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불륜의 관계를 맺는 것일까요? (3)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골로새서 3장 13절).

 

 

            왜 내 남편이 딴 여자에게 한 눈을 파는 것입니까?  왜 내 아내가 딴 남자에게 정을 주는 것입니까? 

 

            요즘 같이 불륜의 관계를 묘사하는 드라마가 많이 나왔던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결혼한 부부에게 한 여자가 다가와서 그 부부의 남편을 유혹하고 또 한 남자가 다가와서 그 부부의 아내를 유혹하는 드라마(한국 드라마 “유혹”)을 보면서 꼭 이런 스토리를 써야 인기가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면서도 다른 한쪽으로 드는 생각은 어쩌면 이러한 드라마가 한국 사회의 현실을 보여주고 있는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저는 성경을 읽고 묵상하다가 이미 “왜 불륜의 관계를 맺는 것일까요?”란 제목 아래 두 말씀 묵상의 글을 썼습니다.  첫 번째 말씀 묵상은 잠언 5장 8절에 근거해서 불륜의 관계를 맺는 이유(원인)는 멀리해야 할 사람을 멀리하지 않고 가까이 하기 때문이다 라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한 남편이 자기의 한 아내를 가까이 하고 한 아내는 자기의 한 남편을 가까이 해야지 한 남편이 다른 남자의 아내(유부녀)나 다른 여자(처녀)를 가까이 하고 한 아내가 다른 여자의 남편(유부남)이나 다른 남자(총각)을 가까이 해서는 아니된다는 교훈을 받았습니다.  오히려 우리 남편들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짝지어주신 한 아내만을 사랑하되 성실히 사랑하며 우리 아내를 행복하게 하며 또한 그녀와 함께 즐거워해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우리는 그녀를 사랑스럽고 아름답게 여기며 그녀의 품을 항상 만족히 여겨야 함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녀의 사랑을 항상 연모해야 한다는 교훈을 받았습니다.  만일 우리가 그리하지 않으면 우리는 불륜의 관계를 맺게 된다고 배웠습니다.  두 번째 말씀 묵상은 전도서 7장 7절에 근거해서 불륜의 관계를 맺는 이유(원인)는 바로 탐욕이다 라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 안에 욕심이 있으면 우리는 우리 아내의 품을 항상 만족하게 여기지 않을 뿐만 아니라(잠5:19) 우리는 분수에 넘치게 다른 여자를 탐내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안목의 정욕에 이끌려 우리 아내 아닌 다른 여자를 쳐다봅니다.  그리고 우리의 귀는 그녀에게 대해서 듣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사탄은 우리를 음란으로써 육체의 정욕으로 꾀어 우리로 하여금 죄를 짓게 합니다(벧후2:18).  죄를 짓게 하되 사탄은 우리로 하여금 다른 여인을 탐내게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탐욕은  족한 줄을 모른다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사56:11).  결국 탐욕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 아내를 만족하게 여기지 못하게하여(잠5:19) 우리로 하여금 우리 이웃의 아내를 탐내게 만듭니다(출29:17).

 

            오늘 저는 “왜 불륜의 관계를 맺는 것일까요? (3)”란 제목을 걸고 세 번째 말씀인 골로새서 3장 13절과 폴 트립 박사님(Paul David Tripp)이 쓰신 “What did you Expect?”란 책 중심으로 불륜의 관계를 맺는 이유(원인)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그 이유(원인)은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바로 부부가 서로 용서하는 삶을 살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성경 골로새서 3장 13절은 주님께서 부부를 용서하신 것 같이 그 부부도 피차 용서해야 하는데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있기에 불륜의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이것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부부가 피차 용서하지 않는 제일 큰 이유는 주님께서 그 부부를 용서하신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부부는 주님의 용서하심을 마음으로 깨닫지 못하기에 피차 용서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 뿐만 아니라 그 부부는 서로를 향하여 불만이 있고 또한 그 불만이 점점 더 쌓이고 있습니다.  그 결과 그 부부는 서로 용납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용납 할 수 없을 정도까지 이르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서로 용서하지 않는 부부는 진심으로 서로 용납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할 수도 없습니다.  그리로 서로 용납하지 않는 부부는 서로 용서하기를 이미 마음으로 거부(거절)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면 왜 부부가 이 지경까지 오게 될 것일까요?  저는 그 과정을 폴 트립 박사님이 말한 수 많은 부부들이 걸어가고 있는 7가지 길들(paths) 근거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첫째 길은, 미성숙함과 실패(Immaturity and Failure)입니다.    

 

            결혼이란 이 죄악된 세상에서 한 죄인 남자가 한 죄인 여자와 결혼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부부 관계에서는 하나님께 죄를 범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거기에다가 많은 결혼이란 한 미성숙한 남자와 한 미성숙한 여자가 결혼하는 것이기에 수 많은 실수(mistakes)를 할 뿐만 아니라 많은 실퍠(failures)를 할 수 밖에 없습니다.  특히 젊은 미성숙한 부부가 결혼 초에 많은 실수를 범하며 또한 실패를 합니다.  그 실수와 실패 뒤에는 결혼에 대한 순진해 빠진(naïve) 생각 속에서 결혼을 잘 준비하지 못했기에 그 결과로 부부 초기에 갈등과 다툼과 상처를 경험합니다.  그 순진해 빠진 생각 중에 하나가 바로 결혼에 대한 비현실적인 기대를 한다는 것입니다.  결혼을 하면 평생 안싸울 것 같고 갈등도 없을 것같고 오직 주님의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며 행복하게 사는 것을 꿈꾸겠지만 그 꿈을 결혼 초에 깨질 확률이 참 많습니다.  그 결과 결혼 전에 가지고 있었던 환상과 꿈은 깨지고 실망과 상처 가운데 괴로워 합니다.  그 때서야 그 부부는 이상과 현실 속에서 정신을 차리고 현실 속에서 이상적인 꿈을 어떻게 이루어 나아가야 할지를 주님 앞에서 기도하며 고민하게 됩니다.  그러한 고민과 기도가 있으면 다행이지만 만일 그거조차 없이 비참하게 깨진 꿈의 현실 속에서 허덕이며 헤매는 부부는 점점 더 늪으로 빠지는 것처럼 부부 관계가 나빠질 수 밖에 없습니다. 

 

          둘째 길은, 편안한 패턴에 빠지는 것(Falling into Comfortable Patterns)입니다.

 

            이 말은 부부가 자신들의 미성숙함으로 인하여 부부 관계에 있어서 실패를 경험할 때에 그 실패를 통하여 배워서 부부 관계를 세우고 더욱더 두텁게 하며 부부의 성숙함을 추구하는데 유익하게 하는 힘든 길을 선택하기 보다 오히려 그 실패로 하여금 부부 관계를 더욱어 악화하게 만들도록 그저 내버려두는 편안한 길을 선택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의 죄악된 본능은 힘든 길을 선택하기 보다 편안한 길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우리의 본능되로 선택하는 편한한 길은 무엇입니까?  예를 들어 부부가 서로의 차이점을 인정하고 존중하지 않고 오히려 문제를 삼아 다투고 싸우므로 서로에게 상처를 입혔을 때 우리가 선택하는 편안한 길은 서로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고 서로를 용서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본능대로 서로에게 입은 상처를 기억하며 서로를 미워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미움을 우리 마음에 차근 차근 쌓아놓는 것입니다.  우리는 부부 관계에서 오는 상처를 주님 안에서 해결하지 않고 그저 마음에 차근 차근 쌓아 놓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우리의 죄악된 본능대로 하는 것이요 참으로 편안한 길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편안한 길을 선택하는 부부 관계에서는 우리가 미성숙함으로 맛보는 실패들을 더 이상 만들지 않고자 하는 헌신과 노력이 결핍되 있습니다.  그 결과 거듭되는 동일한 실패와 더 나아가서 새로운 실패들을 경험하는 부부의 마음에는 상처와 아픔과 눈물이 쌓이고 고이게 되므로 부부 관계가 더욱더 나빠질 수 밖에 없습니다.

 

            셋째 길은, 방어를 수립하는 것(Establishing Defenses)입니다.

 

            결혼 생활에 있어서 참으로 중요한 것은 피차 용서하되 서로에게 용서를 진심으로 구하며 또한 서로를 용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너무나 힘들 뿐만 아니라 불가능하다는 생각까지 듭니다.  그 정도로 우리의 죄악된 본능은 서로를 용서하고 서로를 용납하기 보다 오히려 서로의 관계 사이에 벽을 쌓는 것입니다.  벽을 쌓되 우리는 자꾸만 그 마음의 벽을 더 높게 쌓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 이상 서로의 잘못과 죄를 서로에게 정직하게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기 보다 서로의 잘못과 죄를 지적하고 비난하며 심지어 우리는 마음으로라도 서로를 정죄까지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하는 것은 결국 우리 자신의 의(self-righteousness)를 들어내는 것입니다.  우리는 ‘나는 옳고 당신은 틀렸어’라고 생각하고 있기에 상대방 배우자를 비난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서로를 비난할 때 미성숙하고 자기 의에 가득찬 부부는 서로의 비난에서 자기가 상처입는 것을 보호하자고 자신에게 보호막을 칩니다.  그 보호막이란 바로 자기와 자기의 배우자 사이에 방어를 수립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숙한 배우자가 하나님의 사랑으로 자신의 죄를 책망을 할 때 그 책망을 받는 미성숙한 배우자는 방어를 수립하여 자신으로 하여금 상처 입는 것을 보호합니다.  그 뿐만 아니라 그 미성숙한 사람은 자기의 성숙한 배우자에게 오히려 공격(offense)을 합니다.  그러면 공격을 받는 상대방 배우자는 마음에 상처를 입고 아파합니다.  그리고 만일 그 상대방 배우자가 미성숙하면 그/녀 또한 공격을 하므로 결국에는 부부가 서로 방어하고 서로 공격하는 ‘부부 전쟁’의 순환(marital war cycle)을 겪게 될 수 밖에 없습니다.  부부 관계가 나빠지고 나빠질 수 밖에 없습니다.

 

          넷째 길은, 반감을 키우는 것(Nurturing Dislike)입니다.

 

            부부가 미성숙해서 서로의 다른점들을 용납하지 못하고 다투고 싸우면서 갈등을 키워갑니다.  그리고 그 부부는 서로 용납하고 용서하는 것보다 다투고 싸우는 것이 익숙합니다.  그 부부는 갈등 속에서 부부 관계를 지키려고 하기보다 자기 자신만을 지키려고 방어막을 칩니다.  그러면서 그 부부는 지속적으로 서로를 공격하므로 부부의 관계가 더욱더 악화되도록 내벼러 둡니다.  어느 정도로 부부 관계가 되도록 내버려 두는가 하면 서로를 바라보는 관점이 점점 더 부정적이 됩니다.  그리고 그 부부는 점점 더 서로의 부정적인 면만을 보면서 서로에게 비판적인 됩니다.  그 결과 그 부부는 서로를 향한 반감만을 키우게 되므로 부부 관계가 더욱더 나빠질 수 밖에 없습니다.

 

            다섯째 길은, 압도되는 것(Becoming Overwhelmed)입니다.

 

            부부 관계가 나빠지면 나빠질 수록 어느 순간부터는 부부의 관계가 서로에게 큰 부담으로 다가오게 됩니다.  다가오데 그 큰 부담이 너무나 그들 각자에게 혼자서는 질 수 없는 무거운 짐으로 느껴질 때가 옵니다.  그 때 만일 부부가 주님안에서 한 마음이 되서 서로의 짐을 져주고 또한 주님께서 모든 짐을 겸손히 믿음으로 맡기면 되지만 부부 관계가 매우 나빠진 부부는 그렇게 할 수 있는 믿음과 능력도 상실하였기에 서로의 짐을 져 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렇게 할 수도 없습니다.  무거운 짐을 부부가 서로 따로 지니 얼마나 무겁겠습니까.  결국 그 부부는 무거운 짐으로 인하여 부부 관계가 더욱더 나빠질 수 밖에 없습니다.

 

            여섯째 길은, 다른 부부를 질투하는 것(Envy of Other Couples)입니다.

 

           점점 더 관계가 나빠지는 부부는 서로에게서 눈을 돌리기 시작하여 결국에는 주위에 다른 부부들을 쳐다 보기 시작합니다.  특히 그들이 부부 관계가 좋아 보이는 부부들을 볼 때에 그들은 자기들과 그 다른 부부들과 비교합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금술이 좋아보이는 그 부부들을 부러워 합니다.  부러워하되 그들은 자신들의 부부 관계가 실패했다는 좌절감과 자괴감 속에서도 지금 배우자와 헤어져서 새로운 만남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는 아니 된다는 것을 알면서 아예 자포자기하는 것보다 새로운 만남과 관계를 맺고 다시금 새로운 출발을 하고 싶다는 기대감도 갖게 됩니다. 

 

            일곱째 길은, 벗어나는 공상을 하는 것(Fantasies of Escape)입니다.

 

            부부 관계가 무거운 짐으로 다가오면서 다른 부부들과 비교하게 되고 더 나아가서 그 다른 부부들을 질투하는 관계가 매우 나빠진 부부는 더 이상 그 관계를 지속할 수 없다는 생각 아래 그 관계에서 벗어나는 공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러한 공상 속에서 새로운 만남을 갖게 될 때 그들은 그 만남 속에서 새로운 관계를 갖게 될 위험이 참 많습니다.  특히 존경을 받지 못하고 있었던 남편이 자기 아내가 아닌 다른 여자에게 관심을 받고 그녀에게 존경을 받을 때에 그는 그녀와 불륜의 관계를 맺을 확률이 많습니다.  또한 자기 남편에게 사랑을 받지 못하고 오히려 깊은 상처를 받아 그 상처들이 쌓이고 쌓인 아내에게 자기 남편이 아니 다른 남자가 자기에게 관심을 가져주고 따뜻하게 사랑해 줄 때 그녀는 그와 불륜의 관계를 맺을 확률이 높습니다.  그리고 만일 그들이 불륜의 관계를 맺게 된다면 그들은 관계가 나쁜 자기의 배우자와 헤어지고자 그/녀에게 일방적으로 이혼을 요구할 것입니다.   

 

            하루 아침에 불륜의 관계를 맺는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부부 관계가 원만하지 않되 오랫동안 관계가 안 좋았던 부부가 불륜의 관계를 맺을 확률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부부가 서로에게 쌓인 많은 불만 속에서 서로를 용납하지 않고 용서하기를 거부하므로 부부 관계가 많이 악화된 부부가 자기 배우자 외에 다른 이성에게 관심을 갇게 될 활륙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미성숙하여 실패를 많이 경험하는 부부들, 서로의 문제와 갈등을 주님 안에서 해결해 나아가려는 힘든 노력보다 문제와 갈등이 곪도록 그냥 넘어가든지 내버려 두는 편한한 길을 선택한 부부들, 그러한 가운데서 주님 안에서 부부의 한몸됨을 지켜 나아가려고 하기 보다 자기 자신만을 보호하려고 방어막을 쳐서 자기는 옳고 내 배우자는 틀렸다고 비난하므로 계속해서 부부 관계가 나빠지는 부부들, 이제는 서로를 바라보는 관점이 너무 비판적이고 비관적인 부부들, 이제는 함께 살아가는 것조차다 너무나 무거운 짐이 된 부부들, 그러므로 다른 부부와 비교하면서 그 다른 부부를 질투하는 부부들, 결국에 가서는 자기가 처한 상황에서 벗어나는 공상을 하다가 자기 배우자 와에 다른 이성과 눈이 맞아 불륜의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 부부들은 주님 안에서 성숙함을 추구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주님 안에서의 성숙함이 부부 관계에서의 성숙함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주님 안에서 점진적으로 함께 성숙해져 가는 부부는 서로의 관계에서도 점진적으로 성숙해져 갈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부부의 관계는 주님 안에서 점진적으로 온전해져 가므로 말미암아 실수와 실패를 줄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 실수와 실패를 하나님의 지혜로 자신들의 부부 관계에 유익하게 할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부부 관계를 추구하는 성숙해 가는 지혜로운 부부는 주님이 세우시는 부부 관계에 헌신하므로 편안한 길을 선택하기 보다 힘든 길을 선택합니다.  그 힘들 길이란 예를 들어 자기 희생입니다.  이 힘든 길을 선택하는 성숙한 부부에게는 서로를 주님 안에서 더욱더 세우고자 자기 자신을 희생하는데 헌신하여 실천에 옮기는 생활 패턴이 있습니다.  서로 용납하고 서로 용서하며 서로 사랑하는 삶의 패턴으로 인하여 부부의 관계는 주님 안에서 더욱더 성숙해 지며 온전해져 갑니다.  그렇게 성숙해 지며 온전해져 가는 부부는 서로를 공격하고 또한 서로 방어하면서 부부 전쟁 순환에 빠져들지 않습니다.  또한 그들은 서로에게 반감을 키우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서로에게 정감을 키웁니다.  그리고 그들은 서로의 무거운 짐을 져줍니다.  그 뿐만 아니라 그들은 함께 짐을 집니다.  그러기에 그들의 짐을 가볍습니다.  또한 그들의 마음도 가볍습니다.  그리고 성숙한 부부는 서로의 관계가 건강하기에 다른 부부들과 비교하지를 않을 뿐만 아니라 그렇개 해야 한다는 필요성도 느끼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부부 관계가 만족하기에 그 관계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공상을 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어떻게 하면 더욱더 주님 중심된 부부 관계로 세워져 나아갈 수 있을까 말씀 안에서 씨름하며 기도하는 가운데 주님의 명령에 순종합니다.  그러므로 주님 중심된 증인 공동체로서 불륜과 이혼이 가득찬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들어내는 모델을 제시하는 부부로 주님께 쓰임을 받습니다.  그러한 주님 중심된 부부로 세움받는 우리가 되길 기원합니다.

 

 

주님 중심된 부부 관계로 세움을 받기를 간절히 기원하는,

 

제임스 김 목사 나눔

(2014년 7월 26일, 주님께서 짝지어 주신 사랑하는 아내를 생각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