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히도벨의 좋은 계략을 물리치신 하나님

 

 

“압살롬과 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르되 아렉 사람 후새의 계략은 아히도벨의 계략보다 낫다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압살롬에게 화를 내리려 하사 아히도벨의 좋은 계략을 물리치라고 명령하셨음이더라” (사무엘하 17장 14절).

 

            당신 주위에는 지혜로운 사람 한 명이라도 있나요?  당신이 죄를 범하기 이전에 당신에게 사랑으로 책망하며 당신으로 하여금 죄를 범하지 않도록 막는 지혜로은 사람이 있나요? 

 

            저는 지난 주 새벽기도회 때 사무엘상 25장에 나오는 지혜로운 여인 아비가일에 대해서 묵상했었습니다.  그녀는 총명하고(3절) 지혜로운(33절) 여인으로서 다윗으로 하여금 악한 일(39절)인 “피를 흘릴 것과 친히 복수하는 것”을 막았습니다(33절).  저는 이 여인에 대해서 묵상한 후 새로운 기도 제목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 새로운 기도 제목이란 우리 부모들 뿐만 아니라 우리 자녀, 후손들에게도 아비가일과 같은 지혜로운 사람을 붙혀 주시는 것입니다.  제가 이렇게 기도하기 시작한 이유는 우리 주위에 100명, 1,000명의 미련한 자들이 있는 것 보다 한 사람의 지혜로운 사람이 있는데 훨씬 낮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저는 어느 그룹이나 조직에 한 사람의 나발과 같은 미련한 자가 있는 것보다 한 사람의 아비가일과 같은 지혜로운 자가 있으면 그 그룹이나 조직에 얼마나 유익한지 좀 알고 있기에 우리 교회 식구들과 함께 먼저 우리 자신에게 지혜를 주시길 하나님 기도한 후 우리 모두에게 지혜로운 사람을 보내주시길 기도했습니다. 

 

            오늘 본문 사무엘하 17장 14절을 보면 지혜로운 사람 두 명이 나옵니다.  그 두 사람이란 바로 아히도벨과 후새입니다. 

 

첫 번째 지혜로운 사람인 아히도벨은 다윗 왕의 모사였지만 다윗의 아들 압살롬이 다윗 왕을 배반할 때 다윗 왕을 버리고 압살롬을 택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압살롬과 함께 모반한 자들 가운데 있었습니다 (15:31).  그가 베풀었던 계략은 “사람이 하나님께 물어서 받은 말씀과 같은 것”이었습니다(16:23).  압살롬이 아히도벨에게 “너는 어떻게 행할 계략을 우리에게 가르치라”(20절)고 말하였을 때 아히도벨은 그에게 좋은 계략 두개를 베풀었습니다.  (1) 아히도벨이 압살롬에게 배푼 첫 번째 계략은 다윗 왕의 후궁들과 더불어 동침하라는 것이었습니다(21절).  그 이유는 “그러면 왕의 부친(다윗)이 왕(압살롬)을 원수로 여기고 있다는 것을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 알게 될 것이며 왕(압살롬)을 따르는 사람들은 크게 힘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21절, 현대인의 성경).  이 계략을 들은 압살롬은 장막을 친 왕궁 옥상에서 “온 이스라엘 무리의 눈앞에서 그 아버지의 후궁들과 더불어 동침”하였습니다(22절).  저는 이 아히도벨의 첫 번째 계략을 생각할 때 다윗 왕이 우리아의 아내인 심히 아름다와 보이는 밧세바와 동침하기 전에 저녁 때에 목욕하는 그녀를 “왕궁 옥상”에서 거닐다가 그곳에서 그녀를 보았다는 말씀이 생각났습니다(11:2).  결국 다윗은 왕궁 옥상에서 본 밧세바와 은밀하게 더불어 동침하였습니다(11:4; 12:12).  그러나 다윗의 아들 압살롬은 아히도벨의 계락대로 그 왕궁 옥상에서 “온 이스라엘 무리의 눈앞에서 그 아버지(다윗)의 후궁들과 더불어 동침”하였습니다(16:22).  왜 압살롬은 그리했을까요?  왜 아히도벨의 압살롬에게 그런 계략을 베풀었을까요?  저는 그 대답이 사무엘하 12장 12절에서 찾아 보았습니다: “너는 은밀히 행하였으나 나는 온 이스라엘 앞에서 백주에 이 일을 행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  즉, 아히도벨이 압살롬에게 이 첫째 계략을 베푼 이유는 하나님께서 나단 선지자를 통하여 다윗에게 하신 말씀을 성취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다윗은 밧세바와 몰래 동침을 하였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아히도벨을 사용하시사 압살롬으로 하여금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다윗 왕의 후궁들과 동침하게 하신 것입니다.  만일 도망가던 다윗이 자기 아들 압살롬이 그 왕궁 옥상에서 자기의 후궁들과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동침했다는 소식을 접했다면 그의 마음에는 무엇이 생각났었을까요?  목욕하는 밧세바를 보았던 그 날 그 저녁 때 왕궁 옥상을 거닐었었을 때를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안목의 정욕과 육체의 정욕에 이끌려 유부녀인 밧세바와 동침한 죄가 생각나지 않았을까요?  그는 자기 아들 압살롬이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자기의 후궁들과 그 왕궁 옥상에서 동침한 것을 생각할 때 이것이 자기 죄의 결과라고 여기지 않았을까요?  그리고 그는 나단 선지자의 예언대로 이것이 성취된 것을 깨닫고 하나님의 사랑은 거룩한 사랑임을 깨닫지 않았을까요?  그는 분명히 은밀히 범한 죄를 공개적으로 들춰내시는 하나님을 경외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다윗 왕의 아들 압살롬은 아히도벨이 베푼 이 첫 번째 계략을 듣고 그 계략대로 행하였습니다(16:22).  (2) 아히도벨이 압살롬에게 베푼 두 번째 계략은 자기에게 병력 12,000명만 주시면 그날 밤 다윗을 추적하여 그가 지쳐서 피곤할 때 그를 기습하여 다윗만 죽이고 다윗과 함께 있는 모든 백성은 압살롬에게 돌아오도록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17:1-3).  이 얼마나 좋은 계락입니까?  이 두 번째 계략을 들은 압살롬과 이스라엘 장로들은 다 아히도벨의 말을 좋게 생각하였습니다(4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압살롬은 또 다른 지혜로운 자인 아렉 사람 후새의 말도 듣기를 원했습니다(5절). 

 

두 번째 지혜로운 사람인 후새는 다윗의 친구였습니다(대상27:33).  그는 다윗이 하나님을 경배하는 마루턱에 이르렀을 때 옷을 찢고 흙을 머리에 덮어쓰고 다윗을 맞은 사람입니다(15:32).   그리고 그는 다윗의 명대로 다윗과 함께 가지 아니하고(33절) 오히려 모반을 일으킨 압살롬이 거하는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습니다(34절).  왜 다윗이 자기 친구를 데리고 가지 않고 오히려 자기를 죽이려고 하는 압살롬에게로 보냈을까요?  그 목적은 그가 기도한 내용대로[(31절) “여호와여 원하옵건대 아히도벨의 모략을 어리석게 하옵소서”] 아히도벨의 모략을 패하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34절).  또한 다윗이 후새를 예루살렘으로 돌려 보낸 목적은 그로 하여금 예루살렘 왕궁에서 일어나는 일을 캐내어 알아 자기에게 전달하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35-36절).  한 마디로 말하면, 다윗의 친구 후새는 하나님의 도구로서 아히도벨의 모략을 패하게 하는 사람이요 또한 다윗의 스파이로서 압살롬이 거하고 있는 예루살렘 왕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다윗에게 알리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목적을 가지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간 후새(37절), 압살롬은 아히도벨의 계략을 다 들은 후 후새의 계략도 들었던 것입니다(17:5).  그러면 후새가 압살롬에게 베푼 계략은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은 아히도벨의 계략(자기 자신과 12,000명의 병력이 다윗을 추적하는 것)과 달리 단에서 브엘세바까지 모든 이스라엘 사람을 모아 막강한 군대를 조직하여 압살롬이 직접 그 군대를 지휘하여 친히 전장에 나아가라는 것이었습니다(11절).  또한 후새의 계략은 아히도벨의 계략(다윗만 죽이는 것)과 달리 압살롬에게 다윗이 있는 곳을 찾아 기습 공격을 하여 다윗 뿐만 아니라 다윗의 군대를 한 사람도 남기지 않고 모조리 죽이라는 것이었습니다(12절, 현대인의 성경).  그리고 만일 다윗이 어느 성으로 도망가면 그 성까지도 무너뜨려야 한다고 것이었습니다(13절).  이 후새의 계략을 들은  압살롬과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은 후새의 계략이 아히도벨의 계략보다 낫다고 생각하였습니다(14절).  그런데 실제로 과연 후새의 계략이 아히도벨의 계략보다 나은 것이었나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하나님께 물어서 받은 말씀과 같은”(16:23) 아히도벨의 계략이 후새의 계략보다 훨씬 저 좋았습니다.  만일 압살롬이 후새의 계략을 선택하지 않고 아히도벨의 계략을 선택하여 아히도벨에게 병력 12,000명을 주어 그로 하여금 그날 밤 다윗을 추척하였다면 압살롬은 죽임을 당하지 않았을 것이고(후새의 계략을 선택한 결과) 오히려 다윗이 죽임을 당하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히도벨의 말대로 다윗만 죽임을 당하였으면 다윗을 따르던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은 압살롬에게 돌아왔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압살롬은 이렇게 좋은 아히도벨의 계략을 버리고 후새의 계략을 택한 것일까요?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다윗의 기도(15:31)를 들으시사 압살롬에게 화를 내리시려고 아히도벨의 좋은 계략을 물리치시기로 작정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17:14, 개혁개정 및 현대인의 성경).  더 큰 이유는 바로 하나님께서 다윗과 맺으신 언약 때문이었습니다(7:1-17).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16절, 참고: 12, 13절).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왕위와 다윗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시고자 아히도벨의 좋은 계략을 물리치시므로 압살롬에게 화를 내리신 것입니다(18장).  그 결과 다윗 왕은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되었고(19:11-15) 그의 왕위는 견고하게 된 것입니다.      

 

지혜로운 아히도벨과 후새와의 계략 싸움에서 결국 후새가 승리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아히도벨의 좋은 계략을 물리치시사 압살롬으로 하여금 후새의 계략을 선택하게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아히도벨이 압살롬에게 베푼 계략이 후새가 베푼 계략보다 우리가 볼 때에는 더 좋았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 더 좋은 계략을 물리치사 압살롬으로 하여금 후새의 계략을 선택하게 만드셨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기원대로 후새를 사용하시사 아히도벨의 모략을 패하게 하신 것입니다(15:34).  그 결과 아히도벨은 자기 계략이 시행되지 못함을 보고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 자기 집에서 집을 정리하고 스스로 목메어 죽습니다(17:23).  그리고 후새의 계략을 선택한 압살롬은 다윗의 장군인 요압에게 죽임을 당합니다(18:14).  그러나 다윗 왕은 다시 예루살렘 왕궁으로 돌아옵니다.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하나님께서는 세상적으로 지혜로운 사람의 계략을 물리치시는 하나님이심을 더욱더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 계략이 아무리 인간의 과점으로 볼 때에 매우 좋아 보인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 계략을 물리치신다는 사실을 더욱더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하나님의 작정이심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작정은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는 것입니다(고전1:19).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십니다(20절).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십니다(27절).  하나님께서는 세상적으로 볼 때에 미려한 우리들을 택하사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인 예수 그리스도(24절)의 십자가게 못 박히심(23절)과 부활하심을 전하게 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는)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십니다(21절). 

 

 

나 같은 세상의 미련한 것을 택하사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제임스 김 목사 나눔

(2014년 4월 13일, 세상의 헛된 지혜를 버리고 하나님의 지혜를 더욱더 간구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