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자신의 필요성에 대한 갈급함과 긴급함이 있다면  ...

 

 

나아만 장군은 자기 아내의 하녀의 말을 듣고 자기 왕에게 가서 그 소녀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때 시리아(아람) 왕은 나아만 장군에게 “갔다 오너라.  내가 이스라엘 왕에게 드릴 편지도 한 장 써 주겠다”고 말했는데 그 편지 내용은 “내가 이 편지와 함께 내 신하 나아만을 당신에게 보냅니다.  아무쪼록 이 사람의 문둥병을 고쳐 주시기 바랍니다.”  그 편지를 받은 이스라엘 왕은 읽고 나서 자기 옷을 찢으며 “내가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하나님이란 말인가?  어째서 이 사람이 문둥병자를 고치라고 나에게 보냈는가!  시리아 왕이 나에게 시빗거리를 찾는 것이 틀림없다!”라고 오해를 했습니다(열왕기하 5:4-7, 현대인의 성경).  저는 나아만 장군이 자기 아내의 하녀의 말을 들었다는 사실을 묵상할 때 물론 나아만이 자기의 문둥병을 고치고 싶은 간절함도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그보다 저는 하나님께서 나아만의 영혼을 구원하시고자 그 소녀의 말까지도 듣게 하시사 결국에 가서는 엘리사 선지자를 통해 자기의 문둥병도 고침을 받고 더 나아가서 이스라엘 외에는 온 천하에 하나님이 없는 줄을 그가 이제 알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14-15절, 현대인의 성경).  우리도 우리 자신의 필요성에 대한 갈급함과 긴급함이 있다면 가난한 심령과 겸손함 가운데서 우리 주위에 있는 사람의 말에 좀 더 귀를 기울이게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 주위 사람을 통해서도 우리에게 말씀하실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는 시리아(아람) 왕의 편지를 받은 이스라엘 왕의 반응을 묵상할 때 그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오해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가 오해한 이유는 이스라엘 왕은 하나님만 의지하기보다 자기가 하나님도 아닌데 나아만의 문둥병을 고쳐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그러한 생각 속에서 시리아(아람) 왕의 편지를 읽었으니 충분히 그는 시리아 왕이 자기에게 시빗거리를 찾는 줄로 오해한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가 이해하기보다 오해하는 이유는 하나님만 의지하지 않고 우리의 지식을 의지하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참고: 잠언 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