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보았습니까?

 

 

“곧 그 큰 시험과 이적과 큰 기사를 네 눈으로 보았느니라  …  너희가 또 그들 중에 있는 가증한 것과 목석과 은금의 우상을 보았느니라” (신명기 29장 3, 17절).

 

            보는 눈이 있다는 것은 축복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삶 속에서 역사하고 계심을 볼 수 있다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역사하시되 하나님께서 나를 인도하시되 역경과 어려움 속에서 건져내 주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볼 수 있는 눈이 있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는 눈은 결코 축복이 아닙니다.  왜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할까요?

 

            오늘 본문 신명기 29장 3, 17절을 보면 모세가 모압 땅에서 이스라엘 백성과 세우신 언약의 말씀을 하는 중 그들에게 “보았느니라”고 반복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보았다고 모세가 말하고 있습니까?  먼저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서 애굽 땅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목전에 바로와 그의 모든 신하와 그의 온 땅에 행하신 모든 일(2절), 즉 “그 큰 시험과 이적과 큰 기사”를 그들의 눈으로 보았다(3절)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좀 이상한 것은 모세는 그들에게 “보는 눈”(eyes that see)이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4절).  분명히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구원하시고자 애굽에서 행하신 모든 일을 눈으로 보았는데 왜 모세는 그들이 보는 눈이 없다고 말한 것일까요?  그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 땅에서 살았었을 때와 그들이 여러 나라들을 통과할 때 “가증한 것과 목석과 은금의 우상”을 보았기 때문입니다(16-17절).  즉, 이스라엘 백성이 보는 눈이 없었던 원인은 가증한 것과 목석과 은금의 우상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우상을 보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애굽 땅에서 행하신 모든 일(큰 시험과 이적과 큰 기사)를 보는 눈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염려하였습니다.  무엇을 그는 염려하였습니까?  바로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이 하나님을 떠나서 “그 모든 민족의 신들에게 가서 섬길까”봐 모세는 염려하였습니다(18절).  그래서 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독초와 쑥의 뿌리가 너희 중에 생”기지 않도록 하라고 말하였습니다(18절).  왜냐하면 만일 독초와 쑥의 뿌리가 그들 중에 생기면 이스라엘 백성은 “이 저주의 말을 듣고고 심중에 스스로 복을 빌”것이기 때문입니다(19절).  스스로 복을 빌되 그들은 “내가 내 마음이 완악하여 젖은 것과 마른 것이 멸망할지라도 내게는 평안이 있으리라”( "I will be safe, even though I persist in going my own way.")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입니다(19절). 

 

아니 어떻게 이스라엘 백성은 율법책에 기록된(21절) 저주의 말을 듣고도 스스로 자신에게 복을 빌 수가 있습니까?  아니 어떻게 그들은 우상을 섬기는 길 걷기를 고집하면서도 자신이 안전할 것이다 라고 생각할 수가 있습니까?  저는 이 이스라엘의 모습을 생각할 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6:24).  왜 우리가 눈이 있어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시되 역경과 어려움 속에서 건져내 주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보지 못하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과 더불어 재물을 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돈의 우상을 보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역사를 보고 있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탐심 속에서 돈을 우상화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꼐서 우리 삶 속에 행하시는 모든 일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다시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시는 일을 보기 위해선 우리는 우리 마음의 돈의 우상을 버려야 합니다.  우리는 더 이상 돈을 사랑해서는 아니됩니다.  우리는 돈의 우상을 미워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마음의 탐심을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우리 삶 속에서 행하시는 일을 볼 수가 있을 것입니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욥기 42:5),

 

제임스 김 목사 나눔

(2014년 3월 6일, 보는 눈을 사모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