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얻겠습니까?”

 

 

“어떤 율법학자가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와서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얻겠습니까?’하고 물었다.” [누가복음 10장 25절(현대인의 성경)];

“예수님이 길을 가시는데 한 사람이 달려와서 무릎을 끓고 ‘선한 선생님, 제가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얻겠습니까?’하고 물었다.” [마가복음 10장 17절(현대인의 성경)];

“그리고 그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가 ‘선생님들 내가 어떻게 해야 구원을 받겠습니까?’하고 물었다.  그래서 그들은 ‘주 예수를 믿으십시오.  그러면 당신과 온 집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하였다.” [사도행전 16장 30절(현대인의 성경)].

 

 

            지난 주 금요일 저녁(10월24일) 아내를 공항에 데려다 주면서 아내하고 대화하다가 저는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일 내가 산소호흡기에만 의존하는 상황이 오게 되면 산소호흡기를 빼주면 좋겠다.’  그랬더니 제 말을 들은 아내는 아무 머뭇거림도 없이 곧장 “Me too”(나도)라고 말하였습니다.  하하.  아내의 반응을 들은 저는 웃으면서 우리에게는 영원한 생명이 있으니 죽는 것을 두려워 할필요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사랑하는 아내도 제 말의 동의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내에게 우리에게는 영생이 있으니 죽음 앞에서 이 세상에 미련을 갖지 말고 더욱더 다가 오는 저 세상인 천국을 사모하자고 권면하였습니다. 

 

             그런 후 그 날 밤 토요일(25일) 새벽기도회 설교를 준비하다가 저는 누가복음 10장 25절을 읽게 되었습니다: “어떤 율법학자가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와서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얻겠습니까?’하고 물었다.”  저는 이 말씀을 읽고 또 읽다가 전에(10월 18일, 토요일) 새벽기도회 때 읽고 묵상한 마가복음 10장 17절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예수님이 길을 가시는데 한 사람이 달려와서 무릎을 끓고 ‘선한 선생님, 제가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얻겠습니까?’하고 물었다”[비슷한 말씀인 누가복음 18장 18절은 내일(29일) 읽을 것임].  그래서 저는 누가복음 10장 25절의 문맥인 25-37절 말씀과 마가복음 10장 17절의 문맥인 17-22절 말씀을 비교해 보았습니다.  비슷한 점은 마가복음 10장 17절에 나오는 “한 사람”이나 누가복음 10장 25절에 나오는 “어떤 율법학자”가 동일한 질문을 던졌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동일한 질문은 ‘내가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얻겠습니까?’였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재물이 많은”(막10:22) 또는 “큰 부자”(눅18:23)인 그 “한 사람”이나(막10:17) “어떤 율법학자”(눅10:25)나 영원한 생명에 대한 관심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영생에 대한 관심은 이 두 사람 뿐만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사도행전 16장 30절을 보면 옥에 갇혀 있었던 바울과 실라(행16:23)를 지키고 있었던 “간수”(27절)도 바울과 실라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선생님들 내가 어떻게 해야 구원을 받겠습니까?”(30절)(현대인의 성경).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또한 승천하신 후 사도 바울이 사명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 있었던 그 시대에 이 “간수”도 “구원”, 즉 “영원한 생명”(영생)에 대한 관심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 때 바울의 대답은 이것이었습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31절).

 

            그런데 누가복음 10장 25-37절과 마가복음 10장 17-22절과의 다른 점은 예수님께서 그 “한 사람”에게 “네가 계명을 아나니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 하지 말라, 속여 빼앗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막10:19)고 말씀하신 반면에 그 “어떤 율법학자”에게는 예수님께서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고 물으셨다는 것입니다(눅10:26).  그 때 그 율법학자는 예수님께서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27절).  이 율법학자는 예수님의 이중계명을 말한 것입니다.  저는 이 점이 흥미로왔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율법학자는 율법의 전문가로서 예수님께서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고 물으셨을 때(26절) 모세의 십계명을 말할 수 있었는데[마치 예수님께서 그 “한 사람”에게 말씀하셨듯이(막10:19)] 오히려 그는 예수님의 이중계명을 말했기 때문입니다.  이 율법학자는 모세의 율법을 예수님의 이중계명으로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랍습니까?  그가 모세의 율법을 예수님의 이중계명으로 이해하고 있었던 것입니다[모세의 1~4계명 (예수님의 하나님 사랑 계명) & 모세의 5~10계명(예수님의 이웃 사랑계명)].  그 대답을 들으신 예수님께서는 그 율법학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네 말이 옳다 그대로 실천하여라.  그러면 네가 살 것이다”(현대인의 성경)](눅10:28).  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 것일까요?  예수님의 이중계명을 지켜 행하면 구원(영원한 생명)을 얻는다는 뜻일까요?  그럴리가 없잖습니까.  분명히 우리가 믿고 있는 성경의 가르침은 행위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배웠잖습니까.  그 예로 “내가 어떻게 해야 구원을 받겠습니까?”라고 간수가 질문했을 때(행16:30) 사도 바울은 그에게 분명히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31절)고 말했잖습니까.  구원에 관한 예수님의 가르침과 사도 바울의 가르침이 다른 것입니까.  그럴리까 없잖습니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다메셋 도상에서 사울(바울)에게 나타나시사 구원해 주셨을 때 바울은 아무 공로 없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그는 그 간수에게도 “주 예수를 믿으로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30절)고 말한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왜 예수님께서는 그 율법학자에게 예수님의 이중계명을 “행하라 그리하면 살리라”(눅10:27-28)고 말씀하셨을까요?  그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는 그 율법학자에게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를 말씀하신 후에도 그에게 선한 사마리아인 같이 “(행)하라”(눅10:37)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예수님은 그 율법학자에게 이렇게 두 번씩이나 ‘행하라’고 말씀하신 것일까요? 

 

이 질문을 답하기 위해서 저는 먼저 예수님의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좀 생각해 보았습니다.  “율법을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26절)란 예수님의 질문에 예수님의 이중계명으로 답을 한 그 율법학자는 예수님께서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고 말씀하시닌까 그는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라고 예수님께 여쭸습니다(28-29절).  그 때 예수님께서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그 율법학자에게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제사장(31절), 레위인(32절) 그리고 사마리아 사람(33절)]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곘느냐”(36절)라고 물으셨습니다.  그 때 그 율법학자는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37절).  그 때에도 예수님께서는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37절)고 권면하였습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이 율법학자가 알고 있는 이중계명을 실천하기를 명하셨습니다.  특히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이웃에게 자비를 베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쩌면 이 율법교사는 예수님의 이중계명은 알고 있었지만 이웃을 사랑하여 그 이웃에게 자비를 베풀기 보다 하나님을 사랑한답시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데 헌신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그가 그리한 이유는 어쩌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므로 죄 사함 받기를 원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그 당시 바리새인들이 제사를 열심히 드린 이유는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므로 자신들의 죄를 없게 한다고 믿었기에).  분명히 예수님께서는 “가서 내가 긍휼(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마9:13)고 말씀하셨는데 이 율법학자는 예수님의 이중계명은 알고 있었지만 이웃사랑함에 있어서 이웃들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랬기에 예수님께서 그에게 “가서 너도 이와 같이” 사마리아인처럼 행하라고 말씀하신 것 같습니다(눅10:37).  즉, 그는 예수님의 이중계명은 알고 있었지만 실천에는 옮기지 않고 있었습니다. 

 

            또 하나 제가 생각해 본 것은 바로 예수님의 이중계명입니다.  예수님의 이중계명은 영원한 생명을 얻은 천국 시민권자들이 지켜 행해야 할 계명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을 믿어 구원(영원한 생명)을 얻는 하나님의 나라 백성들만이 예수님의 이중계명을 지켜 행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장차 예수님을 믿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천국에 가면 십계명을 지킬 필요가 있습니까?  없잖습니까.  천국에 가면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도 지킬 필요도 없고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 등등 순종할 필요가 없잖습니까.  그 이유는 예수님이 이 세상에 다시 오시는 날 우리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영광스러운 영적인 몸을 입고 천국에 들어가 영원히 살거잖습니까.  그 때에는 우리가 죄를 짓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아예 죄의 존재조차도 모를텐데 왜 십계명이나 모세의 율법을 지킬 필요가 있겠습니까.  천국의 계명은 바로 예수님의 이중계명입니다.  그런데 이 율법학자는 이 예수님의 이중계명은 알고 있었는데 실천에 옮기지는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를 행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28절).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는 어쩌면 그 율법학자의 믿음은 지적인 믿음이나 또는 실천(행함)이 없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께서는 마가복음 10장 17절에 나오는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고 질문한 “한 사람”에게 십계명 중 5~9계명을 말씀하신 후(19절) 그가 어려서부터 다 지켰다고 하닌까(20절) 그에게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21절)고 말씀하셨을까요?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하다가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어서 박윤선 박사님의 주석을 읽어 보았습니다.  그 주석을 읽을 때에 저는 예수님이 19절에 나열하신 십계명 중에서 다섯 번째 계명부터 아홉 번째 계명 중 열 번째 계명인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  …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츨20:17)는 계명이 빠져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흥미로왔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러한 질문을 던지게 되었습니다: ‘왜 예수님께서는 모세의 십계명 중 첫 번째부터 네 번째 계명(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은 그 “한 사람”에게 말씀하지 않으시고 다섯 번째 계명부터 아홉 번째 계명(인간과 인간의 관계)까지만 말씀하셨을까요?’  ‘왜 예수님께서는 ‘탐심하지 말라’는 열 번째 계명을 그 한 사람에게 말씀하지 않으셨을까.’  이러한 질문을 던지면서 계속해서 마가복음 10장 19절 이후에 나오는 말씀을 읽다가 저는 그 이유를 좀 짐작하게 되었습니다.  그 짐작이란 그 “한 사람”은 “큰 부자”였기에(눅18:23) 다른 계명들(5~9 계명)은 어려서부터 다 지키었지만(막10:19) 열 번째 계명은 지키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라 생각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 “큰 부자” “한 사람”을 “보시고 사랑하사”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21절).  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그 큰 부자는 어떻게 반응하였습니까?  그는 “재물이 많은 고로  …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갔습니다(22절).  그 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도다”(23절), “얘들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낙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24-25절).  그 때 제자들은 매우 놀라 서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26절).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보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27절).    

 

            과연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재물이 많은 큰 부자를 구원하실 수 있으실까요?  저는 누가복음 16장 9절 말씀을 읽으면서 그 말씀 속에서 이 질문의 대답을 찾아 보았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자신을 위해 세상 재물오 친구를 사귀라.  그러면 그것이 없어질 때 그들이 너희를 영원한 집으로 맞아들일 것이다”(현대인의 성경).  곧, 하나님께서는 큰 부자의 재물을 없어지게 하시므로 그를 구원하실 수 있으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재물을 없어지게 하시므로 재물의 유혹으로 인하여 말씀의 결실을 못하는데서(막4:19) 건져주시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게 하시고 예수님을 믿게 하시므로 그 부자를 구원하실 수 있으십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마가복음 10장 17절에 나오는 재물이 많은 큰 부자 한 사람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누가복음 10장 25절에 나오는 그 율법학자도 예수님을 믿어 영원한 생명을 얻었다는 성경 기록이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사도행전 16장 30절에 나오는 그 간수는 주 예수님을 믿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온 집안이 하나님을 믿어(34절) 구원(영생)을 얻었습니다(31절).  왜 재물이 많은 큰 부자 한 사람과 율법학자는 예수님을 믿지 않고 간수와 그의 온 집안은 믿어 구원을 얻었을까요?  그 이유는 간수와 그의 온 집안 식구는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들이었기에 다 예수님을 믿어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행13:48).  바라기는 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믿어 영원한 생명을 얻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기원합니다: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요3:15-17).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예수님을 믿어 영생을 얻은,

 

 

제임스 김 목사 나눔

(2014년 10월 28일, 예수님의 이중계명에 순종하여 영원한 생명을 이 땅에서 미리 부분적으로 더욱더 누리면서 살아가길 기원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