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마음에 드는 기도

 

 

“솔로몬이 이것을 구하매 그 말씀이 주의 마음에 든지라” (열왕기상 3장 10절, 개역개정)

[“솔로몬이 이것을 구하매 그 말씀이 주의 마음에 맞은지라”(개역한글)].

 

 

            오늘은 저희 집 막둥이인 예은이의 생일입니다.  그래서 저는 지난 주에 예은이에게 생일 선물로 무엇을 원하는지를 물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예은이는 저에게 “킨들 파이어”(kindle fire)를 원한다고 말해주었습니다.  그것을 원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물었더니 예은이는 킨들 팔이어가 있으면 그것으로 책을 읽을 수도 있다고 말하면서 더불어 자기가 그것으로 게임도 하고 싶다고 저에게 솔직히 말했습니다. ㅎㅎ  (그냥 아빠 듣기 좋게 ‘책을 읽으려구요’라고만 말해도 되는데 예은이는 솔직히 킨들 파이어로 게임도 놀고 싶다고 말해주었음).  그래서 저는 예은이에게 ‘너가 얼마나 그 킨들 파이어를 원하는냐?  1번에서 10번까지(1은 거의 원하지 않는다 에서 10은 너무 너무 원한다) 너가 그것을 얼마나 원하는지 말해보라’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예은이는 좀 고민하는 듯 뜸을 드리더니 저에게 “6”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예은이는 저에게 왜 자기가 “6”이라고 말했는지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저는 예은이의 말을 들으면서 속으로 아이가 솔직하게 말해주어서 고마왔습니다.  그 날 밤 저는 제 아내하고 예은이의 생일 선물에 대해서 대화를 나눴습니다.  그랬더니 아내는 예은이가 원하는(want) 킨들 파이어를 사주기 보다 예은이가 필요한(need) 핸드폰을 계통해 주자고 저에게 제안하였습니다.  안그래도 쓰던 전화기가 있었고 예은이도 이젠 오빠, 언니처럼 핸드폰이 있어야 나이와 상황도 된 것 같아 저희 부부는 예은이의 생일 선물을 핸드폰 계통해주기로 결정했습니다[솔직히 제 마음은 예은이가 원하는 킨들 파이어더 사주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아내가 ‘아니오’(No)했길래 … ㅋㅋ)].

 

            여기서 우리는 우리가 아버지 하나님께 구할 때에 좀 생각해 봐야 할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내가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할 때에 그 기도 내용이 ‘내가 원하는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보실 때 나에게 필요한 것인가’입니다.  물론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께 원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 무엇인지를 잘 알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께서 보실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잘 모르고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다 보면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는 잘 모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 입장에서는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하기에 그것을 원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그것이 하나님 아버지기 보시기에는 필요한 것이 아닐 수가 있습니다.  그만큼 우리가 기도함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기도의 대상이신 하나님 아버지와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가는 것입니다.  동시에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할 때에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맞는) 기도를 드리는 것입니다.  달리 말한다면,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에 드는 기도를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열왕기상 3장 10절을 보면 솔로몬의 기도가 주님의 마음에 들었다(맞았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솔로몬의 아버지인 다윗은 ‘주님에 마음에 합한 사람’(행13:22)이었는데 그의 아들인 솔로몬은 ‘주님의 마음에 드는 기도’(왕상3:10)를 드렸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과연 주님의 마음에 드는 기도는 어떠한 기도였을까요?  솔로몬 왕이 주님께 어떻게 기도를 드렸길래 그의 기도가 주님의 마음에 들었을까요?  한 3가지로 묵상해 보았습니다:

 

            첫째로, 주님의 마음에 드는 기도는 주님께서 베풀어 주신 큰 은혜를 기억하며 드리는 기도입니다.

 

            성경 열왕기상 3장 6절을 보십시오: “솔로몬이 이르되 주의 종 내 아버지 다윗이 성실과 공의와 정직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주 앞에서 행하므로 주께서 그에게 큰 은혜를 베푸셨고 주께서 또 그를 위하여 이 큰 은혜를 항상 주사 오늘과 같이 그의 자리에 앉을 아들을 그에게 주셨나이다”.  하나니을 사랑하는 솔로몬이(3절) 제사하러 기브온에 가서 “그 제단에 일천 번제를 드렸”을 때(4절) 밤에 하나님께서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셔서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5절).  그 때 솔로몬은  하나님께서 자기 아버지인 다윗에게 베풀어 주신 “큰 은혜”(6절에 두 번 반복해서 나옴)를 하나님께 말하였습니다.  즉, 그는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베풀어 주신 큰 은혜를 기억하며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기도드리되 흥미로운 점은 솔로몬은 하나님께서 자기 아버지인 다윗에게 베풀어 주신 큰 은혜를 기억하면서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다는 사실입니다(6절).  그는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베풀어 주신 큰 은혜를 기억하면서 하나님께 기도를 드릴 수 있었을 텐데 그 보다 하나님께서 자기 아버지인 다윗에게 베풀어 주신 큰 은혜를 기억하면서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매 주일 중보기도 시간에 하나님께 찬양을 드린 후 먼저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리자고 성도님들에게 권면합니다.  저는 그 분들에게 하나님께서 지난 날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를 기억하고 하나님께 함께 감사 기도를 드리자고 권면한 후 함께 감사 기도를 드립니다.  제가 그리하는 이유는 우리가 어떠한 상황에 놓여 있던지 간에 초점을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예수님에게 맞춰서 “범사에 감사하라”(살전5:18)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가 출애굽 당시 홍해 바다 앞에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갇한 바 되었다”(출14:3)고 생각하여 주위 상황만을 보면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리지 못할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두려움 속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으면서 사람을 원망할 것입니다(10-12절).  심지어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하나님까지도 원망할 수 있을 것입니다(민21:5).  그러나 우리는 모세처럼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합니다(출14:15).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주위 상황을 바라보기 보다 그 모든 상황을 다스리시고 그러한 갇힌바 된 상황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구원의 하나님을 믿음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특히 우리는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예수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는 “주 달려 죽은 십자가”(새찬송가 149장)를 생각할 때 우리는 “온 세상 만물 가져도 주 은혜 못다 갚”습니다(4절).  “놀라운 사랑 받은 나 몸으로 제물 삼”을 뿐만 아니라(4절)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시100:4, 골1:3, 4:2, 살전1:2, 눅22:19, 빌4:6).  그 이유는 우리에게는 범사에 그리고 평생에 아니 더 나아가서 영원히 감사할 조건이신 주님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을 생각하면서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리되 특히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큰 은혜 뿐만 아니라 우리 부모님에게(또한 온 집안에게)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큰 은혜를 기억하며서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의 마음에 드는(맞는)기도입니다.

 

        둘째로, 주님의 마음에 드는 기도는 주님 앞에서 겸손히 드리는 기도입니다.

 

성경 열왕기상 3장 7절을 보십시오: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종으로 종의 아버지 다윗을 대신하여 왕이 되게 하셨사오나 종은 작은 아이라 출입할 줄을 알지 못하고”.  솔로몬은 하나님께서 자기 아버지 다윗에게 베풀어 주신 큰 은혜를 기억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중에 자기가 하나님의 큰 은혜로 다윗의 위에 앉게 되어 왕이 되었음을 인정하였습니다(6, 7절상).  그러면서 그는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종은 작은 아이라 출입할 줄을 알지 못하고”(7절하).  솔로몬은 주님께서 택하신 “큰 백성”(8절)의 수효가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은데 그 많은 백성들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한다는 것이 감당할 수가 없었습니다(9절).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 겸손히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는 자기 자신을 가리켜 “작은 아이”라고 말하면서 하나님께 겸손히 기도를 드렸습니다. 

 

저는 솔로몬의 이 겸손한 기도를 묵상할 때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었던 사울이 생각났습니다.  그가 왕이 되기 이전에는 겸손했었습니다.  사무엘은 사울 왕에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왕이 스스로 작게 여길 그 때에”(삼상15:17).  즉, 사울은 왕이 되기 전에 스스로 작게 여겼었습니다.  그는 자기를 기름부어 왕으로 삼고자 하는 사무엘에게 이렇게 말을 했었습니다: “나는 이스라엘 지파의 가장 작은 지파 베냐민 사람이 아니니이까 또 나의 가족은 베냐민 지파 모든 가족 중에 가장 미약하지 아니하니이까” (9:21).  “가장 작은” 그리고 “가작 미약”[“가장 보잘 것 없는”(현대인의 성경)]하다는 말을 했던 사울이 왕이 된 후 아말렉 전쟁에서 승리하닌까 “자기를 위하여 기념비를 세우고”(15:12) 하나님의 명령인 “지금 가서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라(3절)는 말씀에 불순종합니다( 9절).  그러므로 사무엘이 책망을 하닌까 사울은 변명을 하다가 결국에는 “내가 범죄하였”다고 고백하면서도 자기를 “내 백성의 장로들 앞과 이스라엘 앞에서 나는 높”여 달라고 요청합니다(30절).  이렇게 사울 왕은 교만해졌습니다.  시작은 스스로 작게 여겼었는데 나중은 스스로 자신을 높였습니다.  그는 변질한 것입니다.  저는 솔로몬 왕도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시작은  “종은 작은 아이라”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립니다(왕상3:7).  그러나 그가 늙어서는 왕비들이 그의 마음을 돌이켜 다른 신들을 좇습니다(11:4).  결국 그렇게 지혜로왔던 솔로몬 왕도 나이 늙어서는 우상 숭배를 하며 하나님께 범죄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일찌기 두 번이나 나타나 “다른 신을 좇지 말라”고 말씀하셨지만(9-10절) 솔로몬 왕은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지 않았습니다(10절).  왜 이 지경까지 온 것일까요?  왜 사울이나 솔로몬이나 시작은 겸손했는데 나중은 교만해져서 하나님께 범죄한 것일까요?  왜 많은 우리 목사들이 시작은 광야의 외치는 소리였다가 도시 한복판에서 교회가 커지면 하나님께 죄를 범하는 것일까요?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저는 그 이유를 누가복음 10장 42절에서 찾아보았습니다: “그러나 꼭 필요한 것은 한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편을 택했으니 아무에게도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현대인의 성경).  여기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꼭 필요한 것 한가지, 즉 마리아가 택한 “좋은 편”이 없을 때 우리는 겸손했다가도 교만해질 수가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마리아처럼 “주님 앞에 앉아 말씀을 듣고 있”지(39절) 않으면 우리는 변질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 앞에 앉아 주님의 말씀을 귀담하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능력이 많으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춰야 합니다(벧전5:6, 현대인의 성경).  그리고 우리는 겸손히 주님께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이러한 기도가 바로 주님의 마음에 드는(맞는) 기도입니다.

 

        마지막 셋째로, 주님의 마음에 드는 기도는 주님께 지혜를 구하는 기도입니다.

 

성경 열왕기상 3장 11절을 보십시오: “이에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것을 구하도다 자기를 위하여 장수하기를 구하지 아니하며 부도 구하지 아니하며 자기 원수의 생명을 멸하기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송사를 듣고 분별하는 지혜를 구하였으니”.  하나님께서 꿈에 나타나 솔로몬에게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5절)고 말씀하셨을 때에 솔로몬은 하나님께 “지혜로운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9절, 현대인의 성경)라고 구하였습니다.  충분히 그는 “자기를 위하여 장수하기”를 구할 수도 있었고, “부”나 “자기 원수의 생명을 멸하기도” 구할 수 있었습니다(11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솔로몬은 하나님께 “송사를 듣고 분별하는 지혜”를 구하였습니다(11절).  왜 그는 그리했을까요?  그 이유는 솔로몬은 하나님의 “큰 은혜”로 아버지 다윗을 이어 왕위에 앉게 되었는데(6절) 자기는 “작은 아이”이고(7절) 주님께서 택하신 이스라엘 백성은 “큰 백성”이고(8절) 셀 수도 없는 그 많은 하나님의 백성(자기 백성이 아니라)을(8절) 재판하기 위해서 지혜로운 마음이 절실히 필요한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9절).  솔로몬은 자기 아버지 다윗이 “성실과 공의와 정직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주 앞에서 행하”였던 것을 알았기에(6절) 자기도 아버지 다윗처럼 주님의 백성을 성실과 공의와 정직한 마음으로 주님과 주님 앞에서 행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아버지 다윗이 살아생전에 자기를 위하여 기도한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성경 역대상 22장 12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네게 지혜와 총명을 주사 네게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하시고 네 하나님 여호와의 율법을 지키게 하시기를 더욱 원하노라.”  아버지 다윗은 자신의 아들인 솔로몬에게 지혜와 총명을 주시길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그 이유는 다윗은 솔로몬이 자기를 이어 왕이 되어 이스라엘 나라를 잘 다스리길 원했기 때문입니다.  이 기도를 받은 (받고 자라난?) 솔로몬은 그래서 하나님께서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왕상3:6)고 말씀하셨을 때에 솔로몬은 “지혜로운 마음”(9절), “송사를 듣고 분별하는 지혜”(11절)를 하나님께 구하였던 것입니다. 

 

제 한국 이름은 “김지원”입니다.  그 이름의 뜻은 “지혜” “지”짜의 “으뜸” “원”짜라고 저는 알고 있습니다.  저의 아버님이 저에게 지혜의 으뜸이 되라고 그 이름을 져주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버님은 저를 위하여 기도하실 때 다니엘 12장 3절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시는 것 같습니다: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  그런데 저는 신앙생활을 하면 할 수록 제 자신이 얼마나 지혜가 부족한지를 점점 더 깨닫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한 7-8년 전부터인가 매주 수요기도회 때마다 성경에 있는 “지혜의 책”을 묵상해 오고 있습니다.  몇년 동안 시편과 전도서 말씀을 다 묵상하였고 지금은 잠언을 거의 다 묵상해 가고 있습니다.  물론 지혜의 책 말씀을 묵상해 오면서 저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인 야고보서 1장 5절을 붙잡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습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서 제가 지혜가 부족하여 하나님께 지혜를 구할 때에 분명히 주신다고 약속하셨기에 저는 그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진실하시고 신실하신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저는 저희 교회 식구들과 함께 수요기도회 때마나 지혜의 책을 묵상하면서 하나님께 지혜를 함께 구할 것은 권면하고 있습니다.  진정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을 점점 더 절실히 깨닫게 된다면 우리 또한 솔로몬 처럼 하나님께서 꿈 속에서(?) 우리에게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왕상 3:6)고 물으실 때에 지혜를 구할 것입니다.  그러나 질문은 왜 우리가 하나님께 지헤를 구하는 것이냐 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는 목적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지혜가 부족하여 지혜가 필요하기에 하나님께 구하는 것이겠지만 그 지혜를 얻어서 무엇을 하려고 하는 것이냐 라는 질문입니다.  솔로몬 왕의 경우는 그는 주님의 백성(자기 백성이라 말하지 않았음)을 성실과 공의와 정직한 마음으로(6절) 다스리며 그 주님의 백성을 재판할 때 선과 악을 분별하기 위해서였습니다(9절).  즉, 그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라기 보다 주님의 백성을 위하여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였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제가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는 목적이 저 자신을 위해서이기보다 제가 섬기고 있는 주님의 몸된 교회 식구들을 위해서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목적을 가지고 저는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는데 헌신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하나님의 종이 올바르게 잘 지도하기 위해서 하나님께 지혜를 구합니다.  그러므로 저 또한 솔로몬처럼 주님의 마음에 드는 기도를 하나님께 드리고 싶습니다.   

 

말씀 묵상을 맺고자 합니다.  저는 다윗처럼 주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행13:22).  또한 저는 솔로몬처럼 주님의 마음에 드는 기도를 드리고 싶습니다(왕상3:10).  그러기 위해서 저는 오늘부터 저의 양가 부모님과 할아버지, 할머님 등을 생각하면서 하나님께서 그 분들에게 베풀어 주신 큰 은혜와 저에게도 베풀어주신 큰 은혜를 기억하면서 하나님께 기도드리고자 합니다.  또한 저는 예수님의 겸손한 마음을 본받다 주님 앞에서 제 자신을 스스로 낮추어 하나님께 겸손히 기도를 드리고자 합니다.  사울과 솔로몬처럼 나중에 변질되고 싶지 않습니다.  시작부터 끝까지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겸손히 살다가 주님의 품안에 앉기고 싶습니다.  그래서 저는 더욱더 하나님 앞에서 겸손히 무릎을 끓고 기도하고자 합니다.  그러한 가운데 제 자신의 지혜 부족함을 더욱더 깨달아 알아 지혜를 구하는 자에게 후히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께 계속해서 지헤를 구하고자 합니다.  주님의 마음에 드는 기도를 드리는 평생 기도자(시116:2)로 세움 받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주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하는 기도를 드리고 싶은(히11:6),

 

 

제임스 김 목사 나눔

(2015년 4월 16일, 이 아빠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막둥이 예은이의 생일을 축하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