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 가운데 참 목사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은 패역한 족속이라 그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그들 가운데에 선지자가 있음을 알지니라” (에스겔 2장 5절).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기가 힘든 세상이 되었습니다.  어느게 진짜 명품인지 어느게 가짜 명품인지 구분하기가 힘들다고 합니다.  그만큼 모조품이 많고 진짜처럼 잘 만들어 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기 힘든 것은 명품이 돈이나 물건들 뿐만 아닌 듯 합니다.  누가 진짜 그리스도인지 누가 가짜 그리스도인인지 구분하기가 너무나 힘든 세상을 맞이했습니다.  고 옥한음 목사님은 곤충의 숫컷과 암컷을 구분하기가 무척 힘들듯이 진짜 그리스도인과 가짜 그리스도인을 구별하기가 무척이나 힘들다고 하신 말이 생각납니다.  그만큼 진짜 그리스도인처럼 너무나 흡사한 모조품 그리스도인이 참 많은 세상에 우리는 살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은 평신도 그리스도인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목사들에게도 적용됩니다.  즉, 누가 참 목사고 누가 거짓 목사인지 구별하기가 너무나 힘든 시대를 우리는 맞이했습니다.  하두 거짓 목사들이 많은 세상이니 우리는 과연 하나님 보시기에 참 목사가 있을까 의문이 들 정도인 것 같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선지자였던 예레미야와 에스겔이 하나님의 말씀을 유다 백성들에게 대언하던 시대도 그랬습니다.  누가 참 진짜 선지자인지 누가 첨 거짓 선지자인지 구분하기가 힘든 세상이였습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그 시대에는 거짓 선지자들이 하두 많았고 그 그짓 선지자들의 말을 듣고 좇는 사람들 대부분이었기에 오히려 그 유다 사람들은 참 선지자였던 예레미야나 에스겔 선지자를 가짜로 여겼을 것입니다.  그랬기에 유다 백성들은 그 두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렘11:10, 13:10).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거절하였습니다(6:19).  그들은 하나님의 규례를 버리고 하나님의 율례를 행하지 않았습니다(겔5:7).  오히려 그들은 모든 가증한 일로 하나님의 성소를 더렵혔습니다 (11절).  그들은 음란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떠나고 음란한 눈으로 우상을 섬기므로 하나님께 악을 행하였습니다(6:9).  그들은 그들의 조상들처럼 하나님께 범죄하였습니다(겔2:3).  이스라엘 자손은 퍠역한 백성이요 하나님을 배반한 자들이었습니다(3절).  그리고 이 자손은 얼굴이 뻔뻔하고 마음이 굳은 자들이었습니다(4절).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에스겔 선지자를 보내시면서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라고 명하셨습니다(4절).  그리고는 하나님께서 패역한 족속인 이스라엘 자손들이 듣는지 아니 듣든지 그들 가운데에 선지가가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5절).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에스겔 선지자 시대 때에도 참 선지자가 있었던 것처럼 지금 이 시대에도 우리들 가운데 참 목사가 있고 우리는 그 사실을 알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알 수가 있을까요?  누가 참 목사인지 어떻게 구분할 수가 있을까요?  그 기준을 한 3가지로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첫째로, 참 목사는 사람들이 듣든지 아니 든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하는 자입니다.

 

            에스겔 2장 7절을 보십시오: “그들은 심히 패역한 자라 그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너는 내 말로 고할지어다.”  하나님께서는 에스겔 선지자에게 이스라엘 족속에게 가서 그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2:5, 7; 3:11).  에스겔 선지자는 이 하나님의 말씀 순종했습니다.  그는 유다 백성들이 자기를 통하여 들려주시는 하나님으 말씀을 듣지 않을 줄을 알면서도(3:7) 그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고하였습니다.  그러면 에스겔 선지자가 그들에게 고한 하나님의 말씀은 무엇이었습니까?  그 내용은 바로 애가와 애곡과 재앙의 말씀이었습니다(10절).  그런 말씀을 누가 듣기를 좋아하겠습니까?  특히 죄악을 범하고 있었던 유다 백성들은 그러한 재앙의 말씀 듣기를 좋아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무척이나 싫어해서 그 말씀에 자신들의 등을 돌렸습니다(23:25).  그러한 자들에게 에스겔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하였습니다.  그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그는 하나님의 재앙의 말씀을 그들에게 그대로 전했습니다.

 

            참 목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하는 자입니다.  그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든지 아니 듣든지 그대로 전합니다.  그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들이 듣기 싫어하는 탄식과 슬픔의 말씀이든 재앙의 말씀이든 그는 그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합니다.  결코 그는 그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하지 않습니다(신4:2; 12:32).  오히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성실히 전합니다(23:28).  이러한 참 목사를 우리가 알아보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의 바른 교훈의 말씀을 그대로 듣기를 싫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딤후2:3).  오히려 우리는 우리의 욕심을 따라 우리의 가려운 귀를 긁어주는 설교 듣기를 좋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3절).  그러니 그러한 우리들에게 참 목사님이 우리의 죄를 책망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신다고 하면 누가 듣기를 좋아하겠습니까.  심지어 우리는 우리에게 참 진리의 말씀을 그대로 전하시는 참 목사님을 싫어할 뿐만 아니라 미워하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가려운 귀를 긁어주는 설교를 하는 목사님을 좋아합니다.  비록 그 목사님의 인품에 흠이 보일찌라도 그 분의 설교가 내 욕심의 마음에 들면 우리는 그분의 설교를 듣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러한 설교를 들으면서도 “아멘, 아멘”하고 외칩니다.  심지어 우리는 그 설교에 은혜를 받았다고까지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하지 않고 가감하는 목사님의 설교에 은혜를 받는 우리들, 지금 우리들의 삶에는 변화가 있기보도 변질이 있을 뿐입니다.  지금 우리들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에 등을 돌리고 세상으로 나아가 하나님께 죄를 범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는 회개하고 돌이켜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께서 참 목사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그 말씀이 축복의 말씀이든 재앙의 말씀이든 상관없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우리는 들어야 합니다.  심지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목사님이 위선자라 할찌라도 그 분이 전하는 말씀 내용이 성경적이요 바른 교훈(딤후2:3)이라면 우리는 그 목사님의 행위는 본 받지는 말아야 하지만 그 분이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은 귀담아 들어야 합니다(마23:3).  

    

            둘째로, 참 목사는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에스겔 2장 6절을 보십시오: “인자야 너는 비록 가시와 찔레와 함께 있으며 전갈 가운데에 거주할지라도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그들의 말을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그들은 패역한 족속이라도 그 말을 두려워하지 말며 그 얼굴을 무서워하지 말지어다.”  에스겔 선지자는 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이르신 모든 말씀을 마음으로 받으며 귀로 듣고(3:10) 그 재앙의 말씀을 유다 백성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11, 27절) 그들에게 전하면서도 그들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그들이 반역하는 족속이라 할지라도 그들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이유는 하나님께서 에스겔의 얼굴을 굳게 하셨고 그들의 이마를 마주보도록 에스겔 선지자의 이마를 굳게 하되 화석보다 굳은 금강석 같이 하셨기 때문입니다(8-9절). 

 

            참 목사는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는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마10:28).  오히려 그는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하나님을 두려워 합니다(28절).  이렇게 그가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는 하나님을 두려워해서도 그렇지만 그는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계셔서 그를 구원하며 사람들의 손에서 그를 건져주실 것을(렘42:11) 믿기 때문입니다.  즉, 참 목사는 크고 두려운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 계심을 믿기에(신7:21) 그는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는 이사야 41장 10절 말씀을 믿음으로 붙잡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그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자신의 마음을 굳게 정하여(시112:7) 사람들을 두려워 하지 않고 오히려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56:11)라고 말합니다.  참 목사는 주님께서 그에게 가까이 하여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애3:57)을 들려주셨기에 그는 그 말씀을 믿고(막5:36) 또한 그 말씀에 순종하여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참 목사를 우리가 알아보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 보다 사람들을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하기 보다 사람(들)을 더 의지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사람들을 두려워하므로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않는 참 목사님을 잘 알아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는 사람보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또한 사람보다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믿음에 견고히 서되 하나님의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우리는 더욱더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셋째로, 참 목사는 페역한 사람들 같이 패역하지 않습니다.

 

            에스겔 2장 8절을 보십시오: “너 인자야 내가 네게 이르는 말을 듣고 그 패역한 족속 같이 패역하지 말고 네 입을 벌리고 내가 네게 주는 것을 먹으라 하시기로.”  에스겔 선지자는 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그는 패역한 이스라엘 족속 같이 패역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이스라엘 족속은 죄악된 길을 걸어 가면서도 마음이 완악하고 고집이 세서 자신들의 길을 고치지 않고 계속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그 말씀에도 불순종하면서 하나님께 반항을 하였지만 에스겔 선지자는 그들과 같이 행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순종하면서 하나님께 충성하였습니다.

 

            참 목사는 하나님께 충성합니다.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기에(고전4:2) 그는 죽도록 충성합니다(계2:10).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되 하나님의 목소리가 그에게 좋든지 좋지 않든지를 막론하고 순종합니다(렘42:6).  순종하되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처럼 받는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웁니다(히5:8).  그리고 그는 순종함을 배우는 과정에서 예수님처럼 자기 뜻을 내려 놓고 오직 주님의 뜻이 이뤄지길 기도합니다(눅22:42).  참 목사는 오직 주님의 뜻이 이뤄지길 기도할 뿐만 아니라 예수님처럼 겸손한 마음으로 주님의 뜻에 죽기까지 복종합니다(빌2:8).  이러한 참 목사를 우리가 알아보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는 주님의 뜻보다 우리의 뜻이 이뤄지길 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는 본받지 말아야 할 이 세대를 본받고 있기에 주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도 분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롬12:2).  그 와중에서 지금 우리의 마음은 겸손하지 못하고 교만하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뜻을 고집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지금 우리는 죄악된 길을 걸어 가면서 마음이 완악하고 고집이 세서 우리 자신들의 길을 고치지 않고 계속해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심각한 죄악된 현상은 우리 목사들이 패역하여 우리 자신들의 죄악된 길을 고치지 않고 계속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오히려 그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면서 하나님께 반항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를 구하면서 우리의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더 이상 패역한 이 세대를 본 받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우리는 예수님을 본받아야 합니다.  본받되 우리는 십자가에 죽으시기까지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북종하신 예수님을 본 받아야 합니다.  결코 우리는 하나님을 반대하고 반역해서는 아니됩니다.  오히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뜻)에 복종해야 합니다.

 

            말씀 묵상을 맺고자 합니다.  요즘은 목사가 다른 목사(들) 때문에 속상해 하고 슬퍼합니다.  같은 동역자들끼리도 서로 실망해 합니다.  그리고 서로로 인하여 부끄러워하며 수치스러워 하기까지 합니다.  그 이유는 자꾸만 미디아를 통하여 소수의 목회자들의 범죄가 속히 그리고 널리 알려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인들도 그 소식을 접한 후 부터는 하나님께 죄를 범한 아무개 목사, 아무개 목사에 대해서 별로 좋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니 좋게 생각할 수가 없죠.  그리고 심지어 교인들은 그 목사들을 비판하며 정죄하기까지 합니다.  그러면서 어리석은 교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바로 전하는 목사보다 가려운 우리의 귀를 긁어주는 설교를 하는 목사들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목사보다 교인들을 두려워하는 목사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자기들처럼 이 세대를 본받으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며 주님께 불충하는 하나님의 뜻보다 자신들의 뜻을 추구하는 목사를 좋아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지혜로운 성도들은 자기들 가운데 참 목사가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이 생각하는 참 목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하는 자요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요 또한 패역하지 않는 자입니다.  이러한 참 목사가 그리운 시대를 우리는 맞이했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참 목사로 세움 받기를 원하는,

 

제임스 김 목사 나눔

(2014년 8월 28일, 겸손하고 진실된 목자이신 주님을 본받길 기원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