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죽이고 또 빼앗았느냐”

 

 

“너는 그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죽이고 또 빼앗았느냐고 하셨다 하고 또 그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개들이 나봇의 피를 핥은 곳에서 개들이 네 피 곧 네 몸의 피도 핥으리라 하였다 하라” (열왕기상 21장 19절).

 

 

            탐심이란 무엇입니까?  탐내거나 부당한 욕심을 부리는 것입니다.  만족할 줄 모르는 욕심이 바로 탐심입니다(다국어성경).  하나님은 우리에게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출20:17).  하나님께서는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고 명하셨습니다(17절).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모든 탐심을 물리쳐야 합니다(눅12:15).  그 이유는 탐심은 우상숭배이기 때문입니다(골3:5).  탐심은 물질을 추구하여 그것을 하나님의 위치에 놓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그것은 우상숭배가 되는 것입니다(다국어성경).

 

            오늘 본문 열왕기상 21장 19절은 하나님께서 엘리야 선지자에게 하신 말씀입니다(17절).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너는 일어나 내려가서 사마리아에 있는 이스라엘의 아합 왕을 만나라”(18절)고 말씀하셨는데 그 말씀이 임한 때는 바로 아합 왕이 그의 이웃 나봇의 포도원을 차지하러 그리로 내려가고 있었을 때였습니다(16, 18절).  그 때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를 아합에게 보내사 두 가지를 말씀하게 하셨습니다: 첫째는, “네가 죽이고 또 빼앗았느냐”란 말씀이며, 둘째는, “개들이 나봇의 피를 핥은 곳에서 개들이 네 피 곧 네 몸의 피도 핥으리라”는 말씀입니다(19절).  여기서 첫째 말씀의 내용은 아합의 죄를 책망하는 말씀이며 둘째 말씀의 내용은 장차 아합에게 임할 그의 죄의 결과에 관한 예언의 말씀입니다.

 

먼저 아합의 죄를 책망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이스라엘 왕 아합은 그의 왕궁에서 가까이 있는 나봇의 포도원을 원했습니다(1-2절).  그가 나봇의 포도원을 원했던 이유는 그 포도원을 채소 밭으로 사용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2절).  좀 이해가 안됩니다.  한 나라의 왕이 자기 나라를 다스리기도 바쁠텐데 뭐하러 한 이웃 시민의 포도원을 돈 주고 사서 채소밭으로 사용하려고 했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의 이웃 나봇이 포도원을 아합 왕에게 주기를 거절한 것입니다.  그 이유는 “내 조상의 유산을 왕에게 주기를 여호와께서 금하”셨기 때문입니다(3절).  아합 왕이 그 포도원보다 더 아름다운 포도원을 주던지 아니면 그 값을 돈으로 주겠다고 했는데도 불구하고(2절) 나봇은 하나님께서 금하신 것이기에 아합 왕에게 주기를 거절하였습니다(4절).  거절을 당한 아합은 근심하고 답답하여 왕궁으로 돌아와 침상에 누워 얼굴을 돌리고 식사를 하지 않았습니다(4절).  왜 이렇게까지 그가 반응을 했는지 좀 이해가 안됩니다.  오죽 했으면 그의 부인인 왕후 이세벨이 아합에게 자초지종을 다 들은 후 “이래서야 어떻게 이스라엘 왕으로 행세할 수 있겠습니까?”(7절, 현대인의 성경)이라고 말했겠습니까.  결국 이세벨이 자기 남편 아합에게 “내가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포도원을 왕께 드리리이다”(7절)라고 말한 후 아합의 이름으로 편지를 써서 왕의 도장을 찍어 나봇의 성에 사는 지도자들과 귀족들에게 보내(8절) 나봇을 모함하여 그를 돌로 쳐죽이게 한 후(9-13절) 아합으로 하여금 나봇의 포도원을 차지하게 하였습니다(15절).  분명히 나봇의 말에 의하면 그 포도원은 아합 왕에게 주는 것을 하나님께서 금하신 것임에도 불구하고(3절) 왕후 이세벨은 “내가” 그 포도원을 자기 남편 아합 왕에게 드리겠다고 한 것을 보면 그녀는 매우 교만한 여자였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권력과 편지를 사용하여 나봇을 모함하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있었던 나봇을 불량자 두 사람을 사용케 하여 나봇이 하나님과 아합 왕을 저주하였다고 거짓 증언케 하므로 결국 선량하고 충성된 시민인 나봇을 죽인 것을 보면 이세벨은 매우 교활하고 간교한 여자였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아합 왕은 “그의 아내 이세벨이 충동하였”으므로(25절) 자기 자신을 팔아(20, 25절)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되(20절) “아합과 같이 그 자신을 팔아 여호와 앞에서 악을 행한 자가 없”었을 정도였습니다(25절).  그 악행은 바로 나봇의 포도원을 그가 나봇을 죽이고 그의 포도원을 빼앗은 것입니다(19절).  아합의 죄는 바로 그의 이웃인 나봇의 소유인 포도원을 탐내어 그를 죽이고 그 포도원을 빼앗은 것입니다. 

 

저는 이 아합 왕의 죄를 묵상할 때 잠언 22장 28절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네 선조가 세운 옛 지계석을 옮기지 말지니라” (참고: 신19:14).  이 말씀의 뜻은 한 마디로 말하면 남의 소유를 침해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박윤선).  그 이유는 남의 소유를 침해하는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신27:17).  그런데 아합 왕은 그의 이웃인 나봇의 소유를 존중하지 않고 오히려 그의 소유를 침해하되 그를 죽이고 그의 포도원을 빼앗았으니 하나님 보시기에 이 얼마나 큰 죄요 악행입니까.  또한 저는 아합 왕의 죄를 묵상할 때 다윗 왕이 생각났습니다.  그 이유는 아합 왕이 편지를 사용하여(물론 이세벨 왕후가 그래 했지만 그녀가 아합 왕의 이름과 그의 인을 쳐서 편지를 봉하여 나봇의 성에 지도자들과 귀족들에게 보냈기에) 나봇을 죽이고 그의 포도원을 빼앗았던 것처럼 다윗 왕도 그의 충선된 군인 우리아를 죽임에 있어서 편지를 요압 장군에게 보내어(그것도 우리아의 편으로) 우리아를 죽이고 그의 소유인 그의 아내 밧세바를 빼앗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다윗 왕은 하나님께서 나단 선지자를 통하여 그의 죄를 책망했을 때 다윗은 자신의 죄를 자백하였습니다(삼하 12:13).  그러나 아합 왕은 하나님께서 엘리야 선지자를 통하여 그의 죄를 책망하였을 때 아합은  스스로 겸비하는 듯 하였지만(왕상 21:29) 그는 진정으로 회개하지 않았습니다(22:52-53).  왜 그는 진정으로 회개하지 않았을까요?  그 이유는 그의 마음에 있는 탐심 때문이었다고 생각합니다[나봇의 포도원을 탐했던 아합(왕상21장)은 길르앗 라못도 탐했음(22장)].  그는 탐심의 노예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장차 아합에게 임할 그의 죄의 결과에 관한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을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 선지자를 통하여 아합에게 예언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 예언의 말씀이란 “개들이 나봇의 피를 핥은 곳에서 개들이 네 피 곧 네 몸의 피도 핥으리라”는 것이었습니다(21:19).  그리고 그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대로 아합은 아람과의 전쟁에서 죽어 개들이 그의 피를 핥았습니다 (22:37).  아합 왕의 부인이 왕후 이세벨에 관한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은 더욱더 무시무시하였습니다.  그 예언의 말씀이란 “개들이 이스르엘 성읍 곁에서 이세벨을 먹을지라”는 것이었습니다(21:23).  그리고 이세벨은 이 예언의 말씀대로 죽임을 당하되 예후가 “이 저주 받은 여자를 찾아 장사하라”(왕하 9:34)고 명하였을 때 “가서 장사하려 한즉 그 두골과 발과 그의 손 외에는 찾지 못”하였습니다(35절).  결국 하나님께서는 그의 종 엘리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 “이스르엘 토지에서 개들이 이세벨의 살을 먹을지라”(36절)는 예언의 말씀이 성취된 것입니다.  우리는 명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은 결코 헛되이 하나님께로 되돌아 가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그 분이 의도한 목적을 성취하신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사55:11).

 

 

 

탐심의 탈을 쓰지 아니한(살전2:5) 주님의 종으로 세움 받길 원하는,

 

 

제임스 김 목사 나눔

[2014년 4월 25일,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눅12:15)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길 기원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