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돌질 하는 이세벨

 

 

남편의 마음에 무슨 근심이 있어 식사를 안하고 있는지 물어보았더니(왕상21:4,5)

고작 이스르엘 사람 나봇이 포도원을 자기에게 주지 않겠다는 것 때문임을 알고(6절)

왕후 이세벨은 아합 왕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왕이 지금 이스라엘 나라를 다스리시나이까

[“이래서야 어떻게 이스라엘 왕으로 행세할 수 있겠습니까?” (현대인의 성경)] 

일어나 식사를 하시고 마음을 즐겁게 하소서 내가 이스라엘 사람 나봇의 포도원을 왕께 드리리이다”(7절).

 

그리고는 그녀는 “아합의 이름으로 편지들을 쓰고 그 인을 치고” 나봇이 살고 있는 성읍의 장로와 귀족들에게 보냅니다(8절).  그 편지 내용의 핵심은 나봇을 모함하여 ‘그가 하나님과 왕을 저주하였다’ 하여 나봇을 돌려 쳐 죽이라는 것이었습니다(9-10절). 

참으로 “술수”가 많은(왕하9:22) 간악한 여인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녀의 편지를 받은 그 성읍에 사는 장로와 귀족들은 “이세벨의 지시, 곧 그(녀)가 자기들에게 보낸 편지에 쓴 대로 하여”(왕상21:11) 결국 나봇은 성읍 밖으로 끌려 나가 돌로 쳐죽임을 당합니다(13절).

 

다윗이 요압에게 보낸 편지가 생각납니다. 

유부녀 밧세바와 동침하여 임신케 한 사실을(삼하11:2-5) 두 번이나 덮으려고 시도했다가(8-13절) 안되닌까 결국에는 편지를 써서 밧세바의 남편인 충성된 군인 우리아의 손에 그 편지를 들려 요압에게 보냈습니다(14절).  그 편지 내용의 핵심은 “너희가 우리아를 맹렬한 싸움에 앞세워 두고 너희는 뒤로 물러가서 그로 맞아 죽게 하라”였습니다(15절). 

요압 장군은 다윗의 명령대로 행하여 결국 우리아가 죽습니다(17절).

 

우리는 “그리스도의 편지”인데(고후3:3),

우리는 그리스도의 기쁜 소식(복음)을 전하는 자들인데,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인데(2:15),

우리는 예수님처럼 우리 자신을 버리고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데(엡5:2),

아합처럼 이웃의 소유를 탐하던지(눅11:39, 마23:25, 민11:4, 고전5:11, 출20:17, 엡5:3),

이세벨처럼 남편의 (혹은 자신의?) 탐심을 충족시켜주고자 아무 죄 없는 사람을 모함하여(딤전3:11, 딤후3:3) 억울한 누명을 씌우는 악한 죄(약5:6, 사29:21현대인의 성경)까지 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결국 이세벨은 자기의 남편에게 약속한 것처럼(왕상21:7) 아합이 원하는 나봇의 포도원을 차지하게 합니다(15절).  그녀는 나봇을 죽여서라도(14, 15, 16절) 그의 포도원을 뺴앗아 아합에게 준 것입니다.

그녀가 바로 아합을 배후조정하는 사람입니다.

그녀가 바로 아합을 충동하여 그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하게 한 자입니다(25절).

그녀가 바로 아합으로 하여금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아모리 사람의 모든 행함 같이 우상에게 복종하여 심히 가증하게 행하”게 만든 사람입니다(26절).

그러한 이세벨에게 임한 하나님의 말씀은 이러하였습니다:

“개들이 이스르엘 성읍 곁에서 이세벨을 먹을지라”(23절).

 

사탄은 충동합니다(대상21:1).  그는 심지어 하나님도 충동합니다(욥2:3).

그래서 예수님을 대적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대적하는 사단의 사람들도

지금도 교회 안에서도 모인 교인들을 “충동”질 합니다(행21:27, 14:19, 대상21:1). 

그러므로 그들은 교회 안에서조차 “소동”을 일으키며(행21:30), “소문”(악성루머)을 퍼트리며(31절) 결국에는 “폭행”(35절)까지 합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교회에서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