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께서 그를 치시리니 …”

 

 

“다윗이 또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여호와께서 그를 치시리니 혹은 죽을 날이 이르거나 또는 전장에 나가서 망하리라” (사무엘상 26장 10절).

 

 

            하나님의 뜻을 분별함에 있어서 상황에만 이끌려서 판단한다면 비슷한 상황이 두 번이나 반복되서 우리에게 일어난다면 우리는 ‘아 이것이 하나님의 뜻인가 보다’라는 생각 속에서 그 상황에 맞게 결정하고 행동하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그 반복되는 상황을 함께 경험하는 우리의 가까운 사람들도 그 상황을 겪으면서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라고 우리에게 말한다면 우리는 더욱더 그 상황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고 싶게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믿고 싶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린다는 생각으로 행동에 옮기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 나오는 다윗은 그리하지 않았습니다.  그에게 두 번이나 반복해서 일어났던 상황은 바로 자기를 찾아 죽이려고 하는 사울 왕을 죽일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삼상 24:3, 26:7).  그 때 다윗의 사람들은 그 상황은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내가 내 원수를 네 손에 넘기리니 네 생각에 좋은 대로 그에게 행하라”(24:4)고 말하였고, 아비새도 “하나님이 오늘 당신의 원수를 당신의 손에 넘기셨나이다”(26:8)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다윗도 “여호와께서 오늘 왕을 내 손에 넘기셨”다고 생각하였습니다(23절).  그래서 다윗은 첫 번째 사울 왕을 죽일 수 있는 상황에서 “일어나서 사울의 겉옷 자락을 가만히 베”었습니다(24:4).  그러나 그 후에 그는 양심의 가책을 받았습니다(5절).  그래서 그는 그의 사람들에게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께서 금하시는 것이”다(6절)라고 말하면서 그들을 금하여 사울을 해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7절).  그런 후 다윗은 사울에게(9절) “여호와께서 나와 왕 사이를 판단하사 여호와께서 나를 위하여 왕에게 보복하시려니와 내 손으로 왕을 해하지 않겠나이다  …  여호와께서 재판장이 되어 나와 왕 사이에 심판하사 나의 사정을 살펴 억울함을 풀어 주시고 나를 왕의 손에서 건지시기를 원하나이다”라고 말하였습니다(12, 15절).  이렇게 다윗은 재판장이신 하나님께서 자기와 사울 사이에 판단하사 자기를 위하여 보복해 주시고 그의 손에거 건져 주시도록 하나님께 보복과 구원을 다 맡겼습니다. 

 

그러다가 사울 왕을 죽일 수 있는 두 번째 상황이 왔었을 때 다윗은 자신과 함께 있었던 아비새에게 사울 왕을 “죽이지 말라”고 말하면서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치면 죄”라고 말하였습니다(26:9).  그러면서 그는 “분명히 말하지만 여호와께서 그를 치실 것이니 그는 죽을 때가 되어 죽거나 전쟁에서 죽게 될 것이다”(10절, 현대인의 성경)라고 말하였습니다.  사울 왕을 죽일 수 있었던 첫 번째 상황에서는 다윗이 ‘하나님께서 기름 부어 세운 사울 왕을 죽이는 것이 죄이다’ 라는 말이나 ‘하나님께서 그를 치실 것이다’라는 말을 하지 않았었습니다.  그런데 사울 왕을 죽일 수 있었던 이 두 번째 상황에서 첫 번째 상황과 달리 다윗은 하나님께서 기름 부어 세운 왕을 죽이는 것이 죄라는 것을 말하면서 그 죄를 짖지 않으려고 하였을 뿐만 아니라 자기의 사람인 아비새로 하여금도 그 죄를 범하지 못하도록 금하였습니다(9절).  그 뿐만 아니라 다윗은 첫 번째 상황과 달리 두 번째 사울 왕을 죽일 수 있는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사울을 치실 것임을 확신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10절).  어떻게 다윗은 죄를 짖지 않으려고 하였고 또한 하나님께서 사울을 치실 것은 확신할 수 있었을까요?  저는 그 대답을 이 두 상황(24, 26장) 사이에 다윗에게 일어났던 나발의 사건(25장)에서 찾게 되었습니다.  그 대답이란 하나님께서 나발의 아내인 아비가일을 사용하셔서 다윗으로 하여금 악으로 다윗의 선을 갚았던(25:21) 나발에게 친히 복수하는 것을 막으시므로(26, 33-34절) 다윗으로 하여금 이 악한 일을 하지 않게 하셨기 때문입니다(28, 39절).  이 하나님의 역사로 말미암아 다윗은 자기 손으로 친히 복수하는 것은 악한 일이요 죄인 줄 깨닫게 된 것입니다.  또한 다윗은 하나님께서 친히 나발을 치시므로 그가 죽었다함을 듣고(38-39절) 재판장이신 하나님께서 자기와 사울 왕 사이에 심판하사 자기의 사정을 살펴 억울함을 풀어 주시고자(24:15) 하나님께서 친히 자기를 위하여 사울 왕에게 보복하실 것(12절)을 확신하게 된 것입니다.  즉, 다윗은 원수 갚는 것이 자기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에게 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된 것입니다(롬12:19).  그래서 그는 아비새에게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여호와께서 그를 치시리니 혹은 죽을 날이 이르거나 또는 전장에 나가서 망하리라”(26:10)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하나님께서 다윗을 어떻게 빚고 계셨는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사무엘상 24장에서 부터 26장까지 석장을 묵상하면서 사울 왕을 죽일 수 있었던 첫 번째 상황에서 나발의 사건 그리고 사울 왕을 죽일 수 있었던 두 번째 상황으로 올 때까지 하나님께서 다윗을 어떻게 변화시키시고 계셨는지를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할 때 제 마음에 드는 생각은 하나님께서 지혜로운 여인 아비가일을 통하여 다윗을 더욱더 지혜롭게 하시사 하나님을 경외케 하므로 하나님께 범죄치 않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아비가일으로 하여금 다윗이 자기 손으로 피를 흘려 친히 나발을 죽여 보복하는 일을 막으시고 하나님께서 나발을 치시므로 다윗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케 하시되 원수 갚는 것은 하나님께 있음을 확신케 하셨다고 생각합니다.  그랬기에 다윗은 “여호와께서 그(사울)를 치시리니 …”(26:10)라고 확신있게 말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동일한 하나님께서 우리를 빚으시고 또한 변화시켜주시고 계시다고 믿습니다.  누군가에게 친히 복수할 수 있는 상황이 우리에게 반복적으로 주어지거나 또는 누구간에게 친히 복수할 수 있는 힘이 우리에게 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원수 갚은 것이 하나님께 있음을 우리로 하여금 깨닫게 하시사 하나님께 범죄치 않게 하시고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원수 갚은 일을 다 하나님께 맡기게 하신다고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원수를 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손으로 친히 보복해서는 아니될 것입니다.

 

 

“여호와는 보복의 하나님이시니 반드시 보응하시리로다”(렘 51:56),

 

제임스 김 목사 나눔

(2014년 4월 4일, 나 같은 죄인을 빚으시사 변화시켜 주시고 계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