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겸손하길 기원합니다.

 

 

“네가 에돔을 쳐서 파하였으므로 마음이 교만하였으니 스스로 영광을 삼아 왕궁에나 네 집으로 돌아가라 어찌하여 화를 자취하여 너와 유다가 함께 망하고자 하느냐 하나” (열왕기하 14장 10절).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욥8:7).  당신은 당신의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당신의 나중은 심히 창대하길 원합니까?  아니 “심히”까지는 아닐지라도 당신은 당신의 나중에 좀 창대해 지길 원합니까?  당신이 생각하는 “창대”는 무엇인지요?  창대해지지 않고 시작부터 나중까지 “미약”하면 안되는 건가요?  비록 이 세상에서는 시작부터 끝까지 “미약”한다 할지라도 다가오는 저 세상에서 만이라도 “창대”해진다는 소망과 확신만 있으면 되지 않나요?  이 세상에서의 예수님의 삶의 시작은 베들레헴 마굿간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시작된 예수님의 삶의 끝은 바로 갈보리산 십자가였습니다.  이 땅에서의 예수님의 삶의 시작과 끝은 결코 이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창대”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낮아지시고 또 낮아지셨습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하나님과 동동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제를 가져 사람들과 되셨습니다(빌2:6-7).  예수님은 자기를 낮추시되 십자가에 죽으시기까지 하나님 아버지께 복종하셨습니다(8절).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지극히 높이셨습니다(9절).  우리는 이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님의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5절).  우리는 겸손한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우리는 시작부터 죽는 그 날까지 겸손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열왕기하 14장 10절은 북쪽 이스라엘 왕인 요아스가 남쪽 유다 왕 아마샤에게 한 말입니다(참고: 9절).  이스라엘 요아스 왕이 유다 왕 아마샤에게 한 말은 내용을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너의 마음이 교만해 졌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마샤 왕이 교만해진 이유는 그가 소금 골짜기에서 에돔 사람 10,000명을 죽이고 또 전쟁을 하여 셀라를 취했기 때문입니다(7절).  즉, 아마샤의 교만은 에돔을 쳐셔 승리했기 때문입니다(10절).  그래서 아마샤는 교만해져서 이스라엘 요아스 왕에게 정면으로 한번 겨루어 보자고 했던 것입니다(8절, 현대인의 성경).  그 때에 이스라엘 요아스 왕은 사람을 보내어 유다 왕 아마샤에게 “네가 에돔을 쳐서 이기더니 대단히 교만해졌구나.  너는 현재의 영광을 만족스럽게 여기고 네 집이나 지키고 앉아 있거라.  어째서 네가 화를 스스로 불러일으켜 너와 유다가 함께 망하려고 하느냐?”(10절, 현대인의 성경)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마샤는 요아스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11절).  그 결과 전쟁에서 아마샤와 유다군은 패하였고 아마샤는 생포를 당했습니다(12-13절). 

 

            유다 왕 아마샤의 시작은 좋았습니다.  그의 시작은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히(옳은 일) 행하였습니다(3절).  그러나 그의 나중은 나빴습니다.  그는 나중에 교만해졌습니다.  그는 교만해져서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우상을 숭배하였습니다(대하25:14).  그는 교만해서 하나님의 경고를 듣지 않았습니다(16절).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진노하사 그의 선지자를 통하여 경고했지만 아마샤는 그 경고를 듣지 않았습니다(16절).  그런데 아마샤는 하나님의 경고만 듣지 않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요아스 왕의 말도 듣지 않았습니다(왕하14:11).  그가 이리 하나님의 말씀이나 요아스의 말을 듣지 않은 이유는 그는 교만했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교만한 자는 듣지 않습니다.  마음이 교만한 자는 하나님의 경고를 듣지 않습니다.  그는 사람의 경고도 듣지 않습니다.  결국 나중에 아마샤는 하나님을 저버렸습니다 (대하25:27).  그의 시작은 하나님 보시기에 옳은 일을 하였지만(왕하14:3, 현대인의 성경) 그의 나중은 하나님을 저버렸습니다(대하25:27).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의 시작은 겸손했습니다.  그는 스스로 작게 여겼습니다(삼상15:17).  그러나 그는 나중에 교만해졌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목소리를 청종하지 않았습니다(19절).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버렸습니다(26절).  그리고 그는 하나님께서 악하게 여기시는 일을 행하였습니다(19절).  그는 하나님께 범죄한 것입니다(24, 30절).  그러한 가운데서도 사울은 이스라엘 백성의 장로들 앞에서 높임을 받기를 원했습니다(30절).  이렇게 사울 왕은 시작은 겸손했지만 나중은 교만해졌습니다.  왜 그는 나중에 교만해 진 것일까요?  그 원인은 그는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승리했기 때문입니다(8-12절).  그는 승리한 후 자기 마음을 지키지 못했기에 마음이 교만해 져서 자기 자신을 위하여 기념비를 세웠습니다(12절).  즉, 그는 전쟁에서는 승리했지만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는 패했던 것입니다.  그는 아말렉과의 싸움에서는 승리했지만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는 패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끝까지 겸손하지 못하고 나중에 교만해 진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어떻게 해야 시작부터 끝까지 겸손할 수가 있을까요?  물론 우리가 시작부터 끝까지 겸손하기 위해선 우리 안에 그리스도 예수님의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빌2:5).  그런데 문제는 이 마음을 품지 못하게 하는 유혹이 끊임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유혹이 언제 우리에게 속히 다가옵니까?  바로 승리한 후입니다.  바로 은혜 받은 후입니다.  주위 모든 사람들에게 인정 받고 칭찬을 받을 때 입니다.  우리가 사람들 가운데서 높임을 받고 영광을 받을 때 우리는 그 유혹에 넘어가기가 쉽습니다.  그 결과 우리의 마음은 교만해집니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이 교만해 지면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는 형제의 책망을 듣지 않습니다.  심지어 우리는 하나님의 경고도 무시합니다.  그 때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 죄에 대한 결과로 하나님께 매를 맞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을 매를 맞을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교만한 마음을 부서트리시가 겸손케 하십니다.  그리고 겸손케 되어 갈 때에 우리는 비판과 비난의 소리를 겸허히 듣습니다.  다윗이 그랬습니다.  그는 자신의 죄의 결과로 반역이 일으킨 아들 압살롬을 피해 도망가고 있었을 때 베냐민 지파 사람인 시므이가 그를 저주하였을 때에도 “여호와께서 그에게 다윗을 저주하라 하심”이라고 말하면서 그 저주의 소리를 다 들었습니다(삼하 16:5ff).  그리고 그는 그 저주의 소리륻 다 들으면서 하나님께서 자기의 원통함을 감찰하시사 그 저주 때문에 하나님께서 선으로 자기에게 갚아 주실 줄 믿었습니다(12절).  이 겸손한 믿음이 우리에게 있을 때 우리는 끝까지 겸손할 수가 있습니다.  이 겸손한 믿음이 있으면 우리는 시편 기자처럼 하나님께 기도할 것입니다: “여호와여 영광을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오직 주는 인자하시고 진실하시므로 주의 이름에만 영광을 돌리소서”(시115:1).

 

 

 

그리스도 예수님의 마음을 품기를 원하는,

 

 

제임스 김 목사 나눔

(2014년 5월 1일, 시작과 끝이 미약해서라도 마음이 끝까지 겸손하길 기원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