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한 자의 즐거움

 

 

“우리가 모압의 교만을 들었나니 심히 교만하도다 그가 거만하며 교만하며 분노함도 들었거니와 그의 자랑이 헛되도다  …  즐거움과 기쁨이 기름진 밭에서 떠났고 포도원에는 노래와 즐거운 소리가 없어지겠고 틀에는 포도를 밟을 사람이 없으리니 이는 내가 즐거운 소리를 그치게 하였음이라” (이사야 16장 6, 10절).

 

 

            유병언 저 세모그룹 회장이 숨어있던 순천 별장의 작은 골방에서 미화 16만 달러와 현금 8억 3000만원 등이 무더기로 발견됐다고 합니다.  그 돈 가방 무게는 25㎏ 정도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유씨가 도피 생활에 무엇보다 필요한 돈을 그대로 놔뒀고, 유씨 시신이 발견된 현장에서 나온 유류품 속에 돈 한 푼 없었던 점을 보면 유씨가 얼마나 다급한 상황에서 탈출했는지 짐작하게 해준다고 합니다 (조선닷컴).  이 뉴스를 접하면서 저는 전도서 5장 15-16절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그가 모태에서 벌거벗고 나왔은즉 그가 나온 대로 돌아가고 수고하여 얻은 것을 아무것도 자기 손에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이것도 큰 불행이라 어떻게 왔든지 그대로 가리니 바람을 잡는 수고가 그에게 무엇이 유익하랴.”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다가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갈 수 밖에 없는 인생이거만(욥1:21), 이 세상을 떠날 때에는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할 것이것만(전5:15)  왜 우리 사람들은 억척스럽게 돈을 모으고 있으며(11절) 또한 모든 돈을 자기에게 해가 되도록 비축해 놓는 것일까요(13절). 

 

만일 우리가 돈이 많아지고 재산이 날로 늘어가게 되면(시73:12) 우리의 탐욕은 하늘 높은 줄 모르게 될 위험이 많습니다(7절).  그리고 우리가 교만해져서(6절) “내 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신8:17)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 결과 우리는 하나님을 잊어버리고(14절)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으면서(20절) 결국에는 돈을 우상화하여(마6:24) 그 우상을 따라 섬길 것입니다(신8:19).  우리는 돈을 사랑하게 될 것이며(전5:10) 또한 하나님 보다 돈과 재물의 풍부함을 더 신뢰하게 될 것입니다(욥31:24, 시52:7).  그리고 우리는 풍요를 사랑하게 될 것이며(전5:10) 또한 재물의 풍부함으로 기뻐할 것입니다(욥31:25).  그러나 과연 이 기쁨이 얼마나 가겠습니까.      

 

오늘 본문 이사야 16장 6절과 10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모압을 황폐케 하시므로 말미암아(15장) 모압이 통곡하고 근심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16장).  이사야 16장 7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모압이 모압을 위하여 통곡하되 다 통곡하며 길하레셋 건포도 떡을 위하여 그들이 슬퍼하며 심히 근심하리니.”  왜 모압이 통곡하고 근심할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까?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모압을 벌하시사 그들의 포도 생산을 멸절시킬 것이기 때문입니다(8-9절).  포도를 많이 생산하는 모압으로서는 포도 생산이 멸절된다는 것은 큰 물질의 손해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박윤선).  왜 하나님께서는 모압에게 그리하신 것일까요?  그 이유는 모압이 심히 교만하였기 때문입니다(6절).  심히 교만하되 모압은 거만하고 스스로 잘난 척을 하면서(6절) 그들의 생산물이 풍성한 포도 나무 열매로 인하여 즐거워하고 기뻐하였습니다(10절).  마치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풍성한 소득과 재물로 인하여 즐거워하며 기뻐하듯이 말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 풍성한 소득과 재물로 인하여 마음이 교만해지고 거만해져서 스스로 잘난척 하듯이 말입니다.  그러한 우리를 하나님께서 사랑하시사 징벌하시되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풍성한 재물을 다 없애시므로 말미암아 우리의 즐거움과 기쁨을 그치게 하십니다(10절).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슬퍼하게 하며 심히 근심하게 만드십니다 (7절).  이러한 슬픔과 근심은 우리 마음에 유익합니다(전7:3).  우리는 슬픔과 근심을 우리 자신에게 유익되게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재물의 손해로 말미암아 슬퍼하고 근심하므로 하나님께 우리의 죄를 자복하고 회개해야 합니다(고후7:9-10).  그러면에서 재물의 손해로 인한 슬픔과 근심은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해서라도 우리가 잃고 있었던 영적인 재산을 되찾아야 합니다.  우리는 재물의 손해를 통해서라도 영적인 재산을 되찾아야 합니다. 

 

지금 우리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포도나무의 풍성한 열매를 사모하며 추구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그 풍성한 열매를 보고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하여(창3:6) 그 열매를 따 먹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우리는 그 풍성한 열매를 따 먹으므로 우리는 만족하고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많은  축복을 사모하며 추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많은 축복을 받아 누릴 때에 우리는 만족하고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만족감과 즐거움을 누리면 누릴 수록 우리는 마음을 지키지 못하여 결국 탐심에 이끌려 더 많은 측복을 더욱더 사모하고 추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탐심과 더불어 우리의 마음은 교만해지기까지 해서 결국 우리는 우리 자신을 자랑하며 하나님의 영광보다 우리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사 징벌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받아 누리고 있었던 축복을 가지고 가시사 우리로 하여금 더 이상 즐거움을 누리지 못하게 하시며 오히려 우리로 하여금 슬퍼하며 근심하게 하십니다.  그 때 우리는 그 잃음의 슬픔과 근심을 우리 신앙생활에 유익되게 해야 합니다.  즉, 우리는 하나님께 우리의 죄를 자복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더 이상 하나님의 축복으로 인하여 즐거워하기 보다 그 축복을 우리에게 주신 주님 한 분만으로 즐거워해야 합니다.  더 이상 우리는 주님보다 주님의 축복에 더 큰 관심을 갖고 그 축복을 얻고자 신앙생활을 해서는 아니됩니다.  그 이유는 이러한 기복신앙의 초점은 주님이라기 보다 주님의 행하심에 맞춰져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기복 신앙은 주님께서 축복을 주시면 우리가 감사와 즐거움으로 하나님께 찬양과 경배를 드리지만 주님께서 축복을 주지 아니하시면 우리는 주님에게까지도 불평하고 원망을 합니다.  이것은 주님 중심된 신앙생활이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가 주님께 기도하고 기대하는 축복 중심된 신앙생활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축복 중심된 신앙생활하는 사람의 입에서는 욥과 같은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화도 받지 아니하겠느냐”(욥2:10) [“우리가 하나님께 복도 받았는데 재난을 당하지 말라는 법이 있겠소?” (현대인의 성경)].  그러므로 우리는 뿌포도나무의 풍성한 열매로 인하여 만족하고 즐거워하기 보다 포도나무의 뿌리로 인하여 만족하고 즐거워해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이 주시는 축복으로 만족하고 즐거워하기 보다 포도나무의 뿌리가 되시는 예수님으로 만족하며 즐거워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풍부할 때나 궁핍할 때나 주님 한 분만으로 자족하며 (빌4:11-12) 즐거워 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할 때 주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나의 즐거움”이 될 것입니다(시119:24, 92, 143).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겸손히 순종하는 즐거움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겸손한 자의 즐거움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길 기원합니다.

 

 

포도나무의 풍성한 열매들로 인하여 만족하며 즐거워하기 보다 그 포도나무의 뿌리가 되시는 예수님으로 인하여 만족하며 즐거워하길 원하는,

 

제임스 김 목사 나눔

(2014년 7월 25일, 재물의 손해를 통해서라도 회개하여 교만함을 버리고 영적인 재산을 되찾아 겸손한 자의 즐거움을 맛보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되길 기원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