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셉을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과 뜻 (5)

 

 

험악한 나그네의 세월을 130년 보내었던 요셉의 아버지 야곱(창세기 47:8-9),

애굽 땅에서 17년을 거주하다가 그의 나이 147세가 되어 죽을 날이 가까왔을 때(28-29절)

그는 요셉에게 자기를 “애굽에서 메어다가 조상의 묘지에 장사하라”(29-30절)고 말합니다.

야곱은 병들었을 때 요셉의 두 아들인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축복한 후(48장) 자기 아들들을 불러 유언을 한후 죽습니다(49장).

요셉은 아버지 야곱에게 맹세한대로 애굽 왕 바로에게 허락을 받고

아버지 야곱을 가나안 땅에 있는 묘실에 장사합니다(49:4-14).

 

아버지를 위하여 7일 동안 애곡하였던 요셉(50:10)은

아버지를 장사한 후 자기 형제들과 함께 애굽으로 돌아왔습니다(14절).

그런데 요셉의 형제들은 아버지 야곱이 죽었음을 보고 요셉이 “혹시” 자기를을 미워하여 자기들이 행한 모든 악을 요셉이 다 갚을까봐(15절) 두려워하였습니다(19, 21절).

그래서 그들은 요셉에게 사람을 보내어 이렇게 말을 전합니다:

‘당신의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에 당신에게 이런 말을 전하라고 우리에게 지시하셨습니다. 네 형들이 너에게 악한 짓을 했을지라도 이제 너는 그들의 잘못을 용서해 주어라. 그러니 이제 당신도 당신 아버지의 하나님의 종들인 우리를 용서해 주십시오”(16-17절, 현대인의 성경).

그 전갈을 받은 요셉은 울었습니다(Joseph wept)(17절).  예수님도 우셨는데 …(Jesus wept) (요11:35).

 

왜 요셉은 울었을까요?  왜 그는 형제들의 전갈을 받고 울었을까요?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그런 명령을 하신 적이 없는데 형제들이 말을 만들어 그렇께까지 거짓말하는 것을 생각하니 안타까와서 울었을까요?

자기를 두려워하는 형제들을 생각하니 불쌍해서 울었을까요?

이미 자기는 형제들을 마음으로 다 용서했는데 용서를 구하는 형제들을 생각하니 슬퍼서 울었을까요?

아버지 야곱을 위하여 7일 동안 애곡하였던 요셉은 그의 형제들로 인하여 다시금 울었습니다.

회개의 눈물도 흘리지 않았던 형제들을 생각하면서 요셉은 울었습니다.

 

우리는 회개의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

우리는 형제, 자매를 미워하고 시기한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는 형제, 자매로 하여금 큰 고통을 겪게한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는 형제, 자매와 화목하게 지내지 않는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는 부모님의 마음을 심히 아프게 한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범하고 있는 큰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는 용서의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

우리는 형제, 자매를 용서해야 합니다.

우리는 부모님을 용서해야 합니다.

 

요셉은 이미 그의 형제들을 용서했습니다.

그랬기에 그는 형제들이 “또 친히 와서 요셉 앞에 엎드려” “우리는 당신의 종들이니이다”라고 말하였을 때(18절) “그들에게”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습니다(19-21절).

어떻게 요셉은 그의 형제들을 용서할 수 있었을까요?

그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았기 때문입니다(시편 34:8).

요셉은 그의 형제들이 자기를 해하려 하였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시므로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았기에

그는 형제들을 진정으로 용서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용서입니다.

진정한 용서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볼 때에 가능합니다.

비록 형제, 자매(부모)가 나를 의도적으로 괴롭히고 나에게 상처를 주며 나로 하여금 수 없이 눈물을 흘리게 했다 할찌라도

하나님께서 그 모든 것을 합력하여 나에게 선을 이루어 나아가셨을 때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본 우리는 우리 형제, 자매(부모)를 용서할 수가 있습니다.

 

진정한 용서에는 소극적 용서(passive forgiveness)와 적극적 용서(active forgiveness)가 있습니다.

 

소극적 용서는

더 이상 미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적극적 용서는

이전 보다 더욱더 사랑하는 것입니다.

공급하는 것입니다.

베푸는 것입니다.

간곡한 말로 위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적극적으로 용서해 주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에게 영원한 사랑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영원한 소망을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천국 시민권을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위로의 성령님을 보내주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를 보배롭고 존귀한 자녀로 삼아 주셨습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