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할지라도 다 여호와 앞에 마땅히 …”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나 너희 후손 중에 시체로 말미암아 부정하게 되든지 먼 여행 중에 있다 할지라도 다 여호와 앞에 마땅히 유월절을 지키되” (민수기 9장 10절).

 

            우리가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볼 때에 원치 않는 죄를 하나님께 범하므로 말미암아 우리 자신에게 실망할 때가 있습니다.  실망하되 원치 않는 죄를 하나님께 범하면서도 우리 자신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면서 자신의 무기력함을 느낄 때 우리는 더욱더 우리 자신으로 인하여 실망하게 됩니다.  그 때 우리의 반응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던지 아니면 더욱더 가까이 나아가던지 이 둘 중에 하나인 것 같습니다.  만일 우리가 자책감과 자괴감 속에서 힘들어 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으로 부터 멀어지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그 자책감 속에서 오히려 우리의 죄를 걸머지시고 십자가에 피흘려 죽으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바라본다면 우리는 우리의 무기력한 그 모습 그대로 주님께 더욱더 가까이 나아갈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 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이 모습 이대로 받아주신다는 사실을 믿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이 모습 이대로 받아주실 뿐만 아니라 우리를 빗으시사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오늘 본문 민수기 9장 10절을 보면 “사람의 시체로 말미암아 부정하게 되어서 유월절을 지킬 수 없는 사람들”(6절)이 이스라엘 자손과 함께 정한 기일에 하나님께 헌물을 드리지 못하게 됨을 모세와 아론에게 물었을 때(7절)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하신 말씀입니다(9절).  그 말씀의 내용은 “시체로 말미암아 부정하게 되”었다 “할지라도 다 여호와 앞에 마땅히 유월절을 지키”라는 것입니다(10절).  지키되 정한 기일(2절)인 “이 달 열넷째 날”(3절), 즉 “첫째 달 열넷째 날 해 질 때에 시내 광야에서 유월절을 지”키지 못하고(5절) 그들은 한 달이 지난 “둘째 달 열넷째 날 해 질 때에 그것을 지”키라는 말씀이었습니다(11절).  결국 사람의 시체로 말미암아 부정하게 된 사람들조차도 한 달 후인 2월 14일에 유월절을 지킬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삼손이 생각났습니다.  아마도 그 이유는 삼손은 나실인으로서 법을 어기고 부정하게 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를 사용하셨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삼손은 하나님께 구별된 나실인으로서 부정한 것(술 포함)을 먹지 말며, 부정한 것(시체)을 가까이 하지 않고, 머리를 자르지 않고 살았어야 했는데 그는 딤나의 포도원에 갔었고(삿14:5), 자기가 죽인 사자의 시체를 가까이 했을 뿐만 아니라(8절) 그 시체 속에서 벌 때의 꿀을 취해서 먹었고(9절) 또한 이방여자 드릴라를 사랑하여(16:4) 마침내 머리를 깎이고 모든 힘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19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삼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주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나를 생각하옵소서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이번만 나를 강하게 하사 나의 두 눈을 뺀 블레셋 사람에게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하옵소서”(28절)라고 간구하였을 때 그의 기도를 응답하시사 그를 강하게 하시므로 불레셋 사람들에게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하셨습니다(30절).  성경은 삼손이 죽을 때에 죽인 자들이 살았을 때에 죽인 자들보다 더욱 많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30절).  삼손은 부정하게 되었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를 자신의 도구로 사용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부정하였다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 마땅히 애굽에서의 노예 생활로부터의 해방을 기념하는 유월절을 지켰던 사람들처럼 우리도 범죄하였다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 마땅히 사탄의 왕국에서의 죄의 노예 생활로부터의 해방을 기념하는 예수님의 성만찬, 즉 성찬식에 참여합니다.  성찬식에 참여할 때 우리는 유월절 어린양이 되시는 예수님의 피와 살을 상징하는 빵과 포도주를 믿음으로 겸손히 받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을  기념합니다.  우리가 그리 하는 이유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모든 죄 사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범죄하였다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 마땅히 안식일을 지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예배를 드립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마땅히 영원히 죽어야 할 죄인이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죄 사함 받고 영원한 생명을 얻은,

 

제임스 김 목사 나눔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을 기념하는 성찬식을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있음에 감사하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