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다시 일으켜 주시는 하나님

 

 

“이에 일어나 먹고 마시고 그 음식물의 힘을 의지하여 사십 주 사십 야를 가서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니라 엘리야가 그 곳 굴에 들어가 거기서 머물더니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열왕기상 19장 8-9절).

 

 

제 평생 잊지 못하는 설교 제목이 있습니다.  그 설교 제목은 바로 “다시 일어선 엘리야”입니다.  이 설교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신 분은 바로 저의 삼촌 고 김창혁 목사님이십니다.  그래서 저는 그 설교 제목을 생각할 때마다 저의 삼촌 목사님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마치 하나님께서 엘리야 선지자를 다시 일으켜 주셨던 것처럼 살아 생전에 삼촌 목사님을 일으켜 주셨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기억납니다.  삼촌 목사님과 함께 승리장로교회를 섬기고 있었을 때 제가 보기엔 삼촌 목사님이 영적 침체(spiritual depression)를 겪고 계시는 모습을 본 기억이 납니다.  그 와중에서도 “다시 일어선 엘리야”란 제목 아래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셨을 때 저는 삼촌 목사님이 자기 자신에게 말씀을 선포하고 계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낙심하고 영적으로 침체되었을 때에 우리를 다시 일으켜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과연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어떻게 다시 일으켜 주실까요? 

 

오늘 본문 열왕기상 19장 8-9절을 보면 갈멜 산에서 850명의 바알과 아세라의 선지자들과 대결하여(18:19) 승리한 주님의 종(36절) 엘리야 선지자가 바알의 선지자를 다 잡아 기손 시내에서 죽인 것(40절)을 아합 왕이 자기 부인이 왕후 이세벨에게 말하므로(19:1) 이세벨이 엘리야에게 사신을 보내어 “내가 내일 이 맘때에는 반드시 네 생명을 저 사람들 중 한 사람의 생명과 같에 하리라 …”(2절)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엘리야는 두려워서 자기 사환을 데리고 유다의 브엘세바로 도망하였습니다 (3절, 현대인의 성경).  그리고서 그는 하루 종일 혼자 광야로 들어가 한 로뎀 나무 아래에 앉아서 죽기를 원하여 하나님께 이렇게 간구하였습니다: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니이다”(4절).  이 얼마나 낙심한 영혼의 부르짖음입니까?  왜 엘리야는 자기 조상들보다 나은 것이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하였을까요?  왜 그는 하나님께 죽기를 간구하였을까요?  자기 자신이 처한 상황으로 인하여 두려움 속에서 자기 자신을 바라보았을 때 낙망하고 심지어 절망해서 그렇게 간구한 것이 아닐까요?  이렇게 절망하고 있었던 엘리야를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다시 일으키셨습니까?  한 두 가지로 생각해 보았습니다.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음식물의 힘으로 엘리야를 다시 일으켜 주셨습니다.   

 

            오늘 본문 열왕기상 19장 8절을 보십시오: “이에 일어나 먹고 마시고 그 음식물의 힘을 의지하여 사십 주 사십 야를 가서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니라.”  로뎀 나무 아래에 앉아서 죽기를 간구한 후 엘리야는 그 나무 아래 누워 잠이 들었습니다(5절).  얼마나 심신이 지쳤으면 하나님께 간구한 후 그 나무 아래에 누워 잠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이렇게 잠을 자고 있었던 엘리야에게 천사가 나타나 그를 어루만지며 “일어나서 먹으라”고 말하였습니다(5절).  그래서 잠에서 일어난 엘리야는 천사가 준비해 놓은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 물”을 먹고 마셨습니다(6절).  그런 후 그는 또 다시 누웠습니다(6절).  그런데 하나님의 천사가 또 다시 와서 엘리야를 어루만지며 “일어나 먹으라 네가 갈 길을 다 가지 못할까 하노라”고 말하였습니다(7절).  그래서 엘리야는 일어나 먹고 마시고 힘을 얻어[(개혁개정) “그 음식물의 힘을 의지하여”] 40일 동안 밤낮 걸어 하나님의 산인 시내산에 도착했습니다(8절, 현대인의 성경).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하나님께서 음식물의 힘으로도 우리를 다시 일으켜 주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우리가 심신이 지쳐있을 때 물론 마음이 일으킴을 받는게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허기지고 지쳐있는 육신을 방관한다는 것 또한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를 일으켜 주심에 있어서 그의 천사를 통하여 음식물을 제공해 주신 것을 보면 우리 또한 하나님께서 공급해 주시는 일용할 양식을 먹고 마시므로 힘을 얻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일으켜 주심에 있어서 육신적으로도 강건하게 하신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음식물의 힘으로 우리의 육신을 강건케 하시사 우리로 하여금 다시 일어나게 하여 주시길 기원합니다.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말씀의 힘으로 엘리야를 다시 일으켜 주셨습니다.

 

오늘 본문 열왕기상 19장 9절을 보십시오: “엘리야가 그 곳 굴에 들어가 거기서 머물더니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로뎀 나무 아래 누워서 자고 있었던 엘리야에게 하나님의 천사가 나타나서 두 번이나 “일어나”(5, 7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엘리야는 두 번이나 누웠기 때문입니다(5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하나님께서는 말씀의 힘으로 우리를 반드시 다시 일으켜 주신다는 사실을 재확신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두려워하고 심신이 지쳐 낙심하고 심지어 절망하고 있을지라도 우리를 반드시 다시 일으켜 주시되 육신만 아니라 우리의 영혼도 강건케 하시사 우리를 다시 일으켜 주신다고 확신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음식물의 힘으로 우리의 육신을 일으켜 주시고 또한 말씀의 힘으로 우리의 영혼을 일으켜 주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습니다: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 …”(시19:7).  그리고 저는 시편 기자처럼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나의 고난이 막심하오니 여호와여 주의 말씀대로 나를 소성케 하소서”(시119:107), “주는 나의 원한을 펴시고 나를 구속하사 주의 말씀대로 나를 소성케 하소서”(154절). 

 

저는 저의 인생을 “오뚜기 인생”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그리 생각하는 이유는 제가 예수님을 믿고 부르심을 받았을 때부터 지금까지 제 신앙의 여정을 뒤돌아 볼 때 수 없이제 자신에게 낙심하여 쓰러졌을 때마다 주님께서는 저를 다시 일으켜 주셨기 때문입니다.  다시 일으켜 주시되 주님께서는 저에게 주신 오병이어의 약속의 말씀(요6:1-15)으로 제 영혼을 소성케 하시사 저를 일으켜 주셨습니다.  특히 주님께서는 그 약속의 말씀을 주신 자신이 누구이신지를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믿고 깨닫게 하시므로 진실하고 신실하신 주님의 의지케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저로 하여금 하나님을 잠잠히 신뢰하게 하시므로 저에게 힘을 주셨습니다(사30:15).  그 힘으로 주님께서는 저를 오늘까지 지내오게 하셨으며 앞으로 주님 부르시는 그 날까지도 그 힘으로 저 높은 곳을 향하여 전진해 나아가게 하실 것입니다.  오직 주님의 힘으로, 오직 주님의 말씀의 힘으로 신앙의 경주를 완주하길 기원합니다(참고: 딤후 4:7).

 

 

다시 일으킴을 받는,

 

제임스 김 목사 나눔

[2014년 4월 24일,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한3서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