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표준과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의 표준

 

 

“주 여호와여 주께서 이것을 오히려 적게 여기시고 또 종의 집에 있을 먼 장래의 일까지도 말씀하셨나이다 주 여호와여 이것이 사람의 법이니이다” (사무엘하 7장 19절) [(현대인의 성경) “여호와께서 나를 위해 이미 행하신 일도 과분한데 이제 내 집안의 장래 일까지 말씀해 주셨으니 그런 관대하심이 어찌 인간의 표준과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 교인들이 많아 질 수록 우리는 우리 하나님께 범죄하고 있습니다(호4:7).  그 원인은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기 때문입니다(6절).  그리고 우리에게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는 이유는 우리가 그 지식을 버렸기 때문입니다(6절).  우리가 하나님의 율법을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6절).  그러므로 우리는 여호와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힘써 여호와를 알아가야 합니다(6:3).  그리할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을 진정으로 알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알아갈 때 우리는 우리의 생각이 하나님의 생각과 천지 차이임을 알아가게 됩니다(사55:9).  우리는 우리의 표준과 하나님의 표준이 천지 차이임을 알아가게 됩니다.

 

            오늘 본문 사무엘하 7장 19절 하반절을 현대인의 성경으로 보면 “그런 관대하심이 어찌 인간의 표준과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다윗은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인간의 표준”이란 다윗의 기준으로 하나님의 행하심을 생각할 때 그것은 “큰 일”(a great thing)이었습니다.  23절을 보십시오: “땅의 어느 한 나라가 주의 백성 이스라엘과 같으리이까 하나님이 가서 구속하사 자기 백성으로 삼아 주의 명성을 내시며 그들을 위하여 큰 일을, 주의 땅을 위하여 두려운 일을 애굽과 많은 나라들과 그의 신들에게서 구속하신 백성 앞에서 행하셨사오며.”  다윗은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위하여 그들을 “애굽과 많은 나라들과 그의 신들에게서 구속하신” 것은 “큰 일”이라고 말하였습니다(23절).  이것이 바로 인간 다윗의 표준으로 하나님의 행하심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표준은 “이것을 오히려 적게 여기셨습니다(insignificant in Your eyes)(19절).  즉, 하나님의 기준으로 볼 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과 많은 나라들과 그의 신들에게서 구속하신 것은 지극히 작은 일이었다는 말입니다.  다윗은 자기의 표준으로 볼 때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이미 행하신 일이 큰 일이었지만 하나님의 표준으로 볼 때에는 지극히 작은 일이었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 “주 여호와여 주께서 이것을 오히려 적에 여기시고”(19절)라고 기도하였던 것입니다.  그가 이렇게 기도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자기와 맺은 언약 때문이었습니다(5-16절).  즉,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먼 장래의 일까지도 이렇게 약속하셨습니다(19절): “네 이름을 위대하게 만들어 주리라”(9절), “내가 또 내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한 곳을 정하여 그를 심고 그를 거주하게 하고 다시 옮기지 못하게 하며 악한 종류로 전과 같이 그들을 헤하지 못하게 하”겠다(10절), “너를 모든 원수에게 벗어나 편히 쉬게 하리라”(11절), “내가 네 몸에서 날 네 씨를 네 뒤에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 그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의 나라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12-13절), “내가 네 앞에서 물러나게 한 사울에게서 내 은총을 빼앗은 것처럼 그에게서 빼앗지는 아니하리라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15-16절).  이 모든 하나님의 말씀들과 이 모든 계시를 나단 선지자를 통해 들은 다윗(17절)은  하나님 앞에 들어가 앉아서 이렇게 기도를 시작하였습니다: “주 여호와여 나는 누구이오며 내 집은 무엇이기에 나를 여기까지 이르게 하셨나이까”(18절).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받은 다윗은 “주 여호와여, 나는 누구며 내 가족은 무엇인데 나에게 이런 축복을 베풀어 주셨습니까?”(18절, 현대인의 성경)라고 기도를 시작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와 우리 가족에게 지금까지 베풀어 주신 큰 은혜와 큰 사랑을 생각할 때 우리 또한 다윗처럼 ‘하나님, 저와 제 가족이 무엇이관대 이렇게 큰 축복을 많이 베풀어 주셨습니까?’라고 기도를 시작할 수 밖에 없지 않나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우리 가족에게 베풀어 주신 그 많은 큰 축복을 오히려 적게 여기시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결코 우리가 볼 때에는 적게 여길 수 없는 하나님의 큰 은혜와 큰 사랑이요 큰 축복인데 어떻게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은혜와 사랑과 축복을 적게 여기실 수가 있을까요.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더 큰 축복을 주실 수 있을실 뿐만 아니라 또한 주시고 싶어하시기 때문이 아닌가요.  그 정도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아낌없이 내어주실 정도로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롬 8:32, 요3:16).  이 하나님의 사랑의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한지 알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기원합니다(엡3:18-19).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사55:8-9),

 

제임스 김 목사 나눔

(2014년 4월 8일, 나의 기준이 아닌 하나님의 표준으로 더욱더 하나님을 생각하길 기원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