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시는 하나님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내게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나를 징벌하셨고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셨거늘 너희가 어찌 나를 나오미라 부르느냐 하니라” (룻기 1장 21절).

 

 

            저는 설교하러 강대상에 설 때 제 앞에 앉아 계신 성도님들을 보면서 종종 오늘 교회 못오신 분이 누구이신가를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그냥 저절로 관심이 그 분들에게 가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예배를 마치고 나서는 왜 그 분들이 오늘 교회 못오셨을까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이러한 제 자신을 모습을 볼 때 아마도 저의 본능은 저와 함께 있는 분들보다 저와 함께 없는 분들을 더 신경쓰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제 자신의 본능을 우리 모두에게 한번 적용해 본다면 우리의 본능은 우리와 함께 있는 사람보다 우리를 떠난 사람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오늘 본문 룻기 1장 21절에 나오는 나오미란 여인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녀는 자기에게 있는 사람보다 없는 사람에게 더 큰 관심과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녀가 오늘 본문에서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내게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고 한 말은 사람을 가리킨다고 하기 보다 그녀가 소유했던 재산을 가리킬 것입니다[(현대인의 성경) “내가 이곳을 떠날 때는 가진 것이 많았으나 여호와께서는 나를 빈손으로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  그러나 만일 우리가 그녀의 소유물을 재산에만 국한하지 않고 사람에게도 적용을 해본다면 나오미는 자기가 잃어버린 재산 뿐만 아니라 모압 땅에서 남편과 두 아들도 다 잃어버렸기에(3, 5절)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내게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21절)라고 말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만일 이렇게 오늘 본문을 해석해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 분명히 나오미는 자기가 함께 베들레헴으로 온 며느리 룻보다 함께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한 남편과 두 아들(및 다른 며느리인 오르바?)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었습니다.  즉, 그녀는 자기와 함께 있는 며느리 룻보다 자기와 함께 없는 남편 엘리멜렉과 두 아들인 말론과 기룐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었습니다.  그랬기에 그녀는 흉년이 들어 고향 베들레헴에서 떠나 모압 지방에 가서 살다가(1절)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축복하여 그 땅에 풍년이 들게 하셨다는 소식을 듣고(6절, 현대인의 성경) 자기와 함께 가기로 굳게 결심한 며느리 룻과 함께(18절) 다시금 베들레헴으로 돌아와서 떠들썩하는 베들레헴 온 성의 여자들에게(19절)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내게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현대인의 성경) “내가 이 곳을 떠날 때는 가진 것이 많았으나 여호와께서는 나를 빈손으로 돌아오게 하셨습니다”](21절상)고 말한 것입니다.  그녀는 하나님의 손이 자기를 치셨고(13절) 하나님께서 자기를 징벌하시사 자기를 괴롭게 하셨다고 생각하였기에(21절) 장차 하나님께서 그녀의 며느리인 룻을 통하여 무슨 일을 행하실런지를 기대하며 소망하지 못했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나오미는 하나님께서 룻으로 하여금 기업 무를 자인 엘리멜렉의 친족 보아스에게 속한 밭으로 인도하시사(2:3) 결국에는 보아스로 하여금 엘리멜렉과 기룐과 말론에게 있던 모든 것을 나오미의 손에서 사게 하시고 또 말론의 아내 모압 여인 룻을 사서 그의 아내로 맞이하게 하시사(4:9-10) 그 부부로 하여금 다윗의 할아버지인 오벳을 낳게 하실지를(17절) 전혀 기대하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꿈도 꾸지 못했습니다.  특히 나오미는 여인들(14절)의 말처럼 그녀의 며느리인 룻이 사랑하여 일곱 아들보다 더 많은 정성을 당신에게 쏟을 뿐만 아니라 이제 이런 며느리가 그녀에게 손자를 낳아 주므로 이 아이는 그녀에게 새로운 삶을 안겨다 줄 것이며 나이 많은 그녀를 잘 보살펴 줄 것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15절, 현대인의 성경).  예상은 못했을지라도 적어도 그녀가 하나님을 믿음으로 바라보고 있었다면 자기와 함께 없는 죽은 남편과 두 아들에게 초첨을 맞추고 있기보다 자기와 함께 있는 며느리 룻에게 초점을 맞추고 하나님께서 그녀를 통하여 무슨 일을 어떻게 이루어 나아가실지를 기도하며 기대하며 기다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룻보다 자기의 남편과 두 아들들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었기에 베들레헴 성에 여자들에게 “나를 나오미(뜻: 희락, 즐거움, 행복)라 부르지 말고 나를 마라(뜻: 쓰다, 괴롭다)라 부르라”(1:20)고 말한 것입니다. 

 

            여기서 제가 얻는 교훈은 인생의 쓴 맛을 맛볼 때에 잃어버린 것에 초점을 맞추지 말고 얻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비우게 하신 것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하나님께서 아직도 저에게 남겨두신 사람들에게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하나님께서 저에게 은혜의 선물로 남겨 두신 사람들에게 초점을 맞추려고 합니다.  그리고 저는 제가 없는 것보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은혜로 주신 것에 초점을 맞추려고 합니다.  그러한 가운데 비록 소중한 사람을 여러 명 잃어버리므로 제 마음이 괴롭고 힘들 때에라도 저는 소망을 잃지 않고 하나님께서 제 주위에 남겨두신 귀한 분들을 통해서 어떻게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사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아가실지를 기도하며 기대하며 기다리려고 합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마라”를 “나오미”로 바꾸시사 우리로 하여금 춤을 추게 하실 것입니다.

 

 

비움의 풍족함을 누리길 원하는,

 

 

제임스 김 목사 나눔

[2014년 3월 25일, 엘리야 선지자 시대 때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바알에게 입맞추지 아니한 이스라엘에 7,000명을 남겨두신 하나님을 바라보면서(왕상19: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