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익이 못되고 도리어 해로움이 되는 기독교인의 모임

 

 

“내가 명하는 이 일에 너희를 칭찬하지 아니하나니 이는 너희의 모임이 유익이 못되고 도리어 해로움이라” (고린도전서 11장 17절).

 

 

            저는 개인적으로 기독교인의 단체 모임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제가 그런 모임을 별로 좋아하지 않게 된 이유는 언젠가 이사야 1장 11-14절 말씀을 묵상하다가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에게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the calling of assemblies)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I cannot bear your evil assemblies)(13절)고 말씀하신 것이 제 마음에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대회”이고 “성회”인데 하나님께서 견디지 못하겠다고 하신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악을 행하면서 대회/성회로 모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의 무수한 재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11절), “… 기뻐하지 아니하노라”(11절),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12절),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13절),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14절).  혹시 지금 하나님께서는 우리 기독교인들의 모임을 보시면서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계신 것이 아닐까요?  ‘너희의 무수한 예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내가 기뻐하지 않는다’,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만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했느냐 내 예배당만 밟을 뿐이다’, ‘헛된 예물을 다기 가져오지 마라  내가 가증히 여기고 내가 견딜 수가 없다, ‘내 마음이 너희의 집회와 모임을 싫어한다.  그것이 내게 무엇인 짐이다.  내가 지기에 곤비하다.’  여러분,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께 받쳐지지 않으면서 드려지는 무수한 예물이 하나님께 무슨 유익이 있나요?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예물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그 예물은 하나님 보시기에 헛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가지고 오지 말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주님의 전에 올라와 함께 모여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면서 하나님께 헌금(예물)을 받쳐도 주님의 전을 떠나 세상에 살면서 악을 행하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견딜 수가 없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렇게 우리가 세상에서 악을 행하면서 거룩한 주일 큰 예배당에서 수 많은 기독교인들이 모여서 찬양과 경배를 드리면서 우리가 “은혜”(?)를 많이 받았다고 한들 하나님께 무엇이 유익하겠습니까.  우리에게도 유익이 될 수가 없을 뿐더러 오히려 그런 모임은 우리에게도 해로움이 될 수밖에 없는 모임입니다.

 

            오늘 본문 고린도전서 11장 17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먼저 칭찬을 한 후(2절) 칭찬하지 아니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가 그들에게 칭찬하지 아니하는 것은 바로 그들의 모임이 유익이 못되고 도리어 해로움이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모임이 유익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해가 되기 때문입니다”(17절하, 현대인의 성경).  왜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모임이 유익되지 못하고 오히려 해로움이 되었을까요?  그 이유는 그들이 교회에 모일 때 그들 중에 “분쟁”(divisions)이 있었기 때문입니다(18절).  그 분쟁은 그들 중에 “파당”(differences)으로 말미암았습니다(19절).  그리고 그 “파당”이란 부유한 성도들과 가난한 성도들을 교회가 “분열”(18절, 현대인의 성경)되 있음을 말합니다.  그 당시 “주의 만찬”(20절)은 ‘애찬’(love-feast)과 ‘성만찬’(Eucharist)이 결합된 형태였는데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집에서 형편에 따라 먹을 것을 싸가지고 교회에 모여서 공동 식사를 하면서 교제를 나누었습니다(고후8:14, 참고: 행 2:46).  이런 애찬 후에 성만찬이 행해졌는데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애찬에서부터 교제를 나누지 않았습니다.  즉, 부자 성도들이 가져온 음식을 가난한 성도들과 나눠 먹지 않고 먼저 먹고 취하였습니다(21절).  그러므로 부자 성도들은 가난한 성도들을 부끄럽게 하였고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교회를 업신여겼습니다(22절).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무슨 말을 하랴 너희를 칭찬하랴 이것으로 칭찬하지 않노라”[“내가 여러분에게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여러분을 칭찬하리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나로서는 여러분을 칭찬할 수가 없습니다”(현대인의 성경)](22절하).  그리고 애찬과 성만찬을 일반 식사로 전략시켜 버린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바울은 “그러므로 여러분이 함께 모여서 먹는 그것은 진정한 성찬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20절, 현대인의 성경).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모임은 유익이 못되고 도리어 해로움이 되는 모임이라고 말한 것입니다(17절).  그러한 모임은 주님께 판단을 받을 것이요 “징계”(being disciplined)를 받을 것입니다(32절).  그러므로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주님께 판단과 징계를 받지 않기 위해선 “성찬을 위해 모일 때 서로 기다”리라 고 말하였습니다(33절).  그리고 그들의 모임이 판단 받는 모임이 되지 않기 위하여 누구든지 시장하거든 집에서 먹으라고 말하였습니다(34절).  그밖의 일들은 바울이 언제든지 고린도교회에 갈 때에 바로잡겠다(directions)고 말하였습니다(34절).

 

            저는 개인적으로 히브리서 10장 23-25절 말씀을 좋아합니다: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제가 이 말씀을 좋아하게 된 계기는 대학을 졸업하고 기독교 동문회 모임을 몇번 가졌을 때 이 말씀대로 우리가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주님의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주님 안에서 모이기를 힘써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 그 동문 모임은 모이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모이기를 폐하게 된 것입니다.  어쩌면 그 이유는 서로에게 그리 유익이 못되서 그럴 수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그 모임보다 각자에게 더 유익이 되는 모임이 있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저 경우에는 웨스트민스터 신학교 동문 모임을 참여하고 있습니다.  다 다음주에도 연말 모임이 있습니다.  제가 이리 열심히 동문 모임에 참여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유익된 모임이기 때문입니다.  그 모임에 유익이란 저 같은 경우에는 주님 안에서 한 동역자로서 서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교제를 하는 것입니다.  그 교제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가 있기에 식탁 교제조차도 즐겁습니다.  그러나 제가 참여하고 싶지 않은 모임은 당파를 짓고 분쟁(분열)을 일으키는 모입니다.  차별이 있는 모임, 힘있는 자가 힘없는 자를 업신여기는 모임, 영적 우월감을 가지고 교만하게 나서서 말하고 모임을 컨트롤하려는 모임, 그런 모임은 세상 사람들에게도 판단을 받고 비판을 받을 뿐만 아니라 모임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도조차 판단을 받고 비판을 받습니다.  그런 기독교인의 모임은 유익이 못되고 도리어 해로움이 됩니다.  그런 기독교인의 모임은 없는게 더 낫지 않나 생각합니다.

 

 

주님 안에서 진정한 다이코니아(교제)를 추구하는 모임을 사모하는,

 

제임스 김 목사 나눔

(2014년 12월 5일, 해로움이 되는 기독교인의 큰 모임보다 유익이 되는 작은 모임을 선호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