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께 간구할 마음이 생겼습니다.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주의 종의 귀를 여시고 이르시기를 내가 너를 위하여 집을 세우리라 하셨으므로 주의 종이 이 기도로 주께 간구할 마음이 생겼나이다” (사무엘하 7장 27절).

 

 

            지난 부활주일 오전 10시 목양실에서 입교(Confirmation)할 두 여학생 자매들의 당회 인터뷰가 있었습니다.  교회 여전도사님과 7번 만나서 입교 준비 성경공부를 마친 이 두 자매들 중 한 자매는 저희 집 막둥이 예은(12살)이였고 또 다른 자매는 저희 집 첫째 딸 예리하고 친한 친구 세미(14살)였습니다.  저는 인터뷰 도중 그 두 자매들에게 예수님을 믿는 가정에서 태어난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얘기해주었습니다.  제가 그 자매들 나이 때 누군가 저에게 ‘네 아버지는 무엇을 하시느냐?’라는 식을 저에게 질문했을 때 저는 그에게 “painter”(페인트 칠하는 사람)이라고 말한 기억이 납니다.  제가 그리 답변한 이유는 저는 그 때까지만 해도 제 아버님이 목사님(pastor)이란 사실일 부끄러웠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신앙생활을 하면 할 수록 예수님을 믿는 가정에서 태어났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요 축복인지를 깨달아 가고 있기에 저는 그 두 자매들에게 그러한 제 마음을 나눴습니다. 

 

            오늘 본문 사무엘하 7정 27절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다윗과 언약을 맺으신 후(8-16절)에 다윗이 하나님께 간구한 기도(18-29절) 내용 중에 한 성경구절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 한 성경구절을 묵상할 때 이런 질문들을 던지게 되었습니다: ‘왜 다윗은 주님께 간구할 마음이 생긴 것일까?’  하나님께서 그에게 언약을 맺으시면서 축복의 약속을 하셨기 때문이다.  그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이 무엇이었길래 다윗은 주님께 간구할 마음이 생긴 것일까?’.  저는 이런 질문들을 던지다가 결국에는 다시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하신 축복의 약속 말씀을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말씀 묵상 속에서 두 가지 단어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그 두 가지 단어란 바로 “견고”(12, 13, 16, 26절)와 “은총”(15절)입니다. 

 

첫째로, 제가 “견고”란 단어에 초점을 맞추게 된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 단어를 4번이나 반복하셔서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특히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내가 너를 위하여 집을 세우리라”(27절)고 약속하셨을 때에 그 집을 견고하게 하신다는 말씀이 제 마음에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집”을 세우시겠다고 약속하셨을 때 그 “집”이란 “이스라엘 왕국”(27절, 현대인의 성경)을 가리키신 것이지만 저는 그 말씀을 특히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가정에 적용을 해보았습니다.  그리할 때 지금 얼마나 많은 우리 육신의 가정들이 마치 모래 위에 세운 집처럼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한지(마7:26-27)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므로 자기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들(24절)이 되야 할텐데라는 생각 속에서 저는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약속하신 ‘견고하게 하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이 마음에 다가왔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우리의 집을 견고히 세우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삼하7:27)을 묵상할 때 저는 주님께 간구할 마음이 생겼습니다.  뿐만 아니라 저는 주님께서 저희 교회에 주신 마태복음 16장 18절 “… 내가 … 내 교회를 세우리니 …”(I will build my church)라는 약속의 말씀을 생각할 때 주님께 간구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주님, 주님의 몸된 교회를 주님께서 세우시겠다고 약속하셨사오니 주님의 뜻대로, 주님의 방법대로, 주님의 때에 그 약속의 말씀을 성취하시사 주님의 교회를 영광스러운 교회(엡5:27)로 세워주시옵소서.’   주님의 영적인 가정인 교회 뿐만  아니라 저는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우리의 집을 견고히 세우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삼하7:27)을 생각할 때 주님께 간구할 마음이 있습니다: ‘주님, 주님께서 우리 육신의 가정들을 반석 위에 견고히 세워주시사 어떠한 역경과 유혹이 있을찌라도 흔들리지 않고 믿음의 가정으로 가정이 깨지는 이 시대에 예수 그리스도의 가정 증인 공동체로 세워주시옵소서.’  주님께서 저의 기도를 들어주시길 간구합니다.

 

            둘째로, 제가 “은총”이란 단어에 초점을 맞추게 된 이유는 사무엘하 7장 15절 말씀이 좀 이해가 안되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네 앞에서 물러나게 한 사울에게서 내 은총을 빼앗은 것처럼 그에게서 빼앗지는 아니하리라”.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좀 이해가 안되었던 점은 하나님께서 사울에게는 하나님의 은총을 빼앗으셨는데[거두셨는데(현대인의 성경)] 왜 “그에게서”(15절)는 하나님의 은총을 빼앗지는 않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그”란 “네 씨”(12절), 즉 다윗의 자손이 솔로몬 왕을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만일 그게 사실이라면 우리가 사울 왕과 솔로몬 왕의 범죄를 비교할 때 제 개인적인 생각은 사울 왕보다 솔로몬 왕이 더 큰 죄를 범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그리 생각하는 이유는 사울 왕은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하나님께서 그에게 “지금 가서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되 남녀와 소아와 젖 먹는 아이와 우양과 낙타와 나귀를 죽이라”(삼상15:3, 18)고 명령하셨는데 그 명령에 불순종한 반면(9, 11, 19절)에 솔로몬 왕은 “바로의 딸 외에 이방의 많은 여인을 사랑하”므로(왕상11:1)[이것은 신명기 17장 17절의 말씀(“왕에게 아내를 많이 두어 그의 마음을 미혹되게 하지” 말라는 말씀)에 불순종한 죄임] 그가 “나이가 많을 때에 그의 여인들이 그의 마음을 돌려 다른 신들을 따르게 하였으므로” 결국 우상 숭배의 죄까지도 범했습니다(4-5절).  제가 볼 때에는 사울 왕보다 오히려 솔로몬 왕이 더 큰 죄를 범한 것 같은데 왜 하나님께서는 “사울에게서는 내 은총을 빼앗은 것처럼 그(솔로몬)에게서는 빼앗지는 아니하”셨는지(삼상7:15) 잘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사울에게서 하나님의 은총을 빼앗으신 것처럼 솔로몬에게서는 그 은총을 더욱더 빼앗지 않으신 것일까요?  저는 이것이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이다’ 라고 밖에 생각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주주권적인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하나님께 은총을 입은 다윗은 하나님께 이렇게 간구합니다: “… 주 여호와여 나는 누구이오며 내 집은 무엇이기에 나를 여기까지 이르게 하셨나이까  .,..  주 여호와는 주의 종을 아시오니 다윗이 다시 주께 무슨 말씀을 하오리이까”(18, 20절).  다윗은 하나님의 크신 은혜로 말미암아 말문이 막혔습니다.  찬송가 “아 하나님의 은혜로”의 1절 가사가 생각납니다: “아 하나님의 은혜로 이 쓸데 없는자 왜 구속하여 주는지 난 알 수 없도다”(새찬송가 310장).  하나님의 은총의 약속의 말씀을 받은 다윗은 “요나단으로 말미암아” 사울의 집에 아직도 남은 사람(9:1)인 요나단의 다리 저는 아들인(3절) 므비보셋(5절)에게 은총을 베풉니다(1, 7절).  다윗은 므비보셋에게 그의 할아버지인 사울의 모든 밭을 다 그에게 도로 주고 또한 그로 하여금 항상 다윗의 상에서 떡을 먹게 하였습니다(7, 11, 13절).  저는 다윗이 두 발 다 저는 요나단의 아들인 므비보셋으로 하여금 왕자 중 하나처럼 항상 자기 상에서 먹게한 것(11, 13절)이 얼마나 그에게 큰 은총을 베푼 것이지를 사무엘하 5장 8절 하반절을 말씀을 겸하여 묵상할 때 조금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 날에 다윗이 이르기를 누구든지 여부스 사람을 치거든 물 긷는 데로 올라가서 다윗의 마음에 미워하는 다리 저는 사람과 맹인을 치라 하였으므로 속담이 되어 이르기를 맹인과 다리 저는 사람은 집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더라”.  분명히 이 말씀을 보면 다윗의 마음은 “다리 저는 사람과 맹인”을 미워하였는데 다윗은 두 발을 다 저는 므비보셋으로 하여금 “왕자 중 하나처럼”(9:11) “항상 왕의 상에서 먹”게하였다(13절)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묵상할 때 저는 다윗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총(7:15)으로 말미암아 요나단의 아들인 므비보셋에게도 은총을 베풀었다(9:1, 7)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요나단이 다윗을 자기 생명 같이 사랑하여 그와 더불어 언약을 맺었고(삼사18:3, 20:16-17) 또한 다윗은 자신을 자기 생명처럼 사랑해준 요나단의 “사랑함이 기이하여 여인의사랑보다 더하였”(삼하1:26)기에 그와의 맺은 언약의 책임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충실히 감당하고자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에게 은총을 베풀었겠지만 저는 다윗이 그리한 긍극적인 이유는 그는 하나님께서 자기와 맺으신 언약(다윗의 언약) 가운데서 이미 베풀어주셨고(삼하7:8-9) 또한 장차 베풀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그 큰(21절) 은총(15절)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랬기에 저는 다윗은 요나단의 아들인 두 다리 저는 므비보셋에게 은총을 베풀어 줄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은총을 받은 다윗이 사랑하는 요나단의 아들인 므비보셋에게 은총을 베풀어 주는 모습을 생각할 때 저는 주님께 이렇게 간구할 마음이 생겼습니다: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중한 죄짐 벗고보니 슬픔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  할렐루야 찬양하세 내 모든 죄 사함받고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새찬송가 438장, “내 영혼이 은총입어”, 1절과 후렴).  주님께서 주님의 영적인 가정인 우리 교회가 주님 중심된 우리 육신의 가정에게 은총을 더욱더 베풀어 주시사 이 찬송가를 온 교회 식구들과 가정 식구들이 함께 부르면서 영원한 하늘 나라로 인도함 받을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주님께서 저의 기도를 들어주시길 간구합니다.

 

            말씀 묵상을 맺고자 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우리를 위하여 우리의 집을 견고하게 세우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참고: 삼상7:27).  주님께서는 우리에게서 은총을 빼앗지 아니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15절).  우리 주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런 좋은 약속을 하셨습니다(28절, 현대인의 성경).  이 주님의 말씀은 진실합니다(28절, 현대인의 성경).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진실하시고 좋은 약속의 말씀을 듣고 주님께 간구해야 합니다: “이제 이 종의 집안을 축복하셔서 이 축복이 주 앞에서 영원히 지속되게 하소서.  주 여호와여, 주께서 말씀하셨으므로 이 종의 집안이 주의 축복으로 영원히 복을 누릴 것입니다”(29절, 현대인의 성경).

 

 

 

“주 우리 하나님의 은총을 우리에게 내리게 하사 우리의 손이 행한 일을 우리에게 견고하게 하소서 우리의 손이 행한 일을 견고하게 하소서” (시90:17),

 

 

제임스 김 목사 나눔

(2015년 4월 8일, 주님의 교회와 주님 중심된 가정에게 견고한 은총을 풍족히 베풀어 주시길 주님께 간구하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