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위로 (2)

 

 

“내 종 야곱아 두려워하지 말라 이스라엘아 놀라지 말라 보라 내가 너를 먼 곳에서 구원하며 네 자손을 포로된 땅에서 구원하리니 야곱이 돌아와서 평안하며 걱정 없이 살게 될 것이라 그를 두렵게 할 자 없으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 종 야곱아 내가 너와 함께 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흩었던 그 나라들은 다 멸할지라도 너는 사라지지 아니하리라 내가 너를 법도대로 징계할 것이요 결코 무죄한 자로 여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예레미야 46장 27-28절).

 

            관심을 가지고 듣는 귀가 필요합니다.  말보다 이해가 필요합니다.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위로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우리 주위엔 “재난을 주는 위로자들”(miserable comforters)(욥16:2)이 많습니다.  우리를 위로한답시고 말을 하지만 그들의 말은 헛된 말(windy words)입니다(3절).  즉, 그들의 말은 우리을 강하게(strengthen) 하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근심도 풀어주지 못합니다(5절).  오히려 그들은 우리의 마음을 괴롭게 하며(torment) 말로 우리의 마음을 짓부수기(꺽기)까지(crush)도 합니다(19:2).  참으로 그들은 우리를 헛되이(vainly) 위로할 뿐입니다(21:34).  우리에게는 위로자가 없습니다(전4:1).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로하십니다(고후7:6).  오직 하나님 아버지시만이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십니다(1:3). 

 

            그 위로의 하나님께서 한 개인인 바룩를 위로하셨습니다(롐45).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예레미야가 불러 주는 대로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책에 기록하고 있으므로(1절) 고통과 슬픔과 탄식하다가 지쳐 평안을 얻지 못하고 있었던 바룩(3절)에게 위로의 말씀을 주셨습니다(4-5절).  그 위로의 말씀이란 그러한 고통과 슬픔 속에서 탄식하다가 지쳐 평안이 없을 때에 주권자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라는 것(4절)과 그의 생명을 구원해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5절).  그것도 아주 위태로와 아슬아슬한 재난의 상황에서 하나님께서는 그를 구원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시면서 하나님께서는 바룩에게 자기 자신을 위하여 “큰 일”을 찾지 말라고 명하셨습니다(5절).  무슨 뜻입니까?  이 세상에서 분수에 지나친 육신적 평안이나 행복, 영광, 권세, 발전 같은 것을 추구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박윤선).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그 모든 것들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말미암은 국가적 재난에 아무 소용도 없을 뿐만 아니라 아무 위로도 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그런 것들은 재난 속에서 고통에 슬픔을 더할 수 밖에 없습니다(3절).  그런 것들은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때 아무 평안도 줄 수가 없습니다(3절).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고통과 슬픔 속에서 탄식하다가 지쳐 평안이 없었던 바룩에게 오직 주권자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을 붙잡으라고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이 얼마나 바룩에게 큰 위로가 되었을까요.

 

            하나님께서는 한 개인인 바룩만 위로하신 것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 예레미야 46장 27-28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유다 백성들을 위로하셨습니다.  어떻게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로하셨습니까?  바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리하셨습니다(26, 28절).  그 하나님의 말씀을 두 가지로 요약할 수가 있습니다: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유다 백성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예레미야 46장 27절 상반절과 28절 상반절을 보십시오: “내 종 야곱아 두려워하지 말라  …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 종 야곱아 내가 너와 함께 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  하나님께서는 유다 백성들이 의지하던 애굽을 심판하시겠다고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말씀하신 후(1-26절) “그러나”(But) “내 종 야곱”인 이스라엘 백성들에겐 “두려워하지 말라”고 두 번이나 반복해서 말씀하셨습니다(27, 28절).  왜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두 번이나 강조하시면서 말씀하셨을까요?  왜 그들은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는 것인가요?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28절) “… 내가 너와 함께 있나니 …”]. 

 

            우리가 충분히 두려울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징계(28절)를 받아 재난 가운데 있다 할지라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마치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께 징계를 받아 바벨론에게 멸망당하고 남은 자들은 바벨론으로 포로 잡혀갔어도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어떻게 징계의 결과로 인하여 우리가 두려운 상황에 놓인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임마누엘 믿음으로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징계의 결과를 두려워하기 보다 오히려 “법도대로”(28절) 우리를 “징계”하시는 하나님을 두려워 해야 합니다.  그런데 마치 자식이 아버지께 잘못하고도 뉘우치지 않고 용서를 구하지 않으므로 아버지에게 매를 맞을 때 매를 들어 징벌하시는 아버지를 두려워하기 보다 그 매로 인하여 아프고 괴로워서 그 상황을 두려워하는 것처럼 우리는 많은 때에 진노하시는 공의로우시고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를 두려워하기 보다 그의 징벌을 더 두려워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 결과 우리는 하나님께 매를 맞을까봐 두려워서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을 순종하려고 하지 그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이시기에 우리가 그 분의 자녀로서 그 분의 말씀을 순종하려고 하지 못하고(않고) 있습니다.  이러한 순종은 징벌에 대한 두려움 속에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지 자녀로서 하나님 아버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순종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순종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순종하지 않고 두려움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은 진실하고 신실하지 못할 확률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버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되 특별히 오늘 본문에서 두 번이나 반복해서 말씀하고 계시듯이 우리는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믿음으로 두려운 상황에서도 담대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바라는 우리들은 강하고 담대해야 합니다(시31:24).  우리는 두려울 많아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며 또한 기다리면서 강하고 담대해야 합니다(27:14).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시니라” (수1:9).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유다 백성들에게 “놀라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예레미야 46장 27절 하반절을 보십시오: “… 이스라엘아 놀라지 말라 내가 너를 먼 곳에서 구원하며 네 자손을 포로된 땅에서 구원하리니 야곱이 돌아와서 평안하며 걱정 없이 살게 될 것이라 그를 두렵게 할자 없으리라.”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해서 유다 백성들에게 “놀라지 말라”고 말씀하셨는데 여기서 “놀라지 말라”(do not dismayed)는 말씀은 (충격을 받은 뒤의) ‘(크게) 실망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유다 백성들의 입장에서는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대로 바벨론을 진노의 막대로 사용하시사 그들을 징벌하시므로 멸망을 당하였을 때(28절) 그들은 큰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멸망 중에 하나님께서 남겨두신 자들은 바벨론에 포로 잡혀갔었으므로(27절) 그들은 크게 실망, 아니 절망했었을 것입니다.  그러고 있었던 유다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 선지를 통하여 “놀라지 말라”고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27절).  그러시면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내가 너를 먼 곳에서 구원하여 네 자손을 포로된 땅에서 구원하리”라(27절)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유다 백성들에게 구원을 약속해 주신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유다 백성들에게 심판의 메시지 뿐만 아니라 구원의 메시지요 회복의 메시지를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다 백성들을 바벨론에게 구원해 내시사 그들을 다시금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하시겠다는 약속하신 것입니다.  이 얼마나 유다 백성들에게 위로가 되었겠습니까.

 

            이 땅에 살아가면서 우리는 충격받을 만한 놀랄 일들을 종종 접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일들을 접할 때 우리는 불안해하고 낙심하며 심지어 절망할 때도 있습니다.  그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의 무기력감도 좀 철저히 경험하기도 합니다.  그 때에 저 같은 경우는 성령 하나님께서는 시편 42편 5, 11절, 43편 5절 말씀을 생각나게 하시사 그 말씀을 붙잡고 제 자신에게 이 말씀을 선포(적용)하면서 하나님께 간구케 하십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나는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제임스야, 너는 왜 불안해 하며 낙심하고 있으냐.  제임스야,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고 자신의 영혼에게 선포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으로 제 낙망한 영혼을 소성케 해주시고 부흥케 해주시 다시금 일어나 믿음으로 걸어가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전적인 구원의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회복의 은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러분, 때로는 우리가 예기치 않은 힘든 일로 놀라고 걱정 불안 속에서 허덕일 때도 있겟지만 그 때마다 우리에게 구원과 회복의 약속을 주신 진실하신 하나님을 바라보십시다.  육의 눈으로 그 힘든 상황을 바라보기 보다 믿음의 눈으로 그 힘든 상황도 지배하셔서 다스리시사 하나님의 온전하신 선한 뜻을 이루어 나아가시는 것을 기도하며 기대하며 기다리십시다.  분명히 선하신 하나님은 그 모든 상황을 통하여서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것입니다.  그 때 우리는 하나님의 굉장하고 놀라운 사랑을 전보다 더 깊이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힘든 상황 때문에 놀라기 보다 하나님의 굉장한 사랑으로 인하여 놀라게 될 것입니다.    

 

            말씀 묵상을 맺고자 합니다.  저의 어머님이 참 좋아하시는 성경구절이 생각납니다.  그 성경 구절은 바로 이사야 41장 10절입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어머님의 신앙 여정에 두렵고 놀랄만한 상황들을 많이 접하셨을 텐데 그 때마다 하나님께서 이사야 41장 10절의 약속의 말씀으로 위로해 주시고 힘주셨을 것입니다.  지금도 어머님은 그 말씀을 붙잡고 살아가고 계십니다.  아직도 두렵고 놀랄만한 일들을 접하시고 계시지만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그 약속의 말씀으로 저의 어머님을 위로해 주시고 계실 것입니다.  저 또한 어머님이 붙잡고 계시는 이 말씀을 붙잡습니다.  아니, 그 하나님의 약속에 말씀에 제 마음과 전인격이 사로잡힌바 되고 싶습니다.  그러므로 어떠한 두렵고 놀랄만한 상황을 당한다 할찌라도 두려워하지 않고 놀라지 않기를 원합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에게 구원과 회복의 약속의 말씀을 주시는 하나님으로 인하여 위로를 받아 다시금 일어나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기원합니다.

 

 

 

하나님의 위로가 여러분에게 있길 기원하면서,

 

제임스 김 목사 나눔

(2014년 8월 24일, 주일 오후 목양실에서 질병과 고통 중에 있는 사랑하는 형제, 자매님들을 생각하면서 기도하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