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신자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하여 그들에게 이르라 남자나 여자가 특별한 서원 곧 나실인의 서원을 하고 자기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려고 하면” (민수기 6장 2절).

 

 

            교회에서 봉사하는 것이 힘듭니다.  항상 봉사하는 사람들만 봉사합니다.  그래서 한 사람이 한 가지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일들을 합니다.  묵묵히 주님만 바라보면서 열심히 봉사하려고 해도 함께 봉사하는 사람들과 관계하는 것도 힘들고 또한 말들도 많습니다.  그래서 고민이 많습니다.  봉사하던 일을 내려놓고 싶은 마음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쉽게 마음대로 내려놓지도 못합니다.  참고 또 참으면서 봉사를 하고 있지만 점점 더 지쳐만 갑니다.  그리고 봉사의 보람을 느끼기 보다 마음이 점점 더 무거워만 갑니다.  그런데도 교회에서는 계속해서 열심히 봉사하라고 더 큰 헌신을 요구합니다.  결국에 가서는 탈진해서 봉사하던 일만 내려놓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교회를 떠나가 까지 합니다.  이것이 지금 당신의 모습은 아닌지요?  이런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과연 나는 어떻게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섬겨야 하는가?”  그러나 이보다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던져야 더 중요한 질문은 ‘과연 우리는 어떠한 헌신자가 되야 하는가?’입니다. 

 

            오늘 본문 민수기 6장 2절을 보면 “나실인의 서원”(a vow of separation)이란 말이 나옵니다.  여기서 “나실인”이란 ‘구별된 자’(a separated one)를 가리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문맥을 보면 ‘자기 몸을 구별하다’라는 문구가 여러번 나옵니다(4, 5, 6, 7, 8, 12, 13, 18, 19, 21절)[‘자기 몸을 정결하게 하다’(9절), ‘그의 머리를 성결하게 할 것이다’(11절)].   이렇게 나실인은 자기 몸을 구별하여 하나님 드려진바 된 사람입니다.  즉, 나실인은 헌신자입니다.  그는 하나님께 헌신한 자입니다.  오늘 나실인의 법을 묵상하면서  하나님께 헌신한 자는 어떠한 자인지 한 3가지로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첫째로, 하나님께 헌신한 자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자입니다.

 

            민수기 6장 3-4절을 보십시오: “포도주와 독주를 멀리하며 포도주로 된 초나 독주로 된 초를 마시지 말며 포도즙도 마시지 말며 생포도나 건포도도 먹지 말지니 자기 몸을 구별하는 모든 날 동안에는 포도나무 소산은 씨나 껍질이라도 먹지 말지며.”  나실인의 법은 나실인의 서원을 하고 자기 몸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리려고 하면(2절) 포도주와 독주를 멀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3-4절).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왜 나실인은 포도주와 독주를 멀리해야 합니까?  그 이유는 나실인은 하나님 제일주의를 살아야지 향락주의로 살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좀 더 구체적인 이유는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면 사람이 정신이 혼미해져서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을 분별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께 헌신한 우리 성도들이 술에 취하여 정신이 흐려지면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여 그 뜻대로 살아갈 수가 있겠습니까.  술취함 뿐만 아닙니다.  요즘 이 어두운 세상에 우리의 정신을 혼미케 만드는 것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특히 이 세상에 끊임이 없는 음란의 유혹으로 말미암아(겔23:48) 지금 많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혼미한 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왜 우리가 이 지경까지 오게 된 것입니까?  그 이유는 우리가 심히 미련하여 하나님의 훈계를 받지 아니하였기 때문입니다(잠5:23).  그 훈계 중 하나는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12:2)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이 세대를 본받고 있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기 보다 오히려 마음을 더럽게 함으로 변질되어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하려고 하지도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 뜻대로, 우리 마음대로 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정신을 못차리고 있습니다.  그러한 우리들에게 성경은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릴지라”(살전5:6),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정신을 차리”라(8절),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벧전4:7)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정신을 차려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자들이 되야 합니다.  우리는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 되야 합니다(히5:14).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 되기 위해선 우리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딤후2:15).  그러기 위해선 우리는 향락주의를 멀리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의 정신이 혼미해 져서는 결코 아니됩니다.  오히려 우리는 말씀에 깨어 정신을 차려서 기도하는 가운데 영적으로 민감하며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여 그 뜻대로 살아야 합니다.

 

            둘째로, 하나님께 헌신한 자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자입니다.

 

            민수기 6장 5절을 보십시오: “그 서원을 하고 구별하는 모든 날 동안은 삭도를 절대로 그의 머리에 대지 말 것이라 자기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는 날이 차기까지 그는 거룩한즉 그의 머리털을 길게 자라게 할 것이며.”  나실인의 법은 나실인의 서원을 하고 자기 몸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리려고 하면(2절) 머리에 삭도를 대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5절).  나실인은 절대로 자기 머리에 삭도를 대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그는 자신의 머리털을 길게 자라게 해야 합니다.  이 나실인의 법을 생각할 때 우리는 삼손을 생각하게 됩니다.  삼손이 태어나기 전에 하나님의 사자가 삼손의 어머니인 마노아의 아내에게 나타나서(삿13:2-3) 임신하여 아들을 낳을 것임을  말하면서 그녀에게 “그의 머리에 삭도를 대지 말라”고 명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장차 태어날 삼손은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인이 됨”이기 때문입니다(5절).  그러나 나중에 삼손은 자기가 사랑하는 “소렉 골짜기의 들릴라라 이름하는 여인”(16:4)에게 “진심을 다 알려 주므로”(18절) 결국 그녀의 무릎을 베고 잘 때에 그의 머리털 일곱 가닥이 밀려 그의 힘이 없어졌습니다(19절).  그래서 머리에 삭도를 대지 말라는 이 나실인의 법을 생각할 때 우리는 그 법의 의도는 “힘”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민수기 6장 7절 하반절인 “하나님께 드리는 표가 그의 머리에 있음이라”라는 말씀을 보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 나실인의 법을 주신 이유가 “힘”과 관련되지 않았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오히려 민수기 6장 7절 하반절 말씀을 고린도전서 11장 10절인 “그러므로 여자는 천사들로 말미암아 권세 아래에 있는 표를 그 머리 위에 둘지니라(… the woman ought to have a sign of authority on her head)”와 연관해서 생각할 때 나실인의 머리에 삭도를 절대로 대지 말라는 이 법은 “힘”과 관련되었다기 보다 “권세”(authority)와 관련된 것을 우리는 알 수가 있습니다.  여기서 그 권세란 바로 하나님의 권세입니다.  박윤선 박사님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성경에 의하면 누구 머리털을 기름은 그의 위에 주장하는 자 있음을 상징한다(고전11:10).”  그라므로 우리는 이렇게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나실인이 자기 머리에 삭도를 절대로 대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그는 하나님께 받쳐진 자로서 그의 위에 절대 주권자이신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만일 하나님께 헌신한 우리 성도들이 절대 주권자이신 하나님이 우리 삶에 계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만일 지금 우리가 하나님의 주권을 부인하면서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섬기고 있다면 그것은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주님을 섬기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지금 우리는 우리 자신을 섬기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우리 자신들의 배만 섬기고 있는 것입니다(롬16:18).  이 말은 지금 우리는 우리 자신들의 배부름을 위해서 교회를 섬기고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만족을 위하여 교회를 봉사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자신의 배를 섬기는 것은 탐심입니다.  그리고 탐심은 우상숭배입니다(골3:5).  그러나 하나님께 헌신한 우리들은 이 모든 탐심을 물리쳐야 합니다(눅12:15).  우리는 탐내지 말아야 합니다(롬7:7).  결코 우리는 탐심의 탈을 쓰고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섬겨서는 아니됩니다(살전2:5).  오히려 우리는 예수님 한분만으로 자족하면서(빌4:11) 헌신적으로 교회를 섬겨야 합니다.  섬기되 우리는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주님의 주권을 겸손히 인정하면서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섬겨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주권적인 뜻에 우리 자신을 복종시키면서 주님의 교회를 섬겨야 합니다(고전9:27).  결코 우리는 우리 뜻대로, 우리 마음대로 섬겨서는 아니됩니다. 

 

            셋째로, 하나님께 헌신한 자는 죄를 멀리합니다.

 

            민수기 6장 6-7절 상반절을 보십시오: “자기의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는 모든 날 동안은 시체를 가까이 하지 말 것이요 그의 부모 형제 자매가 죽은 때에라도 그로 말미암아 몸을 더럽히지 말 것이니 ….”  나실인의 법은 나실인의 서원을 하고 자기 몸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리려고 하면(2절) 죽은 시체를 멀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6-7절상).  멀리하되 심지어 그의 부모 형제 자매가 죽은 때에라고 그 시체를 가까이 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나실인으로 하여금 죽은 시체를 가까이 하지 말게 하셨을까요?  그 이유는 바로 죄의 삯은 사망이기 때문입니다(롬6:23).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나실인으로 하여금 죽은 시체를 멀리하게 하신 이유는 하나님께 구별된 헌신자는 죄를 멀리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만일 하나님께 헌신한 우리 성도들이 죄를 가까이 하면서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섬기고 있다고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만일 지금 하나님께 구별된 우리가 세상과 짝지어 살면서 세상에 속한 사람들처럼 구별되지 못하게 죄를 지면서 살고 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주님의 몸된 교회가 더럽혀지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헌신자의 올바른 삶은 주권자이신 주님의 뜻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원치 않는 불순종의 삶을 살면서 하나님께 죄를 범할 때가 참 많습니다.  죄를 멀리하고 주님을 가까히 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데 오히려 우리는 반대로 살 때가 많습니다.  지금 우리는 주님의 법을 멀리하고(시119:150) 오히려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죄를 가까이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하나님의 뜻과 정반대로 살면서도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섬기고 있습니다.  과연 이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합니까.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해야 합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4:17).  우리는 예수 십자가가에 흘리신 보혈을 의지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시34:18).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과를 우리에게 멀리 옮기실 것입니다(시103:12).  성경은 하나님은 우리가 그에게 기도할 때마다 우리에게 가까이 하신다(신4:7)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자기에게 진실하게 간구하는 모든 자에게 가까이 하십니다(시145:18).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우리에게 복입니다(시73:28).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동시에 우리는 죄를 멀리해야 합니다.  우리는 탐심이란 우상을 멀리해야 합니다(요일5:21).  우리는 음행을 멀리해야 합니다(겔43:9, , 잠5:8, 행15:29).  우리는 헛된 것과 거짓말을 멀리해야 합니다(잠30:8). 

 

            말씀 묵상을 맺고자 합니다.  여러분, 우리 성도들은 구별된 자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헌신한 자들입니다.  우리는 헌신자들로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자들이 되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자들이 되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주권자가 되시는 하나님의 뜻에 복종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에서 구별된 성도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는 죄를 멀리해야 합니다.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주님께 헌신하는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로 우리 모두가 세움 받길 기원하는,

 

 

제임스 김 목사 나눔

(2014년 2월 15일, 회개의 눈물과 헌신의 눈물과 감사의 눈물을 흘리는 자로 세움 받길 기도하는 마음으로)