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지 아니하는 자는 더 잘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결혼하는 자도 잘하거니와 결혼하지 아니하는 자는 더 잘하는 것이니라” (고린도전서 7장 38절).

 

 

            왜 결혼을 해야 하나요?  그렇게 꼭 결혼해야 하는건가요?  이 세상에서는 결혼은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라고 말을 하는가 본데 그냥 혼자 살면 안되는 건가요?  안그래도 요즘 결혼 안하고 혼자사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은데 그냥 혼자 사는 것도 좋지 않나요?  그러면 왜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사는게 좋은 것일까요?

 

            오늘 본문 고린도전서 7장 38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결혼하는 자도 잘하는 것이지만 결혼하지 아니하는 자는 더 잘하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를 생각해 볼 수가 있습니다.

 

            첫째로결혼하는 자도 잘하는 것입니다.

 

            왜 결혼하는 것이 잘하는 것일까요?  오늘 본문 말씀의 문맥인 고린도전서 7장만 보면 우리가 왜 결혼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음행을 피하기 위해서입니다.  고린도전서 7장 2절을 보십시오: “음행을 피하기 위하여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라.”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편지를 써내려가면서 음행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결혼을 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특히 그는 불 같이 타는 정욕을 절제할 수 없으면 결혼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9절).  그 이유는 “너희가 절제 못함으로 말미암아 사탄이 너희를 시험”할 것이기 때문입니다(5절).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결혼하여 남편은 그 아내에 대한 의무를 다하고 아내는 그 남편에게 그렇게 하라고 말한 것입니다(3절).  여기서 바울이 말하고 있는 부부간의 서로의 “의무”는 성적 의무를 가리킵니다.  그 성적 의무를 각자 감당함에 있어서 사도 바울은 아내는 그녀의 남편으로 하여금 자기의 몸을 주장하게 하고 남편 또한 그의 아내로 하여금 자기의 몸을 주장하게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4절).  다시 말하면, 부부가 성적관계를 맺을 때에 아내의 몸은 남편이, 남편의 몸은 아내가 주장하도록 하여 서로 성관계를 맺으라는 것입니다.  그 말은 남편이 원하는 성관계를 아내가 거절하고, 아내가 원하는 성관계를 남편이 거절하지 말라는 뜻도 내포되 있습니다.  서로가 합의하여 성관계를 맺는 것이 부부 관계에서 중요한 이유는 서로에게서 성적 만족을 누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서로 분방하지 말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5절).  만일 부부가 한 방을 쓰지 않고 각각 방을 따로 쓰므로 서로의 성적 의무를 하지 않고 서로의 몸을 거절할 경우에는 정욕을 절제하지 못하고 사탄의 유혹에 넘어갈 수 있기에 바울은 “다만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해서 합의상 얼마 동안은 (분방을) 하되 다시 합하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5절). 

 

우리가 결혼해야 하는 이유 중 하나는 성적 부도덕 행위를 회피하기 위해서입니다(2-3절)[또 다른 이유는 돕는 교우관계의 필요(창2:18-24, 고전11:9)와 경건한 자녀를 얻기 위해서(말2:15)임].  특히 불 같이 타오르는 정욕을 절제할 수 없는 이들은 속히 결혼을 해야 합니다.  이미 결혼한 이들은 서로 부부에 대한 의무를 다하여 사탄으로 하여금 시험하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부부가 서로 분방하지 않고 한 방, 한 침대에서 성적 관계를 통하여 성적 만족을 충분히 누리므로 성적 부도덕 행위를 회피해야 합니다.    

 

둘째로, 결혼하지 아니하는 자는 결혼하는 자보다 더 잘하는 것입니다.    

 

왜 결혼하지 아니하는 것이 결혼하는 것보다 더 잘하는 것일까요?  오늘 본문 말씀의 문맥인 고린도전서 7장만 보면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편지를 써내려가면서 반복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결혼하지 아니한 자들과 과부들에게 한 말) “나와 같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8절), (결혼한 자들에게 한 말) “(만일 갈라섰으면 그대로 지내든지 ...) … (11절), (처녀에 대하여 한 말)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26절), “그러나 내 뜻에는 그냥 지내는 것이 더욱 복이 있으리로다”(40절).  무슨 말입니까?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자기처럼 결혼하지 않고 혼자 지내는 것이 좋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결혼하지 아니한 자들인 쳐녀나 총각이나, 과부들이나, 이혼한 자들이나 그냥 그대로 지내는 것이 좋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만일 결혼하지 아니한 처녀나 총각이 결혼을 한다해도 죄 짓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면서(28절) 바울은 여자가 남편에게서 갈라서서 재혼을 하고 싶다면 “다시 그 남편과 화합하든지 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11절).  성경은 “누구든지 자기 아내와 이혼하고 다른 여자와 결혼하는 사람은 간음하는 자이며 이혼한 여자와 결혼하는 사람도 간음하는 자이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눅16:18).  그러면 “남편도 아내를 버리지 말라”(고전7:11)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는데 그 말씀을 어기고 남편이 그의 아내를 버렸다면(이혼했다면) 질문은 이혼 당한 여자가 다른 남자하고 재혼하는 것도 간음하는 것일까요?  오늘 본문 고린도전서 7장 10절부터 보면 바울은 여자는 남편에게서 갈라서지(남편을 떠나지) 말고(10절) 남편도 아내를 버리지(이혼하지) 말라(11절)고 말하고 있습니다.  왜 여자가 그녀의 남편을 떠나는 것일까요?  왜 남편은 그의 아내와 이혼하는 것일까요?  그렇게 떠나고 이혼한 후 다시 다른 남자/여자와 재혼하는 것이 누가복음 16장 18절 말씀에 비취볼 때 “간음하는” 것은 아닌가요?  그래서 바울은 “(만일 갈라섰으면 그대로 지내든지 다시 그 남편과 화합하든지 하라) …”(고전7:11)고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요?  그러나 사별한 경우는 다른 것 같습니다.  “아내는 그 남편이 살이 있는 동안에 매여 있다가 남편이 죽으면 자유로워 자기 뜻대로 시집갈 것이나 주 안에서만 할 것이니라”고 바울은 말하고 있습니다(39절). 다시 말하면, 남편이 죽었을 경우 아내는 재혼할 것이나 “주 안에서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주 안에서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주님의 말씀의 기준에 따라 재혼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의 말씀에 “이혼한 여자”(남자)와 재혼하는 것은 간음하는 것이면(눅16:18) 사별한 여자(남자)는 이혼한 남자(여자)와 재혼해서는 아니된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 아닌가요?  그러면 사별한 여자(남자)가 이혼당한 남자(여자)와 재혼하는 것은 성경의 기준에 위배되는 것은 아닐 수 있지 않을까요?  또한 사별한 여자(남자)가 총각(처녀)하고 재혼하는 것 또한 “주 안에서만” 하는 것이 아닌가요?  사별한 사람들끼리 재혼하는 것도 “주 안에서만” 하는 것이라 생각되지 않나요?  그러나 갈등과 다툼과 고통 속에서  갈라서고 이혼한 남자(여자)가 다른 여자(남자)와 재혼하는 것은 “주 안에서만”하는 것이라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은 화평 중에서 너희를 부르셨느니라” [“하나님은 평화롭게 살라고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현대인의 성경)](15절)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결혼한 하나님의 자녀는 자기 아내/남편과 평화롭게 살아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그리스도인 부부들이 평화롭게 살지 못하고 갈등과 고통 속에서 갈라서고 이혼하고 있습니다.  재혼하기 보다 그냥 그대로 지내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요?  물론 정욕을 절제할 수 없으면 어떻게 계속해서 그냥 그대로 지낼 수 있을까요?  다시 전 남편/전 아내와 화합을 시도하면 안되는 것일까요?  시도하기 싫어서인가요?  왜 꼭 새 남자/새 여자를 찾아서 재혼하고 싶어하는 것일까요?  그것이 간음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왜 하지 않는 것일까요?  그만큼 이 시대가 이혼과 재혼이 많아서 우리가 그러한 세상에 흐름에 익숙해져 있어서 인가요?  과연 성격 차이나 돈 문제로 여자가 남편에게서 갈라서고 남편이 아내를 버리는 것이 성경의 관점에서 볼 때에 이혼의 타당한 이유가 되는 것인가요?  더 이상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삶 속에 기준이 아니기에, 예수님을 우리 부부의 관계에 주님으로 더 이상 모시고 있지 않기에 주님 뜻대로가 아니라 우리 마음대로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요?  하나님은 우리 그리스도인 부부에게 평화롭게 살라고 말씀하고 계시지만 우리는 평화롭게 살기보다 편안하게 살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편안한대로 생각하고 또한 우리가 편안하고자 우리 마음대로 결정하고 행동으로 옮기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나 편하자고 결혼하고, 나 편하자고 이혼하고, 나 편하자고 재혼하는 이 세상이 아닌가요?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내 판단에는 재혼하지 않고 그냥 지내는 것이 더 행복할 것 같습니다”(40절, 현대인의 성경).

 

사도 바울이 결혼하지 아니하는 것이 결혼하는 것보다 더 잘하는 것이다 라고 말하고 있는 이유는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흐트러짐이 없이 주를 섬기게 하려 함이라”[to secure undistracted devotion to the Lord(NASB)]입니다(35절).  결혼을 하게 되면 마음이 갈라지며(34절) 염려할 수 밖에 없습니다(32절).  다시 말하면, “장가 간 자는 세상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아내를 기쁘게 할까” 하며(33절) “시집 간 자는 세상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남편을 기쁘게 할까”(34절) 할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장가 가지 않은 자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주를 기쁘시게 할까”하며[“결혼하지 않은 남자는 어떻게 하면 주님을 기쁘시게 할까 하고 주님의 일에민 신경을 쓰지만”(현대인의 성경)](32절) “시집 가지 않은 자와 처녀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주님의 일에만 신경을 쓰며”(현대인의 성경)] 몸과 영을 다 거룩하게 하려” 합니다(34절).  그러기에 성경은 “결혼하는 자도 잘하거니와 결혼하지 아니하는 자는 더 잘하는 것이니라”(38절)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 안에서 이미 결혼한 자로서 주님을 기쁘시게 하므로 아내를 기쁘게 하고 아내를 기쁘게 하므로 주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부족하나마 애쓰는,

 

 

제임스 김 목사 나눔

(2014년 12월 2일, 흐트러짐이 없이 주님을 섬기길 기원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