확신을 누립니다(맥아더).
제가 몇 주 전 대학교 후배 2명하고 온라인 zoom으로 기도 모임을 하면서 그 2명 중 한 명에게 ‘지금 당신에게 제일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라고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러자 그 후배는 자기가 지금 제일 필요한 것은 “assurance”(확신)이라고 답변을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 후배에게 로마서 8장 말씀 중심으로 우리가 확신을 갖기 위해선 제일 먼저 성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하나님의 사랑의 확신이 있어야 한다고 권면했습니다. 그 근거로 로마서 8장 38-39절 말씀을 나눴습니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그런 후 저는 그 후배에게 이 하나님의 사랑의 확신이 있으면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 근거는 로마서 8장 24절 상반절 말씀입니다: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 그런 후 저는 그 후배에게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의 확신과 하나님의 구원의 확신이 있으면 당연히 우리는 하나님의 승리의 확신을 가질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 근거는 로마서 8장 37절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은 이 3가지 확신이 있을 뿐만 아니라 이 확신을 누립니다. 이것에 어떻게 가능한가 하면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충만한 복음에 대한 이해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 이해(understanding)을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 골로새서 2장 2절에서 “확실한 이해”(the full assurance of understanding)라고 말했습니다. 즉,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충만한 복음에 대한 확실한 이해가 있다는 말입니다. 어떻게 그들은 이러한 확실한 이해가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그들에게 말로만 이른 것이 아니라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1장 5절 상반절 말씀입니다: “이는 우리 복음이 너희에게 말로만 이른 것이 아니라 또한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임이라.” 우리에게도 이러한 동일한 은혜와 축복이 있길 기원함.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우리 모두에게 능력과 성령님과 큰 확신으로 임하길 기원합니다. 우리 모두가 매주 수요 예배 때마다 원로 목사님이 전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을 때에 성령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우리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큰 확신이 있길 기원합니다. 우리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이신지 더욱더 깊이 깨달아 알게 되길 기원합니다. 그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기 때문입니다(골2:3).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우리의 구원이나 성화나 영화에 관하여 필요한 모든 풍성한 진리가 있습니다(맥아더). 사도 바울이 골로새의 성도들과 라도디게아의 성도들과 또한 바울의 얼굴을 보지 못한 성도들에게 그리도 힘써 그리스도를 전파한 이유는 그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의 충만한 복음에 대한 확실한 이해가 있으므로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알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1-2절, 현대인의 성경). 그 이유는 그들이 이단의 교묘한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고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굳게 서서 질서 있는 생활을 하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골로새서 2장 4-5절 말씀입니다: “내가 이것을 말함은 아무도 교묘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 이는 내가 육신으로는 떠나 있으나 심령으로는 너희와 함께 있어 너희가 질서 있게 행함과 그리스도를 믿는 너희 믿음이 굳건한 것을 기쁘게 봄이라.”
우리는 이단의 교묘한 속임수에 넘어가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굳게 서서 질서 있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4장 33, 40절 현대인의 성경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라 평화의 하나님이시므로 성도들이 모이는 교회는 모두 그렇게 해야합니다. … 다만 이 모든 것을 적당하고 질서 있게 하십시오.” 그러기 위해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꾸준히 듣고 그 복음에 대한 확실한 이해를 사모해야 합니다.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께서 능력으로 역사하시사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확실한 이해를 주시고 또한 우리에게 큰 확신을 주실 것입니다. 이 큰 확신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굳게 서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해야 합니다(딤후3:14).
마지막 셋째로,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굳게 서 있는 교회는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며 감사가 넘치는 생활을 합니다.
골로새서 2장 6-7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현대인의 성경) “그러므로 여러분은 그리스도 예수님을 주님으로 받아들였으니 계속 그분 안에서 사십시오. 그분 안에 깊이 뿌리를 박고 그분을 기초로 여러분의 인생을 건설하며 가르침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가 넘치는 생활을 하십시오”]. 주님 중심된 삶을 산다는 것이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요일4:8, 16)의 지배(control)를 받으면서, 진리이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요14:6)의 권위(authority)의 말씀인 예수님의 이중 계명(하나님 사랑 및 이웃 사랑)에 순종하므로(마22:37, 39), 성령 하나님의 인도하심 따라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과 교제(fellowship)하는 것입니다(요일 1:3). 그러면 주님 중심된 가정은 어떠한 가정일까요? 주님 중심된 가정은 하나님 아버지의 주권을 인정하며 하나님이 우리 가정을 컨트롤(control)하시고 다스리고 계심을 믿습니다. 또한 주님 중심된 가정은 성자 예수님의 권위(authority) 아래 있으므로 예수님의 이중 계명에 복종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며 이웃을 사랑합니다. 그러므로 주님 중심된 가정은 성령 하나님의 열매인 사랑을 맺으므로 하나님의 임재(presence)를 경험합니다. 이러한 주님 중심된 가정은 가정 천국화를 이뤄갑니다. 주님 중심된 교회는 어떠한 교회일까요? 주님 중심된 교회는 무슨 일이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봄뿐만 아니라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봅니다(빌2:3-4). 또한 주님 중심된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격려하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서로 위로하며 성령님으로 교제하며 서로 친절과 동정을 베풉니다. 주님 중심된 교회는 모든 성도들이 한마음 한 뜻으로 같은 사랑을 가지고 하나가 되어 주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합니다(빌 2:1-2, 현대인의 성경).
오늘 본문 골로새서 2장 6-7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골로새의 성도들과 라오디게아의 성도들과 바울의 얼굴을 보지 못한 성도들에게 이렇게 편지를 썼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현대인의 성경) “그러므로 여러분은 그리스도 예수님을 주님으로 받아들였으니 계속 그분 안에서 사십시오. 그분 안에 깊이 뿌리를 박고 그분을 기초로 여러분의 인생을 건설하며 가르침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가 넘치는 생활을 하십시오”]. 이 말씀을 보면 사도 바울은 골로새의 성도들과 라오디게아의 성도들과 바울의 얼굴을 보지 못한 성도들에게 적어도 4가지를 권면했습니다:
- 바울은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라고 권면했습니다.
골로새서 2장 6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이것을 현대인의 성경으로 말하면, ‘여러분은 그리스도 예수님을 주님으로 받았들였으니 계속 그분 안에서 살라’입니다. 다시 말하면, 바울은 골로새의 성도들과 라오디게아의 성도들과 자기의 얼굴을 보지 못한 성도들이 주님 안에서 행하라고 권면한 것입니다. 여기서 주님 안에서 행하라는 의미는 주님이 우리를 컨트롤(control) 하시고 다스리고 계심을 믿고 주님의 권위(authority) 아래 있으므로 주님의 계명에 순종하므로 하나님의 임재(presence)를 경험하면서 살아가라는 의미입니다. Lightfoot란 학자는 이 권면의 의미를 이렇게 해석했습니다: ‘여러분에게 가르쳐진 대로 여러분의 신념(conviction)과 행동(conduct)이 복음의 교리와 가르침(the doctrines and precepts of the Gospel)에 완전히 일치하도록 하십시오”입니다(Lightfoot). 이 의미를 성경적으로 말한다면 빌립보서 1장 27절 상반절 말씀이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현대인의 성경)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기쁜 소식을 믿는 사람답게 생활하십시오”]. 즉, 주님 안에서 행하라는 말씀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는 의미입니다.
- 바울은 골로새의 성도들과 라오디게아의 성도들과 바울의 얼굴을 보지 못한 성도들에게 ‘주님 안에서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으라’고 권면했습니다.
골로새서 2장 7절 상반절 말씀입니다: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 이것을 현대인의 성경으로 말하면, ‘주님 안에 깊이 뿌리를 박고 그분을 기초로 여러분의 인생을 건설하라’입니다. 마태복음 13장을 예수님의 “씨 뿌리는 비유”가 나옵니다(18절). 그 비유를 보면 씨가 “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에 대해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으로 말미암아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날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20-21절). 이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기쁨이 있다 할지라도 우리 속에 “뿌리가 없”으면 오래 견디지 못하고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날 때 넘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의 씨와 기도의 씨를 우리 마음에 부지런히 뿌려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깊이 뿌리를 박고 그분을 기초로 우리의 인생을 건설하며(골2:7, 현대인의 성경), 싹이 돋아나고, 나무가 무럭무럭 자라나,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귀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씨 및 기도의 씨, 사랑의 씨, 예수 그리스도의 씨를 부지런히 우리 각자의 마음에 뿌려서 하나님의 말씀과 복음과 기도와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뿌리가 우리 마음에 깊이 박혀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과 복음과 기도와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싹이 우리 안에 돋아나 우리 모두가 든든하고 견고한 말씀과 복음과 기도와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나무로 성장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께서 친히 열매를 맺게 해 주실 것입니다(고전3:6).
우리 모두는 지혜로운 영적 건축가가 되어 하나님의 건물이 우리의 기초를 놓아야 합니다. 그 기초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또 들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지 않으면 지금 우리는 기초 없이 맨 땅에 하나님의 건물을 짓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홍수가 밀어닥치면 우리는 곧 무너져 크게 파괴되고 말 것입니다(눅 6:49; 고전3:9-11, 현대인의 성경).
- 바울은 골로새의 성도들과 라오디게아의 성도들과 바울의 얼굴을 보지 못한 성도들에게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라’고 권면했습니다.
(골로새서 2장 7절 중반절 말씀입니다: “…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 이것을 현대인의 성경으로 말하면, ‘가르침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라’입니다. 잠언 12장 3절을 보면 성경은 “사람이 악으로 굳게 서지 못하나니 의인의 뿌리는 움직이지 아니하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람의 뿌리가 악하면 굳게 서 있지 못하고 흔들릴 수밖에 없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의롭다 하심을 받은 우리 의인의 뿌리를 움직이지 않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의인의 뿌리는 움직이지 않습니까? 어떻게 의인은 굳게 서 있을 수 있는 것입니까? 그 비결은 의인은 훈계를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의인은 지식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기에 굳게 서 있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의인이 훈계를 좋아하는 이유는 지식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1절). 그러기에 그는 하나님의 징계도 달게 받습니다. 그 이유는 의인은 의로운 길, 올바른 길로 행하길 원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골로새서 2장 7절에서 사도 바울은 골로새의 성도들과 라오디게아의 성도들과 바울의 얼굴을 보지 못한 성도들에게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라고 권면한 것을 우리는 알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믿음에 굳게 서 있습니까? (고전16:13) 그러므로 과연 우리는 어떠한 어려움과 역경 속에서도 예수님을 믿는 믿음에 견고히 서서 흔들리지 않고 있습니까? 이사야 7장 9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 만일 너희가 굳게 믿지 아니하면 너희는 굳게 서지 못하리라 …”(If you do not stand firm in your faith, you will not stand at all'). 우리가 예수님을 굳게 믿지 않으면 우리는 굳게 서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을 굳게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믿음에 굳게 서 있어야 합니다(고전16:13). 그러기 위해선 우리는 주님의 말씀에 굳게 서 있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저와 여러분의 발걸음을 주님의 말씀에 굳게 세우시길 기원합니다(시119:133).
- 바울은 골로새의 성도들과 라오디게아의 성도들과 바울의 얼굴을 보지 못한 성도들에게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고 권면했습니다.
골로새서 2장 7절 하반절 말씀입니다: “…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이것을 현대인의 성경으로 말하면, ‘감사가 넘치는 생활을 하라’입니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게 “범사에 감사하라”고 권면했습니다(살전5:18). 여기서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은 모든 일에 감사하라는 뜻입니다. 모든 상황이나 모든 환경에 감사하라는 말입니다(주석). 이것이 어떻게 가능할까요? 바로 우리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과거에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을 기억할 때 가능합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하심 통하여 저와 여러분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여 주시고 예수님의 부활하심으로 우리를 의롭다 하셨습니다(롬4:25).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저와 여러분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기에 우리는 범사에 감사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하나님께 기도할 때마다 감사합시다. 하나님께 찬양을 올려드릴 때마다 감사합시다. 사람들에게 말을 할 때마다 감사합시다. 우리 모두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합시다. 교회를 생각하며 기도할 때 주님께서 우리 교회에게 주신 마태복음 16장 18절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주님께서 주님의 교회를 세우고 계심을 믿음으로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가정을 생각하며 기도할 때 주님께서 로마서 8장 28절의 말씀대로 가정의 모든 역경과 고통 등을 통해서도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줄 믿고 감사합시다. 개개인을 생각하며 기도할 때 주님께서는 디모데후서 2장 13절의 말씀대로 비록 우리는 신실하지 못했을지라도 진실하신 주님은 우리 각자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을 신실하게 성취해 나아가고 계심을 믿음으로 감사합니다. 심지어 우리는 감사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믿음으로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할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속에 풍성히 거할 때 가능합니다(골 3:16).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을 알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우리를 제일 사랑하시고, 우리를 제일 잘 아시며 또한 우리에게 제일 좋은 것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을 믿음으로 바라보면서 하나님께 감사 기도드리십시다.
주님께서 주님의 몸 된 승리장로교회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굳게 서 있게 하시길 기원하는,
제임스 김 목사 나눔
(2023년 4월 30일,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믿음의 형제, 자매들을 기억하며 기도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