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자 용서하기 4

 

 

“그러므로 내가 너에게 말하지만 이 여자의 많은 죄가 용서를 받았다.  그것은 이 여자가 나를 많이 사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적게 용서받은 사람은 적게 사랑한다”(누가복음 7장 47절) (현대인의 성경).

 

 

            전에 저는 가끔 제 아내에게 솔직하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당신은 나에게 제일 큰 위로자(encourager)가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당신은 나에게 제일 큰 낙심케 하는 자(discourager)도 된다.’  제가 아내에게 그렇게 말한 이유는 제가 아내에게 상처를 입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한 번은 제가 아내에게 이렇게 솔직하게 말한 적도 있었습니다: ‘Jane, 내 마음이 너무 아프다.  당신의 말이 내 마음에 비수처럼 찔러서 내 마음이 너무나 아파.’  그랬더니 그 때 아내가 저에게 이렇게 말하더군요: ‘Thank you for letting me know’(나에게 알려줘서 고맙습니다).  그 때 저는 그 말을 듣고 좀 놀랬습니다.  그리고 마음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었습니다: ‘아니, 어떻게 내 말에 감사하다 고 말할 수 있지.  진짜 내가 자기가 한 말에 상처 입은 것을 몰랐다 말인가.  그럼 앞으로도 내 마음이 아프면 솔직하게 아프다고 아내에게 말해줘야겠다.’  그 때 그 대화 이후 저희 부부에게는 계속해서 부부 갈등이 있었지만 그 전하고 달라진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조금이나마 저희 부부가 서로에게 무슨 말을 하지 말고 어떻게 하지 말아야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 않을 수 있는지 더 잘 생각(짐작?)하게 되었습니다.  저희 부부는 조금이나마 전보다 서로에게 상처가 된 점들을 터놓고 조심히 그리고 진솔하게 대화하는 습관을 조금이나마 가지게 되었습니다. 

 

            상처를 받았을 때 우리는 그 상처가 아프고 힘들기에 위로 받기를 원하며 또한 치유(힐링?) 받기를 원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본능입니다.  그러나 많은 때에 우리는 그러한 본능조차도 무시된 것처럼 아무 위로와 치유가 없이 우리 배우자에게 받은 상처를 마음 깊은 곳에 숨겨두고 살 때도 있습니다.  그러다 보면, 그 마음 깊은 곳에 숨겨놓은 상처가 한 두개 계속해서 쌓이고 그러다 보면 우리는 새로운 상처로 인하여 그 쌓인 상처들을 밖으로 표출될 수 밖에 없게되기까지 합니다.  결국에는 폭탄처럼 터져서 부부 관계에 위기를 가지고 옵니다.  그 이전에 우리는 마치 지뢰밭에 숨겨져 있는 폭탄들을 제거하듯히 우리 부부 사이에 깊이 숨겨져 있는 폭탄들을 발견하여 하나씩 하나씩 제거해 나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는 우리 배우자와 함께 주님 안에서 한 마음으로 폭탄 제거하는 일에 헌신해야 합니다.  헌신하되 우리는 폭탄제거기를 지혜롭게 잘 사용해야 합니다.  여기서 폭탄제거기란 바로 “용서하기”입니다.  우리 마음밭에 있는 폭탄들을 제거하기 위해선 서로가 그리스도 예수님의 마음으로 용서하기로 헌신해야 합니다.  용서하되 우리는 우리 배우자가 먼저 우리에게 다가와서 용서 구하는 것을 기대하기 보다 우리가 먼저 우리 배우자를 용서해야 합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합니까?  어떻게 우리는 우리의 배우자를 먼저 용서할 수 있을까요?

 

            첫째로,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과 우리 배우자에게 범한 죄를 알아야 합니다.

 

            누가복음 7장 39절을 보십시오: “예수를 청한 바리새인이 그것을 보고 마음에 이르되 이 사람이 만일 선지자라면 자기를 만지는 이 여자가 누구며 어떠한 자 곧 죄인인 줄을 알았으리라 하거늘.”  이 말은 예수님과 함께 식사하고자 자기 집으로 초대한 “한 바리새인”이 자기 마음 속으로 한 말입니다 (36절).  그가 이렇게 말한 이유는 “그 동네에 죄를 지은 한 여자”가 예수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 앉아 계심을 알고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예수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러털로 닦고 그 발에 입맞추고 향유를 부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37-39절).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 “죄인”인 여자를 멀리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녀로 하여금 눈물로 자기의 발을 적시며 머리털로 자기 발을 닦고 또한 자기 발에 입맞추는 것을 나두시고 심지어 향유를 자기 발에 붑는 것을 그리 하도록 가만계셨습니다.  이 바리새인의 관점으로는 이해가 안됐을 것입니다.  만일 예수님이 자기와 유대인들이 기다렸던 선지자이시라면(신18:18) 자기를 만지는 그 여자가 누구며 죄인인 줄을 알고 계셨을 텐데 어떻게 그 죄인으로 하여금 자기를 만지도록 그냥 두실까 그 바리새인은 아마도 의아해 했을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추측할 수 있는 것은 이 바리새인은 “죄를 지은 한 여자”가 “죄인인 줄”은 알고 있었지만 그는 자기 자신이 죄인인 줄을 몰랐었던 것 같습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이 바리새인은 자기 자신을 의인인 줄 알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의 발에 옥합을 깨서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부은 그 여자를 가리켜 “죄인”이라고 마음 속으로 언급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분명히 그 죄인 여자를 부정하게 여겼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 바리새인은 그 죄인된 여인을 멀리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 여인으로 하여금 자기 자신에게 가까이 오는 것도 막지 않으시고 그녀가 자기 발에 행하고 있었던 일도 허락하고 계셨으니 그 바리새인의 입장에서는 얼마나 놀랬겠습니까. 

 

            두 남녀가 결혼에서 함께 살다보면 서로에게 놀랄만한 일들이 한 두개가 아닙니다.  결혼 전 연애할 때에는 몰랐던 점들입니다.  그러나 결혼을 해서 한 가정을 이루고 난 후 그러한 점들이 들춰지고 두 눈으로 우리가 목격할 때 우리는 충격을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연애할 때에는 몰랐던 점들인데 결혼해서 함께 살면서 그 점들을 점점 더 많이 알게 되니 당연히 놀랄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서로가 몰랐던 점들을 알게 되었을 때 좀 놀라고 충격받는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그 알게된 점들로 인하여 상대방 배우자에게 실망하며 또한 그 점들을 문제 삼아 부부 관계에 갈등을 불러 일으킨다는 것입니다.  물론 처음에는 그 점들을 문제 삼지 않고 우리가 서로 참고 인내하며 많은 때에 그냥 문제 삼지 않고 넘어갈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점점 더 잘 보이는 그 문제점들로 인하여 우리 부부는 서로 부딪히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에 가서는 우리 부부는 서로 싸우고 다투게 됩니다.  그리고 싸우고 다툴 때 우리는 화가 난 상태에서 우리 배우자에게 함부로 말을하므로 서로의 마음에 상처를 줍니다(말한 자신은 모를 수 있겠지만).  물론 서로에게 상처를 받는 것은 꼭 상대방이 한 말 때문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부부는 충분히 비언어적인 행동으로도 서로에게 상처를 줄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상처를 입었을 때 우리가 서로에게 아프다는 말도 하지 않고 용서하기를 거부하므로 말미암아 각자 마음에 있는 상처로 인하여 서로를 바라보는 관점이 점점 더 삐뚤어지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우리는 서로를 비판합니다(마7:1). 그리고 우리는 마음으로라도 서로 업신여깁니다(롬14:3).  또한 우리는 서로 헐뜯기까지 합니다(약4:11).  심지어 우리는 서로를 정죄하기까지도 합니다 (눅6:37).  이젠 더 이상 우리는 서로의 약한 점을 용납하지 않고 서로의 말까지도 비판합니다(롬14:1).  그리할 때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율법을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관”이 됩니다 (약4:11).  이 지경까지 오면 우리는 서로에게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범한 죄를 깨닫지도 못합니다.  그 원인은 우리가 재판관이신 하나님 앞에서 우리 자신을 바라보지 않고 우리 배우자 앞에서 우리 자신만을 바라보고 있기에 우리는 우리 죄를 죄로 여길 수 있는 능력까지 상실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께 우리가 범한 죄를 인정하고 자백하며 용서를 구할 수 있겠습니까.  만일 우리가 하나님께도 우리의 죄를 자백하며 용서를 구하지 못한다면 당연히 우리는 우리 배우자에게도 우리가 범한 죄를 인정하고 자백하며 용서를 구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우리 배우자에게 범한 죄를 깨달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 배우자에게 죄를 범했을 때 그/녀 앞에서 그/녀의 죄의 많음과 크기를 보기 보다 먼저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죄 많음과 죄의 크기를 보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는 예수님의 고난과 십자가의 죽으심을 묵상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죄 때문에 고난 당하시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예수님을 생각할 때 우리는 우리의 죄가 많음과 크기를 조금이나마 더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죄의 많음과 큼을 깨달아 알면 알아갈 수록 우리는 우리 배우자의 죄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 죄를 살펴 볼 시간 밖에 없을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셨듯이 우리는 우리 배우자의 죄를 용서해야 합니다. 

 

            누가복음 7장 42절을 보십시오: “갚을 것이 없으므로 둘 다 탕감하여 주었으니 둘 중에 누가 그를 더 사랑하겠느냐.”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한 바리새인”(36절)인 “시몬”(40절)이라는 사람에게 한 말씀으로써 “빚 주는 사람”이 “빚진 자” 두 사람(한 사람은 500 데나리온 또 다른 사람은 50 데나리온)이 “갚을 것이 없으므로 둘 다 탕감하여 주었”을 때 예수님의 질문은 둘 중에 “누가 그(빚 주는 사람)를 더 사랑하겠느냐”였습니다(41-42절).  그 때 시몬의 대답은 “많이 탕감함을 받은 자”였습니다(43절).  이 말씀을 예수님께서 시몬에게 하신 의도가 무엇일까요?  예수님의 발에 항유를 부은 그 여인을 “죄인”으로(39절) 취급한 바리새인인 시몬에게 왜 예수님께서는 탕감의 비유를 말씀하셨을까요?  저는 그 대답을 오늘 본문 47절에서 찾아 보았습니다: “… 이 여자의 많은 죄가 용서를 받았다.  그것은 이 여자가 나를 많이 사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적에 용서받은 사람은 적게 사랑한다”(현대인의 성경).  예수님께서는 시몬이 죄인으로 여기는 그 여인의 많은 죄가 사함을 받았음을 시몬에게 알려주시고자 하셨던 것입니다(47-48절).  그리고 예수님은 시몬에게 그녀의 많은 죄가 사함을 받은 이유는 그 여자가 예수님을 많이 사랑했기 때문이라고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47절). 

 

부부 관계에 있어서 참으로 심각한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과 우리 배우자에게 범한 죄를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과 우리 배우자에게 범한 죄를 알면서도 하니님과 우리 배우자에게 용서를 구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용서를 구하지 않되 우리는 하나님께만 용서를 구하고 우리 배우자에게는 용서를 구하지 않을 때도 많은 것 같습니다.  우리는 우리 배우자를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용서 구하기를 머뭇 거리다가 결국에는 기회를 놓쳐 우리 배우자에게 용서를 구하지 않고 있을 때도 많은 것 같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어쩌면 그 이유는 우리는 우리 배우자 앞에서 우리를 옳게 보이려고(눅10:29) 해서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즉, 우리는 우리 배우자 앞에서 우리 자신을 합리화(justify) 시키려고 해서 우리 배우자에게 용서를 구하는 타이밍을 놓칠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 자신의 죄의 많음과 크기를 보지 못하고 우리 배우자의 죄의 많음과 크기를 더 많이 보고 있기에 우리는 우리 배우자에게 용서 구하기를 거부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우리 배우자에게 범한 죄를 진정 알고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께 뿐만 아니라 실제로 우리 배우자에게 다가가 겸손히 그리고 진심으로 그/녀에게 용서를 구할 것입니다.  그리할 때 만일 우리 배우자가 진정으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자기의 죄를 용서해 주셨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 그/녀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를 용서하셨듯이 우리를 마음으로 용서할 것입니다.  그 뿐 아니라 그/녀는 용기를 내어 우리를 마음으로 용납하여 전보다 우리를 더욱더 사랑할 것입니다

 

            말씀 묵상을 맺고자 합니다.  남편은 하나님과 배우자 앞에서 자기가 잘못한 것 뿐만 아니라 자기가 범한 죄를 알아야 합니다.  그는 자기 아내에게 범한 죄를 하나님 앞에서 인정하고 자복하며 회개할 뿐만 아니라 자기 아내에게도 그 죄를 인정하고 자백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의 용서의 확신을 가지고 자기 아내에게도 진정으로 자기가 회개하였음을 삶으로 보여줘야 합니다.  그러므로 아내도 자기 남편이 진정으로 회개하여 변화되었음을 인지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아내는 사랑하는 그 남편을 용서해야 합니다.  용서하되 그녀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나 같은 죄인을 용서해주셨다는 사실에 감사하는 마음과 은혜로 자기 남편을 용서해야 합니다.  특히 그녀는 하나님 앞에서 자기가 범한 많은 큰 죄를 용서함 받았다는 사실로 인하여 하나님께 받은 사랑이 많고 크다는 사실로 인하여 말미암아 사랑으로 자신의 남편을 용서해야 합니다.  남편도 마찬가지입니다.  나 같은 큰 죄인을 용서해 주신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넘치는 은혜로 말미암아 사랑하는 아내를 용서해야 합니다.  용서하되 용기를 내어 용서하고 아내를 그리스도 예수님의 심장으로 품어야 합니다.  바라기는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우리의 죄 많음과 죄의 크기를 알아갈 뿐만 아니라 그 많고 큰 죄를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용서하셨다는 사실로 말미암아 넘치는 은혜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사랑하는 배우자를 용서하기를 먼저 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기원합니다. 

 

 

배우자 사랑하기, 용서하기, 그 모습 그대로 용납하기에 헌신하는,

 

제임스 김 목사 나눔

(2014년 10월 25일,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랑하는 아내를 그리워하면서 기도하는 가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